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2.개항기.구한말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동방박사님 2023. 1. 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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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바다를 건너 침투해 온 우리 근대의 출발점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6세기부터 1860년대 초 사이에 조선에 들이닥친 서양의 타자들은 너무나도 낯선 존재였다. 어느 날 거대한 배를 타고 나타난 그들은 조선 사회라는 무대에 갑자기 뛰어올라온 불청객이었다. 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은 상품 시장과 선교 기지를 찾아 동쪽으로 밀려들었고, 18세기 중반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군함과 총포를 앞세워 우리 역사에 단절점을 거칠게 만들어냈다.

이 책은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해안에 수없이 나타났던 서양인들과 조선 측의 기록을 통해, 최초로 거대한 외부와 접촉한 조선의 자화상을 탐사한다. 또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상황과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진출사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더욱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서구열강과 일본에 의해 맞게된 근대라는 비극적인 결과보다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이 서양인들과 처음 대면했던 시기에 열려있던 역동적이고 중층적인 가능성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 타자의 발견, 발견된 자아

제1부 먼 나라에서 온 손님들

1. 아란타는 어느 지방 오랑캐인가-영국 탐사선 프로비던스호
코가 크고 눈이 파란 사람들
아란타는 서남 지방 오랑캐
코리아 해안은 탐사되어야 한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구경꾼들
망원경과 총을 선물하다
거만한 관리와 만나다
서양 배 한 척이 조선 배 백 척을 이긴다
서양 선박을 불러오자

2. 공포의 야만국에서 보낸 나날들 ― 네덜란드 표류인 박연과 하멜 일행
불랑기국과 불랑기 그리고 서양포
야만적이고 잔인한 백성이 사는 곳
제주도에 온 최초의 서양인
파랑국의 해귀가 참전하다
조선과 네덜란드, 남해에서 충돌하다
먼 이국땅에서 생애를 마치다
너희는 길리시단인가?
코로 퉁소를 불다
야만인 이미지가 형성되다
일본의 주인선 무역과 기독교 탄압
네덜란드 풍설서와 난학의 발전
코레아를 발견하라
인육을 구워 먹는 야만족
서양 문물이 전래되다

3. 발견과 명명의 논리 ― 프랑스 탐험가 페루즈의 여행
공포의 섬, 제주도
어느 해도에도 기록되지 않은 곳
비어 있는 섬, 울릉도

4. 호기심과 공포가 엇갈리다 ― 영국 장교 홀과 맥스웰의 조선 기행
왜가리처럼 지절대는 사람들
이 섬을 빨리 떠나라
시계를 처음 본 사람들
가면무도회 같은 필담 풍경
처음 쇼를 구경한 학생처럼 즐거워하다
조선 정부의 경계심
기이하고 보배로운 물건들
지방관을 파면하라
1만 개의 섬을 지배하는 왕
나폴레옹이 주목한 조선인 관리


제2부 산천을 측량하고 사교를 퍼뜨리다

1. 외국인 혐오증은 천성인가 ― 영국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
모두 왕을 두려워해야 한다
당신들의 생사는 예측하기 어렵다
독한 술에도 끄떡없는 조선인들
즉결 처형식이 열리다
야만인들의 친절함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민족
조선 음식을 맛보다
불결하고 궁핍한 거처들
속국은 외국과 통상할 수 없다
왜 통상을 두려워하는가
아, 이것이 우리의 법입니다
이국인과 교역하면 참수당한다
편지와 토산물을 바치다
무역 조약은 무슨 뜻인가
영국인은 배를 집으로 삼는가
책자를 던지고 달아나다
조선은 외교권이 없다

2. 태양과 별을 관찰하러 왔다 ― 영국 측량선 사마랑호
총을 쏘고 소를 빼앗다
중국에 서양 물건이 넘쳐납니다
아편을 불태우다
아편이 만연하는 중국
중국과 영국의 무력충돌
『해국도지』가 들어오다
친절한 주민과 적대적인 외국인들
연기가 피어오르는 언덕
관리를 인질로 잡다
대포와 총을 발사하다
문명의 흔적이 없는 거문도
모자도 없고 편지도 없다
돌을 쌓고 제사를 올리다
여기는 조선 탐라인가?
추악한 무리들이 행패를 부리다
청나라에 보낸 외교문서
추사 김정희의 천주교 비판

3. 왜 선교사를 살해했는가 ― 프랑스 군함 세실호의 원정
사학죄인은 금수만도 못하다
김대건, 조선 전도를 그리다
조선의 죄를 따지겠다
프랑스인을 해치면 재앙이 닥칠 것이다
내년에 다시 오겠다
나는 것처럼 빠른 이국선들
사사로이 이국인과 문답하다
김대건을 처형하라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다
악천후로 좌초한 프랑스 함대
고국에서 속만 앓은 최양업
배 구멍에서 연기를 토하다
조선의 배를 빌리고 싶다
유원지의를 베풀어야 한다
중국에서 배를 세내다
떠나가는 이방인
선교사 살해는 정당하다
먼저 적을 헤아려야 한다
굿으로 서양 도깨비를 쫓아야 한다
서양목이 성행해서 실업할 지경
조선 원정대를 파견하다
프랑스 신부의 밀입국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자
시계를 훔친 소년
조선은 유럽 열강에 희생될 것
창과 칼을 휘두르는 이방인들
약탈하는 버릇

4. 번박의 출몰이 무상하다 ― 1850년대 초의 이양선들
이양선의 소란은 사교를 퍼뜨리려는 뜻
화살처럼 빠른 배들
이양선의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조선인들의 목숨을 구해준 이양선
이국인을 붙잡아 가두다
총에 맞아 죽은 조선인
육로로 돌아가고 싶다
며리계, 며리계!

제3부 러시아와 미국의 습격

1. 무력한 동양을 일깨워야 한다 ― 러시아 군함 팔라다호와 곤차로프
거문도에 집결한 러시아 함대
조선인의 모자는 얼마나 괴상한가
모든 것이 엉성하고 비참하다
동양의 미개척지
화장한 노파 같은 해안 풍경
우리는 라서아국 사람이다
피아노 소리에 놀라 자빠지다
러시아인들에게 돌을 던지다
조선에 개항을 요청하다
마을 사람이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외국인과 몰래 교역하는 것을 금하자
부패한 민중을 소생시켜야 한다

2. 검은 연기와 총성 ― 구로후네와 일본의 근대
이국선을 격퇴하라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러 왔다
바다에 떠 있는 화산
근대 주권국가의 상징 ‘구로후네’
쇄국정책에 종지부를 찍다
요구를 거절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에 포섭되다
‘서양 따라잡기’ 시대로 질주하다
개국 사실을 조선에 알리다

3. 표류민에게 유원지의를 베풀자 ― 미국 포경선 투 브러더스호
표류 외국인을 북경으로 보내다
화기국인의 문자와 인물을 베껴 그리다
선장의 학대에 시달리다 탈출하다
격동의 중국 대륙을 목격하다

4. 문신을 새긴 뱃사람들 ― 1850년대 중반의 이양선들
기이하게 생긴 뱃사람들
남경과 영길리는 서로 통상한다
외국인에게 닭을 팔다
이 배는 홍모국의 무역선이다
마을을 약탈하다

제4부 바다로 잠입한 근대

1. 불타는 원명원, 청나라의 굴욕 ― 제2차 아편전쟁과 북경조약
전쟁의 빌미가 된 애로호 사건
천진조약을 체결하다
청군이 궤멸되다
오랑캐의 이미지가 바뀌다

2. 도깨비처럼 걷거나 달리다 ― 철종 말년의 이양선들
우리는 식량을 사러 왔다
오랑캐의 일은 헤아리기 어렵다
거문도와 부산을 측량하다
중국 황제가 피신한 것이 사실인가
석탄불로 바퀴를 움직인다
이양선이 나타나면 주민들은 고통받게 마련
화륜으로 배를 움직이다
참새처럼 지저귀는 표류민들
표류선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3. 양귀가 쳐들어온다 ― 북경함락과 조선의 위기의식
중국 황실이 불탔습니다
양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별종
양귀와 비적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
서양과 통하면 나라가 위태롭다
피난 행렬이 꼬리를 물다
아편을 팔려는 계략
조선이 사대하는 정성은 감탄스럽다
무기고는 텅 비어 있다
요망한 서양 도적을 물리치자

나오는 말 ― 복수의 근대를 상상하기

주註
참고문헌
이양선 출몰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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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박천홍
 
1967년 섬진강 근방 순천의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원하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그 후 출판계에 입문해 몇몇 출판사를 거쳐 서평지 『출판저널』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재)아단문고에서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까지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인간 이순신 평전』 ‘여행하며 읽는 우리 고전’ 시리즈(자산어보·삼국유사·난중일기·...
 

책 속으로

조선과 이웃 나라 사이의 무역 관계는 거의 없다. 이웃의 두 강국인 중국과 일본에 대해 자기의 독립을 보존하기 위해 이 나라는 완전한 격리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법률이 규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과의 어떠한 관계든지 사형을 받을 만한 범죄이다. 해상으로는 관계가 더 적다. 중국이나 일본 어선이 평안도 연안에 와서 해삼을 잡고 황해도 연안에 와서 청어를 잡는 것은 허가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뭍에 절대 오르지 말 것과 바다 가운데에서 이 나라 사람들과 절대로 만나지 말 것인데, 위반하는 경우 배는 몰수되고 선원은 투옥된다. --- p.28

“우리들은 매일같이 여러 귀족들로부터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들의 검술과 춤추는 것 등 노는 솜씨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의 처자들은 우리들을 구경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우리들을 사람이라기보다 괴물로 본다든가, 무엇을 마실 때는 코를 귀의 뒤로 돌리고 마신다거나, 머리칼이 금빛이기 때문에 사람이라기보다는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새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들의 멋진 풍채(그들은 흰 살결을 높이 존중합니다) 때문에 자기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들을 좋아했습니다.” --- p.122

홀 일행이 점심 식사를 하러 자리에 앉은 후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선원들과 어울리고 있던 주민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급히 홀 일행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불이 붙은 담뱃대를 주었다. 홀 일행은 그에게 포도주 한 잔을 들라고 권했다. 포도주를 마시자마자 그는 ‘호타! 호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홀 일행 곁으로 다가와 앉고 자유롭게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야말로 떠들썩하고 유쾌한 만찬이었다. 주민들은 홀 일행이 가리키는 모든 것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클리포드 대위는 이 조선어를 하나하나 채록했다. 주민들은 홀 일행의 옷 이름이 영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물었다. --- p.206

“우리가 나중에 만난 조선인들은 이 어부들처럼 쾌활하고 친절했다. 조선인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적대적으로 대한 것은 정부가 심어놓은 철의 규율 때문이었다. 우리는 해안 주민들이 보인 처형의 표시가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어디서나 이런 몸짓을 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감히 이방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하는 모든 규율 위반자들을 정부에서 사형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믿기 시작했다.” --- p.225

이날 귀츨라프 일행은 주변을 탐사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질 좋은 목재로 뒤덮여 있었다. 귀츨라프는 지금까지 조선에서 과수원이나 정원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숲 속에서 복숭아가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야생 포도도 볼 수 있었다. 귀츨라프는 주민들이 이렇게 쓸모 있는 나무를 재배하지 않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민들은 와인을 모르고 있었다. 귀츨라프는 주민들에게 이 뛰어난 식물을 재배하는 방법과 포도즙에서 맛있는 음료수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주민들은 이것을 거의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들이 배에서 마셔본 와인은 달콤했기 때문에 그것을 신 포도에서 뽑아낼 수는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 pp.244~245

“그들이 외국과 통상하도록 허락받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였을까? ‘폐쇄성’ 때문에 그들은 외국의 관습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 비옥한 섬들을 걸어다니며,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야생에서 자라고 잡초와 수풀 속에서 포도 넝쿨이 뻗어가고 있는 것을 본 우리는 ‘자연의 지배자’인 이 사람들의 부끄러운 태만을 고발한다. 왜냐 하면 이 거친 야생을 에덴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이 이 땅으로 스며들고 진실로 받아들여진다면 비참은 그칠 것이다.” --- p.248

오 대인: “무슨 까닭으로 멀리서 찾아왔습니까?”
린세이: “이미 (여러 관리들을 통해) 알려드렸듯이, 우리나라는 (귀국과) 우호적인 통상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래서 귀국의 국왕에게 편지와 문서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 대인: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대청제국을 섬겨왔습니다. 대청제국은 우리의 상국(上國, superior)입니다. 감히 속국이 어떻게 (외국과) 통상할 수 있겠습니까?”
린세이: “시암과 코친차이나(베트남)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이 나라들은 우리 선박과 통상하는 것을 승인하고 있습니다. 귀국은 대영제국과 통상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왜 다른 나라들처럼 하지 않습니까?”
오 대인: “우리나라는 중국 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국의 명령과 승인 없이는 크고 작은 일을 떠나서 감히 (외국과) 새로운 관례를 세울 수 없습니다.” --- pp.250~251

“우리는 관리와 주민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악의적인 의도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우리가 여러분의 적인 것처럼 의심을 품고 우리를 대합니까? 우리가 물으면 여러분은 대답을 거절합니다. 우리가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합니다. 어제 우리 배를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처벌되었습니다. 공자는 ‘사해 안의 모든 인류는 형제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가르침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외국인과 통상하는 것을 금할 수 있습니까?” --- pp.257~258

“이렇게 분열되고 이렇게 무력한 나라, 관리들이 군함 한 척 앞에서 떨거나 달아날 줄밖에 모르는 이런 나라는 처음으로 이 나라를 점령하려고 생각하는 유럽 열강의 야심에 희생될 것이 확실합니다. 중국은 오늘날까지 조선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현재 혁명의 무대가 되어 있고, 이 혁명으로 이미 만주 해안은 러시아의 주(洲)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후 조선과 중국의 종속 관계는 허구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 pp.455~456

팔라다호의 부선장 포세트의 조선에 대한 인상도 긍정적이었다. 조선인들은 무척 근면해 보였다. 검은 땅이든 붉은 사질토이건 상관없이 밭은 꼼꼼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팔라다호의 선원들이 주민들에게 식량을 달라고 했을 때, 그들은 거절했다. 뿔 달린 가축은 밭을 경작해야 하고 닭은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조선인들은 외국인을 처음 보았는데도 최고로 환대해주었다. 그들은 근면했다. 다른 아시아 민족들, 그 가운데서 특히 일본인보다 훨씬 도덕적이었다. 그는 조선인들의 단점도 꼬집었다. 조선인들이 폴리네시아인들처럼 중독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곡류로 만든 보드카’를 지나치게 좋아한다고 지적했다. --- p.557

“우리나라는 비록 3면이 바다로 막혔지만 예로부터 다른 나라 배가 정박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근자에 와서 이상한 배가 자주 출몰한다. 서양의 여러 나라 가운데 영국과 불란서가 가장 강대하고 또 성품이 만족할 줄 모른다. 넓은 바다를 두루 돌아 이르는 곳마다 처음에는 이(利)로써 유혹하고 나중에는 위세로써 협박한다.
서양과 통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바다. 사해(四海) 안에서 모두 재화가 통하고 그 가르침을 행해서 재앙과 패망이 미치기에 이르러서도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특히 그 기술의 교묘함과 대포의 위력을 두려워해서 어름어름 구차하게 목전의 편안함만을 취하다가 마침내 그 해독을 입은 것이다. 이것이 어찌 속이 빈 자가 독한 풀을 삼키는 것과 다르겠는가.” --- p.708

“끝으로 저들이 잘 보살피는 것으로 서양 포병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게가 3, 4백 근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쇠 화살인데, 3백 보 거리에서 적에게 쏘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무기를 사용할 때 가까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한 번 쏘는 데 화약이 3, 4백 리터가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대포를 가지고 훈련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첫째는 장군들이 화약을 태우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자기들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대포들이 하도 조잡하게 만들어져서 연습을 하면 으레 한 개쯤 터져서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 p.726
 

출판사 리뷰

코리아를 탐사하라! 한반도 해안에 그토록
많은 서양의 배가 온 까닭은 무엇인가!

방대한 자료로 복원해낸 동아시아의 시대상!

바다에서 충돌한 조선과 서양,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밝혀진다!

서양과 조선의 만남에 대한 최초의 역사 보고서!

16세기부터 1860년대까지 한반도 해안에는 수많은 낯선 배들이 출현했다. 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인들의 배였다. 당시 서양인들은 최신 무기와 거대한 선박, 기술적 우월함, 잘 훈련된 부대와 조직력 덕분에 다른 세계를 압도해갔다. 상품 시장과 선교 기지를 찾아 동쪽으로 온 그들은 생김새와 언어뿐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까지 다른, 아주 머나먼 곳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이었다.
당시 조선에게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세계의 전부였다. 서양의 이방인들에게도 조선은 원시림에 갇힌 금단의 땅이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사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선의 관찬 사서에 최초로 서양인이 등장한 것은 16세기 말이었다. 이후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 미국 선박 등 ‘이상한 모양의 배(異樣船)’들이 조선 해역으로 들이닥쳤다.
서양의 배가 조선을 찾아온 이유는 국적과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처음에는 우연히 표류해 오거나 식량과 물 등을 찾아 잠시 상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탐험과 측량, 통상 요구, 기독교 선교, 보복 원정 등으로 바뀌어갔다. 구성원들도 탐험가, 측량기사, 군인, 상인, 선교사, 포경선원, 의사, 통역관, 작가 등 가지각색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 선박이 주로 측량과 통상을 바랐다면, 프랑스의 경우는 기독교 선교의 자유를 앞세웠다.

방대한 자료 발굴로 재구성한 당시 조선의 모습
-현장감 있고 생생한 다큐멘터리적 역사 읽기

한국사에서 개항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기의 일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막연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의 지은이 박천홍은 당시 서양인들과 조선 측의 기록을 통해, 최초로 거대한 외부와 접촉한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서양의 방대한 자료들이 동원되어 한국사에서 막연하게 가뼉져 있던 당시의 전모를 밝히고 있다.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대부분 보고서나 여행기를 남겼다. 조선 측에서도 이방인들이 나타난 상황을 여러 기록으로 남겼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의 지은이는 양측의 기록들을 비교 대조하며 당시 시대상을 재구성하고 있다.
당시 조선은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수많은 서양 탐험가와 지식인들이 조선을 알고 있었고, 통상과 선교를 꿈꾸었다. 처음 우리나라에 표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벨테브레(박연)에서부터 하멜을 거쳐 러시아의 문호 곤차로프의 방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서양인들의 한반도 탐사기가 펼쳐진다. 또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황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진출사가 같이 언급되어 당시 아시아 정세의 흐름이 종합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조선 해안에 상륙한 서양인들은 맨 먼저 바닷가의 주민들과 관리들을 만났다.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처음 맞닥뜨려 벌어지는 상황과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한숨을 짓게 한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는 지루하고 건조한 역사서로 그칠 수 있는 이야기에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가미해 한층 읽는 재미를 더한다. 지은이는 한반도 해안에서 처음 마주친 서양인과 조선인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 갈피갈피마다 양측의 대화와 글이 풍부하게 제시되어 바닷가와 조정 내부에서 갈등하거나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난다. 낯선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놀라움이 묘사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를 통해 당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조선으로 항해한 서양인들의 기록-세계로부터 눈을 돌린 조선의 자화상
이양선이 특히 많이 나타난 19세기는 조선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기였다. 안팎으로 조선을 위기의식으로 몰고 갈 만한 사건들이 폭발했다. 중국에서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을 함락하고 황제의 별궁을 불태우며 북경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페리 제독이 이끈 흑선에 의해 개국‘당했’다. 당시 조선은 나라의 마룻대가 부러지고 서까래가 무너지고 있었다. 전염병이 창궐했고, 봉건사회의 모순은 깊어지고 있었다. 정조의 야심 찬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좌절되고 세도정치가 득세하면서 한줌의 벌열가문들이 국정을 쥐었다. 삼정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기만 했다.

조선에는 18세기 말부터 천주교가 전래되었다. 초기에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천주교를 수용했지만, 점차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집권층을 경악케 했다. 평등주의, 내세주의, 우상파괴주의 등을 내세운 천주교 이념은 신분질서, 현세주의, 조상숭배 등을 핵심으로 하는 성리학적 체제와 공존하기 어려웠다. 조선 집권층은 위험한 사상의 싹을 자르기 위해 천주교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서양 선박은 곧 천주교라고 인식한 위정자들에게 모든 이양선은 거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오직 해변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던 백성들은 이 낯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대다수의 서양 탐험가들은 자신들의 글에서 조선 관리들의 경직성과 함께 민중들의 따뜻함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의 속국으로 만족하고 있던 왕조에게 이양선은 악령의 출현이자 몰락의 전주곡이었다. 조선의 근대는 해일처럼 어느 날 느닷없이 덮쳐 온 것이 아니었다. 서양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세계사적 격랑이 증폭되면서 점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장기적 파동의 결과였다. 그러나 조선의 정부와 지식인들은 중화주의 체제에 안주하려 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양 제국들이 교역과 선교를 요구했을 때, 적개심을 내비치며 이를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1832년 영국의 로드 애머스트호가 충청도에 나타나 통상을 제의하자 충주목사 이민희는 ‘제후국의 처지로는 다른 나라와 사사로이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조선 집권층은 스스로를 중국의 속국으로 자처하면서 격동하는 세계 현실에 눈을 감고 있었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에서 지은이 박천홍은 당시 조선 정부와 관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폭압적 근대가 도래하다-우리 앞에 놓였던 수많은 갈림길들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국외자의 시선으로 기울어가는 나라와 낡은 이념의 허구성을 간파했다. 그들이 남긴 여행기와 보고서는 편견과 곡해로 물들어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 익명으로 떠돌았던 민중들의 생활상과 목소리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고 있다.
북쪽의 청나라가 내부의 반란과 바깥의 군사 침략으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을 때 제국의 야심에 불타는 일본은 서양식 대포와 군함 그리고 미국에서 전수받은 노회한 외교수법으로 무장했다. 바깥의 위협을 내부의 역동적 국가 에너지로 결집시킨 일본은 ‘쇄국’에서 ‘개국’으로 숨 가쁘게 몰아치는 역사적 격랑에서 난파당하지 않고 오히려 재빠른 변신을 거듭하며 열강을 따라잡아갔다. 서양이 앞 다투어 동쪽으로 밀려왔을 때, 동아시아 3국의 조건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압도적인 화력과 빈틈없는 상업정신 그리고 과학기술로 뒷받침된 합리주의 철학 등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패권 앞에서 중국은 반식민지로 강등되었고, 조선은 ‘꼬마 서양’으로 발돋움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우리의 근대사는 언뜻 비극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훨씬 역동적이고 중층적인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는 재빠르게 역사라는 이름으로 사라졌지만, 민중적 감수성의 세계는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근대를 앞질러 체험했던 민중 세계의 바다는 유년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천진함, 무엇인가 틀 지워지기 이전의 충만한 가능성, 낯선 것에 경탄할 줄 아는 순수성 등의 덕목을 일깨워준다. 타자를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감춰진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로 받아들일 때, 타자는 제거해야 할 악이 아니라 우리를 보완할 수 있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근대로 향하는 길목에는 여러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는 아직도 우리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바다, 그곳을 통해 찾아온 이방인들과 당시 조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