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한국근대사 연구 (독서)/2.개항기조선

심헌일기 -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

동방박사님 2023. 1. 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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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의 시선에서 본 강화도조약

1876년 조선이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조약은 최초의 근대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꼽힌다. 강화도조약은 1871년에 체결된 청일수호조규와 함께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대교린 질서가 주권 개념을 주된 명분이자 구성 원리로 하는 근대 국제법 질서로 이행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과연 우리는 강화도조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이 책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접견대관이었던 위당 신헌이 일본 사절단과의 협상 경과 및 조약 체결 과정을 일기체로 기록한 『심행일기』를 완역한 역주본이다. 『심행일기』는 『고종실록』,『용호한록』에 게재된 불완전한 기사에 의존해 온 강화도조약에 관한 연구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사료로, 강화도조약에 관한 일본과 한국의 기록이 극명히 다르다는 점에서 과거사 복구를 위해 연구할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목차

차례

서문
해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의 주요사건 일지
심행일기 상
사진으로 보는 강화도조약
심행일기 하

【부록】
1. 심행잡기沁行雜記
2-1. 선고 판중추부사 부군 행장先考判中樞府事府君行狀
2-2.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신공 시장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申公諡狀
3. 구로다 카요타카黑田淸隆의
《사선일기使鮮日記》에 따른 일본 변리사절단의 주요 행적
4-1. 정월 18일 운현서雲峴書
4-2. 왜관시말倭館始末
4-3. 히로츠 히로노부廣津弘信의 구진서와 별함
4-4. 대원위록기大院位錄記·답상대원군서答上大院君書

【原文】
沁行日記 上
沁行日記 下
沁行雜記
先考判中樞府事府君行狀
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申公諡狀
正月十八日 雲峴書
倭館始末
廣津弘信口陳書及別函
大院位錄記·答上大院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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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신헌 (威堂 申櫶)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와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체결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는 국빈國賓, 초명은 관호觀浩였다가 고종 조에서 헌櫶으로 개명했다. 호는 위당을 비롯해서 금당琴堂, 동양東陽, 우석于石 등을 썼다. 순조 27년(1827)에 조부의 음직蔭職으로 별군직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헌종 조와 고종 조에 이르기까지 무반의 주요 관직을 ...
 
역 : 김종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국립외교원 조교수 겸 외교사연구센터 책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한국 근대외교사이며, 서울대·서강대·이화여대·서울시립대·한국방송통신대 등에서 강의하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2018년 박사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로 제43회 월봉저작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근대한국외교문서』?(...

 

1876년 2월 27일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형식의 조약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진행된 한일 간의 불행한 역사의 시발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외교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심행일기: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은 당시 조선 측 접견대관이었던 위당 신헌이 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경과를 기록한 『沁行日記』(2책)를 완역한 역주본이다. 심(沁)이란 강화를 부르던 옛 이름이었으니, ‘沁行日記’는 ‘강화도 행차의 일기’라는 뜻이 된다. 『沁行日記』가 국내 학계에 소개되는 것은 1940년에 당시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다보하시 키요시(田保橋潔)가 쓴 『近代日鮮關係の硏究』에서 그 일부가 인용된 이후로 약 70년 만에 처음의 일이다.
일본 메이지 정부에서는 이른바 서계문제와 1875년의 운요호 사건의 책임 소재를 밝힌다는 명목으로 구로다 키요타카를 전권변리대신, 이노우에 카오루를 부대신으로 임명하고, 군함 2척이 포함된 총 6척의 선박에 약 800명의 수행원과 군인 등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강화도에 일방적으로 파견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조선 조정에서는 1876년 1월 30일에 판중추부사 신헌을 접견대관으로, 도총부부총관 윤자승을 접견 부대관으로 임명하고, 이들로 하여금 구로다 일행의 요구 조건을 파악하고 그들을 설득해서 무사히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겼다. 『沁行日記』에서 신헌은 공식회담 기록뿐만 아니라, 양측 수행원 사이에서 진행된 실무진 교섭 기록, 접견단의 행적, 주요 공문서 등을 망라해서 수록했다.
『沁行日記』가 가지는 사료적 가치는 이처럼 강화도조약 체결과정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점 외에도,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본 강화도조약에 관한 생생한 진술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강화도조약에 관한 국내외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구로다 키요타카가 남긴 『使鮮日記』를 비롯한 일본 측 외교문서에 의거해서 이뤄졌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측 기록이 자국의 일방적인 사절단 파견과 근대적 조약 체결 요구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당시 조선의 폐쇄성과 낙후성을 강조하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沁行日記』의 발간은 강화도조약에 관한 편향된 서술을 바로잡고, 우리의 관점에서 강화도조약을 새롭게 연구하고 평가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