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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하버드 대학 역사학과 앤드루 고든 교수가 도쿠가와 시대부터 2006년까지 일본의 약 200년간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정리한 매력적인 일본의 근현대사 입문서. 이 책은 일본인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지금의 일본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지를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점점 의식해가면서 자기의 꿈을 향해 살아가면서 겪는 행복과 불행도 이야기한다.
목차
11장 쇼와 공황과 다양한 대응 411
경제·사회 위기 412
난국 타개, 해외에서의 새로운 전개 420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향하여 431
새로운 정치질서를 향하여 438
12장 전시의 일본 453
중일 전면전 453
진주만 공격을 향해서 458
태평양전쟁 464
총력전을 위한 동원 469
전시하의 생활 480
종전(終戰)으로 489
전쟁의 상처와 유산 494
13장 점령하의 일본: 새로운 전개와 불변의 구조 497
참기 어려운 것을 참으며 498
미국의 어젠다: 비군사화와 민주화 504
일본측의 반응 513
점령정책의 전환: 역코스 522
부흥과 독립을 향해: 불평등조약의 재현인가? 525
4부 전후 및 현대 일본, 1952-2000년
14장 경제와 사회의 변용 535
경제성장의 기적 536
사회·가족·학교·일 546
경험의 공유와 생활양식의 규격화 551
격차의 잔존과 재편 559
사회적 긴장의 완화와 변화의 제어 566
안정과 변화, 다양한 이미지와 이데올로기 571
15장 고도성장기의 정치투쟁과 그 귀결 581
정치투쟁 582
화해의 정치 599
글로벌한 연관: 석유쇼크와 고도성장의 종언 616
16장 다극화된 세계 속의 글로벌한 대국: 1980년대의 일본 623
세계에서의 새로운 역할과 새로운 긴장 624
경제: 두 번의 석유위기를 타개하고 번영으로 638
정치: 보수파의 전성기 644
번영하던 1980년대의 사회와 문화 651
17장 전후기(戰後期)를 넘어서 661
쇼와 시대의 종언과 상징천황제의 변질 661
분열된 사회의 유령 666
‘잃어버린 10년’의 경제 677
자민당의 몰락과 부활 687
아시아와 서양 사이에서 703
계속되는 과거의 현존 711
부록A. 일본의 역대 총리(1885-2001) 713
부록B. 중의원 총선거 정당별 득표수와 의석수(1945-2000) 716
지은이 주 725
참고문헌 741
찾아보기 755
경제·사회 위기 412
난국 타개, 해외에서의 새로운 전개 420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향하여 431
새로운 정치질서를 향하여 438
12장 전시의 일본 453
중일 전면전 453
진주만 공격을 향해서 458
태평양전쟁 464
총력전을 위한 동원 469
전시하의 생활 480
종전(終戰)으로 489
전쟁의 상처와 유산 494
13장 점령하의 일본: 새로운 전개와 불변의 구조 497
참기 어려운 것을 참으며 498
미국의 어젠다: 비군사화와 민주화 504
일본측의 반응 513
점령정책의 전환: 역코스 522
부흥과 독립을 향해: 불평등조약의 재현인가? 525
4부 전후 및 현대 일본, 1952-2000년
14장 경제와 사회의 변용 535
경제성장의 기적 536
사회·가족·학교·일 546
경험의 공유와 생활양식의 규격화 551
격차의 잔존과 재편 559
사회적 긴장의 완화와 변화의 제어 566
안정과 변화, 다양한 이미지와 이데올로기 571
15장 고도성장기의 정치투쟁과 그 귀결 581
정치투쟁 582
화해의 정치 599
글로벌한 연관: 석유쇼크와 고도성장의 종언 616
16장 다극화된 세계 속의 글로벌한 대국: 1980년대의 일본 623
세계에서의 새로운 역할과 새로운 긴장 624
경제: 두 번의 석유위기를 타개하고 번영으로 638
정치: 보수파의 전성기 644
번영하던 1980년대의 사회와 문화 651
17장 전후기(戰後期)를 넘어서 661
쇼와 시대의 종언과 상징천황제의 변질 661
분열된 사회의 유령 666
‘잃어버린 10년’의 경제 677
자민당의 몰락과 부활 687
아시아와 서양 사이에서 703
계속되는 과거의 현존 711
부록A. 일본의 역대 총리(1885-2001) 713
부록B. 중의원 총선거 정당별 득표수와 의석수(1945-2000) 716
지은이 주 725
참고문헌 741
찾아보기 755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도쿠가와 시대 말기부터 21세기 초까지 약 200년에 걸친 일본의 근현대사를 개관적이면서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일본의 근대가 일본과 일본인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반대로 말하면 일본과 일본인은 글로벌한 근대의 변혁에 어떻게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는지를 생동감 넘치게 이야기해준다.
저자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일본이 하나의 국민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갔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 근대의 이야기에는 메이지 유신과 제국, 그리고 전후의 일본을 지배했던 위정자와 재벌과 엘리트층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노동자, 농민, 천민, 도시의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 일반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당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기술하고 있다.
도쿠가와 막부의 위기와 근대적인 혁명
일본사에서 태평성대로 불리는, 2세기에 걸친 도쿠가와 시대는 18세기 말 이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태평스러워 보였지만,
안으로는 엄청난 변화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평화가 지속되자 생산력과 인구가 증가하고 시장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사회구조와 관행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안에서는 농민의 저항이 빈발하고, 밖에서는 서양 열강이 우세한 군사력을 앞세워 개항을 요구해 왔다. 내우외환에 직면한 막부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개혁을 요구하는 사무라이들은 ‘존왕양이’를 기치로 세력을 규합하여 1868년에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 이른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메이지 정부는 유사 이래 경험해본 적이 없을 만큼 강도 높은 개혁에 착수했다. 그것은 산업화와 (형식적인) 민주화로 요약되는 근대적인 혁명이었다.
서양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메이지 헌법을 제정하여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근대적인 입헌국가, 공식적으로 말하면 일본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은 개혁이 민중들 사이에 쉽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도 만들어냈다.
국가에서 신도(神道)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천황을 신격화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국민을 하나로 묶고,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해 징병제와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일본 내셔널리즘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자신이 서양에게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웃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획책에 발 벗고 나섰다.
일본제국의 흥망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 엄청난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일본경제는 활황을 누렸다.
정치적으로는 1912년에 다이쇼 천황이 메이지 천황의 뒤를 잇고, 이른바 천황제 민주주의라는 잡종적인 체제가 의회?군부?관료의 적당한 타협 속에서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베르사유 강화조약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하고 서양열강과 군비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승세를 타던 일본제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했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의 저항이 점점 거세졌다. 여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1929년의 세계 경제공황이었다.
공황이 닥치자 충격에 취약했던 일본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며, 노동쟁의와 소작쟁의는 빈번해지고 더욱 격렬해졌다.
일본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무언가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일본의 통치엘리트들은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거대한 판도의 제국을 건설하는 군국주의의 길로 나섰다.
우선 서양식 정당정치와 시장경제를 비판하고 그것에 제한을 가하여 모든 국력을 군사력에 집중시키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체제와 유사한 국가총동원체제를 수립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같은 침략전쟁을 도발하고 그것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했으며, 거의 모든 일본의 지식인과 민중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기꺼이 다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일본제국의 파멸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쇼와 천황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떨리는 음성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조서를 발표했다.
전후의 경제부흥
일본의 전후시대를 역사의 단절로 볼 것인가 연속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데,
이 책의 저자 고든은 그런 논쟁들을 종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인 관전기(貫戰期)를 제시한다.
공황과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정책과 일상생활의 일부 특징이 1950년대까지 생명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것 같은 형식을 취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일본의 항복은 타협의 산물이었다.
미국이 천황제를 그대로 두는 것에 동의했던 것이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미일동맹의 뿌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미국의 점령정책은 비무장을 명문화하고 천황을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신헌법(흔히 평화헌법이라 부른다)의 제정과 일본의 경제부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편 전쟁범죄 조사와 전범자 처벌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점령기의 일본경제는 미국의 의도와 달리 회복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일본경제의 전기가 찾아왔다.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이후 1980년대까지 국가의 적절한 지도와 진취적인 기업가들의 과감한 투자 및 신기술 개발이 결합하여 일본경제는 전세계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른바 ‘경제기적’을 이룩했다.
정치적으로는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자민당에 맞서서 사회당을 위시한 진보적인 야당세력이 대립하는 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의 무게중심이 투쟁에서 타협으로 옮겨갔다.
사회적으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격렬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진통을 겪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반전반핵, 환경, 미군기지 등을 쟁점화하는 시민운동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한편에서는 과거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 극우세력의 운동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총체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1989년 1월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이었다.
쇼와 시대가 끝나면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자민당의 헤게모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해 7월 자민당은 참의원이 구성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었는데, 이 불황은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일본의 경제불황은 금융위기에서 찾아왔다. 1980년대의 요란한 투기(부동산과 주식) 열풍으로 인한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금융기관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끌어안게 되었고,
결국 은행이 줄줄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지난날 일본의 고도성장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본병’을 진단했다.
정치에서도 극적인 변화는 계속되었다. 1993년에는 최초의 비자민당 연립내각이 출현했고,
이듬해에는 자민당과 일본사회당이 손을 잡고 사회당 위원장이 총리로 취임하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연합의 결과, 사회당은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이제 일본정치에서 이념적인 좌우대립구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민당의 부활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나 기대와 달리 자민당은 몰락하지 않았다. 2001년 예상을 깨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성립되면서 자민당은 국민의 지지를 회복했다.
고이즈미는 이런 지지를 등에 업고 경제개혁과 미일동맹 강화를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특히 후자는 일본의 재군비나 헌법개정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협조를 얻어야 가능하다.
일본의 과제
일본의 근대사를 보면 근대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똑같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적 동질성의 신화를 낳은 사회가 수많은 외국인을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강력한 경제성장의 신화와 환경친화적인 생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인구감소와 고령화와 복지비용부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이라는 과거와 끊임없이 직면해야 하는 불쾌감은 어느 정도까지 일본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방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일본 내셔널리즘을 옹호하는 세력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피해보상 요구에 반발하고 있으며, 일본의 정치인들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일본 국민에게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어린 학생들에게 위안부나 민간인 학살 같은 주제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고,
일부에서는 실제로 그런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서 국제적인 비판과 반발을 자초했다.
그래서 저자는 안 좋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그 유산은 결코 ‘국민’의 이름으로 미화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일본의 근대가 일본과 일본인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반대로 말하면 일본과 일본인은 글로벌한 근대의 변혁에 어떻게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는지를 생동감 넘치게 이야기해준다.
저자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일본이 하나의 국민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갔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 근대의 이야기에는 메이지 유신과 제국, 그리고 전후의 일본을 지배했던 위정자와 재벌과 엘리트층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노동자, 농민, 천민, 도시의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 일반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당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기술하고 있다.
도쿠가와 막부의 위기와 근대적인 혁명
일본사에서 태평성대로 불리는, 2세기에 걸친 도쿠가와 시대는 18세기 말 이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태평스러워 보였지만,
안으로는 엄청난 변화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평화가 지속되자 생산력과 인구가 증가하고 시장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사회구조와 관행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안에서는 농민의 저항이 빈발하고, 밖에서는 서양 열강이 우세한 군사력을 앞세워 개항을 요구해 왔다. 내우외환에 직면한 막부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개혁을 요구하는 사무라이들은 ‘존왕양이’를 기치로 세력을 규합하여 1868년에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 이른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메이지 정부는 유사 이래 경험해본 적이 없을 만큼 강도 높은 개혁에 착수했다. 그것은 산업화와 (형식적인) 민주화로 요약되는 근대적인 혁명이었다.
서양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메이지 헌법을 제정하여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근대적인 입헌국가, 공식적으로 말하면 일본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은 개혁이 민중들 사이에 쉽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도 만들어냈다.
국가에서 신도(神道)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천황을 신격화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국민을 하나로 묶고,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해 징병제와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일본 내셔널리즘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자신이 서양에게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웃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획책에 발 벗고 나섰다.
일본제국의 흥망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 엄청난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일본경제는 활황을 누렸다.
정치적으로는 1912년에 다이쇼 천황이 메이지 천황의 뒤를 잇고, 이른바 천황제 민주주의라는 잡종적인 체제가 의회?군부?관료의 적당한 타협 속에서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베르사유 강화조약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하고 서양열강과 군비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승세를 타던 일본제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했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의 저항이 점점 거세졌다. 여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1929년의 세계 경제공황이었다.
공황이 닥치자 충격에 취약했던 일본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며, 노동쟁의와 소작쟁의는 빈번해지고 더욱 격렬해졌다.
일본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무언가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일본의 통치엘리트들은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거대한 판도의 제국을 건설하는 군국주의의 길로 나섰다.
우선 서양식 정당정치와 시장경제를 비판하고 그것에 제한을 가하여 모든 국력을 군사력에 집중시키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체제와 유사한 국가총동원체제를 수립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같은 침략전쟁을 도발하고 그것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했으며, 거의 모든 일본의 지식인과 민중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기꺼이 다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일본제국의 파멸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쇼와 천황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떨리는 음성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조서를 발표했다.
전후의 경제부흥
일본의 전후시대를 역사의 단절로 볼 것인가 연속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데,
이 책의 저자 고든은 그런 논쟁들을 종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인 관전기(貫戰期)를 제시한다.
공황과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정책과 일상생활의 일부 특징이 1950년대까지 생명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것 같은 형식을 취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일본의 항복은 타협의 산물이었다.
미국이 천황제를 그대로 두는 것에 동의했던 것이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미일동맹의 뿌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미국의 점령정책은 비무장을 명문화하고 천황을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신헌법(흔히 평화헌법이라 부른다)의 제정과 일본의 경제부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편 전쟁범죄 조사와 전범자 처벌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점령기의 일본경제는 미국의 의도와 달리 회복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일본경제의 전기가 찾아왔다.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이후 1980년대까지 국가의 적절한 지도와 진취적인 기업가들의 과감한 투자 및 신기술 개발이 결합하여 일본경제는 전세계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른바 ‘경제기적’을 이룩했다.
정치적으로는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자민당에 맞서서 사회당을 위시한 진보적인 야당세력이 대립하는 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의 무게중심이 투쟁에서 타협으로 옮겨갔다.
사회적으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격렬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진통을 겪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반전반핵, 환경, 미군기지 등을 쟁점화하는 시민운동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한편에서는 과거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 극우세력의 운동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총체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1989년 1월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이었다.
쇼와 시대가 끝나면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자민당의 헤게모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해 7월 자민당은 참의원이 구성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었는데, 이 불황은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일본의 경제불황은 금융위기에서 찾아왔다. 1980년대의 요란한 투기(부동산과 주식) 열풍으로 인한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금융기관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끌어안게 되었고,
결국 은행이 줄줄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지난날 일본의 고도성장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본병’을 진단했다.
정치에서도 극적인 변화는 계속되었다. 1993년에는 최초의 비자민당 연립내각이 출현했고,
이듬해에는 자민당과 일본사회당이 손을 잡고 사회당 위원장이 총리로 취임하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연합의 결과, 사회당은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이제 일본정치에서 이념적인 좌우대립구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민당의 부활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나 기대와 달리 자민당은 몰락하지 않았다. 2001년 예상을 깨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성립되면서 자민당은 국민의 지지를 회복했다.
고이즈미는 이런 지지를 등에 업고 경제개혁과 미일동맹 강화를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특히 후자는 일본의 재군비나 헌법개정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협조를 얻어야 가능하다.
일본의 과제
일본의 근대사를 보면 근대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똑같이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적 동질성의 신화를 낳은 사회가 수많은 외국인을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강력한 경제성장의 신화와 환경친화적인 생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인구감소와 고령화와 복지비용부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이라는 과거와 끊임없이 직면해야 하는 불쾌감은 어느 정도까지 일본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방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일본 내셔널리즘을 옹호하는 세력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피해보상 요구에 반발하고 있으며, 일본의 정치인들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일본 국민에게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어린 학생들에게 위안부나 민간인 학살 같은 주제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고,
일부에서는 실제로 그런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서 국제적인 비판과 반발을 자초했다.
그래서 저자는 안 좋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그 유산은 결코 ‘국민’의 이름으로 미화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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