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1.한국사찰기행

서울 성북동 길상사 : 법정스님 기념관

동방박사님 2022. 1. 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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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1932~2010 전라남도 해남 출생.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진리의 길을 찿아 1956년 효봉 학눌 (曉峰學訥)의 문화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기초를 다진 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 (修禪安居) 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편찬. 불교경전 역경에 헌신하였으며 1975년 송광산 뒷산에 불일암 (佛日庵)을 짓고 수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 無所有)의 삶을 실천 하였다. 1994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를 창립하여 이끌어주었고, 무소유 사랑에 감동한 길영한여사로 부터 성북동의 대원각을 무소유보시하여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였다. 2010 3월11일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길상사 행자실에서 입적 하였다. 저서 밎 역서로는 <무소유> <버리고 떠나서> <물소리 바람소리><화엄경> 등이 있다.

 

생애

1932년 10월8일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문내면)에서 태어나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6년제 였던 목포상업중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전남대 상대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 및 중퇴하였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 중퇴하던 때인 1954년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 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상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 에양산 통도사 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1959년 4월 에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종교간 화합

1977년 12월14일에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한국천주교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년에 명동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

입적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 되었다. 그 후 그가 쓴 책들의 수요가 늘어 일부 책들은 가격이 10만 원 가까이 치솟을 만큼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저작권자가 절판 유언을 남겼더라도 출판권은 출판사에게 있기 때문에 더 출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3월22일,  법정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모든 책을 절판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쓴 책들의 가격은 10만원 이상 가격이 오르게 되었다 이와같이 혼란이 벌어지자, 법정의 저서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측은 2010년 말까지만 그의 저서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세부적으로는 2010년 7월 30일까지 그의 저서를 서점에 보급하고, 이를 같은해 12월 31일까지만 판매토록 한 후에는  모두 수거하여 완전히 절판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출판가의 혼란은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