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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기념하라 (2021) - 카체트에서 남영동까지,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

동방박사님 2024. 8. 2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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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보리 인문학 2권 『악을 기념하라-카체트에 남영동까지,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가 출간됐다. 역사 편집자 김성환이 독일 곳곳의 강제 수용소 기념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나치와 동독 공산주의 체제가 저지른 참혹한 국가폭력의 역사를 들려준다. 더 나아가 고통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독일이 어떻게 과거를 ‘기념’하는지, 그것이 비슷한 폭력의 역사를 지닌 우리와 남영동 대공분실에 어떤 의미와 해답을 주는지 이야기한다. 직접 찍은 생생한 사진과 더불어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날것 그대로의 악과, 그 악을 물리칠 뜨거운 시민의 힘을 만날 수 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에 발목 잡힐 때 꼭 읽을 만한 책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5

들어가는 글 - 나는 누구인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17
학생운동가와 사회운동가로서 19
남영동에서 독일까지 28

1. 독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독일과 일본의 차이 35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39
독일 과거 청산의 좌절 43
냉전 시대의 장벽 49
탈나치화가 재나치화로 53
68운동과 과거 청산의 재개 58

2. 바이마르 공화국은 왜 무너졌나

베를린과 바이마르 65
페르가몬 박물관 70
독일 혁명 77
바이마르 체제의 허약성 82
바이마르 체제 붕괴의 책임 87

3. 강제 수용소 공간의 탄생

히틀러의 등장 97
의사당 화재 사건 101
독일 연방 의사당 104
공안 정국 몰아치다 112
다하우 강제 수용소 기념관 119
작센하우젠 강제 수용소 기념관 126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133
독일 저항 기념관 136
공포의 현장을 보존하라 142
작센하우젠의 시설들 144

4. 공포의 지형도

공포의 기관들 153
플로센뷔르크 강제 수용소 기념관 157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64
플로센뷔르크 기념관, 인간 중심의 전시 169
‘공포의 지형도’ 전시 174
남영동 대공분실과 ‘공포의 지형도’ 180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과 남영동 188

5. 뮌헨의 나치 기록관

히틀러와 뮌헨 199
제1차 대전과 히틀러 204
히틀러에게 찾아온 기회 208
베르그호프 기록관과 켈슈타인 하우스 213
뮌헨 나치 당사 브라운 하우스 219
뮌헨 나치 기록관과 4·19탑 223

6.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 뉘른베르크

고도 뉘른베르크 235
뉘른베르크와 히틀러 238
나치당 단지 개발 계획 242
파시즘의 어원 244
무솔리니의 파시즘 249
히틀러의 파시즘 건축 251
우리 안의 파시즘 262
나치 단지 보존과 극우주의 264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 논란 271
‘민족정기’의 정체 275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 279

7. 바이마르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바이마르시와 히틀러 285
엘리펀트 호텔 287
나치 도시 바이마르 290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291
남영동 대공분실과 김수근 297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와 괴테 301
실러의 가구 308
방관자 또는 동조자로서의 시민 313
분단 속의 부헨발트 317
독일 통일과 부헨발트 320
미래 세대를 위한 전시 323

8. 함부르크와 노이엔가메 수용소 기념관

항구 도시 함부르크 331
게슈타포 본부 건물 337
신세대 예술가들의 시도 343
함부르크 게슈타포 건물의 운명 348
남영동 대공분실의 장소성 354
노이엔가메 강제 수용소 기념관 357
노이엔가메 수용소 작업장 364

9. 베를린 반제 기념관

반유대주의의 기원 371
유대인 문제 374
‘수정의 밤’ 포그롬 377
최종 해결책 382
절멸 수용소 387
반제 회의 390
제노사이드 395
요셉 불프 399

10. 슈타지 박물관, 호헨쇤하우젠 기념관

동독 청산 문제 407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 409
동독의 동독 청산 414
슈타지 문서 416
슈타지 박물관 424
호헨쇤하우젠 기념관 429
남영동 대공분실 435
밀폐된 비밀의 장소 439
동독 청산의 과정 447

나가는 글 - 기념관교육학

현장 교육으로서 기념관교육 459
보이텔스바흐 합의 462
기념관교육의 사례들 468
남영동 대공분실 기념관교육 474

부록
나치 강제 수용소 지도 482
유럽 여러 나라의 강제 수용소 기념관 484
참고 문헌 492
찾아보기 496
 

저자 소개

저 : 김성환
글쓴이는 1958년 서울 동숭동 낙산 언덕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4학년 재학 중에 1981년 교내 시위를 주동하여 제적, 구속되었다. 그 뒤 출소하여 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서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는 활동을 했다. 1995년에 국사학과에 복학하여 졸업하였다. [한겨레] 신문 지국 운영, 반민족문제연구소(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했다. 그 뒤 사계절출판사, 2...

책 속으로

나는 독일의 나치 청산 작업은 우리의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의 청산과 비교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인들은 히틀러 제3제국이 그들 스스로 선출한 권력이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히틀러가 자행한 독재와 탄압과 학살에 보냈던 지지와 묵인에 대해 반성하고자 한다.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 박정희와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유신 체제와 제5공화국 아래서 자행된 독재와 폭력과 학살에 눈을 감았다. 바로 이 점에서 서로 비교되는 것이고, 우리가 독일로부터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쯤 걸리는 곳인 오라니엔부르크는 작고 아담한 전원 마을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나치 수용소라니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집들은 나치 수용소 시절 때부터 있었다. 바로 수용소에 근무하던 친위대 간부들이 거주하던 집들이다. 평화로운 겉모습의 집 안에 살인마들이 살았던 셈이랄까.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다.

남영동은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픔은 아픔 그대로 드러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때 비로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아픔을 감추고 아름답게 치장한다면 그 아픔은 속으로 곪아 들어가게 되고 결국 더 큰 아픔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국가폭력이라는 상처를 감추고 치장함으로써 또 다시 국가폭력의 반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독일이 스스로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나치 시대를 반성하기 위해 나치의 시설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는지 살펴보는 데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조선 총독부 건물은 철거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민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을 철거하는 것과 그 시대를 청산하는 것 사이에는 모래알 한 알과 드넓은 백사장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본다. 건물도 철거하고 과거 청산도 하면 되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과거 청산을 위해서 건물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가 자본의 힘을 이겨 내고 보존된 것은 내가 속한 시민 단체의 운동이 작용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결단이 결정적이었다. 일찍이 2005년 노무현 정부도 이와 같은 결단을 추진했지만 당시의 정치 지형 속에서 끝내 관철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문재인 정부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시민의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오늘날 남영동 대공분실을 용산이라는 자본주의 바다에서 과거사 보존의 작은 섬으로 생존시킨 주체는 촛불시민이다.

기념관교육은 체제의 국가폭력이 행사된 현장 자체가 교육의 주관자이자 자료이다. 기념관교육은 나치와 동독이 저지른 범죄가 교사를 통해서 전달되는 지식의 형태가 아니라 범죄 현장의 견학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방식의 교육이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교실에서 듣는 것과 아우슈비츠 기념관에 가서 시체 소각로 앞에 서는 것의 차이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기념관교육이 교실 교육보다 교육 효과가 훨씬 크다.

독일의 강제 수용소 기념관이나 우리의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들어설 기념관이나 모두 과거를 기억하는 장소이다. 어떤 이들은 미래가 중요하므로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기억하는 주체는 오늘을 사는 피해자 세대가 아니라 미래 세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할 장소를 보존하여 남겨 줄 뿐이며, 그 장소를 관리하고 키워 나갈 주인은 미래 세대이다.

나는 미래 세대의 행복 조건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과거와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현장을 보존하고 그곳에서 지속적 시민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물려준다면 반드시 미래 세대가 소중하게 받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과거를 잊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 청산을 제대로 못 한 우리와 달리 독일은 끔찍했던 나치 폭력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교육하여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노력해 왔다. 이 책은 국가가 저지른 폭력과 공포의 역사를 독일이 어떻게 청산하고 바로잡아 왔는지 낱낱이 보여 준다. 숱한 유대인이 죽어 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조차 독일 시민들은 악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장소로 남겨 두었다. 그 현장들을 답사하고 똑같은 독재와 폭력의 장소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보며 저자는 말한다. “악을 기념하라. 다시는 그 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카체트, 죽음의 강제 수용소

카체트는 나치가 독일과 유럽 곳곳에 세운 강제 수용소를 이른다. 그곳에서 숱한 유대인이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 갔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을 틈타 영리하게 세력을 잡은 히틀러와 나치는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유대인을 전부 죽여서 유대인 없는 세계를 만들” 결심을 한다. 그것이 바로 나치의 최종 해결책, 이른바 유대인 ‘절멸’ 정책이었고, 끔찍한 악(국가폭력)의 시작이었다.

-청산 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먼저 바닥에 가라앉은 뒤 점차 차오른다. 이때 (가스실의)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으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독가스를 피하려고 한다. 결국 먼저 죽은 시신들을 밟고 올라선다. 그들이 죽으면 다음 사람들이 그 위로, 또 그 위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는 노인과 아이들이, 그 위층에는 여자들이, 가장 위에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차지했다. 그 광경을 상상하며 가슴이 울컥해지는 순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손톱으로 가스실의 벽면을 긁은 자국들이 내 눈을 긁었다. (398~390쪽)

남영동, 국가폭력의 범죄 현장

우리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1987년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가 놓고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망언을 한 독재 정권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고문과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박종철처럼 학생운동가였고, 남영동 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 공동 대표이자 역사 편집자이기도 한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저 불행했던 과거의 현장을 보존한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벗어나, 이 땅에 다시는 밀실에서의 고문이 횡행하는 독재 국가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에 방심하면 그 틈을 비집고 독재 권력이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영동 대공분실은 우리에게 그 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 그 답을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치즘과 동독 공산주의 체제가 저지른 국가폭력 범죄를 독일은 어떻게 ‘기념’하고 있는가.” 오랜 과정 끝에 찾은 기념이라는 해법. 그리하여 독일의 국가폭력 기념관들을 답사하고 분석하며 남영동 대공분실의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 바로 이 책, 『악을 기념하라』이다.

기념하고 기억하라, 국가폭력의 고통을

우리나라에서 ‘기념’이란 말은 흔히 좋은 것을 기리거나 추도할 때 쓴다. 하지만 독일에서 ‘기념’은 말 그대로 생각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기념관’이라고 했을 때 그곳은 ‘생각하는 장소’, 반성하는 장소가 된다. 무엇을 생각하냐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폭력을, 고통과 죽음을, 또는 그것을 외면했던 부끄러움을.

- (수용소의) 참상을 목격한 바이마르 시민들은 모두 얼굴이 어두워지고 굳어졌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곳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결같이 “나는 몰랐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막사에 들어갔을 때 침상에 누워 있던 수감자가 발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어서 보여 주었다. 발가락들이 모두 썩어 문드러지고 뼈가 드러나 있었다. 바이마르 시민들은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면서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들은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314~315쪽)

독일의 거의 모든 강제 수용소는 그 원형을 보존한 채 강제 수용소 ‘기념관’이 된다. 한때 죽음의 수용소였던 곳은 개방되어 시민들을 들이고, 그곳에서 시민들은 날것 그대로 악의 실체를 만난다. 그리고 깊이 성찰하며 다짐한다. 다시는 악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그렇게 기념하고 기억해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 거기에서 ‘기념관교육학’이라는 학문까지 생겨났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이야말로 “글로 진행된 기념관교육”이라 할 수 있다.

상처를 드러내는 데서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독일이 처음부터 반성하고 기념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과 기나긴 논의의 과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시민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섞인 헌신”이 있었다.

- 독일인들의 나치 청산은 적어도 그 첫 단계에서는 마치 우리가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과 똑같은 이유와 정치 정세로 말미암아 실패했다. ……암흑기를 거쳐 다시 나치 청산을 햇볕 아래로 호출해 낸 힘은 학생운동에서 나왔다. 좀 더 보편적으로 규정하자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소수 사람들의 헌신에 의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 운동, 곧 ‘사회운동’의 힘에서 나왔다. (58~59쪽)

마치 공포의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날 수 있게 추진한 힘이 ‘촛불시민’에게서 나왔던 것과 같다. 저자는 남영동이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일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아픔은 아픔 그대로 드러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때 비로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상처를 감추고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함께 고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며 진정한 과거 청산이자 미래의 시작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 어떤 이들은 미래가 중요하므로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기억하는 주체는 오늘을 사는 피해자 세대가 아니라 미래 세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 세대의 행복 조건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과거와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476쪽)
- (그러므로 과거) 청산 작업은 끊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4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