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세브란스병원의 역사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본격적인 도입은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호러스 N. 알렌의 건의를 고종이 받아들여 1885년 4월10일 설립된 제중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제중원은 재동에 있는 개화파 홍영식의 집 (현재 헌법재판소 구내)에서 개원 하였다. 제중원은 개원 첫 해에 10,46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등 서양의학을 한국민에게 전파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알렌은 1886년 제중원에 의학교를 설립하고 학생 16명을 모집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양의학교육을 시작하였다.1887년 초, 보다 많은 환자 치료를 위해 구리개 (현재 외환은행 본점 부근)로 이전 하였다. 1887년 알렌이 주미 한국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떠나면서, 제중원의 의료책임은 존W. 헤론. 캐드월러더C.빈튼 등의 의료 선교사들이 담당하였다. 1893년에는 캐나다 토론토 의과교수 였던 올리버R, 에비슨이 제중원의 책임을 맡았다. 에비슨은 조선정부로부터 제중원의 운영권을 이관 받았다.이로써 조선 정부와 미국 선교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제중원은 온전한 사립 선교병원으로 재탄생 하였다.
보다 나은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식 병원의 설립을 게획하고 있던 에비슨은 1900년 미국에서 만난 클리브랜드의 부호 루이스H. 세브란스에게서 병원 설립을 위한 기금 10,000불을 기부 받았다. 1904년 9월, 남대문 밖 복숭아골 (현재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에 새로지은 제중원은 기부자의 이름에 따라 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브란스병원의학교에서는 1908년 첫 졸업생 7명을 배출 하였는데 이들이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였다. 1913년에는 한국에 들어온 각 선교부의 연합으로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게되어, 학교명도 세브란스연합의학교가 되었다. 1917년에는 전문학교로 승격되어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가 되었다. 세브란스병원은 세브란스집안의 지속적인 기부와 선교부의 후원으로 기초의학교실, 치과 등의 건물을 새로 짓고, 경성부민들의 기부로 전염병 환자들을 따로 치료하기 위한 전염병실도 만들었다. 학교와 병원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해방 이후 1947년에는 의과대학으로 승격되어 세브란스의과대학이 되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서울역 앞에 있던 세브란스는 대부분 파괴 되었다. 전쟁 이후 임시 복구 하였으나 도시계획에 의해 부지를 가로지르는 퇴계로의 건설이 추진됨으로써 세브란스의 공간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마침 일제시기부터 제기 되었던 세브란스와 연희의 합동 논의가 본격화 되었다. 양교의 노력과 선교부의 지원으로 1957년 "연세대학교"가 탄생되었다. 이후 세브란스는 1962년 신촌에 병원과 학교를 세로 짓고 이전하여 "연세의료원"체제로 출범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원래 세브란스 부지의1/3정도가 남아 있으며 이곳에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이 건축되었다.세브란스는 한국 근대의학의 모태로서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국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김필순, 박서양, 이태준 등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는 등 여러면에서 우리사회에 큰 공헌을 해왔다.
1957년 1월 "연세대학교" 의 탄생
1920년대부터 에비슨은 세브란스와 연희를 아우르는 종합대학교의 설치를 위해 동분서주 했고, 마침내 1957년 두 학교가 합동하여 연세 대학교가 탄생하였다.
학교와 병원 시설의 확충
1904년9월 세브란스 병원이 신축괸 이후, 루이스H, 세브란스의 후원으로 1913년 의학교 교사 및 외래 진찰소가 신축되었다. 하지만 세브란스는 항상 공간 부족에 시달렸다. 그런데 1920년대에 드러 다양한 후원이 이루어 지면서 여러 시설이 확충되었다.
1920 : 결핵병사 건립
1926 : 경성부민 기념 전염병실
1927 : 신병실 신축, 병리부검실 신축
1930년대 : 덩신병실 신축
1931년 : 치과 진료소 신축
1932년 : 대수술실 증설
1934년 : 기초과학 교실 신축
세브란스병원에서 에비슨의 수술장면 (에비슨, 허스트, 박서양)
서울역 세브란스병원 전경
세브란스병원 개원식 초청장
새로 짓는 제중원
1904년 9월23일 새 병원의 봉헌식을 올림으로써 입원실 규모가 40 병상인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 문을 열었다.
세브란스 병원본관
1885년 4월 개원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 은 의료선교사인 알렌 (1858~1932)건의를 받아들인 고종의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구리개 제중원 (현제 외환은행 본점 부근)
당나귀 타고 왕진가는 알렌
재동 제중원 (헌법재판소 구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세브란스 병원 약사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본격적인 도입은 1885년 4월10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알렌의 건의를 고종이 받아들여 설립된 왕립병원 광혜원 (王立病院 廣惠院)을 통해 이루어 졌다. 광헤원은 재동 (齋洞. 현 창덕여고 북편)
에 위치하였으며, 2주일 후 제중원 (濟衆院)으로 개칭 되었다. 제중원은 개원 첫 해에 19,000여명의 환자를 진료 하는등 서양의학을 한국민에 전파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며, 보다 많은 환자 진료를 위해 1886년 가을 구리개 (현, 외환은행 본점 부근)로 이전 하였다. 알렌은 1886년 제중원 의학교 (醫學校)를 설치하고 학생 16명을 모집하여 우리나라엣 처음으로 의학교육을 시작하였다. 1887년 알렌이 주미 한국 공사관의 고문으로 취임하면서, 제중원의 업무는 헤론, 빈튼 등의 선교의사들이 담당 하였다. 1893년에는 카나다 토론토대학교수 였던 에비슨이 제중원의 운영을 담당하여, 당시 유행했던 콜레라 방역 및 치료사업에 큰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한글로 된교과서 편찬사업 등 의학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쏱았다. 제중원은 1894년 정부의 재정난으로 인해미국 선교부에 이관되었다. 보다 나은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의 설립을 계획하고 있던 에비슨은 1900년 미국에서 만난 클리브랜드시의 부호 세브란스에게서 병원설립늘 위한 기금 10,000불을 기부 받아 1904년 남대문 밖 복숭아골 (현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위치)에 제중원을 새로 짓고, 기증자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세브란스병워능로 명명하였다.1908년에는 정식의학교육을 받았던 7명의 졸업생이 배출 되었으며, 이들은 정부로부터 의사면허 1번지에서 7번까지를 부여받았다. 의학교는 1909년 사립 세브란스의학교로 교명이 변경 되었으며 1917년 사립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가 되었다. 1934년에는 오긍선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교장에 취임하였다.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는 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교명이 아사히의학전문학교 및 부속병원으로 변경되었으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교명이 환원되었고, 1947년에는 의과대학으로 승격되어 세브란스의과대학이 되었다. 1948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 교수 대표간의 합동이 결의되고, 1957년 두기관이 통합됨으로써 세브란스의과대학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으로개칭 되엇다. 1962년에는 서울역 앞에 있던 교사 및 병원이 신촌으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현재 1978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원주분교의 설립이 인가되었고, 1982년 원주의과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외에도 영동, 인천, 용인, 및 광주세브란스 병원 등의 분원이 있다.
현봉학 박사의 동상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피란민 9만2,000명 이상을 구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킨 흥남철수작전의 주역 현봉학 (1922~2007) 박사는 인류 역사상 최대 민산인 구출작전의 영웅이다. 현 박사는 세브란스의전 (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후 모교 교수로 재직하다 6.25전쟁때 통역장교로 참전했다. 미 제10군단장 아몬드 소장은 현 박사와 포니대령의 설득으로 군수물자 대신 피란민 전원을 태워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현 박사의 이 같은 인간사랑의 정신을 기리는 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연세대학교, 현봉학 박사를 추모하는 모임, 국가보훈처, 해병대사령부)과 많은 이가 힘을 모아 여기에 동상을 세운다. 2016년 12월9일 연세데학교,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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