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서양사 입문 (독서)/5.르네상스시대

갈릴레이의 생애 (2001) - 진실을 아는 자의 갈등과 선택

동방박사님 2023. 9. 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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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과학 및 핵과 관련된 분야에서 "진실을 아는 자의 갈등과 선택"이라는 주제로 세 편의 희곡을 묶었다. 복제양의 탄생이나 인간 유전자 지도 완성 등 현대과학의 새로운 성과가 발표될 때마다 과학의 윤리· 책임 문제가 제기되는 오늘날이다. 이제 맹목적인 과학 지상주의의 시대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계를 여는 희망이라고 믿었던 과학적 탐구가 오히려 인류의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게 된 갈등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과학자들의 위치를 재점검하고, 진정한 과학자의 '도덕적 책임'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목차

1. 갈릴레이의 생애 / 베를톨트 브레히트
2. 물리학자들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3. J.로버트 오펜하이머 사건에서 / 하이나르 카파르트

저자 소개

저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와 브레칭(Brezing)에서 태어난 어머니 조피(Sofie)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7년 10월 2일 뮌헨 대학에 입학했다. 이듬해 뮌헨의 ‘카머슈필렌’ 극장에서 그라베(Grabbe)의 「고독한 사람(Der Einsame)」이라는 공연을 보고,...

역 : 차경아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독일 본(Bonn) 대학에서 수학한 후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기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7년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여 당시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그밖에《물의 요정 운디네》(푸케), 《싯달타》(헤르만 헤세),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 《왜 사냐고 묻거든...
 
저자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Friedrich Drrenmatt)
1921년, 나치의 점령을 받지 않은 유일한 독일어 사용국인 스위스에서 태어나 베른과 취리히에서 신학, 독문학, 자연과학을 공부했으며,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극작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당시 스위스는 독일 연극이 번창했던 곳으로 그곳에서 그는 혁신적인 독일 연극을 보고 배우게 되었다. 부조리 연극으로부터 출발한 그는 전통적 비극을 부정하였고, 오늘날 가능한 것은 희극뿐이라는 인식에 따라 작품 활동을 했다. ...

출판사 리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는 '새로운 시대', 즉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시대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에서 나온 글이다. 따라서 갈릴레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집필하려고 하고, 생선을 파는 아낙의 자식까지 별을 보며 지동설(과학적인 지식)을 얘기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면서도 진실을 추진하는 힘은 곧 심미적 감각이라고 주장하며, 좋은 식사가 그에게 좋은 착상을 떠올려 주기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한 쾌락주의적 입장도 보인다. 그런 그이기에 종교 재판관이 고문 기구를 보여 주었을 때, 그 기구가 어떻게 쓰여질지 아는 갈릴레이는 자신의 학설을 철회하였던 것이다. 극히 세속적이고 비겁한 동기에서 '고깃국'과 더 좋은 '양질의 포도주'를 즐기고 싶은 자신의 속성(俗性)과, 고문 앞에서 '육체적 고통'을 면하려 했던 비겁을 그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는 그의 제자 안드레아에게 연구 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방편으로써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학설을 철회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렇듯 브레히트는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이를 모순에 가득 찬 인물로 그렸다. 그는 자신이 학설을 철회함으로써 파괴된 자신의 인격과 자신의 학문적 업적은 서로 관련이 없다고 강조한다. 또 학문에 대해서 "학문에는 다만 하나의 계명 학문적 공헌이라는 하나의 계명만 있을 뿐"이라며 갈릴레이의 업적(『디스코르시』의 집필)을 격찬하는 안드레아에게 학문의 목적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일하나? 학문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 존재의 노고를 덜어 주는 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만약 과학자들이 이기적 권력자 앞에서 위축되어 오로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는 데 만족한다면, 학문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 테고, 자네들이 만든 새로운 기계들도 단지 새로운 액물일 따름이네. 자네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견해 낼 수 있겠지만, 자네들의 진보는 인류로부터 떨어져 나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될 걸세. 자네들과 인류 사이의 틈은 언젠가는 너무나 엄청나게 벌어져서 어떤 새로운 것을 획득한 데 대한 자네들의 기쁨의 환성이 인류 전체의 경악의 함성으로 응답될 수도 있을 거란 말이네."

갈릴레이는 자신의 지식을 집권자들이 마음대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자신은 직업을 '배반'했으며 학자에 대열에 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학자들 역시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자신의 지식을 인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한다는 맹세를 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학자들은 기껏 무슨 일에든 고용될 수 있는, 발명에 재간 있는 난쟁이 족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준열하게 자신과, 그리고 현대 과학자(지식인)들에게 비판하고 있다.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
스위스 출신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물리학자들』에서 브레히트의 '갈릴레이'가 가정법으로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과학자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몸소 실천해 보이는 착상을 전개한다. 그 실천을 짊어진 가공의 인물 뫼비우스는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이다. 자신의 과학적 인식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리라고 예감한 그는 그 재난을 막기 위해 스스로 미치광이로 위장한다. 그러나 세계의 양대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천재적 두뇌를 내버려두지 않고 첩보원을 통해 추적해 같은 정신병원에 위장 잠입한다. 그러나 뫼비우스는 그 어느 쪽 진영과의 영합도 거부한다. 오히려 "인류 몰락을 가져오는 모험"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되며 "정객들에게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며 과학자로서의 책임의식을 역설하고 마침내 두 첩보원을 설득하는 일에 성공한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기치 않은 또 한 번의 반전을 겪는다. 뫼비우스가 정신병원 책상에서 작성했던 '모든 가능한 발견체계'가 어느새 곱사등이 처녀 정신병원장(실제로는 세계 기업의 우두머리) 수중에 떨어져 세계기업이 굴러가게 만든 것이다. 세 물리학자들은 나름대로 계획을 짰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

하이나르 키파르트의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사건에서』
『J.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사건에서』는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가 오펜하이머의 충성심 문제를 조사한 사건을 재현한 기록극이다. '오펜하이머 재판'은 '갈릴레이의 재판'의 현대판과 같다며 브레히트 역시 주시한 사건이었다. 오펜하이머는 태평양 전쟁 중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원폭 제조의 책임을 맡았던 미국의 핵물리학자이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이후 가설적인 수준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수소 폭탄 개발이 현실화되자,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빨갱이 타도'라는 매카시 선풍이 불던 당시 오펜하이머는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충성심과 신뢰도를 문제삼아 기소당했다. 정부 청문회의 결과, 오펜하이머는 보안 사항을 취급할 수 있는 지위와 정부 고위층의 자문역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과학자의 역할과 관련된 정치적 · 도덕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계의 지대한 관심의 불러 일으켰다. 미국의 '마녀사냥'의 막바지에 터진 이 사건에서, 공안위원회가 주재하고 비공개로 진행된 심리절차에 1954년 4월 12일부터 한 달 동안 연인원 40명 이상의 증인이 나왔다. 그리고 5월에 그 기록이 여론에 공개되었다. 키파르트는 3천 매가 넘는 원래의 재판 기록을 140매로 압축, 8개의 장면으로 정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키파르트의 이 극은 우선 당시 매카시즘의 실상을 조망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단단히 사회적인 몫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얽힌 현대과학자들의 숙명적 문제점을 열어 보여 주었다. 따라서 이 극은 히로시마 이후 "그들의 성공이 곧 그들의 참패"가 된 현대과학자들의 위상(位相)과 '원죄(原罪)'의 상황해부도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정신분열증세입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물리학자들은 그 증세를 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오펜하이머의 고백처럼 원자탄 이후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분열증세'를 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비록 그들의 지식이 순수한 학문적 열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우겨댈지라도, 그 지식의 생산품이 이데올로기 수호자들의 수중에서 요리되고 있는 한, 그들은 생산자로서의 소외감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 소외감마저 없다면, '배반자'의 위치에서 '바보'로 전락하는 택일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과학자의 학문적인 열정이나 진보에 대한 믿음에 상관없이 그 결과들이 엉뚱하게 지배 계층에 의해 악용될 수 있으며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인 시점에서 현대 과학자의 위치를 점검하고 과학자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