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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역사사회학 (2017) - 바다 노마드의 섬에서 본 근대의 형상

동방박사님 2023. 3. 2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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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국주의와 냉전의 '징검돌'로 쓰이고 버려진 노마드의 터, 태평양 군도에 남은 근대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대륙(내지內地)에서 바라본 '태평양 군도'는 아름답고 희귀한 자연유산이거나, 영유권 분쟁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영토였다. 군도에서 바라본 군도의 모습도 그와 같을까?

근대세계에서 군도와 그곳의 섬사람들이 겪어온 사회사적 경험은 그동안 거의 주목되지 않았다. 얼마간 대륙과 별개로 독립성.폐쇄성을 지니던 이곳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략적 요충지로서 개방되고, 변방으로 대륙에 종속되게 된 상황은 지난 반세기 식민지주의를 통해 진행된 세계화, 즉 근대세계의 전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미국의 호수'가 된 태평양의 군도인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로부터 그 전개 양상을 새롭게 재추적한다. 바다 노마드의 공간이었던 태평양 군도가 세계화, 자본주의, 국민국가 같은 근대적 장치에 포섭되며 침략의 징검돌로, 전장戰場으로, 포스트 냉전의 '버리는 돌'로 사용된 사회사는 근대를 바라보는 내륙의 편협한 시선에 새로운 균열을 가져다준다.

목차

한국 독자들께

서론 군도의 상상력
제1장 세계 시장과 군도의 경제: 바다 노마드의 자주적 관리 공간
제2장 주권국가와 군도의 경제: 포섭되는 바다의 노마드
제3장 제국의 배출구와 버리는 돌: 입식지에서 전장戰場으로
제4장 냉전의 필요한 돌과 버리는 돌: 점령과 기지화·난민화
결론 지정학을 넘어 계보학으로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이시하라 슌 (Shun Ishihara,いしはら しゅん,石原 俊)
 
1974년생. 교토대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고, 현재 메이지가쿠인대 사회학부 준교수로 있다. 근대 일본 국가에 병합된 도서사회를 연구해왔고, 특히 근대적 장치와 이동민의 삶 사이의 역학관계에 주목했다. 지은 책으로 [죽이는 것/죽임당하는 것에 대한 감도: 2009년 시점에서 본 일본 사회의 행방](2010), [근대 일본과 오가사와라 제도: 이동민의 섬들과 제국](2007)이 있고, 그 밖에 [전쟁사회...
 
역 : 김미정
 
문학평론가, 『문학3』 기획위원.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04년 문학동네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움직이는 별자리들』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민주주의, 증언, 인문학』(공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문학은_위험하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살게 해줘!: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

책 속으로

19세기 태평양의 섬들에는 포경선·상선·군함에서 도망치거나, 선장에 의해 유기되거나, 난파선에서 표류하거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유형지에서 탈옥했던 ‘백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 "자발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백인사회와 떨어져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어나 관습을 포함한 섬의 "현지사회에 통합된" 사람이다. 즉 ‘비치 코머’ 대부분은, 섬 안의 사회에 대해 ‘문명’의 이름으로 유럽 공법의 수용을 강요하지도, 식민지 통치를 목표로 하지도 않았고, ‘원주민’의 생활 관습이나 언어 등을 포함하여 섬의 사회 질서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며 거기에 스며들고자 한 점이 특징적이다.
('제1장 - 세계 시장과 군도의 경제: 바다 노마드의 자주적 관리 공간' 중에서)

해가 지고 몇 시간쯤 지나 그들은 누가 자기들을 배에 타라고 지시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배에 타도록 시킬 수 있는 자라면 타지 않도록 할 수도 있지 않겠냐며 담당자에게 몰려갔다. 그들은 장관의 집 앞에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모여들었고, 바다의 노래를 부르거나 진을 돌려 마시거나 소란스럽게 춤Virginia Reel을 추었다. 경찰관들은 지원군과 함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무리가 되어서는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장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제2장 - 주권국가와 군도의 경제: 포섭되는 바다의 노마드' 중에서)

한때 오가사와라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서북태평양의 섬들은 저팬 그라운드라 불렸다. 이곳은 근대 일본 최초의 ‘남양’으로 파악되었고 무엇보다도 자연환경을 수탈적으로 이용하는 개발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오가사와라 제도나 이오 열도 등 몇 개의 섬은 정리된 인구 규모의 농업 입식지로 발전하지만, 결국 이들 섬은 일본의 침략/진출의 ‘징검돌’로, 나아가 총력전의 ‘버리는 돌’로 취급되었다.
('제3장 - 제국의 배출구와 버리는 돌: 입식지에서 전장戰場으로' 중에서)

이 아찔한 싸움들은 ‘미국의 호수’가 가진 모순을 집중적으로 강요받은 태평양 섬들이 오랫동안 경험해온 피폭이나 방사능 오염과의 싸움을 상기시키는 계기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 싸움은 ‘미국의 호수’ 속에서 특권적인 ‘전후’를 향유해온 일본 내지의 발판이었고 오랫동안 난민화를 강요받아온 오가사와라·이오 열도 주민들의 ‘전후’를 반복해서 상기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제4장 - 냉전의 필요한 돌과 버리는 돌: 점령과 기지화·난민화' 중에서)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이 쓰인 계기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대지진이었다. 저자 이시하라 슌은 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는 영상을 보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군도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오가사와라 제도·이오 열도 사람들은 삶터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난민 신세가 되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에는 미국과의 지상전을 계획하던 일본군에 의해 본토로 강제 소개되었고, 섬은 미군에 점령되었다. 패전 뒤에도 미국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오가사와라 제도의 일본계 주민들과 이오 열도의 모든 주민은 계속해서 난민 상태에 있었다. 1968년이 돼서야 시정권이 일본에 반환되고 오가사와라 제도의 일본계 주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나 이오 섬 주민에 대해서는 계속 귀향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들은 벌써 70여 년째 고향을 잃은 채 디아스포라 상태에 놓여 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의 냉전 질서 속에서 한반도와 타이완 섬에 군사적 전선을 강요했고, 오키나와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 이오 열도 등 군도의 섬사람에게 미군에 의한 피해를 강요함으로써 민수民需 주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들의 경험은 일본 내에서조차 망각되어갔다.
일본 정부는 잠재적인 핵무장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서 원자력발전용 플랜트와 플루토늄을 수입해 원전 건설에 착수한다. 일본 정부와 전력 회사는 3.11 참사의 피해 지역인 도호쿠 지방을 비롯한 가난한 어촌을 대상으로 돈을 쏟아부었고, 반대운동을 고립시키며 원전 건설을 밀어붙였다. 이곳은 원전 관련 직종 외에 수입원이 없다시피 한 국내 식민지처럼 변해갔다. 2011년의 대참사와 주민들의 난민화는 단순한 자연재해의 결과일 뿐 아니라, 이런 역사과정의 인위적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군도의 섬사람들이 군사주의와 식민주의라는 근대적 장치 아래 강요받아온 난민화와 피폭의 경험, 그리고 일본 내륙의 개발주의와 국내 식민지화의 결과인 3.11을 서로 무관하지 않은 일련의 역사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를 중심으로 삼아, 서북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의 눈으로 태평양 세계Trans-Pacific World의 200년 역사를 그려보는 역사사회학적 시도다. 군도의 근대 경험을 단순히 아시아태평양 근대사의 지역별 리스트에 등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 경험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아시아태평양의 역사 인식을 다시 꾸려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은 섬들의 눈으로 본 근대의 경험
오가사와라 제도, 이오 열도

201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오가사와라 제도小笠原諸島, Bonin Islands는 대륙과 연결된 적 없이 19세기 초까지도 사람이 정주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무인도로 존재했기에 ‘동양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린다. 많은 일본인이 이 제도의 이름을 들으면 ‘아름답고 희귀한 자연’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일본의 미디어에서도 고유 동식물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이곳의 자연환경에 주목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훌륭하게 보존된 자연을 위시해 생태관광의 기반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태평양 군도가 근대사의 모순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외양범선에 오른 바다 노마드와 원주민의 땅이었던 이곳은,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냉전을 거치며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총력전 때는 주민 대다수가 고향에서 쫓겨나 본토로 강제 소개되거나 전장으로 징용되었고, 태평양이 ‘미국의 호수’가 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난민 신세가 되었다. 포스트 냉전 시기에는 미군 기지가 정리되고 그 주변 시설이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그렇게 사반세기가 흐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오가사와라 제도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후 오가사와라 제도가 근대를 통과하며 겪어온 사회사적 경험은 (두 제도의 시정권이 일본에 반환된 1968년 전후를 제외하고) 일본에서조차 거의 주목된 적이 없었다. 특히 이 군도에 살았던/살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경험은 지금도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일본 경제가 냉전 질서 속에서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고도 성장하는 동안, ‘미국의 호수’의 모순에 노출된 태평양 섬사람들은 식민지주의와 군사주의, 피폭 및 방사능 오염 등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 영화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는 이들 군도에 사회가 있었다는 사실, 그곳에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지우는 데 일조했다. 이오 열도에 1944년까지도 정주사회가 존재했다는 것, 지상전에 동원된 주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강제 소개된 주민과 그 자손이 실향민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계화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도와 그곳 사람들의 삶에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는 모두 오랜 시간 무인도였다. 다른 많은 섬과 달리 이들 섬에는 전통적인 사회제도나 전근대적인 국가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19세기 전반 들어 고래기름을 찾아 서북태평양으로 진출한 포경선의 기항지가 되었다. 포경선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못 이긴 탈주자·표류자·해적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잡다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정착하게 된다. 근대 들어서야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인도였던 군도에는 당연히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관행이나 관습이 없었고, 세계화의 파도를 타고 온 바다의 노마드는 아나키적이고 개방적인 그들만의 자율 공간을 형성했다. 많아야 1만 명을 넘지 않는 작은 군도에, 이들 모두의 문화 배태되면서 거대한 역사적·공간적 배경이 구축되었던 것이다.

16~18세기 대서양 세계로 확장된 세계 시장을 저변에서 지지한 이들은 남태평양의 플랜테이션 노예들과 고래기름 채취를 위해 태평양을 오간 포경선 선원들이었다. 육지에서 본원적 축적과정이 진행된 이 시기,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범선의 노동 현장으로 밀려났다. 이곳은 세계 시장의 가장 밑바닥, 대서양의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범선이라는 ‘섬들’에서는 상명하복식 계급 구조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기계장치에 종속되어 복잡한 작업을 수행했고, 이러한 작업은 체계적인 노무관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근대적 노동과정의 원형이 된 분업이 이루어졌고, 수용소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감시와 협박에 시달렸으며, 인종주의에 고통받았다. 이곳은 사보타주·파업·생산관리 투쟁과 같은 근대적 저항 방식이 처음으로 생겨난 공동체적 공간이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배경과 문화가 혼효되면서, 착취적 노동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원들은 자의적 폭력 금지, 저임금 개선, 의식주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개인적·집단적 저항을 꾀했다.(그 궁극적 저항과 자율의 형식이 바로 ‘해적이 되는 것’, 즉 범선을 자신들의 독자적 관리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해적들은 예전에 자신들을 혹사시킨 상선, 특히 노예무역선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 일이 많았고, 노예무역에 손을 대는 자가 있었는가 하면 노예를 해방시키는 자도 적지 않았다.) 외양범선에 오른 선원들은 배 안이라는 디스토피아에서 탈출해 자주적 삶을 관리하는 유토피아를 ‘섬’이라는 공간에서 꿈꾸었다. 뱃사람들은 전통사회의 공백 지대에서 이합집산하며 아나키적 자율 공간을 만들었다.

이런 움직임은 카리브 해 섬들에 연행된 노예나 계약 노동자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들의 삶에 깊이 천착한 가브리엘 안티오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망이야말로 카리브 해 지역 노예의 일상 속 질서에 뚜렷하게 기록된 유일한 사상이다." 그의 말대로 플랜테이션의 노예와 계약 노동자들은 도망, 자해, 자살, 반란, 춤 등 온갖 방식의 저항을 도모했고, 도망쳐 살아남은 노예들은 카리브 해 연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각지에 ‘마룬maroon’이라 불리는 독자적 관리 영역을 개척했다. 바다 위 범선과 육지의 플랜테이션에서 비슷한 저항의 모습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고 공명한 것이다.

19세기 태평양의 섬들에는 배에서 도망치거나, 선장에 의해 유기되거나, 난파선에서 표류하거나, 유형지에서 탈옥한 ‘백인’들이 살았다. 이들은 ‘비치 코머beach comber’라고 불렸는데, 문명이란 이름으로 유럽공법의 수용을 원주민에게 강요하지도, 식민 통치를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원주민의 생활관습이나 언어 등 섬의 질서를 수용하며 거기에 스며들고자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섬 주민과 섞여 지내거나, 이곳 여성과 결혼해 정주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선원 안내인, 교역 브로커, 노동력 모집인 등으로 활동하면서 안정적 지위와 많은 재산을 얻었다. 반면 기술도, 사회경제적 자본도 없고 섬사람들의 인망도 얻지 못한 이들은 최하층의 비참한 삶을 견뎌야 했다. 한편 포경선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어 이탈해 섬에 체류했다가 생계나 소외의 문제로 다시 포경선에 오르기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고래잡이에 관한 최고의 소설이라는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도 비치 코머였다.

한편 저자는 오가사와라 제도, 이오 열도 주민과 그들의 자손을 인터뷰해 강제 소개, 징용 등으로 끌려다니며 입은 피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보고한다. 어떤 이는 첫아이를 임신 중인 아내가 있었지만 현지 징용 대상이 되었다가 그길로 죽음에 내몰렸고, 또 어떤 사람은 공습 때 방공호 바깥에서 ‘인간 방패’로 몰아세워지는 등 단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독한 학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많은 이가 기근에 시달렸고, 삶터가 파괴되었으며, 전쟁터에 끌려가거나 스파이로 내몰려 목숨을 잃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맥락화하며, "전쟁에서 지상전은 어디에나 있다"는 식으로, 마치 죽음을 교환 가능한 것인 양 대상화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우리는 삶터에서 떨어져 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전쟁 경험을 그들의 전체적 근대 경험에 제대로 위치시켜 아시아태평양의 근대를 입체적으로 다시 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냉전 갈라파고스: 역사의식의 편협함
인종주의, 내셔널리즘에 갇힌 대륙을 넘어

‘갈라파고스’라는 말은 대륙에서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의 특수한 진화과정, 그 과정에서 탄생한 소중한 고유종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긍정적 함의를 지닌다. 그러나 최근 일본 산업계에서는 이 말이 폐쇄사회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 착안해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 체제에서 아시아태평양 세계와의 역사적 관계성을 부인하는 편협한 역사 및 공간 인식을 ‘냉전 갈라파고스’라 지칭한다. 현재 일본은 전후戰後 특권적 경제성장을 누릴 수 있었던 20세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냉전 갈라파고스’의 꿈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런 까닭에 계속해서 편협한 인종주의와 국가주의로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섬’이라고 하면, 일본인 대부분은 국경 분쟁, 영토·영해 문제와 같은 키워드를 떠올립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떠올리는 분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날 일본 사람들은 ‘글로벌리즘에 뒤처지지 말자’고 외치면서도, 작은 ‘섬’을 둘러싼 국경·영토·영해와 같은 역사와 공간의 절취 방식에 구애받으며, 계속 ‘냉전 갈라파고스’ 안에서 졸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그러한 주권국가, 국민국가의 틀에서 결정적으로 녹아 사라지는, 다른 역사성이나 공간성입니다. ‘군도와 바다’의 눈으로부터 현대세계를 다시 보는 작업이야말로, 편협한 내셔널리즘과 인종주의를 풀어갈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독자들께' 중에서)

20세기 전반기의 일본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륙, 서북태평양의 바다와 섬을 침략한 ‘군도와 바다의 제국’이었다. 일본인 대부분은 냉전 체제하에서 자신이 거하는 땅이 개방된 교통의 장인 ‘군도’임을 망각하고, 마치 스스로가 아시아의 중심인 양 오인하며 경제적 번영을 누려왔다. 저자는 그것이 지금의 자위적 인종주의와 국가주의가 조성된 기반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영토 분쟁의 날이 선 태평양의 센카쿠/댜오위다오, 남 쿠릴/미나미치시마 군도 등 ‘군도’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냉전 갈라파고스’ 의식을 연명시키며 외교적 타협의 가능성을 압살하고 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함께 패전 처리에 있어 일본의 커다란 역사적 과오 중 하나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태평양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은 옛 대동아공영권 지역 가운데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일본에 부여했다. 미국은 일본이 소련, 중국, 한국, 북한 등과 화해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오키나와를 비롯해 일본 내 미군 주둔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본 제국에 병합된 바 있는 섬들에 영토 분쟁의 불씨를 키웠다. 일본은 영유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퇴행적 인종주의·민족주의를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근대의 학문, 특히 사회과학에서 해양세계는 이윤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주류적 인식이 참조해온 해양세계는 어디까지나 유럽의 침략/진출 대상으로서의 바다와 (거대한 ‘섬’으로서의 신대륙을 포함하여) 섬들을 의미했다. 콜럼버스 이래 500년의 세계화는 고립돼 있던 군도를 개방된 교통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군도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빼앗기고, 그곳의 사람들은 변방의 종속된 삶을 살게 되었다. 이들 ‘역사의 패자(발터 벤야민)’ 측에서 볼 때 군도는 지난 500년의 역사를 되새길 때 반드시 짚어봐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다. 군도의 눈으로 근대를 보면, 이제까지의 연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이 부상하게 된다.

종래 근대사는 주권국가가 제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전근대적’이라고 여겨진 구습이 타파되고 세계 시장을 개척해 유통지로 삼고 강대국의 종속하에 두는 메커니즘에 주목했다. 그러나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는 구습의 타파나 세계 시장의 유통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근대적 장치들에서 이탈하려는 사람들의 자율적이고 유동적인 힘을 포섭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들은 그러한 포섭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경제와 자율성을 계속해서 재조직했다. 군도를 둘러싼 이 책의 사상사적 배경은 일본의 민속학자인 미야모토 쓰네이치宮本常一, 인류학자 쓰루미 요시유키鶴見良行, 에두아르 글리상 등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군도’의 정체성에 대해, 개방성/폐쇄성, 교통성/독립성, 중심성/변경성, 자율성/의존성에 대해 탐구했다. 특히 쓰네이치는 섬에서 태어나 평생 섬의 장소성에 천착한 민속학자로, 격리된 조건과 한정된 육지 때문에 생산·유통이 제약된 장소인 동시에 바다로 열린 다양한 교통의 가능성을 지닌 장소로 섬을 위치시켰다.

근대의 세계화와 식민지주의, 냉전과 포스트 냉전의 전개 속에서 섬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위치해왔다. 그런 까닭에 섬은 세계를 매혹한 동시에 세계에 의해 가장 냉혹하게 짓밟혀온 장소이기도 하다. 이시하라 슌은 이런 역사에 주목하며 ‘나는 이 섬들의 역사와 무관하다’는 의식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군도의 역사는 진기한 에피소드로 특수화하여 소비해서도, ‘변방’의 사례로서 일반화하여 소비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의 초점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근대의 구성 요소다. 대륙의 편협한 시각에서 오로지 침략과 진출이라는 지정학적 유혹에 의해서만 이들 섬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삶을 구축하고 포섭에 저항하며 자율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이들의 경험을 기억하는 일은 근대를 더 넓은 시야에서 제대로 보는 일인 동시에 근대가 남긴 현대의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