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서양철학의 이해 (책소개)/7.서양현대철학

사랑 개념과 성 (2022) - 아우구스티누스

동방박사님 2024. 6. 18.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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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탄생시킨 첫 저작
‘악의 평범성’을 말한 철학자의 출발점이자 도착점, ‘사랑’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현대 정치철학의 거장 한나 아렌트의 박사학위논문으로, 철학자로서의 그가 쓴 최초의 저작이다. 아렌트 정치철학의 기원인 동시에 그 종착지로 인도하고 있다. 이는 후일 지적 원숙기에 들어선 그가, 이 논문의 출판을 준비하며 자신의 더욱 발전한 사유를 반영하는 수정을 진행해서만은 아니다. 이 논문의 핵심적인 주제 ‘이웃사랑’은 후기 저작의 주요 화두인 ‘세계사랑’의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함께 구성하는 “세계”’로서의 공영역이라는, 그의 정치철학에서 중추를 이루는 개념이 이 논문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다. 또한 여기서 다룬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마지막 저작 『정신의 삶』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데서도, 이 저작이 아렌트의 전체 “사유의 맥”의 맨 처음과 맨 끝을 잇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아렌트 초기 사유와 후기 사유가 접하는 지점을 만나볼 수 있어 중요하고 의미 깊은 저작임에도 아렌트 본인의 수정 작업 중단 이후 거의 잊히다시피 했던 박사학위논문을, 아렌트 사후 20년이 지나 그의 제자였던 조애나 스코트와 주디스 스타크가 원본과 수정본 등을 정리하여 엮고 자신들의 해설을 더해 한 권의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2013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바 있으나 절판되었던 이 책이, 기존 번역자인 서유경 교수의 한층 정확하고 세심해진 번역으로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아렌트의 기존 독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아렌트의 사유 세계에 첫발을 들이려는 사람에게도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목차

옮긴이의 글

서문 |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
감사의 말

_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서론
1부 갈망으로서의 사랑: 예견된 미래1. 갈망의 구조2. 자애와 탐욕3. 사랑의 질서 체계
2부 창조주와 피조물: 기억된 과거1. 기원2. 자애와 탐욕3. 이웃에 대한 사랑
3부 사회적 삶

_ 한나 아렌트의 재발견

1. 서론: 새로운 시발점들
2. 사유의 맥들
3.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의 아렌트
4. 야스퍼스: 아렌트와 엑시스텐츠철학

저자 소개

저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

책 속으로

그러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죽음이 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손 쳐도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즉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피한다는 사실)은 남는다. 결론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악이 현존하거나 아니면 악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사실뿐이다.” 소유에 대한 두려움 없음이란 안전성은 오직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만 영향력이 있다.

사랑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두려움 없음이다. 갈망으로서의 사랑은 그것의 목표에 의해 규정되며, 그 목표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metu carere다. 삶은 그것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줄어들며’ 계속 자신을 상실해 가므로, 사랑의 적절한 대상amandum에 대한 결정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이 상실의 경험이어야만 한다.
--- p.71

그가 더욱더 자기 자신 속으로 후퇴하고 세계의 분산과 산란함으로부터 자신의 자아를 거둬들이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더 “자신에게 문젯거리가 되었다quaestio mihi factus sum.” (…)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에게 기대한 바는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이전의 모든 철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확실성을 당연시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새로운 자아 탐구 방식으로 인해 결국 신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는 신에게 우주의 신비나 존재Being의 난점을 자신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신으로부터 ‘자신에 관해 듣기를’ 그래서 ‘자신에 대해 알기를’ 청한다.
--- p.100~101

회상을 통해서 인간은 인간실존에 대한 이중의 ‘전방’을 발견한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기억에는 과거를 다시 불러들여서 정신에 현전하도록 만드는 기능이 있다. 이 재현re-presenting의 과정에서 저 과거는 현전하는 여타의 것 사이에 그것의 자리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어떤 미래의 가능성으로 전환된다. 어떤 과거의 기쁨을 기억해냄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미래에 귀환하기를 희망할 수 있다. 마치 과거의 슬픔에 대한 회상이 우리에게 다가올 재난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는 자기 기원으로의 귀환redire ad creatorem이 동시에 그의 종결점을 예상하는 전거se referre ad finem로 이해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 p.165

과거와 미래 양자를, 즉 기억과 기억으로부터 파생된 기대를 현전하게 만들고 붙잡아 두는 방식으로 인간실존을 규정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현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가능성이 인간에게 ‘불변의’ 상태에 참여할 수 있는 몫을 부여한다. 가장 먼 과거와 가장 먼 미래는, 객관적으로 말해서 인간 삶에서 한결같은 이중의 ‘전방’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 그런 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다른 어떤 필멸자가 아니라 오직 인간만이, 저 죽음이라는 최종 경계를 향해서 삶을 영위해 가면서도 그 자신의 궁극적 기원을 향해서 산다. 인간은 기억과 기대를 통해 자신의 전 생애를 현재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영원에 참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현세에서조차도 ‘행복해질’ 수 있다.
--- p.167~168

이웃은 우리 자신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자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러므로 동등은 구원의 메시지에 의해서 무효화되기는커녕 어떤 분명한 의미로서 명시화된다. 이웃사랑이라는 계명에는 동등의 명시성이 담겨 있다. 사람이 자신의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이웃은 근본적으로 그와 동등한 자이며 그와 이웃 모두 저 유죄의 과거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 더욱이 사람은 사실상 평등의 원천이었던 자신의 죄를 생각해서 자신의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과 같이tamquam te ipsum 그의 안에서 스스로 드러난 신의 은총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평등은 명시적인 것이 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데, 이는 그것이 은총에서의 평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p.268

구원의 메시지는 단순히 저 세계의 바깥에서가 아니라 저 세계에 대항해서 모든 사람에게 도착했다. (…) 자애를 통해서 저 지상의 도시 자체는 철폐된 상태지만 신자는 여전히 그것에 맞서 싸우라는 요청을 받는다. 신자의 완전한 고립이 불가능하므로 과거는 남아 작동한다. 그는 개별적으로separatus 행동할 수 없고, 오직 타인들과 함께해서만 혹은 그들에 대항해서만 행동할 수 있다. 신자는 저 세계와 멀어지더라도 계속 그 안에서 살아간다.
--- p.270

그 이중의 기원에서 유래한 이 연결 방식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웃의 적실성을 이해할 수 있다. 타자는 인간 족속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이웃이며, 이 권한 안에서 개인이 실현시킨 고립의 결과인 그 명시성과 더불어 타자의 입지 역시도 뚜렷해지게 된다. 자기동일성을 지닌 신에게 바탕을 둔 신자들의 소박한 공통의 현존이 공통의 신앙이 되고 이윽고 그 신자들의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인간의 있음은 어떤 이중의 원천에서 파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 p.282

출판사 리뷰

1929년, 만 23세의 젊은 여성 철학도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완성한다. 다분히 신학적이고 고전적인 주제를, 당시 유럽 철학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흐름이었던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방법론으로 탐구한 이 논문은 아렌트가 공식적으로 학문의 장에 내보인 첫 저작이었다. 당시의 학계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시도였던 만큼 이 논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으나, 주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명민하고 빛나는 지성을 갖춘 신인의 등장이라는 사실만큼은 다들 공통적으로 인정했다.

30년 뒤, 그때 그 유망 신인이었던 아렌트는 완연히 명망 높은 정치철학자로 자리매김하여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 자신의 주요 저술들을 왕성하게 집필하는 지적 전성기에 있었다. 바로 이 시기,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쓴 그 논문, 철학자로서의 자신을 탄생시킨 그 논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논문에 자신의 성숙해진 사유들을 옮기는 수정 작업에 매달린다. 마치 자기 사유 여정의 출발점이 그 도착점까지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유감스럽게도 여러 이유로 생전의 아렌트 스스로는 그 작업을 매듭짓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박사학위논문은 그가 제시한 주요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함축하고 있어 여러모로 중요한 저작이다. 이 저작에서 아렌트는 초기 기독교의 교리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사랑’ 개념을 자신 나름의 철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재해석하여, 그 개념이 현대 정치철학의 맥락에 놓일 때 던지는 의미와 시사점을 길어낸다. 이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의미 깊을 뿐 아니라 그 순도 높은 추상성에서 어떤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는 저작이지만, 현대의 아렌트 독자 및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첫째로는 이 논문이 아렌트가 던지는,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닌 한 사람의 독립적인 학자로서의 출사표였다는 점이다. 이 저작에서는 그의 두 스승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짙은 영향을 알아볼 수 있는 동시에 그가 스승들에게서 배운 바를 가지고 어떻게 ‘청출어람’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유 세계를 정립해 나갔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둘째로 원숙기의 아렌트가 당시 자신의 사유를 이 논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시도한 덕분에 이 저작에서 아렌트 “사유의 맥”의 처음과 끝, 그 전체 윤곽을 조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세계’, ‘탄생성’의 원형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논문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이웃사랑’은 그가 ‘인간이 공적 세계에 대하여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역설했던 바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다층적인 중요성을 지닌 저작임에도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렌트 연구의 장에서는 오래도록 존재감이 희미한 텍스트에 머물러 있었으나, 아렌트 사후 20년이 지나서 그의 제자들인 조애나 스코트와 주디스 스타크가 이 박사학위논문이 아렌트 사유 여정에서 지니는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 논문의 원본과 아렌트의 수정본 등 여러 형태의 원고를 꼼꼼히 정리하고 자신들의 상세하고 방대한 해설을 덧붙여 펴냈다. 그리하여 1996년, 아렌트의 박사학위논문은 드디어 한 권의 완성된 단행본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책이 되어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2013년 한국에 번역 및 소개되었으나 아쉽게도 절판되었던 이 책이 2022년, 이제 다시 한층 세심하고 정확해진 번역으로 국내 독자들을 만난다. 아렌트 특유의 문장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원서의 편저자들은 물론이고 한국어판의 번역자이자 국내 아렌트 연구의 권위자 중 한 명인 서유경 교수의 해설이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전히 인기 높은 철학자 아렌트의 사유 세계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독자에게는 도전적인 입문서가 될 것이고, 또 아렌트의 기존 독자나 연구자들에게는 아렌트의 사유세계를 다시금 새로이 보게 하는 또 하나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