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2.정부수립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2021) - 반만년 역사의 제1 대사건

동방박사님 2024. 8. 1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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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백성에서 국민으로
민족사를 180도 바꾼 제1 대사건

세계사의 대전환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으면 많은 이들이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전환은 언제 일어났을까? 우리에게도 서양의 혁명만큼이나 놀라운 혁명적 사건이 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은 묘청의 난이라고 말했지만,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이보다 기준을 더 넓혀 ‘반만년 역사의 제1 대사건’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꼽았다.

단군이 세운 고조선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반만년 역사의 대부분은 군주가 국가의 주인이었고, 전제군주제의 역사였다. 민족구성원들은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금과 부역 등의 의무만 지고 살았다. 그런데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족의 역사가 180도 뒤바뀌었다.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백성에서 국민으로 살게 되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한 것이다.

평생을 독립운동 연구에 매진해 온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의 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반만년 역사의 제1 대사건??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에 맞춰 발행된다. 독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임시정부의 참모습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22개 주제를 정해 쉬운 문체로 써 내려갔다.

목차

제1부 반만년 역사를 깨우다

제1장독립운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다
제2장대한민국 임시정부, 왜 상하이에서 수립했나
제3장연통제와 교통국을 통해 국내와 연계하다
제4장임시의정원,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하다
제5장다섯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 다양한 지도체제를 경험하다

제2부 고난과 존립 위기를 극복하다

제6장한인애국단을 결성하고, 일왕 처단을 추진하다
제7장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를 처단하다
제8장상하이에서 충칭까지, 고난의 대장정에 오르다
제9장존립 위기를 극복해 내다

제3부 연합군과 공동항전을 전개하다

제10장대한민국의 국군,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다
제11장한국광복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
제12장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를 발표하다
제13장인도-버마전선에서 영국군과 대일전쟁을 수행하다
제14장미국의 OSS와 독수리작전으로 국내 진입을 추진하다

제4부 연합군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다

제15장광복 후 ‘신민주국’ 건설을 계획하다
제16장카이로회의에서 자유 독립을 보장받다
제17장좌익 세력의 임시정부 참여로 좌우연합정부를 구성하다
제18장충칭 임시정부 청사에 걸린 프랑스 국기

제5부 임시정부, 해방 후의 역사로 이어지다

제19장환국 후 국내에서 과도정권 수립을 추진하다
제20장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지다
제21장임시의정원, 비상국민회의, 국민의회를 거쳐 국회로
제22장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되다

저자 소개 

저 : 한시준 (韓詩俊)
단국대학교 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에서 사학과 교수, 인문과학대학 학장, 동양학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백범학술원 원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적심사 및 공적검증위원, 문화재청 근대문화재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독립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다.

책 속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은 민족사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역사적 사건이자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반만년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건립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번째는 국민이 국가의 주권을 갖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족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민족은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할 때까지 수천 년 동안 군주가 주권을 행사하는 전제군주제에서 살아왔다.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반만년 동안 이어져 온 군주주권의 역사가 국민주권의 역사로, 전제군주제의 역사가 민주공화제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현재 우리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공화체제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연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다.
--- p.25~26, 「독립운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다」중에서

일왕을 처단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실패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 수상이 암살되고, 일본 정계가 크게 뒤바뀌었다. 또한 상하이사변의 계기가 되어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임시정부의 존재도 세계만방에 알렸다. 이뿐 아니라 일제는 한국과 중국의 ‘공동의 적’이라는 인식이 확대되어 중국인들의 항일 의식이 고취되고, 한중 간의 연대가 형성되어 중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 p.81, 「한인애국단을 결성하고 일왕 처단을 추진하다」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해방이 되면서 임시정부의 활동도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임시정부는 중국에서도 그렇고, 국내에 들어와서도 해체를 선언한 적이 없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지만, 국내에서 임시정부로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주석 김구의 숙소인 경교장에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한편, 내무부 산하에 행정연구위원회와 정치공작대를 만들어 독립국가 건설을 준비하고 조직을 확대하면서, 국내 인사들과 더불어 과도정권 수립을 추진했다.
--- p.233, 「환국 후 국내에서 과도정권 수립을 추진하다」중에서

흔히 대한민국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들을 기용해 수립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초대 내각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친일파보다 임시정부를 비롯해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이 많았다. 국군도 마찬가지이다. 일본군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국군이 창설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창설되었다. 그리고 광복군 출신들이 국군에 참여해 주요 직책을 맡기도 했다. 국군 창설과 관련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국군의 정체성이나 정통성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 p.277,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되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오해와 폄훼

중국을 움직여 얻어낸 자유 독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8월 15일 해방은 되었지만, 한반도는 다시 미국과 소련에 점령되었다. 두 나라는 일본에 승리한 후 전리품으로 한반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얻은 한반도지만 두 나라는 3년 만에 물러났고, 한민족은 1948년 독립된 국가와 정부를 갖게 되었다. 이를 미국과 소련이 베푼 은혜로 보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한민족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연합군이 독립을 보장해 주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카이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이 결정되는 과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독립은 연합국이 준 일방적 선물이 아니다. 50여 년에 걸친 독립운동의 결과였고, 임시정부가 장제스를 움직여 얻어낸 성과였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건립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와 가치를 폄훼하고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정부가 주도해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한 것이다. ‘광복절’은 일제의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광복’보다는 ‘건국’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뿐만 아니다.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의 거센 항의와 연구 단체들의 반대 성명 발표로 무산되었지만, 이 과정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저자는 『제헌국회속기록』에 있는 이승만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인용해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된 것이 아니라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건립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에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은 것임을 확인시킨다. 덧붙여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역사의식을 왜곡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승만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22개 주제로 좇는
단절되지 않고 이어온 역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시기를 민족의 역사가 단절된 것으로 보거나, 해방 이후 역사가 새로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지배를 받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절된 적이 없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망한 것을 융희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것으로 설명하고, 군주가 포기한 주권을 국민들이 계승해야 한다며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한 ?대동단결선언?은 1919년 3월 1일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하노라”라고 선포한 ?3·1독립선언?로 이어져 독립국인 대한민국 건국을 이루어낸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지배를 받았지만, 민족의 역사는 단절된 적이 없다. 그동안에도 우리 민족은 살아 있었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는 크게 변화하고 발전했다.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며,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의 역사로, 전제군주제의 역사에서 민주공화제의 역사로 바꿨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얻은 역사적 경험들은 해방 후 역사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졌다. 국회의장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회사를 통해 임시정부를 계승·재건·부활하자고 제안했고, 제헌국회에서는 이승만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제헌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재건한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역사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 있었음을 정확히 짚어준다. 저자는 40여 년 동안 임시정부를 연구해 오면서 얻은 생각과 결론을 일반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22개 주제를 정해 쉬운 문체로 써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