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전쟁연구 (책소개)/5.세계냉전사

얄타 : 8일간의 외교전쟁

동방박사님 2021. 12. 14.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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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MD 한마디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영국 소련의 세 지도자가 크림반도 얄타에서 만난다. 이들은 유럽 국경선, 전쟁 포로, UN 설립에 관해 논의했다. 회담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질서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8일간에 걸친 얄타 회담을 생생하게 복원한 역작이다. - 손민규 역사 MD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만들어낸 20세기의 세계질서
―평화를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


이 책은 루스벨트가 미국 대통령 4기 취임식을 끝내고 크림반도의 얄타로 향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얄타에서 8일간에 걸쳐 미·영·소의 정상과 그 참모들이 치열하게 벌인 논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그려내고 있다. 총 7부 31장으로 구성된 내용에서 마지막 장은 얄타회담 직후 루스벨트의 죽음과 동서 진영의 위기 조짐, 그리고 포츠담회담을 서술했지만, 온전히 얄타회담만을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20세기 중반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하여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협상이 전개되었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 얄타회담이다. 저자는 기밀문서와 공식 회의 자료 및 회담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일기와 회고록을 바탕으로 얄타회담을 생생히 복원했다. 회의 장면은 때론 긴장감이 감돌아 숨 막히고, 때론 가시 돋친 말이 오가며, 논의가 안 풀릴 때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모습도 나타난다. 상대방의 관심을 고려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저자에 따르면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이 실제로 얘기했을 법한 말을 추정해 쓴 것”이고 “모든 자료를 활용해 이것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의 대화가 오가는 장면은 당시의 녹취를 풀어내기라도 한 듯 현장감이 살아 있다.

목차

【권두부록】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얄타회담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1부 작전명 아르고호
01 대통령의 여행 / 02 몰타 회동 / 03 차르의 앞마당 / 04 붉은 주인

2부 전사들의 정상회담
05 3거두의 재회 / 06 겨울 공세 / 07 독일 문제 / 08 전리품

3부 새로운 세계질서
09 UN 안전보장이사회 / 10 독일 총통의 그림자 / 11 발칸반도의 분할 / 12 폴란드 쟁탈전 /
13 “우크라이나인들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4부 외교관들의 체스판
14 UN의 표결 방식 / 15 폴란드 문제의 교착 상태 / 16 폭격선 / 17 극동 기습 /
18 “동맹국은 서로를 속이면 안 됩니다”

5부 타협의 바퀴
19 폴란드 포기 / 20 독일의 운명 / 21 해방된 유럽과 발칸 거래 / 22 이란, 터키, 제국 /
23 비밀 협정 / 24 전쟁 포로

6부 얄타 정신
25 최후의 만찬 / 26 결승점 통과 / 27 희망의 날들

7부 다가오는 폭풍
28 갈등의 조짐 / 29 스파이 전쟁 / 30 스탈린의 밀어붙이기 / 31 루스벨트 이후

에필로그
감사의 말 / 역자 후기 / 미주 / 찾아보기
【권말부록】 주요 등장인물
 

저자 소개

저 : 세르히 플로히 (Serhii M. Plokhy)
 
1957년 옛 소련 고리키(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University of Dnipropetrovsk)을 졸업한 뒤 1990년 타라스 셰브첸코 키예프국립대학에서 국가박사학위(Habilitation degree)를 받았다. 1983~1991년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91년 캐나다로 이주하여 앨버타대학교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7년 하버드대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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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허승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슬라브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2008년 우크라이나 대사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나의 사랑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현대사』,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얄타: 8일간의 외교 전쟁』, 『크림반도 견문록 1, 2』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 책을 번역하면서 계속 유추해 생각한 상황은 현재 북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남-북, 미국, 중국 등의 다자 게임이다. 실제로 이 책 곳곳에는 남-북, 북-미, 한-미, 북-중, 북-미 등이 벌이고 있는 수 싸움에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정상 간 외교의 여러 기술과 협상 전술이 숨어 있다. 얄타회담에서는 각국이 주안점을 두고 있는 협상 의제에 따라 가까운 동맹과의 이해관계는 뒤로 하고, 멀어 보이던 적과 손을 잡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또한 국내 정치의 압박이 대외 정책 결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합의라도 실패의 요소가 내포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완벽하게 성공하는 정상회담도 없다”라는 교훈을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 「역자 후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만들어낸 20세기의 세계질서
―평화를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


이 책은 루스벨트가 미국 대통령 4기 취임식을 끝내고 크림반도의 얄타로 향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얄타에서 8일간에 걸쳐 미·영·소의 정상과 그 참모들이 치열하게 벌인 논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그려내고 있다. 총 7부 31장으로 구성된 내용에서 마지막 장은 얄타회담 직후 루스벨트의 죽음과 동서 진영의 위기 조짐, 그리고 포츠담회담을 서술했지만, 온전히 얄타회담만을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20세기 중반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하여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협상이 전개되었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 얄타회담이다. 저자는 기밀문서와 공식 회의 자료 및 회담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일기와 회고록을 바탕으로 얄타회담을 생생히 복원했다. 회의 장면은 때론 긴장감이 감돌아 숨 막히고, 때론 가시 돋친 말이 오가며, 논의가 안 풀릴 때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모습도 나타난다. 상대방의 관심을 고려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저자에 따르면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이 실제로 얘기했을 법한 말을 추정해 쓴 것”이고 “모든 자료를 활용해 이것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의 대화가 오가는 장면은 당시의 녹취를 풀어내기라도 한 듯 현장감이 살아 있다.

유럽 전장에서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게다가 극동 쪽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세 강대국의 지도자는 얄타에 왜 모였으며 무슨 논의를 했던 것일까? 그들은 유례가 없는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끝내는 방법으로 협상에 따른 평화를 수립했다. 즉, 얄타회담을 통해 유럽 역사상 가장 긴 평화의 확립에 이바지한 국제체제의 요소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전쟁을 끝내는 데는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가 있었다.

얄타회담에서 주요 쟁점이 된 주제는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세계평화기구, 즉 UN의 설립과 회원국 자격, ② 유럽 국경선 문제, ③ 전쟁배상금, ④ 전쟁 포로 문제, 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다. 루스벨트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구현이라는 목표하에 소련을 세계평화기구에 가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국 1표’의 원칙을 견지하려던 UN 안전보장이사회 투표권에 대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소련에게 3표를 주는 협정을 맺었다.(소련은 3표를 확보하기 위해 영연방이 6표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에게도 추가로 2표를 주는 데 동의한다는 주장을 폈다.) 동유럽 국경선과 관련해, 미국과 영국은 전쟁의 승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소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폴란드의 동부 영토를 소련에 내주고, 폴란드 정부 구성 방식에서는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해 이후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미군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루스벨트는 소련을 대일전에 끌어들이려 했고, 그 대가로 사할린 남부를 할양하고 만주에서 소련의 영향권을 인정해주었다. 처칠은 민주적 가치를 신봉해왔고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이지만, 얄타회담 이전의 모스크바회담에서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권을 두고 스탈린과 ‘퍼센트 거래’를 했으며, 그리스에서 영국의 주도권을 확립하고자 군대를 투입시켰다. 루스벨트는 영국과 소련의 이 거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못 본 척 눈감았다.

정치·사회·문화가 달라도 상호 이해에 기반한다면 못할 일이 없을 거라는 낙관은 곧 얄타 정신이었고, 실제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양보와 타협으로 얄타 합의를 도출했다. 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공개적으로 선언한 대서양헌장의 원칙을 훼손하고, 서구 지도자들이 깊이 신봉해온 가치의 타협이 포함되는 과정이었다. 그에 더해 유럽의 절반이 전체주의 체제에 복속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6년여에 걸친 세계대전, 8일간의 외교 전쟁
―다른 목표와 이견의 상충, 협상의 전략과 기술


스탈린과 루스벨트, 처칠은 서로 상충되는 목표를 가지고 얄타에 왔다. 미·영·소는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그 이후 어떤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 달랐다. 루스벨트는 세계평화기구 창설과 세계경제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 달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처칠은 점점 쇠약해지는 대영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유럽 지역에서 영향권을 가지려 했다. 스탈린은 국제적 고립 끝에 강대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동유럽에서 영향권을 확대하고자 했다. 공동의 적을 무찌른다는 목표에서는 같지만 전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확실히 달랐다. 그 때문에 실제 전장에서는 미·영·소가 대연합을 이루어 공동의 적과 맞섰지만, 얄타에서는 연합국 간에 치열한 외교 전쟁이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얄타에서는 지도자 개인들이 갖고 있는 원칙과 가치뿐만 아니라 하나의 의제를 놓고도 서로 간 충돌했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의회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노련한 토론의 대가이지만, 스탈린 역시 현실 정치의 베테랑으로서 회담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얄타회담에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 외향적 구성만 보고 우리는 흔히 루스벨트와 처칠이라는 두 서방 지도자가 한 팀을 이루어 소련의 스탈린에 맞서는 토론을 벌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루스벨트는 세계평화기구의 창설 및 유럽·태평양에서 군사적 승리를 염두에 두면서 유럽 문제를 부차적 관심 사항으로 두었기에 스탈린을 경쟁자라기보다 잠재적 우방으로 여겼고, 처칠은 무엇보다 지중해의 통제권을 영국이 장악하길 원하고 동유럽의 독립이 영국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스탈린을 경쟁자이자 잠재적인 적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회담에서 협상 의제에 따라 미국과 영국은 같은 입장을 취하기도 했지만, 서로 갈등하면서 소련 측의 입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루스벨트는 ‘재판관’의 역할을 맡으며 상충하는 의견을 조정하려 했고, 처칠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답게 문학적 인용을 해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얄타회담의 작전명 ‘아르고호’도 처칠이 제안했다), 스탈린은 두 국가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여유를 부리며 회담에 임하다가도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때는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 다니며 연기를 하듯이 웅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은 공식 회담 중에 각기 별도로 사전 미팅을 갖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편지를 보내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했다. 얄타회담이라는 거대한 외교 전쟁 속에 세 강대국의 지도자는 개별 사안에서 외교 전투를 치렀다.

정치·군사·외교 논쟁을 넘어 인간사를 아우르는 이야기
―인과관계적 사건 서술, 회담의 이면, 개인들의 풍부한 에피소드


저자는 얄타회담을 냉전이라는 역사적·지적 맥락에서 끄집어내야 얄타가 역사에서 제대로 위치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냉전은 적어도 서방 측에서는 크림반도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여러 개인들이 내린 결정에 의해 나중에 시작되었다. 얄타회담의 참석자들은 이 회담이 끝이 아니라 생각했고, 평화협상은 계속될 거라고 여겼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얄타회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회담에 임했던 사람들의 희망과 실망, 기대와 포기, 신뢰와 불신, 원칙과 타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와 같은 회담 참가자들의 기대와 실망의 바탕이 되는 동기, 사고, 행동에 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얄타에서는 군사작전뿐 아니라 유럽 국경선 획정을 포함한 미래 지정학의 문제 등 복잡한 주제가 논의되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만한 주제이지만, 저자는 회담에서 논의된 이야기 자체에만 치중하지 않고 그 논의의 배경이 되는 과거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또한 각 인물들의 면면을 세세히 그려낸다.

서방 측 군사령관들에게 좋은 인상과 신뢰를 심어준 소련 공군 부사령관 세르게이 후댜코프가 스탈린의 눈 밖에 나서 얄타회담 1년 뒤 총살을 당한 사건, 내무인민위원회 수장으로서 비밀경찰을 거느리며 스탈린의 공포 정책을 앞장서서 시행했지만 스탈린 사후 결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당한 라브렌티 베리야, 소련 측 통역가인 발렌틴 베리시코프의 가족이 독일군 점령 시 부역 혐의를 받는 바람에 외무부에서 쫓겨난 일, 그리고 미국 정부의 각료는 아니지만 얄타회담 대표단에 들어간 독실한 기독교 신자 에드워드 플린이 종교 문제를 모스크바 측과 논의하는 과정, 미국 측 사진가 로버트 홉킨스와 소련 측 사진가 사마리 구라리가 얄타회담의 기념사진 촬영과 관련해 겪은 일, 루스벨트의 딸 애나 베티거와 처칠의 딸 사라 올리버, 미국대사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이 회담에서 한 역할 등 회담 밖의 뒷이야기가 풍부하게 서술되어 있다.

얄타회담과 한반도의 운명
―극동 문제에 관한 비밀 협상


일반적으로 우리는 얄타회담이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했다고 알고 있다. 얄타회담은 한국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회담이기는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얄타에서 38선을 경계로 한 분단이 논의되지 않았다.

얄타회담에서 극동 문제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한 대가로 만주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권 인정과 남부 사할린 할양에 치중되어 있다. 아시아 의제와 관련해 루스벨트는 한국에 대한 20~3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하고(이보다 앞서 1944년 테헤란회담이 끝났을 때 루스벨트는 한국에 대한 40년간의 신탁통치를 스탈린과 양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관리 국가로 미국·중국·소련을 언급했다. 스탈린은 신탁통치의 기간이 짧을수록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세 국가가 한국의 신탁통치를 맡되 영국이 반발하면 영국도 포함하기로 한 것이 전부다. 한국에 대한 거래는 이로써 끝나버렸다.(17장 극동 기습, 421쪽 참조)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단 30분 만에 극동의 미래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 30분 동안 한반도 문제는 얼마나 차지하고 있을까? 그들의 머릿속에 약소국 한반도는 크게 자리하지 않았던 셈이다.

중요한 점은 얄타회담에서 세계의 분할이 이루어지거나 한반도의 분단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루스벨트와 스탈린은 ‘강대국의 권력 게임’을 계속 이어나가며 “해당 국가·국민과 어떤 상의도 없이, 그들에게 큰 질곡을 안기면서 자의적으로 영토를 잘라”내는 논의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