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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의 비밀전쟁 (2017)

동방박사님 2023. 1. 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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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의 CIA 들여다보기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기자인 마크 마제티의 『CIA의 비밀전쟁』은 미국 중앙정보국을 본격적으로 탐사한 책이다. 비밀 첩보기관이라는 특성 탓에 CIA는 미국, 더 나아가 세계를 움직이는 조직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더구나 우리 독서계에는, 번역서든 국내 필자의 저작이든, CIA를 다룬 책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CIA가 한국 현대사와도 뗄 수 없는 연관을 맺어왔다는 짐작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이 기관을 대개 단편적인 뉴스나 영화, 참과 거짓을 가리기 어려운 뜬소문을 통해서만 안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이 못 될 것이다. 『CIA의 비밀전쟁』은 가뜩이나 은밀한 조직 위에 덧씌워져 있던 이러한 무지의 베일을 들추어 독자를 CIA의 실상과 만나게 할 뿐 아니라 그 조직의 내부로 한 걸음 들어서게 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CIA의 비밀전쟁』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시작한 전쟁의 뒷면에서 CIA가 10여 년 동안 세계를 무대로 비밀리에 벌여온 대테러 전쟁이다. 저자는 이 전쟁을 통해 CIA가 단순한 첩보·정보기관에 머물지 않고 미국의 적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직접 처단하는 군사조직으로 탈바꿈해온 양상을 차근차근 파헤친다.

 

목차

주요 인물
서장 | 저 너머의 전쟁
제1장 살인 면허
제2장 스파이들의 결혼
제3장 첩보원
제4장 럼스펠드의 스파이
제5장 성난 새
제6장 진정한 파슈툰족
제7장 수렴
제8장 대리전
제9장 기지
제10장 국경 없는 게임
제11장 노장의 귀환
제12장 칼끝
제13장 아프리카 쟁탈전
제14장 불화
제15장 의사와 족장
제16장 하늘에서 내리는 불
에필로그 | 한가로운 세상의 스파이


 

저자 소개

저자 : 마크 마제티
[뉴욕타임스]의 국가안보 전문 기자. [이코노미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를 지냈고, 2009년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기사로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했다. CIA가 포로 심문 과정을 녹화한 테이프를 파괴한 사실을 보도해 리빙스턴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네이비실에 관한 기사로 조지 포크상을 동료들과 함께 받았다. 워싱턴 D.C.에 살고 있다.
저자 : 이승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에 재학 중이다. 중동과 여타 지역의 분쟁과 갈등을 공부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책 속으로

파키스탄에서 범죄자 추적을 위해 CIA에 고용된 이 전직 그린베레 대원은 공표된 전쟁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십여 년 동안 분쟁을 벌인 뒤 변모한 미국 첩보기관의 얼굴이었다. 중앙정보국은 더 이상 외국 정부의 비밀을 훔치는 데 전념하는 전통적인 간첩기관이 아니라 인간 추적에 사로잡힌 조직, 살인 기계가 되어 있었다. --- p.14

CIA는 실제로 분화되고 당파적인 문화를 지닌 까닭에 그곳 내부의 많은 요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공립 고등학교와 닮아 있다. 힘은 세지만 머리는 둔한 운동선수 같은 준군사요원들은 그들을 거칠고 좀 모자라는 덩치들처럼 여기는 괴짜 분석관들을 꺼리곤 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자신들이 CIA의 진짜 일을 한다고 믿으며 본부의 책상물림들이 내리는 명령은 듣지 않는다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공작관들이 - 세계로 나가는 첩보원들이 - 자리잡고 있다. --- p.72

미국은 무장한 프레더터가 비밀전쟁을 위한 궁극적인 무기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조용히 죽이는 도구였고, 전투에서의 책임에 대한 일반적 규칙에 매여 있지 않은 무기였다. 무장 드론은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독립적 감시단체들이 갈 수 없는 멀리 떨어진 마을과 사막의 캠프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있게 했다. 연단에 서 있는 대변인이 공공연히 입에 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이 공격들은 미국인의 생명을 위험에 빠지게 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양당 정치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응원을 받았다. […] 전쟁을 막는 장벽은 낮아졌고, 원격 제어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살인 드론은 CIA 내부에서 열광의 대상이 되었다. --- p.119

그의 연설은 CIA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연설이 그가 목격한 대로 엄청난 힘을 오바마 정부 안에 쌓아둔 기관을 겨누고 있다는 데는 오해의 여지가 없었다. 공개적으로 우려를 밝힘으로써 그는 오바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규칙 가운데 하나를 위반했다. 국가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가족 안에서 싸우라는 규칙이었다. 더욱 중대한 점은 CIA를 비밀전쟁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 정책의 중심 기둥 중 하나에 블레어가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리언 패네타와 CIA 간부들은 블레어의 연설에 관해 전해듣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한 달 뒤, 오바마 대통령은 데니스 블레어를 해고했다. --- p.265

동부 아프가니스탄의 임시 기지에서 이륙한 4대의 미국 헬리콥터가 달빛 없는 하늘을 비스듬히 동쪽으로 날아 수십 명의 중무장한 청년들을 미국이 전쟁을 선포한 바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투 속으로 데려갔다. 미국 군인들은 알카에다 지도자가 3층의 계단 꼭대기에서 자기 방 바깥을 내다보는 것을 발견했고 특공대원 한 사람이 그의 얼굴 오른편에 총을 쏘았다. 침실 안을 향해 뒤로 넘어진 그는 피바다 속에 경련을 일으키며 누워 있었다. 실 대원들은 빈라덴의 시체를 촬영했고 시신 운반용 부대에 시체를 넣은 뒤 계단을 거쳐 문 밖으로 끌고나왔다. --- p.320-21

“예전에 우리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양심상 우리가 누굴 죽이는지 알고 싶어 했지요. 그런데 지금 우린 이 사람들에게 사방에서 불을 질러버리고 있어요.”
그에 따르면 살인 기계의 피스톤은 전적으로 저항 없이 작동한다. “모든 드론 공격은 처형입니다. 우리가 사형 선고를 내리려 한다면 거기엔 이 모든 것에 관한 어떤 공공의 책임과 공적인 토론이 있어야 돼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건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토론이어야 합니다.”
--- p.357
 

출판사 리뷰

군사조직으로 변신한 CIA의 활동과 고민

물론 21세기에 들어오기 전에도 CIA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치명적인 임무’를 기꺼이 떠맡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이 책은 20세기의 CIA가 미국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해외 정보를 수집·분석한다는 본래의 창립 목적과 동떨어진 곳에서 외국의 정부를 전복하거나 정치가들을 암살하는 데 힘을 쏟아온 내력을 숨김없이 밝힌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CIA의 활동을 제어하는 장치(이를테면 1970년대에 상원의원 프랭크 처치가 만든 조사위원회 활동, CIA의 외국 지도자 암살을 금지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명령)가 있었고 CIA에게도 ‘공식적으로는’ 살인이 허용되지 않았던 반면, 9.11 테러 이후에는 CIA의 발길을 막을 울타리가 없어졌다고 저자는 본다. 그럴 뿐 아니라,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CIA의 은밀한 대테러 작전은 큰 비용을 들여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치르는 재래식 전쟁의 효율적인 대안으로, 또 원격조종되는 드론 공격이 상징하듯 ‘조용한’ 외과수술적 방식(the way of the knife. 이 책의 원 제목이다)을 통해 적을 지워버리는 이상적인 무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에서 손꼽힐 만큼 진보적(liberal)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내내 CIA에 크게 의존하면서 이 기관이 벌이는 비밀전쟁을 굽힘 없이 옹호해왔다는 점은 『CIA의 비밀전쟁』이 힘주어 드러내는 역설이다.
『CIA의 비밀전쟁』은 CIA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예멘, 소말리아 등 세계 도처에서 빚어낸 비밀공작을 다루지만, 이 책의 중심 배경은 파키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이 나라에서 미국과 CIA는 9.11 이후 알카에다를 끈질기게 추적하여 마침내 2011년에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꼼꼼이 뒤쫓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의 위세에 눌려 대테러 전쟁에 협력하면서도 숙적 인도에 맞선 방패로 탈레반 같은 테러조직을 은밀히 지원하는 파키스탄 정부 및 정보부의 움직임을 CIA의 활약상에 맞물려놓는다. 이 두 동맹국이 서로 다른 속셈을 품고 밀고 당기는 모습의 묘사는 이 책에 흥미진진한 국제정치학적 탐사보도라는 면모를 곁들여주고 있다.
『CIA의 비밀전쟁』은 그처럼 거시적인 맥락에 대한 응시일 뿐 아니라, 대테러 전쟁이라는 사안에 저마다 다른 몫을 차지하고 얽혀 있는 사람들에 관한 미세한 인간학적 관찰기이기도 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을 만나 취재한 열매인 『CIA의 비밀전쟁』은 세계 최강의 비밀 정보기관이라 해서 상부의 결정에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기계 같은 인간만 모여 있지는 않음을 여러 CIA 전직 요원들을 통해 보여준다. 조직의 공식 노선과 달리 생각하는 그들의 고뇌를 포함하여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 예기치 않은 실수와 착오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첩보전쟁의 현장조차 힘센 자가 결국 이기기 마련이라는 예정론이 실현되는 공간이기보다 허다한 우발성의 개입을 허용하는, 그래서 엉뚱한 결말로 치닫기 쉬운 희비극적인 인간극장임을 알게 한다.
『CIA의 비밀전쟁』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서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존재로 CIA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투쟁해온 국방부의 활동도 많은 비중을 두어 다룬다. 저자는 CIA가 첩보기관에서 군사조직으로 변모한 사실과는 거꾸로 21세기의 미국 국방부가 가장 강력한 무력의 담당자일 뿐 아니라 고유한 정보망까지 가진 조직으로 변신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 점에서 『CIA의 비밀전쟁』은 단순한 CIA 연구를 넘어 21세기 미국에 만들어진 새로운 군사-정보 복합체, 그것의 얼개와 작동 양상에 총체적으로 접근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인에게 위탁된 전쟁, 그리고 정보기관의 올바른 자리

이 21세기형 군사-정보 복합체와 관련하여 새롭게 나타난 현상에 저자는 주목한다. 전쟁의 외부 위탁(outsourcing)이 그것이다. 이전까지 전쟁의 권한과 수단을 독점하고 있던 국가가 사기업과 개인들에게 전쟁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에는 한때 전쟁기업으로 유명했던 블랙워터를 비롯하여 자신의 신념이나 이익, 심지어 CIA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 미국의 전쟁을 나눠 맡은 다양한 개인들이 얼굴을 내민다. 더러 괴이한 인상을 줄 만큼 개성 넘치는 이 인물들은 『CIA의 비밀전쟁』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면서 외부에 위탁된 전쟁이 인류의 운명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불길하면서도 중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책의 끝부분에서 전직 CIA 공작원 듀이 클래리지가 단언하듯 “미국이 벌이는 전쟁의 미래가 될 존재는 기업이고 사적 이익”일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위한 존재이고 국가 정보기관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들은 『CIA의 비밀전쟁』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마주칠 수많은 물음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미국이 펼치는 대외 정책의 정당성에서부터 ‘국익’과 보편적 윤리와의 갈등, 정보기관의 바람직한 위치와 역할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독자에게 수많은 물음들을 던지게 한다. 미국의 거대한 영향력 아래 있고 국가 정보기관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앞에 둔 우리 사회의 독자들에게 그 물음들은 더더욱 절실하고 긴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