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서양사 입문 (독서)/5.르네상스시대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 (2017) - 갈릴레오 시대, 공중위생의 역사에 관한 연구

동방박사님 2023. 9. 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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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프라토에 흑사병이 확산된 것은 1629년 10월 말이다. 피렌체 대공국의 공문에 따르면 코모 호수의 북쪽 지역에 출현한 흑사병이 불과 5일 만에 밀라노에 도달했다. 당시 피렌체 대공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프라토에서는 반도의 중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만큼 흑사병에 대한 감찰 활동과 더불어 평상시의 모든 행사들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진다. 과연 프라토 자치도시는 이 비극적인 경험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은 1630년대 프라토가 경험했던 끔찍한 죽음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치도시 당국의 필사적인 노력을 기록한 미시사 연구의 대표작이다. 저자는 당시의 공적이고 사적인 활동의 모든 기록물을 통해 프라토 자치도시 당국이 크리스토파노라는 보건위원을 중심으로 죽음의 공포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꼼꼼하게 복기한다. 마치 현장 생중계를 방불케 하는 저자의 연구는 프라토 국립기록물보존소에 현존하는 해당 시대의 역사기록물에 대한 열람과 판독 작업의 결과이다.

특히 기록물 조사를 통해 흑사병 감염환자와 회복환자, 퇴원환자의 통계 수치,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폐쇄한 주택이나 개방한 주택에 관한 통계 수치, 보건소 인력의 현황과 봉급, 요양기관에 공급한 식료품의 양과 종류, 그리고 흑사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수치와 사망률 등을 꼼꼼하게 조사해 통계자료로 복원한 내용(이 책의 [부록] 참조)은 조사와 통계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임을 여실하게 증명하며 이 책의 압권을 이룬다.

목차

역자 서문 7
1. 흑사병에 직면한 자치도시 19
2. 크리스토파노의 활동 59
3. 사망률의 추세 87
에필로그 101
부록 123

저자 소개

저 :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Carlo Maria Cipolla,카를로 M. 치폴라)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州)의 작은 도시 파비아(Pavia)에서 태어났다. 1944년 파비아 대학교에서 프랑코 보를란디(Franco Borlandi)의 지도 아래 ‘롬바르디아 주 남부의 농업사’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교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다가, 1957년 버클리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서 2년 뒤인 1959년에 정교수로 임용되어 1980년대 초까지 재직했다. 그 후 199...
 
역 : 김정하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시에나 국립대학에서 역사학(중세문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보·기록관리학과 대학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기록물관리학 개론』 『남유럽의 전통기록물 관리』 『지중해 다문화 문명』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공역) 『실과 흔적』을 비롯해 『중세 ...

출판사 리뷰

미시사 연구의 선구자이자 경제사의 대가 치폴라가 들려주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사건, 중세 흑사병 연구의 걸작


“미시사 연구의 방법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책”
- 피터 버크(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명예교수)

1630년대 이탈리아 북부와 피렌체 대공국을 강타한 흑사병!
마침내 프라토 자치도시까지 흑사병의 검은 그림자가 뒤덮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프라토에 흑사병이 확산된 것은 1629년 10월 말이다. 피렌체 대공국의 공문에 따르면 코모 호수의 북쪽 지역에 출현한 흑사병이 불과 5일 만에 밀라노에 도달했다. 당시 피렌체 대공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프라토에서는 반도의 중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만큼 흑사병에 대한 감찰 활동과 더불어 평상시의 모든 행사들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진다. 과연 프라토 자치도시는 이 비극적인 경험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흑사병이라는 죽음의 공포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조사와 통계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복원한, 미시사 연구의 훌륭한 사례


이 책은 1630년대 프라토가 경험했던 끔찍한 죽음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치도시 당국의 필사적인 노력을 기록한 미시사 연구의 대표작이다. 저자는 당시의 공적이고 사적인 활동의 모든 기록물을 통해 프라토 자치도시 당국이 크리스토파노라는 보건위원을 중심으로 죽음의 공포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꼼꼼하게 복기한다. 마치 현장 생중계를 방불케 하는 저자의 연구는 프라토 국립기록물보존소에 현존하는 해당 시대의 역사기록물에 대한 열람과 판독 작업의 결과이다.

특히 기록물 조사를 통해 흑사병 감염환자와 회복환자, 퇴원환자의 통계 수치,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폐쇄한 주택이나 개방한 주택에 관한 통계 수치, 보건소 인력의 현황과 봉급, 요양기관에 공급한 식료품의 양과 종류, 그리고 흑사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수치와 사망률 등을 꼼꼼하게 조사해 통계자료로 복원한 내용(이 책의 [부록] 참조)은 조사와 통계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임을 여실하게 증명하며 이 책의 압권을 이룬다.

이는 무엇보다도 저자인 카를로 M. 치폴라가 기록물관리 전문가이자 고문서 학자로서 여러 시대의 고서체들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읽고 판독할 줄 아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연구였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미시사 연구의 또 다른 훌륭한 사례로 평가되며.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마르탱 게르의 귀향’ 등 이른바 밤의 역사로 상징되는 미시사 연구의 대표작과 함께 역사 연구의 미세한 흐름까지 세심하게 추적해가는 흥미가 돋보인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프라토를 통해서
공중위생 관리의 실태와 수준, 역사를 엿보다


공중위생은 지역사회나 학교, 공장 등의 집단에서 구성원들의 질병예방, 건강유지, 생명연장을 위해 행하는 조직적인 위생활동이다. 전 세계를 혼란과 공포로 몰아넣은 조류독감과 사스, 신종 플루와 메르스 사태 등 전염병은 여전히 인류 역사에서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데, 공중위생의 수준은 문명과 야만을 가름하는 잣대 중의 하나이다. 전염병은 이 책에 소개된 프라토 자치도시의 경우와 같이 그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주기도 하며 권력관계를 폭로하기도 한다. 즉 역사 속에서 질병, 특히 전염병은 언제나 권력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이때의 권력이란 합리성이나 상식을 넘어선 힘의 행사로 나타난다. 푸코의 권력론의 기반이 된 ‘광기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도 바로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프라토 자치도시 역시 흑사병의 전염이 시작되자 종교의식, 출입과 통행을 금지하고 차단선을 설치하며 피렌체 보건부 책임자는 거주 지역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든 주민들에게 보건통행증 발급을 강제한다. 통행증이 없는 자는 공국의 영내로 들어올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피렌체 보건당국에 의사 파견을 요청하지만 거부되는 상황이다. 열악한 의료현실,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 요양병원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의 와중에 흑사병의 위력은 더해간다.

“프라토에는 두 명의 외상치료 의사와 두 명의 개업전문의가 있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한 명은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하였을 뿐 의료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이발과 간단한 외과치료를 병행하는 두 명의 외과의사와 개인적으로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하는 다른 한 명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모두 7명의 의사가 17,000명의 주민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32쪽)

“우리의 삶에 있어 이 세상이 뭔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사람들은 극도의 좌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프라토의 관리들은 피렌체의 보건 당국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두 달이 넘는 동안 온갖 노력과 수많은 토론 그리고 결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던 일이 라탄치오와 그의 사악한 후원자들의 방해로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48쪽)

드디어 프라토의 흑사병 전염사태를 관리할 보건위원이 절실해진 상황에서 크리스토파노가 등장한다. 극도의 피곤함과 좌절감에 빠진 프라토 보건소 관리들은 도시의 관리들을 다독이고 재정을 관리해줄 능력이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크리스토파노 디 줄리오를 만장일치로 보건소 보건위원으로 선출한 것이다.
크리스토파노는 의학을 공부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경리와 서기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의사만을 보건소 관리로 뽑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다. 보건위원의 봉급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수행하는 중책을 고려한다면 결코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한 달에 8스쿠디, 즉 시신 매장인의 월급과 같았다. 이것은 도시공동체가 시민들에게 높은 시민의식과 헌신에 호소한 것으로, 당시 프라토 자치도시에 확산되어 있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수위를 짐작케 한다. 이 책의 2부는 보건위원으로 선출된 크리스토파노의 활약이 펼쳐진다.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 행정가로서 돋보이는 역량과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공명정대함으로 흑사병 사태를 헤쳐 나간다.

이와 같이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인 프라토에서 어떻게 흑사병을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조사와 통계를 통해 당시 공중위생의 수준을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록전문가이자 21세기 영국 최고의 역사학자로 평가되는 피터 버크의 말처럼, 미시사 연구의 방법론을 한 단계 끌어올린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