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한일관계사 연구 (독서)/1.조선통신사

부사산 비파호를 날듯이 건너

동방박사님 2022. 3. 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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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나라와 일본은 과거로부터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온 이웃이자 숙적이었다. 지금의 한일 관계 역시 과거 역사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의 공식사행이었던 조선통신사의 견문기록은 여전히 그 의미의 파장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선통신사 계미사행록> 시리즈는 모두 조선 후기의 대미를 장식한 통신사행, 계미사행(癸未使行, 1763~1764)과 관련된 기록이다. 240여 년 전의 계미사행록 4종의 저술이 전문 연구자와 전문 편집인의 머리와 손, 그리고 마음을 거쳐 재탄생되었다.
『일관기(붓끝으로 부사산 바람을 가르다)』는 제술관 남옥의 사행록이다. 남옥은 뛰어난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제술관으로 발탁되어 일본에 가서 자신의 문재를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일본 문사들은 그를 최고의 문사로 칭송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부사산(富士山)의 매운 바람을 붓끝 하나로 가른 조선의 자랑스러운 문사였다.

그가 쓴 『일관기』는 제목 그대로 ‘일본을 관찰한 기록’이다. 이 안에는 여정에 따라 일기체로 쓴 내용뿐만 아니라 사행에 관한 그리고 일본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와 지식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안정적이며, 내용의 방대함과 기록의 치밀성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덧붙여 <총기>를 통해서 계미사행 나아가 한일 교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것에서는 그의 시대를 앞선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이 일본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사행록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저자 : 남옥
남옥(南玉, 1722~1770)은 본관이 의령(宜寧)이며, 자는 시온, 호는 추월(秋月)이다. 서계(庶系)로, 조부는 석(晳), 부친은 도혁(道赫)이다. 1753년(영조 29)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합격하였다. 1762년(영조 38)에 조재호(趙載浩)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좌의정 홍봉한(洪鳳漢)의 주청으로 풀려났다. 1763년(영조 39) 계미사행의 제술관으로 임명되어 일본에 가서 크게 문재(文才...
 
감수 : 이혜순
이혜순(李慧淳)은 194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각각 국문학석사와 비교문학석사를, 중국 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 중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와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회장, 한국고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비교문학-이론과 방법』, 『수호전 연구』, 『조...
 
역자 : 김보경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문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유도회(儒道會) 부설 한문연수원에서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 선생으로부터 한문을 사사하고, 동 연수원의 국역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인하대학교, 한성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의 전임연구원으로서 고서(古書) 해제사업(解題事業)을 주관하고 있다. 논저로 박사논문 ...
 
 
출판사 리뷰
* 3년에 걸친 번역 끝에 발행된 계미사행록 번역서(전4권)
조선통신사 계미사행록 4종(화국지/승사록/일본록/일관기)의 번역서가 소명출판에서 발행되었다. 박재금·김경숙·홍학희·김보경 등 4인의 한문학 전공 연구자가 2002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번역을 개시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 계미사행은 조선 후기 통신사행의 대미이자 절정을 이루는 사행
우리나라와 일본은 과거로부터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온 이웃이자 숙적이었다. 지금의 한일 관계 역시 과거 역사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의 공식사행이었던 조선통신사의 견문기록은 여전히 그 의미의 파장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에 발행된 4종의 사행록은 모두 계미사행(癸未使行, 1763~1764) 관련 기록이다. 계미사행은 조선 후기의 대미를 장식한 통신사행이다. 통신사행은 총 12차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제12차 사행은 대마도(對馬島)까지밖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강호(江戶)까지 다녀온 것으로는 이것이 마지막 사행이었다. 한편, 문화교류의 양과 질의 측면에서 볼 때도 계미사행은 조선 후기 통신사행의 절정을 이루는 사행이기도 하였다. 이때 양국 문사 간의 시문 창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단일 사행으로서는 가장 많은 8종의 사행록이 찬술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 4종의 사행록은 계미사행록의 정수
이들 사행록 가운데 지금까지 번역서가 나온 것은 정사(正使) 조엄(1719~1777)의 『해사일기』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행 책임자의 공식적인 기록으로, 계미사행록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계미사행에서는 정사 외에 제술관(製述官)과 서기(書記) 3인이 모두 사행 관련 기록을 지었고, 군관·역관 등도 사행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은 당시 일본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한일 문화 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계미사행의 총체적인 윤곽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조선 후기 한일 문화 교류의 실상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사행록들의 번역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번에 발행된 4종의 번역서는 이러한 점에서 큰 의의와 가치를 가진다. 특히 이 4종은 한일 문화 교류를 주도한 제술관과 서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계미사행록의 정수라고 일컬을 만하다.

* 새로운 숨으로 살아나는 계미사행록
계미사행록 번역에 참여한 연구자는 박재금·김경숙·홍학희·김보경 등 4인이다. 이들은 모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사단법인 유도회(儒道會) 부설 한문연수원 등 한문 전문기관에서 수학하거나 한학(漢學)의 제 권위자를 사사한 전문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정확한 번역, 읽기 쉬운 번역을 목표로 삼고, 꼬박 3년 동안 한서(寒暑)를 잊고 고락(苦樂)을 함께하면서 원문을 강독하고 의미를 토론하며 문장을 다듬었다. 4종의 사행록은 이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거듭 태어났다. 이 책들은 전문 편집인의 손끝을 거치면서 다시 한 번 탈바꿈했다. 표지 디자인에서부터 전체 구성과 배치, 사진과 그림 삽입, 활자체 등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240여 년 전의 계미사행록 4종의 저술은 이렇게 전문 연구자와 전문 편집인의 머리와 손, 그리고 마음을 거쳐 새로운 숨으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