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1.한국근대사

제중원 이야기

동방박사님 2022. 7. 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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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강성대국을 꿈꾼 고종의 시도, 제중원

저명한 프랑스 사상가 푸코는 '병원'을 근대로의 이행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꼽았다. 병원과 학교, 군대와 감옥 등을 감시체제 및 훈육체제로 본 푸코의 학설이 다소 살벌하지만, 근대의학의 발전은 전통사회와 근대를 구분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때문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최초의 황제였던 고종은 제중원을 설립함으로써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고 했다. 『제중원 이야기』는 제중원의 설립에서부터 발전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중원을 다룬 드라마가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됨으로써 제중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제중원을 다룬 책이 수 종 발간되었는데, 『제중원 이야기』는 고종의 기존 이미지를 재고하려는 시도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사료를 실었다. 뿐만 아니라 이광수, 홍영식, 김윤식 등 흥미로운 인물을 차례로 다룸으로써 다양한 각도에서 개항기의 역사를 서술한다.

목차

저자 서문 한국 근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코드

들어가며 : 고종, 조선 근대화를 꿈꾸다

1장 알렌, ‘제중원 신화’를 창조하다
삼일천하, 갑신정변이 낳은 역사적 우연
민씨 가문의 황태자, 민영익
서양의 외과술로 살아나다
죽은 시계도 고친다는 서양 의술

* 부록
서양 의사의 눈에 비친 조선

2장 새 의학으로 새 나라를 만들자
실학자들, 새로운 의학을 고민하다
마마 귀신과 종두법의 싸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콜레라
저팬 타운에 서양식 병원이 등장하다
암행어사, 일본의 서양식 병원에 가다
혜민서ㆍ활인서를 과감히 혁파하다
조선은 왜 미국을 짝사랑했을까
서양의 것, 무엇을 먼저 받아들일 것인가

* 부록
춘원 이광수와 콜레라
한눈에 보는 지석영의 생애
조선 최초의 여행자들

3장 제중원, 조선 백성에게 첫선을 보이다
통리아문에서 방을 내걸다
보름 만에 바뀐 이름
역적의 집에 병원을 열다
1년 운영비는 3000원
제중원은 어떻게 운영되었을까
제중원, 구리개로 이사가다
제중원은 국립병원이다

* 부록
개화파의 자존심, 홍영식
새 시대 새로운 인재를 키우자

4장 제중원 사람들
마지막 대제학, 근대 국립병원의 원장을 맡다
제중원 주사들은 조선의 최신식 관리들이라네
푸른 눈의 선교 의사들
알렌, 악몽 같은 중국 생활을 뒤로 하고 조선에 정착하다
한국 장로교의 대부 언더우드
감리교 의료 선교사 스크랜턴
의대 수석 장학생 헤론
파워, 하디, 빈턴
명성을 뒤로하고 조선을 찾아온 에비슨
방거 부인 엘러스
명성황후가 신임한 여의사 호턴

* 부록
온건개화파의 상징 김윤식
호턴, 남사당놀이를 구경하다
에비슨이 들려주는 단발령 이야기

5장 신식 병원에서는 무슨 병을 고치나
키니네 열 알에 엽전 500푼이오
인기만발 금계랍
제중원의 여의사들
어의가 된 의료선교사들
콜레라를 막아라

* 부록
‘남녀칠세부동석’, 애국심에 무릎을 꿇다

6장. 제중원에 들고 났던 서양 의사들
스크랜튼과 알렌, 어색한 동거
간접선교냐 직접선교냐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다
양놈들이 아이들을 팔아넘긴다
알렌, 선교사를 사직하고 제중원으로 복귀하다
새 의사를 둘러싼 각국의 움직임

* 부록
1885~1894년 미국 감리회의 의료 선교
기포드의 전도여행
개신교를 놀라게 한 평안도의 기적

7장. 조선인 양의사를 키우다
의학당, 문을 열다
최초의 의대생들은 누구였을까
그 의대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 부록
의학도 이진호의 출세담
한국 최초의 의사, 서재필
박서양, 백정에서 의사로 다시 독립운동가로

제8장 조선 정부, 운영권을 넘기다
에비슨, 제중원을 정상 궤도에 올리다
위기에서 기회로
가난한 정부, 위협받는 국왕
모종의 교섭
근대화, 그 미완의 프로젝트

* 부록
외국인들이 본 1894년 조선

맺으며 : 옛 왕조, 가장 새 것을 추구하다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김상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저물어가던 역사로만 기억되던 근대 시기에 마음이 끌렸다. 박사 과정 당시 『윤치호 일기』를 편역하면서 근대사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흑백 사진의 느낌만 있는 구한말에 다채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2005년부터 메디컬 히스토리를 연구했다. 이때 재발견한 제중원은 개항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공간...
 

책 속으로

화려한 자리였다. 조선의 주요 관리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 와 있던 주요 해외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영국 영사 윌리엄 애스턴William G. Aston, 미국 공사 루셔스 푸트Lucius H. Foote, 청나라 공사 진수당陳樹棠, 청나라가 파견한 독일인 외교ㆍ재정 고문 파울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llendorf도 참석했다.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다.
18명의 참석자는 일본인 요리사가 장만한 양식 요리상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다만 민영익과 묄렌도르프만이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 김옥균은 식사 중에도 여러 차례 들락날락하며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 p.22

알렌은 민영익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왕실과 정부 관리들은 물론 백성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조선인들에게 서양 의술의 우수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 서양 의술의 위력이 입증되면서 갑신정변 중에 부상을 입은 조선인들과 청나라 병사 등 많은 사람들이 알렌에게 몰려들었다. 어떤 이가 죽은 시계를 갖고 와서 고쳐달라고 조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청나라 병사들은 알렌의 단골 환자들이었다. 청나라 병사들은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겨 나간 상처에 막 죽인 개의 가죽을 감고 찜질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사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터였다. 알렌은 청나라 부상병들을 정성껏 치료해주었다. 효험을 본 병사들은 대놓고 알렌을 “예수 박사”라고 불렀다.
--- p.33

1885년 4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문을 연 서양식 국립병원의 첫 이름은 광혜원廣惠院이었다. ‘널리 은혜를 베푸는 곳’이라는 뜻으로서, 개원 후인 4월 12일에 지어졌다. 이 이름은 조선 초기의 제생원濟生院이나 1882년에 폐지된 혜민서, 활인서와 같은 조선 시대 전통 의료 기관의 이름을 계승한 것이었다. (...)
그런데 그로부터 2주일 후인 4월 26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는 고종에게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개명하자고 했다. 고종은 이를 즉시 재가裁可하여 이때부터 병원의 이름은 제중원이 되었다. ‘제중’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준말로, ‘널리 베풀어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광혜원이나 제중원이나 그 뜻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굳이 이름을 바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p.99

알렌이 고종과 명성황후를 진료 목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제중원 개원 직전인 1885년 3월 27일이었다. 그들은 유사 천연두에서 막 회복된 상태였는데, 그 후유증으로 고종은 인후가, 명성황후는 귀가 부어 있었다. (...) 알렌이 명성황후를 비교적 가까이서 진료할 수 있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명성황후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때도 환관 한 사람이 칸막이를 통해 천으로 감싼 명성황후의 팔을 내밀었다. 명성황후의 팔뚝은 모두 명주 천으로 싸여 있었고 다만 맥을 짚을 1.5센티미터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명성황후의 혀를 칸막이에 뚫린 구멍으로 내밀었다. 양의洋醫도 한의韓醫처럼 양쪽 팔목의 진맥을 하고, 혀를 살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183
 

출판사 리뷰

고종은 왜 서양식 국립병원을 원했는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시대를 들여다본다


그 끝이 ‘한일합방’이었기에 비운으로 기억되는 구한말. 그러나 사실 그 시기만큼 격동적이고 화려했던 시기도 없었다. 천민에서 국왕까지, 푸른 눈의 서양인에서 청나라와 일본까지. 신분제 사회가 흔들리고, 나라의 대문이 흔들리는 이야기들. 이 핵심에 바로 1885년에 탄생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이 있다.
‘백성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뜻의 제중원의 이름을 지은 이는 바로 조선의 제26대 국왕 고종. 유약한 군주로 우리는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아주 만만찮은 군주였다. 그의 ‘동도서기’론은 아주 견고한 신념이었고, 그는 그 신념을 실천에 옮길 의지도 있었으며, 노력도 기울였다.
역사책에서 접했던 그 많은 기관들의 이름들. 통리기문아문, 별기군, 기기창, 전환국, 박문국, 우정국, 육영공원, 연무공원 등 이 모든 것이 고종의 총체적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 중 고종은 근대적 국립병원을 만들면서 그것을 ‘서양의 의학 기술’로 운영하고자 했다. 한 왕조의 마지막을 이끌던 왕이 ‘새것’을 끊임없이 원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선교 의사 알렌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제중원 속에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고자 했던 한 나라의 꿈과 근대적 개인을 꿈꾸는 개인들의 열망이 가득하다.

모든 변화는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근대사의 핵심을 파악하는 코드, 제중원


제중원을 통해서 우리는 지난 역사 서술에서 빠뜨렸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이 제중원의 설립이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갑신정변으로 인해 민씨 가문의 황태자, 민영익이 자상을 입고, 이를 중국에서 병원을 실패하고 조선으로 도망치듯 와 있던 알렌이라는 서양 의사가 치료한 것이 바로 역사적 드라마의 시작이다. 급진개혁파의 정치적 혁명은 실패했으나, 그로 인해 조선인들의 삶을 뒤흔드는 서양 의학의 보급이 국가를 통해 가능하게 된, 필연 같은 우연들이 제중원을 통해 재발견된다.
또한 제중원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조선을 둘러싼 미국, 일본, 청국의 헤게모니 구도를 보다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다. 제중원의 설립과 운영 과정, 그리고 이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의 운영권 이관 등을 통해, 당시 조선 정부가 미국에 가지고 있었던 ‘짝사랑’에 가까운 우호감, 조선의 근대화 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청국의 횡포, 그리고 이 작은 병원 하나를 일본으로 넘겨주지 않고 보통의 조선인들을 위한 병원으로 두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망국의 시대에서 격동의 시대로,
회색빛 구한말에 색채를 입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출판계에는 『덕혜옹주』, 『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등이 출간되어, 그 100년의 시기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가진 반일감정은 유사 이래 계속되었던 침략이 그 원인이지만 역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일제 강점기에 겪은 민족적인 치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를 치욕적인 역사로만 기억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이 책 『제중원 이야기』의 저자 김상태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 시기에 우리가 새롭게 기억해야 할 것은 새로운 근대 국가를 만들어가려던 고종과 개화파 인사들을 비롯한 조선인들의 노력이다. 이 기간 동안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근대적인 시스템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있다.

병원은 어떻게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을까?
의료라는 코드를 통해 개화기를 다시 읽다


『제중원 이야기』 속에는 그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던 선교사들의 일기와 편지 등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 독자들을 그 시기의 생생한 현장으로 데려 간다.
서양 의학서들을 구해 읽던 조선 말기 지식인들의 노력, 사람의 살을 찢고 꿰맨 장면을 처음 본 조선인들이 받은 충격, 춘원 이광수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당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콜레라 이야기, 말라리아 치료제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금계랍(키니네)’ 등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1883년 미국 대통령의 초청에 의해 미국을 방문하여 근대 문물을 직접 보고 보고 온 보빙사 일행 중 한 명인 최경석이 경기하는 서양 아이를 침으로 치료한 일, 제중원에 처음으로 배치된 5명의 의녀를 기생 출신이라는 이유로 희롱하거나, 청나라에 팔려가게 만든 일 등 그 시기의 사람들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