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전쟁연구 (박사전공>책소개)/1.세계전쟁사

민족 : 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동방박사님 2022. 1. 19. 18:29
728x90

책소개

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무엇이 종족성과 민족주의를 이토록 강하고
폭발적인 힘으로 만드는가?


민족주의는 어떻게 기원했으며, 어째서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민족』에서 저자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에 상상된 혹은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종족은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고 민족과 민족국가는 수천 년 전 국가가 시작된 이래로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문화가 일찍이 우리의 원시적 조건으로부터 인류 진화에 적응해왔고 친족과 더불어 종족성과 종족에 대한 충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한다. 국가와 제국의 발생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폭발적 성격과, 그것이 정체성과 연대를 형성하는 더욱 해방적이고 이타적인 역할까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주의 계율은 현재의 민족 및 민족주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이루어진 큰 진전들을 극단적으로 과장함으로써 연구 방향을 크게 오도했다”면서, 근대주의·도구주의 이론가들은 종족민족 현상의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민족과 민족주의를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로 취급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중세 유럽을 포함한 전근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민족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았거나 정치적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은 근대 사회 이론이 범한 가장 큰 착오 중 하나다”라고 강조한다.

목차

제1장 서론: 민족주의는 최근에 생겨난 표피적 현상인가?

제2장 친족-문화 공동체의 진화

제3장 부족에서 국가로

제4장 전근대 세계의 종족, 인족, 국가, 민족

1. 종족과 도시국가
2. 전근대 민족국가
3. 제국들은 종족에 무심했을까?

제5장 전근대 유럽과 민족국가
1. 태동기 유럽에서의 민족국가 확산
2. 남유럽 대 북유럽
3. 전근대 유럽에서는 종교, 제국, 왕조 지배, 불평등, 방언의 분열 때문에
민족 형성이 불가능했을까?

제6장 근대: 해방되고 변형되고 강화된 민족주의
1. 인민의 의지와 민족: 무엇이 무엇을 가능케 했는가?
2. 시민적 민족인가, 종족적 민족인가?
―유럽, 영어권 이민 국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3. 지구화하는 세계에서의 민족 갈등과 연대

제7장 국가, 민족 정체성, 종족성: 규범적·헌법적 측면

결론/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아자 가트 (Azar Gat)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에제르 바이츠만 국가안보 석좌교수’. 같은 대학의 정치학과 학과장을 두 차례 역임했으며, 텔아비브 국제 외교안보 프로그램을 창설해 이끌고 있다.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에서 학사, 텔아비브 대학에서 석사, 영국 옥스퍼드 대학 올 소울스 칼리지에서 박사과정를 마쳤다. 이스라엘 방위군 예비역 소령이다. 연구 주제는 전쟁의 원인과 진화, 군사이론, 군사전략, 민족주의 등이다. 저서로 『군사사...

저 : 알렉산더 야콥슨 (Alexander Yakobson)

이스라엘의 역사학자로,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의 고대사 전공 교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2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정치 활동가이기도 하다.

역 : 유나영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삼인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 스티븐 그레이엄의 『수직사회』, 리처드 플래너건의 『굴드의 물고기 책』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유나영의 번역 애프터서비스lectrice.co.kr’에서 오탈자와 오역 신고를 받고 있다.
 
 

책 속으로

우리 시대의 지배적 사회 이론이자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는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더 깊은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말이지만,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방안의 코끼리라 하더라도 말이다.
--- p.30

혈통을 공유한다는 ‘신화’의 정확한 의미는, 유사 이래로 사람들이 신화를 궁극적 접착제로서 생성하곤 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공동체가 하나로 결합할 때, 그들은 조상과 혈통을 공유한다는, 흔히 허구의 계보를 창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문화적 정체성, 영토, 정치적 공동체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친족의 이미지와 관용어를 확대 적용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이는 단지 은유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 p.62

흥미롭게도, 이해와 명명의 어려움은 신화나 서사시, 전승 속에 희미하게만 기억이 남은 그리스와 로마 자체의 과거, 즉 국가 이전 시대로도 확대되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나 우리에게나, 이 과거에 대한 주된 문헌 출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다. 『일리아스』가 당시 멸망한 미케네 세계의 영광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반면,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문명이 다시 출현하고 도시국가들이 발생하기 이전인 암흑기 말기(기원전 8세기)의 사회상을 더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암흑기 그리스 부족들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인지하는 것은 그들이 역사 시대와 폴리스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 pp.89∼90

아시아, 즉 아나톨리아의 해안과 섬들에 살던 이오니아계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을 지배한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하여 봉기했을 때 그들을 도우러 온 것은 스파르타가 아닌 아테네였다. 이오니아인들의 구원 요청에 대한 아테네의 반응에서 가장 중시된 것은 같은 혈통이라는 친족 감정이었다. 그들은 이오니아인들이 이주하여 아티카를 비롯한 그리스 남동부 해안 지방부터 시작해서 에게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 pp.113∼114

민족태를 정치적 종족성의 특정한 형태로 보는 이 책에서 제국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제국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일찍부터 어디에나 싹트고 있던 민족국가들을 우세한 무력으로 파괴한 강력한 엔진이었다. 많은 민족국가들이 제국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이는 전근대에 민족국가가 부재했다는 시각적 환상이 팽배하게 된 주된 원인이다. 또한 역으로, 제국의 압력은 때로 그 주변에 민족국가들이 형성되는 촉매 구실을 하기도 했다.
--- pp.162∼163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문해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던 듯한데, 문해력과 학교 교육이 근대 민족주의의 발전에서 수행했다고 여겨지는 역할을 감안할 때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군대 역시 ‘국민의 학교’로서 비슷한 구실을 했다고 여겨지는데, 그리스-마케도니아계 주민은 충성스러운 성분으로서 군대를 육성하는 자원이 되었다. 물론 그리스인 용병대나 호전적인 비그리스계 종족 출신으로 구성된 몇몇 보조군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헬레니즘 제국의 피정복 토착민들은 군대에서 배제되었고,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 p.172

로마제국의 방대한 규모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로마인들이 ‘우리 바다(mare nostrum)’라고 일컬은 지중해의 통신·물류 고속도로였다.
--- p.198

문화와 정체성은 지속성과 변화를 둘 다 보여주며, 노르만 정복은 확실히 새로운 잉글랜드 민족 정체성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엄청난 단절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 어떤 분류법을 택하건 간에, 요점은 중세 잉글랜드가 문화와 국가가 겹치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10~11세기에 경험했고 13~14세기에 또 한 번 경험했다는 것이다.
--- p.215

1569년 연방 창설과 더불어 루스의 땅은 북부는 리투아니아 치하에 머물고 남부는 폴란드 치하로 들어가면서 갈라지게 되었다. 이들 영토의 동슬라브어 사용자들 내에서 일어난 언어-종족 분화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지배하는 영토에서 각각 벨라루스어와 우크라이나어가 진화한 것이다. 동슬라브어에서 셋째로 큰 러시아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바깥의 더 동쪽에서 발전했다.
--- p.241

샤를마뉴의 제국이 게르만어권과 로망스어권으로 분할된 것만이 유일한 예외로, 그중 게르만어권은 나중에 로마/독일 신성제국이 되었고 로망스어권은 서프랑크/프랑스가 되었다. 9세기경에는 언어의 분리가 확실히 굳어졌음을 고려할 때, 이 분리는 1천여 년에 걸친 굵직굵직한 분쟁과 국경 이동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적은 변화만을 겪었을 뿐 계속 유지되었다. 물론 이러한 언어적 분열의 뚜렷한 안정성은 필연적인 운명이 아니지만 확실히 순전한 우연도 아니었다.
--- pp.282∼283

카스티야가 카탈루냐 지방의 반란을 폭력으로 진압한 뒤 카탈루냐 공공 영역에서 지방어와 문화를 금지한 것은 잉글랜드가 웨일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한 일이나 합스부르크가 옛 체코 영토에서 한 일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현실은 단지 그보다 조금 더 온화했을 뿐이다. (…) 전근대 유럽에서 종족민족 관념이 정치적으로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는 관념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
--- p.323

1800년 전후로 상업자본주의가 산업화와 그 다양한 결과를 초래하면서 본격적이고 폭발적인 근대가 시작되었다. 농촌 위주가 아닌 도시 위주의 사회가 되었다. 통신·거래망의 확대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었다. 대규모 교육 제도가 표준이 되면서 전체 인구가 문맹에서 벗어났다. 근대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시대 배후의 주된 요인으로 때로는 통신의 발달을, 때로는 산업화를, 때로는 대중정치를 강조했다.
--- p.345

동유럽의 세 제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해외 제국도 제국의 강제력이 와해되면서 해체되었다. 이 경우 제국을 해체시키는 데 훨씬 큰 역할을 한 것은 제국 중심부 자체의 자유화와 민주화였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규정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채산이 맞지 않았다.
--- p.363

과거 더 큰 국가의 지붕 아래 있던 소규모 인족들과 특정 영토에 모여 사는 종족 집단들이, 이제 국가로부터 떨어져나와 유럽연합이라는 더 넓은 정치적·경제적 틀 안에서 민족 독립을 수립하는 선택지에 끌리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플란데런, 바스크, 카탈루냐, 그리고 어쩌면 웨일스, 코르시카, 롬바르디아도 이 선택지를 염두에 두거나 최소한 정치적 자치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과거 동유럽의 현상으로 여겨졌던 종족 파편화 과정은 ‘시민적’ 서유럽에서도 뚜렷하다.
--- pp.373∼374

근대화는 국가 건설과 민족 건설이라는 이중 과정을 더더욱 가속화했다. 여기서도 근대주의적 민족 창조 모델은 다른 곳보다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도시화와 철도·도로, 초등교육, 의무 병역은 연결성, 국가의 침투력, 정치 동원, 문화 통합을 크게 증진했다.
--- p.396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신제국주의를 추진한 열강들은 보호주의 정책을 후진 세계로까지 확대했다. 각각의 민족-제국 블록이 다른 모든 블록에 대해 문호를 닫으면서 이 신생 글로벌 경제는 모두에게 개방되기보다 분할될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1930년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눈덩이 효과가 뒤따르면서 걷잡을 수 없는 영토 쟁탈전이 벌어졌다. 한정된 영토에 갇혀 있던 독일과 일본의 입장에서, 제국적 생활권(Lebensraum) 혹은 ‘공영권’으로 치고 나갈 필요성은 특히 긴급해 보였다. 여기에 양차 대전의 씨앗이 놓여 있었다.
--- p.438

어떻게 보면, 인민이 누구를 위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집단적 친밀감과 연대를 측정하는 시험으로서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는가 하는 전통적 질문을 대체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가장 유의미한 지표는 세 가지다. 사회가 세금과 복지 정책을 통해 부유층에서 빈곤층으로 재분배하는 부의 규모, 사회의 종족적 동질성이 이들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 그리고 사회가 해외 원조에 투여하는 자원이 그것이다.
--- p.445
 

출판사 리뷰

민족과 민족주의는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인가?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한다
민족주의에 관한 새로운 논의, 국제정치나 언어분화까지도 심층적으로 분석!

▶국가와 헌법에 대한 정치적 충성을 그 유일하고 주된 기반으로 삼아 존재하는 민족은 거의 없다
▶근대화는 민족주의를 출범시킨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 동시에 변형, 강화했으며 그 정당성을 크게 높였다
▶궁극적으로 민족주의란 마음의 상태다
▶종족은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는 종족을 만들었다
▶민족국가가 유럽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다
▶민족국가는 한 종족과 한 국가가 대체로 일치한 경우에만 출현했다
▶대부분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종족성의 특정한 형태다
▶언어의 공유가 민족 단결의 가장 보편적인 접착제였다

※『문명과 전쟁』 『전쟁과 평화』로 주목받는 아자 가트의 문제작!


민족주의는 어떻게 기원했으며, 어째서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에 상상된 혹은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종족은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고 민족과 민족국가는 수천 년 전 국가가 시작된 이래로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문화가 일찍이 우리의 원시적 조건으로부터 인류 진화에 적응해왔고 친족과 더불어 종족성과 종족에 대한 충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한다. 국가와 제국의 발생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폭발적 성격과, 그것이 정체성과 연대를 형성하는 더욱 해방적이고 이타적인 역할까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주의 계율은 현재의 민족 및 민족주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이루어진 큰 진전들을 극단적으로 과장함으로써 연구 방향을 크게 오도했다”면서, 근대주의·도구주의 이론가들은 종족민족 현상의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민족과 민족주의를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로 취급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중세 유럽을 포함한 전근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민족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았거나 정치적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은 근대 사회 이론이 범한 가장 큰 착오 중 하나다”라고 강조한다.

근대주의적 입장과 전통주의적 입장
민족 및 민족주의의 개념이나 기원과 역사를 다루는 학제적 접근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갈린다. 민족이 근대에 탄생한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보는 ‘근대주의’ 입장과, 민족이 근대 이전의 시기에 기원을 둔다고 보는 ‘전통주의’ 입장으로, 저자는 전통주의의 입장과 뚜렷이 맥을 같이한다. 1장에서는 이론적 논의와 핵심 개념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고, 2장은 수렵채집 집단에서 기원한 친족 집단이 씨족을 거쳐 부족으로 발전한 과정을, 3장은 기원전 1만 년 전에서 5천 년 전 사이에 부족 조직으로부터 대규모 종족이 형성되고 종족 공간에서 국가가 형성된 과정을 개관한다. 4장은 고대 이집트와 중국을 비롯하여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국가와 민족들을 살펴본다. 소국의 한 형태인 도시국가는 한 종족 공간을 여러 개의 도시국가군이 나누어 가지는 형태로 출현했는데, 도시국가들끼리는 평소 자주 대립했지만 외세의 위협이 닥쳤을 때는 서로 동맹을 맺는 경향을 띠었다. 또 제국은 여러 종족으로 구성되었고 영토 내에 있던 민족국가들을 압살하기도 했지만, 그 주변부에서 민족국가의 형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5장은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에서 생겨난 민족국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6장에서는 민족이 대중 주권, 커뮤니케이션, 도시화, 이주 등 근대적 혁명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는 이론을 반박한다. 전근대에 이미 존재했던 대중적 민족 정서가 이런 혁신에 의해 해방되고 변형되어 훨씬 큰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에서 특기할 점
이 책의 논의에서는 몇 가지 특기할 점이 두드러진다. 첫째로, 저자는 민족이 문화 혹은 종족과 국가의 대략적 일치라는 어니스트 겔너의 정의를 수용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또한 개념 정의에서는 종족/인족/민족을 단계적으로 구분한다. 우선 종족이란, 상상 혹은 실제의 친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인족이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지닌 집단이다. 민족이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지녔으며 국가 내에서 정치적 주권/자치권을 가졌거나 이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종족/인족/민족의 성립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혈통을 공유한다는 의식이 아니라 ‘친족 의식’을 꼽았다는 것은 미세하지만 중대한 차이다.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결혼을 통해 결연 관계를 맺는 인척까지 친족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저자는 인간이 종족이라는 특유한 집단을 이루는 현상이 자연적으로 진화한 인간 성향에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이방인보다 자신과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을 더 선호하게끔 진화했다는 사회생물학의 원리를 인용한다. 그러니까 민족이라는 현상은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며, 바로 이것이 민족주의가 원초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라는 것이다. 셋째로, 이 책은 유럽 이외의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으로 사례 연구를 확장한다. 저자는 민족/민족주의 연구의 심한 유럽 편중을 비판하며 여기에 깔린 전파주의적 가정을 거부한다. 민족과 민족국가는 고대로부터 세계사에 팽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부족에서 국가로
저자는 민족과 민족주의 연구에서 거론되는 근대주의, 영속주의, 원초주의 같은 범주들은 모두 재정식화되고 종합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근대성에 의해 철저히 변모하고 강화되긴 했어도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와 문화·인족·종족의 대체적 일치 혹은 연계는 근대에 발명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민족국가는 인류의 역사 시대에 국가태가 생겨난 시점부터 그 주된 형태중 하나로 소국 및 제국과 더불어 영속해왔다. 하지만 국가도 민족도 없던 선사 시대의 장구한 시간에 비하면 역사 시대 자체는 찰나에 불과하다. 실제로 민족과 민족주의는 원초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는 진화적으로 인간 본성에 각인된 친족-문화적 친밀감, 연대, 상호 협력이라는 원초적 인간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생활에 배어 있으며 가족을 넘어 부족과 종족으로 확대되는 이런 애착은 국가가 출현할 무렵 정치의 필수구성 요소가 되었다.”

종족은 항상 정치적이었다
저자는 “민족주의와 종족성은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대체로 민족주의는 정치적 종족성이라는 좀더 광범위한 현상의 한 형태다. 그리고 종족성은 국가가 출현한 이래로, 아니 그 이전부터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종족 혹은 종족성이란 실제의 혹은 상상의 친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한 국가들은 흔히 소국, 국가, 제국으로 분류되며, 종족은 이들 모두에서 주된 요소다. 일반적으로, 농촌 유형의 소국이든 도시 유형의 소국(도시국가)이든 간에 소국의 국민들은 종족적으로 가깝다. 또한 대체로 같은 종족 공간에 속해 있지만, 이 공간은 보통 여러 소국들로 쪼개진 더 넓은 종족 공간의 일부일 때가 많다. 종족적 특질을 공유하는 소국 간의 충돌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외적의 위협을 받았을 때는 대개 외부 세력에 맞서 협력하는 경향을 띤다. 소국에 이방인이 거주하거나, 좀더 드물게 소국이 두 개 이상의 종족 집단의 본향인 경우에는 이 또한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종족적으로 가까운 집단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통일 과정을 촉진함으로써 더 큰 국가로의 성장과 확대를 북돋았다. 그리고 국가는 통일 그 자체의 현실에 의해, 의식적인 평준화와 융합 노력을 통해 자기 영토의 종족적 통합을 더욱더 강화했다. 이 호혜적이고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종족은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는 종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의 엄청난 호소력
전근대와 근대의 민족주의를 포함한 종족정치적 형성물은 정치사와 역사 전반에 배어들어 있으며, 다양하고 광범위한 역사적 변화에 종속되어 있기는 해도 그것은 인간 정신의 깊은 곳에서 비롯되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 민족이고 무엇이 민족을 다른 형태의 집단적·정치적 정체성과 구분하는지에 대한 의미론만이 아니다. 근본적 논점은 이런 모든 형태의 정체성, 친밀감, 연대감이 어디서 나왔고, 얼마나 깊고 긴밀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얼마나 진실하고 중요했는가다. 저자는 대부분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종족성의 특정한 형태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나아가 종족성 자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항상 정치적이었는지, 그것이 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강하게 사로잡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온 인간 본성이라는 관념을 되돌아보고 그것이 우리 생물종의 시초로부터 문화와 맺어온 복잡한 상호 연관을 탐색한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민족국가
이슬람 신도들의 움마(ummah, 민족)는 배타적 민족국가들과 경합하는 정체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기독교보다 더 두터웠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민족국가 형성이 차이를 보인 데는 다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했다. 첫째로, 서남아시아의 지리경관은 유럽과 달리 탁 트여 있어서 제국 팽창에 유리했다. 이러한 제국들은 아시리아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 지역의 초기 민족국가들을 파괴하고 신생 민족국가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방해했다. 둘째로 제국에 의한 정복과 더불어 확산된 아랍어와 아랍 정체성이 존재했고, 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라틴어가 유럽에서 그랬던 것과는 달리 개별 언어와 민족 정체성들로 분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범아랍 정체성이 국지적 잠재성을 띤 민족 정체성들과 경쟁했다. 셋째로 제국과 아랍 정체성이 중동의 민족국가 성장을 가로막은 결과로 확대가족과 부족 같은 소규모 친족 집단들에 대한 충성심이 계속 유지되었다. 이슬람권과 비교하여 유럽이 걸어온 특수한 경로는 무엇보다도 이런 차이들로 설명할 수 있으며, 종교는 이러한 차이를 결정했다기보다는 그럴 여지를 열어주었을 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추천평

아자 가트는 만들어진 전통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를 둘러싸고 앞이 안 보일 만큼 잡다하게 엉킨 말들의 덤불을 말끔히 걷어낸다. 그리고 역사의 모든 시대와 세계의 모든 지역에 존재해온 친족과 정치적 종족이라는 사실의 얼굴을 올바르게도 강제로 직시하게끔 ― 그럼으로써 이 사실의 함의를 생각하게끔 ― 한다.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합리적으로 논증된 잘 쓰인 책이다.
- 스티븐 그로즈비 (미국 클렘슨대학 교수, 『민족주의 입문』 저자)

역사적·지리적으로 광범위한 접근법을 취한 이 책은, 종족정치적 정체성의 사회적·문화적 구성이 인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사회생물학적 성향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가트와 야콥슨이 이 중대한 탐구 분야에 뛰어드는 방식은 대담하고도 흥미진진하다.
- 아비엘 로시월드 (조지타운대학 교수, 『민족주의의 내구성: 오래된 뿌리와 현대의 딜레마』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