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문화예술 입문 (책소개)/1.건축문화

도시의 깊이

동방박사님 2022. 7.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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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도시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다!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세상의 숨은 공간들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체험’의 영역이 축소되는 시대, 세계 각지의 숨은 건축물을 통해 도시와 사회를 다시금 바라보고 경험하게 하는 인문교양서가 출간됐다. 『도시의 깊이』는 작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치과의사였던 저자가 돌연 유학을 떠나 건축가의 길을 걷기까지, 수많은 여행지에서 그를 매혹했던 건축 공간을 생생하게 다룬다. 저자 정태종은 건축가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탄생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금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건축설계 과정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현대인 대부분이 살고 있는 도시 곳곳, 이를테면 공동주택에는 주거 현실에 대한 문제 인식과 통찰이, 미술관에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이는 유구한 세월을 간직한 유적지부터 현대의 휘황한 쇼핑몰까지, 역사와 시대의 인식도 함께 반영한다. 특히 현대 건축은 철학, 사회학, 미학,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비롯한 원리를 접목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싼 건축 공간을 이해하는 안목은 폭넓은 지식과 사유의 입구를 열어주고, 무심히 흐르던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영감을 선사한다. 바로 그 매력 때문에 의사에서 건축가로 인생의 길을 바꾼 저자는 10년간 전 세계를 직접 누비며 수많은 도시의 크고 작은 건축 공간을 촬영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의 다채로운 맥락과 생동하는 표정을 첫 대중교양서인 『도시의 깊이』에 담았다.

 

목차

프롤로그_모든 도시엔 표정이 있다

1. 도시는 일상이 아닌 것을 상상한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추모 공간
신이 머무는 장소들
유구한 지식에 접속하는 도서관
즐거운 헤테로토피아, 문화 공간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거리 풍경

2. 도시는 오감 그 자체다: 현상학(Phenomenology)
색과 향기의 건축 체험
빛으로 완성되는 공간들
경계를 뒤집는 물과 유리
미니멀리즘과 건축 재료
시간과 공간의 매듭

3. 도시는 공간을 실험한다: 구조주의(Structuralism)
현대 건축의 중심, 구조주의
뚫고, 비우고, 접고, 연결하는 위상기하학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유리와 철이 만드는 낭만과 혁신

4. 도시는 자연에서 배운다: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유닛, 조합, 반복, 연속성
건축 요소의 상호의존성에 대하여
디테일이 세계를 만든다

5. 도시와 건축과 사람은 하나다: 스케일(Scale)
역사를 증축하는 리모델링
현대 건축이 과거와 대화하는 방법
중국 대륙에서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스케일
도시는 항상 상상 그 이상이다

에필로그_나만의 건축과 도시 공부법
 

저자 소개

저 : 정태종
 
건축으로 세상을 읽는 공간 탐구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의 길을 걷다가 스스로 길을 내며 탐험하는 인생을 위해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미국 사이악(SCI-Arc)과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TU Delft)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공학박사를 마쳤다. 현재 단국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 속으로

우리는 상상의 유토피아가 각종 사회 공간의 한계를 위반하는 헤테로토피아로 현실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균열을 통해 바깥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며, 이곳들을 보며 새로운 현실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현대사회의 도시와 건축은 나무와 돌과 벽돌과 유리를 가지고 바닥과 기둥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사회와 자연현상을 면밀하고 섬세하게 관찰하여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서 새로운 인공의 대지와 건축물을 만들고 그 결과로 자연인지 건축물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결국 현대 건축물은 지금까지 없었던 다양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들고 사회에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를 환기하고 고민하게 하는 작업일 것이다.
--- p.17

신고전주의 양식의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Victoria)은 호주 멜버른 도심에 위치한다. 도서관 앞은 멜버른 시내 중심과 연결되어 있는 정원으로 쇼핑과 일에 지친 사람들이 편하게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상상해보라. 명동에서 쇼핑을 하다가 근처 도서관 앞마당의 계단과 정원에서 쉬는 장면을. 서울 사람들은 너무 많이 움직인다. 그런 만큼 사람들이 시내에서 여유 있게 쉬면서 머무를 수 있어야 하는데 머무를 공간은 없고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공간만 많다. 심지어 쇼핑과 휴식마저 전투적으로 해야 할 정도다.
--- p.53

마라케시는 땅과 벽과 좁은 골목이 온통 황토색이다. 원래부터 있던 땅과 먼지와 바람의 색. 며칠 동안 먼지와 바람 사이를 다니면서 나의 존재를 비워본다. 황토색 마라케시에서 눈에 띄는 곳은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이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ant) 주택으로 유명하다. 내 눈에는 이곳의 대표색인 마조렐 블루(majorelle blue)와 이탈리아의 아주리 블루(azure blue)가 구별이 잘 안 된다. 하지만 둘 다 강렬한 색임에는 분명하다. 유럽에서의 파란색은 아프리카에서도 대접받는 듯했다. 하긴 이곳은 아프리카이지만 주인은 프랑스 사람이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조렐 블루는 바닥에 반사되어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 p.84

현상학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능숙한 일본 건축가들에 필적할 만한 사람들이 스위스 건축가들이다. 알프스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 살아서 그런지 현상학보다는 구조주의적 해결을 주로 하는 유럽의 건축가와는 사뭇 다른 건축 디자인을 펼친다. 스위스 대표 건축가인 피터 줌터(Peter Zumthor)가 설계한 쾰른의 콜룸바 박물관은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른 조금 색다른 공간이다. 오래된 폐허 위에 설계된 박물관은 그 지층 아래에 있는 역사를 오롯이 떠안고 있어야 하는 숙명인데 내부 공간을 벽돌로 막고 한 벽에 벽돌을 느슨하게 쌓아 햇빛과 바람과 그림자를 끌어들여서 상상하기 어려운 공간을 만들었다. (중략) 컴퓨터나 가상 현실을 이용하여 지식을 전달하려는 최첨단 문화 공간임을 자랑하는 여타 박물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 p.101~102

덴마크 국립 아쿠아리움 전철역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고 지하도로 들어갔다. 상쾌한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단순한 지하 통로인데 반대 입구에서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빛은 천창에서 내려온 것처럼 콘크리트 바닥과 주변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벽에 경쾌한 디자인의 파란색 의자가 놓여 있다. 한눈에 봐도 디자인을 신경 쓴 것이 티가 났다. 이런 곳까지 디자인한다는 것이 놀랍다. 이곳 지하도는 기능적인 공간으로만 치부해 파고 뚫고 어두우면 조명 넣고 보기 싫다고 하면 벽화 그려 넣고 위험하다고 하면 CCTV를 달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다. 자연과 공간과 디자인과 기능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도록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서 조화롭게 만들었다. 이런 체계적인 문제의식과 고민을 통해 종합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능력일 것이리라.
--- p.167

최근 동유럽도 유리와 철을 이용한 최첨단 현대 건축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바르샤바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건축물인 문화과학궁전은 공산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규모가 거대한 데다가 역사적 의미나 사회주의적 건축 경향으로 인해 시민들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의 옛 총독부 같은 신세다. 존 저드(Jon Jerde)가 설계한 건너편 쇼핑몰 즈워티 테라시(Złote Tarasy)는 바르샤바를 대표하는 현대 상업 시설이다. 건축가는 로스앤젤레스 산타 모니카(Santa Monic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쇼핑몰 설계의 대가로 한국에서도 신도림 디큐브시티,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등을 설계했다. 즈워티 테라시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유기적인 곡선 형태로 지붕은 유리와 철골로 뒤덮여 있다. 이런 디자인은 설계와 시공에 비용이 많이 들어 국가의 경제적 상황을 보는 척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 p.187~188

한국에서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유명한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은 페더레이션 광장에서 길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실제로는 작은 골목에 불과하다. (중략)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 뒤를 돌아보니 골목 사이로 건너편 이안 포터 센터가 보인다. 골목의 복잡한 색과 그림들 사이로 복잡한 현대 건축의 디자인이 보인다. 서로 다른 복잡함이 동시에 보인다. 고딕에서부터 시작한 장식과 디테일의 고민은 현대 건축에서 멈추지 않고 길 건너 그래피티 골목까지 포함하여 더욱 복잡하게 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이론과 원칙을 정립하는 데 있어 어떤 사례를 인정하고 포함시키며 어떤 경우를 배제하는가? 포함이냐 배제냐 그것이 문제다.
--- p.215

엔릭 미라예스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Santa Caterina City Market)은 거대한 색색의 벌집 모양 타일 지붕으로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람블라스 거리의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 Market)에 인파는 더 많이 몰리지만 건축으로 보자면 비교가 안 된다. 재래시장을 건축을 이용해서 예술화시킨 좋은 사례이다. 가우디의 후손이 가우디보다 더 세련되게 현대적으로 풀어놓는 유기적 디자인은 그 어떤 건축가와도 비교 불가하다. (중략) 누군가 바르셀로나를 여행한다고 하면 무엇을 볼 것인가에 따라 문화적·예술적 취향을 파악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우디의 작품을 언급한다. 물론 좋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나는 엔릭 미라예스나 RCR 건축사무소의 작품을 권한다. 청출어람은 가우디의 뒤를 잇는 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 p.218~220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인 윈강 석굴과 가파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현공사는 특이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석굴의 수많은 조각상과 조용히 미소 짓는 대불을 바라보면 비록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적 숭고미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석굴에서 시내 반대으로 한참을 가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건축물로 알려진 현공사가 보인다. 정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겁이 날 정도인데 마치 제비가 되어 절벽에 지어진 제비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현공사는 중국의 불교, 도교, 유교 문화가 하나가 된 독특한 사찰이다. 절벽과 사찰의 공간을 한 줄로 서서 걸어가는 강제동선을 따라가며 내가 그렇게 건축설계에 넣고 싶어 했던 선택동선을 만들어주어도 강제동선을 택하겠다 싶을 만큼 아찔했다. 어디선가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튀어나올 듯하다.
--- p.262~263

돌로 만든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잉카문명의 대표적인 장소 마추픽추는 기차로 계곡을 지나 산 정상까지 한참을 간다. 문화 유적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직접 간다는 의미만 갖고 있을 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문화유적을 방문할 때와 유사한 경험치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예상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라운 건 돌이라는 재료였다. 길바닥에서부터 건물 벽까지 모든 곳이 다 돌이다.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재료이자 중요한 재료가 석재이기에 토목에도 건축에도 다 사용해왔던 것이리라. (중략)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는 마추픽추와는 정반대로 다가온다. 가벼워야 사는 곳. 돌과 육중함이 마추픽추의 특징이었다면 이곳은 그와는 정반대인 물과 갈대의 가벼움으로 세상을 가득 채웠다.
--- p.279~280
 

출판사 리뷰

도시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다!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세상의 숨은 공간들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체험’의 영역이 축소되는 시대, 세계 각지의 숨은 건축물을 통해 도시와 사회를 다시금 바라보고 경험하게 하는 인문교양서가 출간됐다. 『도시의 깊이』는 작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치과의사였던 저자가 돌연 유학을 떠나 건축가의 길을 걷기까지, 수많은 여행지에서 그를 매혹했던 건축 공간을 생생하게 다룬다. 저자 정태종은 건축가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탄생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금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건축설계 과정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현대인 대부분이 살고 있는 도시 곳곳, 이를테면 공동주택에는 주거 현실에 대한 문제 인식과 통찰이, 미술관에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이는 유구한 세월을 간직한 유적지부터 현대의 휘황한 쇼핑몰까지, 역사와 시대의 인식도 함께 반영한다. 특히 현대 건축은 철학, 사회학, 미학,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비롯한 원리를 접목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싼 건축 공간을 이해하는 안목은 폭넓은 지식과 사유의 입구를 열어주고, 무심히 흐르던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영감을 선사한다. 바로 그 매력 때문에 의사에서 건축가로 인생의 길을 바꾼 저자는 10년간 전 세계를 직접 누비며 수많은 도시의 크고 작은 건축 공간을 촬영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의 다채로운 맥락과 생동하는 표정을 첫 대중교양서인 『도시의 깊이』에 담았다.

“이 글은 호기심 많은 치과 의사의 여행에서 시작하여 사회의 쟁점을 건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고민으로 마무리한다. 진료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치과 의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일상과는 다른 곳을 찾아 떠나게 되었고 사람들과 함께 관광지, 유적지, 맛집을 다니다가 혼자서 떠날 용기가 생기자 도시의 뒷골목을 다니면서 도시와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주어진 삶을 따라 살며 박사 학위를 받고 개원의로 자리 잡은 후 처음 혼자서 무언가를 결정한 것이 건축 공부였다.”_서문 중에서

아시아에서 남미까지 직접 촬영한 도시의 얼굴
고립의 시대를 연결하는 섬세한 비대면 여행


현대인에게 도시는 곧 일상이기도 해서, 도시의 삶에서 영감과 열정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지난 1년, 코로나19가 세상을 집어삼키며 우리는 더 많은 장소, 더 넓은 공간을 누릴 자유를 잃었다. 국경이 봉쇄되고 하늘길이 막혔다. 『도시의 깊이』는 여행이 주는 유쾌한 자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새로운 공간이 주는 힘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저자가 발길 닿은 곳에서 직접 찍은 것들이다. 미디어에서 익히 보아온 명소의 흔한 이미지들이 아니다. 땅과 먼지와 바람의 황톳빛이 가득한 모로코의 골목들, 페루의 도시 리마의 벽화에서 발견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 360개 방들이 360도 원형으로 배치돼 파놉티콘 같은 구조를 형성하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티에트겐 기숙사(The Tietgen Residence Hall)…. 청동의 푸르스름한 색감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불가리아의 성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서유럽식 성당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조금 기묘하지만 꼭 동유럽 날씨처럼 애잔하고 사무치는 정서를 자아낼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에펠탑처럼 익히 접해온 장소 또한 저자의 시선에서 다시 태어난다. “건축을 배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했던 것처럼 실제 건축 작품을 살펴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6쪽)이다. 그러나 해외여행이 장기간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저자가 꼼꼼하게 기록해온 여행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섬세한 비대면 여행’이 주는 기쁨이 고립의 시대를 잠시 잊게 한다.

“수많은 여행의 주제 중 건축과 결합한 여행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바르셀로나에 간다고 하면 나는 무얼 보러 갈 건지 물어볼 것이다. 당신이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를 보러 간다고 하면 나는 거기엔 엔릭 미라예스(Enric Miralles)가 있다고, 그리고 바르셀로나 외곽 히로나(Girona)로 가면 RCR 건축사무소(RCR Arquitectes)가 설계한 레 콜스 레스토랑(Les Cols Restaurant)을 즐길 수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 이런 나의 작은 경험과 지식이 널리 퍼져나갔으면 한다. 여행과 결합한 건축은 즐겁다. 즐겁게 여행하다보면 건축 지식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
_서문 중에서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인간을 깨운다!
건축 공간을 읽는 다섯 가지 인문학 키워드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건축 공간을 단순히 국가·도시별로 분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도시 공간들을 현대 건축에서 주요한 다섯 가지 키워드로 나눴다. 첫 번째는 묘지나 성당, 도서관, 문화시설 같은 ‘비일상’을 만들어내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다. 미셸 푸코가 사용한 개념인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장소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새롭게 환기시키는 장소, 즉 실제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16쪽)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종묘, 독일의 홀로코스트 추모기념관,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덴마크 왕립도서관, 마치 아코디언이 꼬여 있는 듯한 기하학적 형태가 돋보이는 로열 발레 학교의 공중 다리 등이 소개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현상학(Phenomenology)이다. 빛, 색과 향기, 물과 유리 등으로 오감을 극대화하는 공간들이 등장한다. 시내 곳곳이 푸른색으로 넘쳐나는 포르투갈의 포르투, 강렬한 햇빛이 반사되는 회랑을 통해 땅에서 빛이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베트남 다낭의 후에 왕궁, 건축 입면에 사용한 유리가 주변의 모든 거리 풍경을 반사해 외부와 내부가 경계 없이 연속된 것처럼 느껴지는 일본 센다이 미디어테크 등이 오감을 자극한다.

“일본 서쪽의 작은 도시 가나자와의 오래된 전통 찻집 거리인 히가시 차야 거리(Higashi Chaya District)를 다니다보면 황금의 거리라 불릴 만한 곳을 경험할 수 있다. 일본 금박 장식 산업을 독점했던 탓에 아직도 그 명성이 남아 있다. 그중 하쿠자 히카리구라(Hakuza Hikarigura)는 가게 내부에 있는 작은 아트리움 한쪽 벽 전체가 금박으로 마감되어 있다. (중략) 금은 보통 장식품이나 장신구같이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지므로 금이라는 재료 자체보다는 형태로 인지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건축물 외벽, 즉 외부의 벽체라는 특정한 형태가 없는 면 전체를 덮은 금을 보는 것이다. 빛이 없어도 빛날 것 같은 재료가 금인데 햇빛을 직접 받아서 반사하는 금빛을 보는 경험은 세상 어디에서도 해볼 수 없을 경험이다._100쪽

세 번째는 현대 건축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구조주의(Structuralism)로, 기존의 원이나 삼각·사각형 같은 기하학에서 벗어나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이나 브레첼 같은 실험적인 건축 공간이 소개된다. 그다음으로 자연을 모방한 건축설계인 바이오미미크리(Biomiomicry), 건축물로부터 시작해 도시와 사람의 삶으로 확장되는 스케일(Scale)을 다루며 체험에 대한 욕망과 지적 갈증을 함께 채워준다.

어떤 건축이 좋은 공간을 만드는가
도시를 바라보는 건축가의 고민


저자는 전 세계의 수많은 건축물을 소개하며 현대사회의 건축이 나아갈 방향에 관한 고민을 놓지 않는다. ‘장소성’과 ‘맥락’을 고려하는 건축 공간으로서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일명 ‘바닷가 수영장’인 레싸 수영장(Leca Swimming Pools)을 소개하며 “한국에 있는 국제 규격의 실내수영장이나 리조트의 워터파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138쪽)이라고 말한다. 레싸 수영장은 바닷가의 일부 공간을 적절하게 막고 최소한만 손을 대 자연스럽게 물을 가두어 만든 천연이자 인공 수영장이다. 신축 건물에 방해된다고 오래된 나무를 자르거나 옮기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에게는 ‘규격’과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공간이 어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연에 순응하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는, 즉 주변의 맥락을 고려하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대체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책은 유사한 다른 공간들을 통해 차분히 보여준다.

“내가 아는 한 한국 전통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까래도 완벽한 직선이 아니고 구부러져 있는 상태 그대로 사용한다. 그 결과 고졸미가 나타난다. 한국에서 온 나에게 포르투의 천연 수영장은 마치 조선 시대 전통 주택을 먼발치에서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_138쪽

건축 재료와 디자인을 편견 없이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은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까운 톨레도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놀라움이 시작되는데, 터미널의 외장 재료가 코르텐강(Cor-ten Steel)이기 때문이다. 코르텐강의 갈색은 새로운 재료임에도 오래된 듯한 인상을 주며 산화되면서 재료가 갖는 시간성이 짙어진다. 그러나 관리가 불편해 우리나라에서는 선호하지 않는데, 톨레도에서는 화단의 경계 등에 코르텐강을 사용해 오래된 도시를 해치지 않으면서 세련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를 ‘가우디의 나라이자, 청출어람의 후손이 있는 나라’인 스페인 건축의 능력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이국의 독특한 도시를 감상하는 미적 즐거움을 넘어,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적 공간을 향한 상상력을 얻게 될 것이다.

“엘 크레꼬 박물관(Museo El Creco) 근처에 삼각형 형태의 작은 외부 광장이 있다. 마을의 작은 자투리 공공 공간에 나무 데크를 이용하여 낮은 계단을 만들어놓은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 경계와 재료로 인하여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편하게 주저앉아 쉬거나 심지어 누워서 해바라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보낸다. 공공 디자인은 항상 결과가 명확히 나오고 티가 나야 실적으로 인정되는데 그런 부담 갖지 않고 진정 사람들이 원하는 작은 관심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공공 디자인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_235쪽
 

추천평

새로운 공간, 낯선 장소는 사람의 관성을 부수고 오감을 깨운다. 여행자가 그 공간에 존재하는 건축의 인문학적 맥락을 파악하면 자극은 훨씬 커진다. 이것은 비단 낯선 여행지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익숙한 장소도 건축과 공간을 보다 깊게 이해하는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 침묵하던 겹겹의 아름다움이 하나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고 일상의 자유를 상실한 지 꼬박 1년, 어떻게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지 막막한, 거리두기에 지친 우리에게 『도시의 깊이』는 참 반가운 책이다. 공간을 탐구하는 건축가의 여행길을 따라가는 동안 단절된 세상이 모처럼 촘촘히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립의 시대에 이토록 ‘깊고도 따뜻한 비대면 여행’은 흔치 않을 듯하다.
- 손미나 (작가,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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