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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의 평범성’을 말하지 말라!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과거를 부인한 채 물질주의로 치달아온 일본 사회의 병리 현상을 해부하기 위해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전범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권위에 복종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준 밀그램 실험은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에서 한층 더 나아가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킨 일본 사회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는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고 아직도 그 잔재가 일본과 일본이 침략했던 국가들에 깊숙이 남아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과거를 부인한 채 물질주의로 치달아온 일본 사회의 병리 현상을 해부하기 위해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전범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권위에 복종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준 밀그램 실험은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에서 한층 더 나아가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킨 일본 사회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는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고 아직도 그 잔재가 일본과 일본이 침략했던 국가들에 깊숙이 남아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제1장 의사와 전쟁
제2장 길 아닌 길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제4장 전범 처리
제5장 탄바이, 죄를 인정하다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제7장 과잉 적응
제8장 복종으로의 도피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제10장 세뇌
제11장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제12장 공명심
제13장 탈 세뇌
제14장 양식(良識)
제15장 아버지의 전쟁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제1장 의사와 전쟁
제2장 길 아닌 길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제4장 전범 처리
제5장 탄바이, 죄를 인정하다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제7장 과잉 적응
제8장 복종으로의 도피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제10장 세뇌
제11장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제12장 공명심
제13장 탈 세뇌
제14장 양식(良識)
제15장 아버지의 전쟁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책 속으로
2000년 연말에는 베트남전쟁에서 학살에 관여한 한국 해병대원을 면접하고 진찰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농부 학살 토론회’ 장소에서는 행사장 밖에서 위장복을 입은 수백 명의 전 해병대원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라는 말을 외치고 있다고 했다. 2003년에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협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십 년 이상 감옥에서 지낸 장기수들(1990년대 말 겨우 가석방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2004년에는 제주도 4·3사건(1948년 4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수많은 도민이 학살·처형되고, 상당수가 섬에서 탈출해 재일한국인이 되었다)을 조사하러 갔었다.
2015년에는 한국의 인권단체인 5·18기념재단의 초청으로 ‘극한상황의 인간’이란 제목으로 광주에서 강연하고, 2017년 10월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차세대열전 2017!’ 공연제에 한 젊은 연출가가 『전쟁과 죄책』을 기반으로 만든 연극, 「무순 6년」 공연을 계기로 초대받아, 대학로에서 ‘침략전쟁의 반성은 왜 불가능한가’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사회 전체가 부국강병을 향해 공격성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기에, 다들 심기가 편치 않았다. 기분이 쉽게 바뀌었고 권위를 내세웠으며, 늘 공격할 대상을 찾느라 자극에 민감했다. 지위, 역할, 신분, 성별 등에 따라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지니고, 누구에게 굽히고 누구에게 공격성을 드러낼지 누구에게 관대할지 늘 긴장하고 있었다. 우월감과 열등감, 자기 비하와 위세 부리기의 결합은 가족, 친구, 이웃 간의 관계부터 아시아 각국 사람들과의 국제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중에서
“수술 연습이 끝난 후 두 명의 중국인은 숨이 거의 끊어질 듯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어요. 이대로 해부실 건물 뒤편에 파놓은 구덩이에 던져 넣기에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주사기로 심장에 공기를 주입했지만, 소용없었죠. 나는 목을 졸라 경동맥을 압박했는데, 그래도 호흡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 중국인의 허리띠를 목에 감고 O 중위와 양쪽에서 잡아당겨 목을 졸라보았는데, 여전히 숨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방에 들어온 위생조장이 “마취약을 정맥에 주사하면 바로예요”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아있던 클로로에틸을 왼팔 정맥에 주사했죠. 그 중국인은 대여섯 번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그대로 호흡이 멈췄습니다.”
--- 「제1장 의사와 전쟁」 중에서
“유아사 씨, 어쩌다 전범이 다 됐어요? 혹시 ‘그 전쟁이 옳았다’고 주장한 것 아니에요? 대충 속여넘겨도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야. 자네랑 그 일을 했잖아.”
“네? 무슨 얘기예요?”
그는 유아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생체 해부를 기억해냈다. 패전 후 11년이 지난 때였다. 이것이 중국 북부에서 귀국한 전직 군의관들의 태도였다. 북지나방면군이 약 30만 명이었고, 육군병원이 20여 개 있었다. 병원의 군의관과 야전 군의관을 합치면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다. 위생병과 간호사도 수천 명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란 원래 비참한 것’이라는 편리한 변명 속에서 자신들이 한 일을 기억의 한쪽 구석에조차 남기지 않았다.
--- 「제1장 의사와 전쟁」 중에서
기타노 교수로부터 ‘현지 원숭이를 사용한 발진티푸스 예방 백신 개발 실험’ 강의를 받았다. 그는 온화한 얼굴로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오가와는 ‘만주에 원숭이가 있었나?’ 의아했다. 원숭이가 아니라 중국인과 러시아인이었고, 실험 장소가 자신이 다니는 의대였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몰랐다. 기타노 마사지는 1939년 열세 명의 중국인을 발진티푸스에 감염시킨 뒤 그들을 생체 해부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발진티푸스 예방 백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중에서
그는 증상이 개선된 후 자살하는 장병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오가와는 한 병사에게 ‘치유 퇴원’ 진단서를 써 줬고, 그에게 원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얼마 후 관내 방송에서 오가와를 찾았다. “화장실로 바로 오시오.” 달려가 보니,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화장실에 있었다. 총검으로 목에서 가슴까지 찌른 채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오가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죽이는 것이다. 병이 나았다고 하면, 돌아갈 곳은 전쟁터밖에 없다.’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거부한 이 병사의 마음을 군의관인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감정이 북받쳤다.
---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중에서
“당신은 지금 피 묻은 손을 떠올리는 겁니까? 아니면 살해당하는 중국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겁니까?”
“피입니다.”
“손 쪽입니까? 상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에 대해서밖에 생각하지 않나요?”
“병사의 손에 피가 묻게 돼요. 내가 생각한 것은, 우리가 돌아간 뒤에 저 걸레가 된 시체를 가족이 찾아내어 가져가겠구나, 하는 거죠. 그럴 때 그들의 슬픔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가족은 울며불며 만신창이가 된 가슴을 보고 미쳐버리지는 않았을까…….”
여기서도 고지마는 남겨진 가족의 감정이라는 회로를 거쳐 행위의 잔인함을 얘기하고 있다. 먼저, 살해당하는 자의 원통함을 느끼고, 그다음에 유족의 비통함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살해당한 사람이 추상화되어 버려서 얼굴을 느낄 수가 없어요. 살해당하는 사람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나요?”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군요. 그냥 찌른 부분만…….”
“그렇다면, 역시 물체로밖에 인식하지 않은 거네요.”
---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중에서
“민가를 수색한 후 가족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은 일가족 다섯 명을 일렬종대로 딱 붙여 세우고는, 총을 한 방 쏘았습니다. 다음날, 그 집에 가봤습니다. 노인은 숨이 끊어지고, 부부도 큰아이도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뒤로 넘어진 채로 큰 눈을 똑바로 뜨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아직 살아있었던 거예요.”
고지마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한 뒤, 부하들이 “대장,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찔러 죽이게 했다. 그 모든 경우에 ‘내가 직접 손댄 게 아닌걸’ 하는 변명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 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살해 명령 중 하나쯤으로 잊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도 아버지가 되었다.
“이 일에 대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땝니다. 밤중에 문득 깨어나 아이 얼굴을 보면, 그날 새벽의 중국 아이 얼굴이 겹쳐지는 거예요. 더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어요. 같은 나이 때가 됐기 때문이겠죠. 또렷한 눈망울이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답니다. 똑 닮았어요, 그 얼굴이. 정말 참을 수 없더군요.”
--- 「6장 슬퍼하는 마음」 중에서
나만 전투 경험이 없었다. 부하들을 지휘해야 하는데, ‘포로 하나도 베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소대장으로서 야전 지휘를 할 수 없다. ‘볼썽사나운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바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절도 있게 몸이 움직였다.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오른쪽으로 팔을 들어 올려 자세를 취했다. 기합과 동시에 단번에 내리쳤다. 턱 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 목은 날아오르고, 몸통은 피를 뿜으며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칼날의 피를 물로 씻어낸 뒤, 물을 털고 종이로 닦자, 칼날이 빠진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마 턱뼈에 걸렸을 것이다. 칼날에는 번들번들 지방이 묻어서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드디어 ‘임무’를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포로의 목을 베어 떨어뜨린 순간부터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 「제7장 과잉 적응」 중에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유서는, 장래의 재건군(즉, 자위대)은 용병제를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에서부터, 학교 교육의 방향, 야스쿠니신사 합사 등에 이르기까지 서술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후 일본이 반세기에 걸쳐 도조의 의사를 그대로 따라온 것처럼 보인다.
---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중에서
피난민 중에서 끌어낸 남자들을 20명 정도 차에 싣고 양쯔강가로 데려가 살해했다. 나가토미는 처음 살인을 저지른 그때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몇 천은 되어 보이는 시체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갔는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까. ‘나는 검도 4단,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더 흥분됐다.’
양쯔강 제방에 다다르자, 인솔해온 장교가 학생들에게, “너희들, 자유롭게 이 중국인들을 죽여 봐라. 학교로 돌아가면 이야기 선물이 될걸?” 하고 권했다. 그래서 학생 중 유도를 잘한다는 사람은 목을 조르고, 가라테 선수는 때려죽이려 했지만, 쉽게 죽지 않았다. 장교는 “내가 시범을 보여주지!” 하더니, 일본도에 물을 뿌려 단번에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중에서
‘그래도 밖으로 끌려 나가 대중재판에서 욕설을 들으면서 죽는 것만은 싫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이 방에서 죽고 싶다.’ 나가토미는 이렇게 생각하고, 목매어 죽을 끈을 만들었다.
내일은 죽자고 결심한 날 밤, 감방을 비추는 달빛을 보고, 그는 ‘살고 싶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죽을 수 없다. 어떻게든 살고 싶다. 살아서 감옥의 창틀 사이로 보이는 달과 태양을 보고 싶다.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도 좋으니, 살아있고 싶다. 아내도, 아이들도, 못 만나도 좋으니까, 살 수만 있다면!’ 감정의 폭발이었다.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던 감정이, 억압을 뚫고 ‘괴롭다’고 외쳐댔다. 나가토미의 자아는 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적나라한 감정의 부르짖음을 들었던 것이다.
그 뒤로 태도가 바뀌었다. “내가 어떤 상태로라도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한 것처럼,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나는 이 인간의 본성을 짓밟으며 가차없이 죽여왔던 겁니다. ‘정말로 지독한 짓을 했다, 어떤 형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 되었어요.”
--- 「제10장 세뇌」 중에서
일본군에게 식량을 조달해야 하는 데다, 남쪽의 메콩 삼각주 및 북쪽의 중국 윈난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던 쌀의 수송이 끊어지고 수해까지 겹쳐, 북베트남에서 200만 명의 아사자가 나왔다. 일본군의 침략이 불러온 대재해였다. 북베트남의 기아는 처참했다. 하노이에서는 매일 아침 굶어 죽은 주검들을 수레에 가득 채워 다리 밑으로 던져 버렸다. 하루에 300구가 넘는 주검을 치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오노시타는 주먹밥을 손에 든 채 미소 띤 얼굴로 죽어간 남자아이의 모습을 늘 떠올린다. 깡마른 몸에 배만 부풀어 올랐고, 피부는 흑갈색이었다. 열 살 이상인 아이는 감자를 캐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해서 어떻게든 먹을 것을 찾는다. 갓난아기는 어머니가 데리고 있다. 그러나 네댓 살 된 아이들은 기댈 부모도, 음식을 얻을 방도도 없었다. 그날 오노시타는 아이에게 주먹밥을 주었다. 그 아이는 이미 먹을 기력도 잃었던 것일까? 주먹밥을 쥔 채 평온한 얼굴로 죽어갔다. 오노시타는 죽은 얼굴에서 기쁜 표정을 보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제14장 양식(良識)」 중에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불안, 불면, 플래시백과 같은 ‘홀로코스트 증후군’을 호소했다. 몇몇은 자살했다. 클리모바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가족’이라는 그룹이 만들어진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2세와 3세에게까지 감정 장애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50명에 한 명이라는 비율로 살아남은 제1세대 대부분은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들과의 감정 교류는 어려웠다. 유대인 말살수용소에서 생존하려면 학살이 일상화된 나날에 순응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감정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의 체험을 얘기한 부모도 있었다. 그들 또한 자녀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깊은 단절을 맛보았다. 자녀 중에는 부모가 유대인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대로 감정을 고갈시키며 살았다. 이런 관계 속에서 자란 2세대 또한 어른이 된 뒤, 정서장애나 억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2세대뿐만 아니라 손자 세대에도 같은 장애가 나타났다.
---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중에서
“저녁에 2만 명의 포로가 불을 질러 수습하러 갔다. 그들을 모두 처분했다. 생존자는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보름 전야의 달이 산 자락에 걸려 교교히 비추며 푸른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단말마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처참함의 극을 이루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달과 시체의 산을 대비하여 감탄하는 일본적 감성은 상처 입지 않는 마음을 가리는 엷은 비단과 같다. 집단에 의한 학살, 상처 입지 않는 마음, 펼쳐진 정경에 대한 일말의 감상, 이 세 가지는 하나가 되어 일본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중에서
흑백논리의 폭력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감정 마비는 폭력에 내몰린 사람들의 감정마저 마비시키며 확산된다. 온갖 곳에 정신적으로 상처 입지 않는 사람들의 가면이 있다. 무표정한 가면, 온화한 듯 허무한 미소를 띤 가면, 긴장한 가면, 피곤한 가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풍부한 감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처 입을 줄 아는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우선 알아야 한다. 변화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부모나 조부모,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생생하게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굳어있는 정신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알고 서로 이야기하는, 그리고 느끼는, 이 두 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우리는 상처 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5년에는 한국의 인권단체인 5·18기념재단의 초청으로 ‘극한상황의 인간’이란 제목으로 광주에서 강연하고, 2017년 10월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차세대열전 2017!’ 공연제에 한 젊은 연출가가 『전쟁과 죄책』을 기반으로 만든 연극, 「무순 6년」 공연을 계기로 초대받아, 대학로에서 ‘침략전쟁의 반성은 왜 불가능한가’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사회 전체가 부국강병을 향해 공격성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기에, 다들 심기가 편치 않았다. 기분이 쉽게 바뀌었고 권위를 내세웠으며, 늘 공격할 대상을 찾느라 자극에 민감했다. 지위, 역할, 신분, 성별 등에 따라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지니고, 누구에게 굽히고 누구에게 공격성을 드러낼지 누구에게 관대할지 늘 긴장하고 있었다. 우월감과 열등감, 자기 비하와 위세 부리기의 결합은 가족, 친구, 이웃 간의 관계부터 아시아 각국 사람들과의 국제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중에서
“수술 연습이 끝난 후 두 명의 중국인은 숨이 거의 끊어질 듯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어요. 이대로 해부실 건물 뒤편에 파놓은 구덩이에 던져 넣기에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주사기로 심장에 공기를 주입했지만, 소용없었죠. 나는 목을 졸라 경동맥을 압박했는데, 그래도 호흡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 중국인의 허리띠를 목에 감고 O 중위와 양쪽에서 잡아당겨 목을 졸라보았는데, 여전히 숨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방에 들어온 위생조장이 “마취약을 정맥에 주사하면 바로예요”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아있던 클로로에틸을 왼팔 정맥에 주사했죠. 그 중국인은 대여섯 번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그대로 호흡이 멈췄습니다.”
--- 「제1장 의사와 전쟁」 중에서
“유아사 씨, 어쩌다 전범이 다 됐어요? 혹시 ‘그 전쟁이 옳았다’고 주장한 것 아니에요? 대충 속여넘겨도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야. 자네랑 그 일을 했잖아.”
“네? 무슨 얘기예요?”
그는 유아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생체 해부를 기억해냈다. 패전 후 11년이 지난 때였다. 이것이 중국 북부에서 귀국한 전직 군의관들의 태도였다. 북지나방면군이 약 30만 명이었고, 육군병원이 20여 개 있었다. 병원의 군의관과 야전 군의관을 합치면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다. 위생병과 간호사도 수천 명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란 원래 비참한 것’이라는 편리한 변명 속에서 자신들이 한 일을 기억의 한쪽 구석에조차 남기지 않았다.
--- 「제1장 의사와 전쟁」 중에서
기타노 교수로부터 ‘현지 원숭이를 사용한 발진티푸스 예방 백신 개발 실험’ 강의를 받았다. 그는 온화한 얼굴로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오가와는 ‘만주에 원숭이가 있었나?’ 의아했다. 원숭이가 아니라 중국인과 러시아인이었고, 실험 장소가 자신이 다니는 의대였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몰랐다. 기타노 마사지는 1939년 열세 명의 중국인을 발진티푸스에 감염시킨 뒤 그들을 생체 해부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발진티푸스 예방 백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중에서
그는 증상이 개선된 후 자살하는 장병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오가와는 한 병사에게 ‘치유 퇴원’ 진단서를 써 줬고, 그에게 원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얼마 후 관내 방송에서 오가와를 찾았다. “화장실로 바로 오시오.” 달려가 보니,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화장실에 있었다. 총검으로 목에서 가슴까지 찌른 채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오가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죽이는 것이다. 병이 나았다고 하면, 돌아갈 곳은 전쟁터밖에 없다.’ 전쟁터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거부한 이 병사의 마음을 군의관인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감정이 북받쳤다.
---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중에서
“당신은 지금 피 묻은 손을 떠올리는 겁니까? 아니면 살해당하는 중국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겁니까?”
“피입니다.”
“손 쪽입니까? 상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에 대해서밖에 생각하지 않나요?”
“병사의 손에 피가 묻게 돼요. 내가 생각한 것은, 우리가 돌아간 뒤에 저 걸레가 된 시체를 가족이 찾아내어 가져가겠구나, 하는 거죠. 그럴 때 그들의 슬픔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가족은 울며불며 만신창이가 된 가슴을 보고 미쳐버리지는 않았을까…….”
여기서도 고지마는 남겨진 가족의 감정이라는 회로를 거쳐 행위의 잔인함을 얘기하고 있다. 먼저, 살해당하는 자의 원통함을 느끼고, 그다음에 유족의 비통함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살해당한 사람이 추상화되어 버려서 얼굴을 느낄 수가 없어요. 살해당하는 사람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나요?”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군요. 그냥 찌른 부분만…….”
“그렇다면, 역시 물체로밖에 인식하지 않은 거네요.”
---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중에서
“민가를 수색한 후 가족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은 일가족 다섯 명을 일렬종대로 딱 붙여 세우고는, 총을 한 방 쏘았습니다. 다음날, 그 집에 가봤습니다. 노인은 숨이 끊어지고, 부부도 큰아이도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뒤로 넘어진 채로 큰 눈을 똑바로 뜨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아직 살아있었던 거예요.”
고지마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한 뒤, 부하들이 “대장,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찔러 죽이게 했다. 그 모든 경우에 ‘내가 직접 손댄 게 아닌걸’ 하는 변명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 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살해 명령 중 하나쯤으로 잊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도 아버지가 되었다.
“이 일에 대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땝니다. 밤중에 문득 깨어나 아이 얼굴을 보면, 그날 새벽의 중국 아이 얼굴이 겹쳐지는 거예요. 더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어요. 같은 나이 때가 됐기 때문이겠죠. 또렷한 눈망울이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답니다. 똑 닮았어요, 그 얼굴이. 정말 참을 수 없더군요.”
--- 「6장 슬퍼하는 마음」 중에서
나만 전투 경험이 없었다. 부하들을 지휘해야 하는데, ‘포로 하나도 베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소대장으로서 야전 지휘를 할 수 없다. ‘볼썽사나운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바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절도 있게 몸이 움직였다.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오른쪽으로 팔을 들어 올려 자세를 취했다. 기합과 동시에 단번에 내리쳤다. 턱 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 목은 날아오르고, 몸통은 피를 뿜으며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칼날의 피를 물로 씻어낸 뒤, 물을 털고 종이로 닦자, 칼날이 빠진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마 턱뼈에 걸렸을 것이다. 칼날에는 번들번들 지방이 묻어서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드디어 ‘임무’를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포로의 목을 베어 떨어뜨린 순간부터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 「제7장 과잉 적응」 중에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유서는, 장래의 재건군(즉, 자위대)은 용병제를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에서부터, 학교 교육의 방향, 야스쿠니신사 합사 등에 이르기까지 서술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후 일본이 반세기에 걸쳐 도조의 의사를 그대로 따라온 것처럼 보인다.
---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중에서
피난민 중에서 끌어낸 남자들을 20명 정도 차에 싣고 양쯔강가로 데려가 살해했다. 나가토미는 처음 살인을 저지른 그때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몇 천은 되어 보이는 시체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갔는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까. ‘나는 검도 4단,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더 흥분됐다.’
양쯔강 제방에 다다르자, 인솔해온 장교가 학생들에게, “너희들, 자유롭게 이 중국인들을 죽여 봐라. 학교로 돌아가면 이야기 선물이 될걸?” 하고 권했다. 그래서 학생 중 유도를 잘한다는 사람은 목을 조르고, 가라테 선수는 때려죽이려 했지만, 쉽게 죽지 않았다. 장교는 “내가 시범을 보여주지!” 하더니, 일본도에 물을 뿌려 단번에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중에서
‘그래도 밖으로 끌려 나가 대중재판에서 욕설을 들으면서 죽는 것만은 싫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이 방에서 죽고 싶다.’ 나가토미는 이렇게 생각하고, 목매어 죽을 끈을 만들었다.
내일은 죽자고 결심한 날 밤, 감방을 비추는 달빛을 보고, 그는 ‘살고 싶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죽을 수 없다. 어떻게든 살고 싶다. 살아서 감옥의 창틀 사이로 보이는 달과 태양을 보고 싶다.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도 좋으니, 살아있고 싶다. 아내도, 아이들도, 못 만나도 좋으니까, 살 수만 있다면!’ 감정의 폭발이었다.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던 감정이, 억압을 뚫고 ‘괴롭다’고 외쳐댔다. 나가토미의 자아는 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적나라한 감정의 부르짖음을 들었던 것이다.
그 뒤로 태도가 바뀌었다. “내가 어떤 상태로라도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한 것처럼,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나는 이 인간의 본성을 짓밟으며 가차없이 죽여왔던 겁니다. ‘정말로 지독한 짓을 했다, 어떤 형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 되었어요.”
--- 「제10장 세뇌」 중에서
일본군에게 식량을 조달해야 하는 데다, 남쪽의 메콩 삼각주 및 북쪽의 중국 윈난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던 쌀의 수송이 끊어지고 수해까지 겹쳐, 북베트남에서 200만 명의 아사자가 나왔다. 일본군의 침략이 불러온 대재해였다. 북베트남의 기아는 처참했다. 하노이에서는 매일 아침 굶어 죽은 주검들을 수레에 가득 채워 다리 밑으로 던져 버렸다. 하루에 300구가 넘는 주검을 치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오노시타는 주먹밥을 손에 든 채 미소 띤 얼굴로 죽어간 남자아이의 모습을 늘 떠올린다. 깡마른 몸에 배만 부풀어 올랐고, 피부는 흑갈색이었다. 열 살 이상인 아이는 감자를 캐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해서 어떻게든 먹을 것을 찾는다. 갓난아기는 어머니가 데리고 있다. 그러나 네댓 살 된 아이들은 기댈 부모도, 음식을 얻을 방도도 없었다. 그날 오노시타는 아이에게 주먹밥을 주었다. 그 아이는 이미 먹을 기력도 잃었던 것일까? 주먹밥을 쥔 채 평온한 얼굴로 죽어갔다. 오노시타는 죽은 얼굴에서 기쁜 표정을 보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제14장 양식(良識)」 중에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불안, 불면, 플래시백과 같은 ‘홀로코스트 증후군’을 호소했다. 몇몇은 자살했다. 클리모바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가족’이라는 그룹이 만들어진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2세와 3세에게까지 감정 장애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50명에 한 명이라는 비율로 살아남은 제1세대 대부분은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들과의 감정 교류는 어려웠다. 유대인 말살수용소에서 생존하려면 학살이 일상화된 나날에 순응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감정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말할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의 체험을 얘기한 부모도 있었다. 그들 또한 자녀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깊은 단절을 맛보았다. 자녀 중에는 부모가 유대인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대로 감정을 고갈시키며 살았다. 이런 관계 속에서 자란 2세대 또한 어른이 된 뒤, 정서장애나 억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2세대뿐만 아니라 손자 세대에도 같은 장애가 나타났다.
---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중에서
“저녁에 2만 명의 포로가 불을 질러 수습하러 갔다. 그들을 모두 처분했다. 생존자는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보름 전야의 달이 산 자락에 걸려 교교히 비추며 푸른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단말마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처참함의 극을 이루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달과 시체의 산을 대비하여 감탄하는 일본적 감성은 상처 입지 않는 마음을 가리는 엷은 비단과 같다. 집단에 의한 학살, 상처 입지 않는 마음, 펼쳐진 정경에 대한 일말의 감상, 이 세 가지는 하나가 되어 일본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중에서
흑백논리의 폭력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감정 마비는 폭력에 내몰린 사람들의 감정마저 마비시키며 확산된다. 온갖 곳에 정신적으로 상처 입지 않는 사람들의 가면이 있다. 무표정한 가면, 온화한 듯 허무한 미소를 띤 가면, 긴장한 가면, 피곤한 가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풍부한 감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처 입을 줄 아는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우선 알아야 한다. 변화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부모나 조부모,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생생하게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굳어있는 정신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알고 서로 이야기하는, 그리고 느끼는, 이 두 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우리는 상처 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17장 감정을 되찾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의 평범성’을 말하지 말라!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서독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주요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적인 남성으로서 자만에 찬 일생을 산’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심리학자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8장에서 밀그램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현대 한국과 같다.
식량과 물자 보급 없이 약탈을 전제로, 자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중국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에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이란 더 이상 ‘총을 든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규전보다는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부대에서도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들은 살아 있는 포로들을 상대로 총검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전쟁신경증’ 발생률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소련군에 비해 극도로 낮았다(17장). 다만 일종의 거식증인 ‘전쟁 영양실조증(104쪽)’으로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군인들이 있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정신적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전쟁 당시 직접 자기 손으로 생체 해부하고 여성들을 고문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전혀 겪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들이 보인다(451~452쪽).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저자는 전범들에게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원서 『 戦 争と罪責』은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초판을 번역한 서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을 다듬고 설명을 추가하는 한편, 저자가 한국과 관련해서 펼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과 그동안 독자와 소통하며 느낀 점을 담은 2022년 문고판 후기를 수록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서로 깊이 교류하고 디아스포라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다.” 나치에 대한 자료와 분석은 넘치는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극히 드물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주목,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코패스 같은 잔학행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군국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
밀그램 실험은 집단에 동화되고 강력한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을 유보하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다. 『전쟁과 죄책』은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약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군 전범들의 정신세계를 한 명 한 명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들은 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피해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패전 후에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잘 적응하고 살았을까?
전범들은 어려서부터 가족 속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358쪽).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은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는 ‘상처 입지 않는 인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가령 저자는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 다섯 명의 가족과 사별했던 도미나가를 인터뷰하며 어린 소년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반성이나 회의 없이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웠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249쪽).
어려서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던 도미나가는 중국인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난생처음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료와 부하들 앞에서 볼썽사납지 않게 보이는 데만 급급해한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는 데 성공하자,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220쪽). 군의관으로서 생체 해부를 하게 된 유아사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나 ‘실습 재료’가 된 농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는 데만 집착한다(38쪽). 자신과 같은 계급,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중요하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청년 쓰치야(12~13장)의 변신은 섬뜩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헌병대에서 물고문을 처음 접하고 그만두려고 하다가 승진 후 그만두자고 생각이 바뀌고, 나중에는 ‘특고(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한 경찰)의 신’이 되어 온갖 사건을 조작하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의 달인’이 되어 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이 대체로 업무를 수행하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던 데 반해, 자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는 가학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디즘으로 전화되었다. ‘그의 감정은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는 냉담해진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늘 상하관계가 된다(279쪽).’
이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익숙할까?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군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현대 한국의 민간인 학살은 만주국의 항일세력 토벌과 방식이 흡사하다. 만주국 판사로 자유를 탄압하다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데 앞장서고 귀국 후에는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이모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저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타인도 조작 대상으로 보는 이모리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한다(296쪽). 그들은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사상을 바꾸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중국의 전범관리소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했지만, 저우언라이 총리의 관용 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142쪽).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꼭두각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수용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중심이 되어 전범들의 사상 개조에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전범들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고발장을 대조하고, 전범들이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살펴 1956년 전범 대부분을 기소 면제로 석방하고, 유기형을 선고한 사람들도 1964년까지는 모두 귀국시켰다(148쪽). 중국 귀환자들 상당수는 공산 국가에서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는 비난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지속하고 중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고자 했다. 물론 이모리처럼 사회의 기대에 과잉 적응하는 엘리트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끝까지 양심을 지킨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한 사회적, 개인적 조건
이 책에는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으나 끝까지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군의관 오가와(2~3장)와 병사 오노시타(14장)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죄의식 없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몇몇 승려 출신 군인이 있었다. 속세의 질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한 사례는 밀그램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오가와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며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기독교 주류는 군국주의와 타협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종교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교의 힘으로 양심을 지킨다.
무엇보다도 오가와와 오노시타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주에서 태어난 오가와는 만주를 사랑하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더 많은 고통을 맛보려고 군의관으로서 장교가 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일반 병사로 입대했고, 패전 후에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든 일본군과 중국인 곁에 머물렀다. 중국국민당 치하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군들의 주검을 수습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자신들을 내몬 국가와 상관을 질타하는 그들의 유서를 읽었다. 그는 귀국 후 의료봉사를 펼치며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지배층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전몰자들의 유해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며 신격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다.
오노시타는 일본 군대가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는 강도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동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는 비사야어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익히며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귀국 후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우익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군인연금을 받지 않고 강도 무리에 속했던 과거를 금전으로 보상받기를 거부했다.
저자는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기 위한 선택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막강한 권위인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병역 거부를 허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제3의 선택지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종교적 권위)를 따르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단이나 교회는 대개 권력과 타협해 왔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236~239쪽).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서독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주요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적인 남성으로서 자만에 찬 일생을 산’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심리학자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8장에서 밀그램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현대 한국과 같다.
식량과 물자 보급 없이 약탈을 전제로, 자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중국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에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이란 더 이상 ‘총을 든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규전보다는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부대에서도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들은 살아 있는 포로들을 상대로 총검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전쟁신경증’ 발생률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소련군에 비해 극도로 낮았다(17장). 다만 일종의 거식증인 ‘전쟁 영양실조증(104쪽)’으로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군인들이 있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정신적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전쟁 당시 직접 자기 손으로 생체 해부하고 여성들을 고문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전혀 겪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들이 보인다(451~452쪽).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저자는 전범들에게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원서 『 戦 争と罪責』은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초판을 번역한 서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을 다듬고 설명을 추가하는 한편, 저자가 한국과 관련해서 펼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과 그동안 독자와 소통하며 느낀 점을 담은 2022년 문고판 후기를 수록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서로 깊이 교류하고 디아스포라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다.” 나치에 대한 자료와 분석은 넘치는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극히 드물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주목,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코패스 같은 잔학행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군국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
밀그램 실험은 집단에 동화되고 강력한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을 유보하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다. 『전쟁과 죄책』은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약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군 전범들의 정신세계를 한 명 한 명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들은 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피해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패전 후에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잘 적응하고 살았을까?
전범들은 어려서부터 가족 속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358쪽).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은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는 ‘상처 입지 않는 인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가령 저자는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 다섯 명의 가족과 사별했던 도미나가를 인터뷰하며 어린 소년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반성이나 회의 없이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웠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249쪽).
어려서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던 도미나가는 중국인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난생처음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료와 부하들 앞에서 볼썽사납지 않게 보이는 데만 급급해한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는 데 성공하자,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220쪽). 군의관으로서 생체 해부를 하게 된 유아사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나 ‘실습 재료’가 된 농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는 데만 집착한다(38쪽). 자신과 같은 계급,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중요하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청년 쓰치야(12~13장)의 변신은 섬뜩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헌병대에서 물고문을 처음 접하고 그만두려고 하다가 승진 후 그만두자고 생각이 바뀌고, 나중에는 ‘특고(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한 경찰)의 신’이 되어 온갖 사건을 조작하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의 달인’이 되어 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이 대체로 업무를 수행하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던 데 반해, 자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는 가학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디즘으로 전화되었다. ‘그의 감정은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는 냉담해진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늘 상하관계가 된다(279쪽).’
이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익숙할까?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군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현대 한국의 민간인 학살은 만주국의 항일세력 토벌과 방식이 흡사하다. 만주국 판사로 자유를 탄압하다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데 앞장서고 귀국 후에는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이모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저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타인도 조작 대상으로 보는 이모리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한다(296쪽). 그들은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사상을 바꾸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중국의 전범관리소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했지만, 저우언라이 총리의 관용 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142쪽).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꼭두각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수용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중심이 되어 전범들의 사상 개조에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전범들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고발장을 대조하고, 전범들이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살펴 1956년 전범 대부분을 기소 면제로 석방하고, 유기형을 선고한 사람들도 1964년까지는 모두 귀국시켰다(148쪽). 중국 귀환자들 상당수는 공산 국가에서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는 비난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지속하고 중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고자 했다. 물론 이모리처럼 사회의 기대에 과잉 적응하는 엘리트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끝까지 양심을 지킨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한 사회적, 개인적 조건
이 책에는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으나 끝까지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군의관 오가와(2~3장)와 병사 오노시타(14장)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죄의식 없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몇몇 승려 출신 군인이 있었다. 속세의 질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한 사례는 밀그램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오가와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며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기독교 주류는 군국주의와 타협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종교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교의 힘으로 양심을 지킨다.
무엇보다도 오가와와 오노시타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주에서 태어난 오가와는 만주를 사랑하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더 많은 고통을 맛보려고 군의관으로서 장교가 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일반 병사로 입대했고, 패전 후에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든 일본군과 중국인 곁에 머물렀다. 중국국민당 치하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군들의 주검을 수습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자신들을 내몬 국가와 상관을 질타하는 그들의 유서를 읽었다. 그는 귀국 후 의료봉사를 펼치며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지배층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전몰자들의 유해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며 신격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다.
오노시타는 일본 군대가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는 강도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동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는 비사야어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익히며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귀국 후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우익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군인연금을 받지 않고 강도 무리에 속했던 과거를 금전으로 보상받기를 거부했다.
저자는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기 위한 선택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막강한 권위인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병역 거부를 허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제3의 선택지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종교적 권위)를 따르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단이나 교회는 대개 권력과 타협해 왔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236~239쪽).
추천평
이 책은 과거 이웃 국가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폭력, 잔혹 행위에 죄책감이 전혀 없는 일본 사회에 대한 내부 고발장이자, 죄책 없이 성장과 발전을 구가하는 전후 일본 사회의 정신구조에 대한 분석서다. 모든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가해행위를 문명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넘어선다. 이 책이 처음 번역 출간된 이후 한국을 방문한 저자와 대담한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자들의 부인과 그 유족들의 고통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자, 그는 어떻게 그런 상태로 한국 사회가 지탱될 수 있는지 내게 물었다.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민주주의연구소장)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민주주의연구소장)
생체 해부를 한 의사의 생생한 수기와 반성. 731부대를 포함, 비윤리적 의학 실험과 실습을 했던 수천 명으로 추산되는 의사들은 대부분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대학에 남고 전쟁 전의 의국 체계를 유지하고 또 정부에 들어가 전후 일본 의료계 지배 블록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의료계만 그런 것이었을까.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만주 점령부터 2차대전까지의 15년 전쟁 중 일본군이 행했던 전쟁범죄의 구체적 실상을 전범들의 고백과 여러 자료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정신분석으로 생생히 드러낸다. 이 책의 미덕은 전범들의 개인적 정신분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분석에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저자는 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가 침략전쟁의 부인과 한 세트”인지, 왜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 사회,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세대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원서 출간 25년이 흘러, 피폭국임을 그토록 내세우던 일본 정부가 오히려 전 세계를 향해 핵오염수를 방류하면서 핵 가해국이 되려고 하는 오늘, 훨씬 더 생생하게 읽힌다.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 반핵평화운동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
- 우석균 (전 인의협 공동대표, 현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반핵의사회 운영위원)
저자는 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가 침략전쟁의 부인과 한 세트”인지, 왜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 사회,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세대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원서 출간 25년이 흘러, 피폭국임을 그토록 내세우던 일본 정부가 오히려 전 세계를 향해 핵오염수를 방류하면서 핵 가해국이 되려고 하는 오늘, 훨씬 더 생생하게 읽힌다.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 반핵평화운동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
- 우석균 (전 인의협 공동대표, 현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반핵의사회 운영위원)
전쟁과 남성성의 관계는 정해진 법칙이 없다.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전쟁 경험은 공동체의 문제의식과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평화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이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한국판 전쟁과 죄책’이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 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 여성학 연구자)
- 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 여성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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