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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이 복합적인 요인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종교, 교육, 군사적인 각종 혼란을 야기시킴으로써 독재 정치 체제를 조성하거나, 미합중국의 경우와 같이 세계 여러 나라의 각 정부 내부로 침투하여 역사의 진행을 임의로 조작하려는 예수회 활동의 의도를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목차
리베라 박사의 서문
에드몽 파리는...
머리말
제 1 장 예수회의 창설
1.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2. 영적 훈련
3. 예수회의 창설
4. 예수회의 정신
5. 예수회의 특권
제 2 장 16, 17세기 유럽의 예수회
1. 이태리, 포르투갈, 스페인
2. 독일
3. 스위스
4. 폴란드와 러시아
5. 스웨덴과 영국
6. 프랑스
제 3 장 해외선교
1. 인도, 일본, 중국
2. 아메리카 : 예수회의 천국 파라과이
제 4 장 유럽의 예수회
1. 예수회의 교육
2. 예수회의 도덕
3. 예수회의 붕괴
4. 예수회의 재기, 19세기
5. 프랑스 제2제정과 팔룩스 법안, 1870년의 전쟁
6. 교황청과 예수회
7. 프랑스의 예수회(1870-1885)
8. 예수회와 불랭거 장군 그리고 예수회와 드레퓌스 사건
9. 전쟁 전야(1900-1914)
제 5 장 지옥같은 반복
1. 제1차 세계대전
2. 제2차 세계대전의 준비
3. 독일의 침략과 예수회
(오스트리아 - 폴란드 - 체코슬로바키아 - 유고슬라비아)
4.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의 예수회 활동
5. 게슈타포와 예수회
6. 죽음의 수용소와 반유대주의 십자군
7. 예수회와 러시아의 신학교
8. 교황 요한 23세 가면을 벗다
에드몽 파리는...
머리말
제 1 장 예수회의 창설
1.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2. 영적 훈련
3. 예수회의 창설
4. 예수회의 정신
5. 예수회의 특권
제 2 장 16, 17세기 유럽의 예수회
1. 이태리, 포르투갈, 스페인
2. 독일
3. 스위스
4. 폴란드와 러시아
5. 스웨덴과 영국
6. 프랑스
제 3 장 해외선교
1. 인도, 일본, 중국
2. 아메리카 : 예수회의 천국 파라과이
제 4 장 유럽의 예수회
1. 예수회의 교육
2. 예수회의 도덕
3. 예수회의 붕괴
4. 예수회의 재기, 19세기
5. 프랑스 제2제정과 팔룩스 법안, 1870년의 전쟁
6. 교황청과 예수회
7. 프랑스의 예수회(1870-1885)
8. 예수회와 불랭거 장군 그리고 예수회와 드레퓌스 사건
9. 전쟁 전야(1900-1914)
제 5 장 지옥같은 반복
1. 제1차 세계대전
2. 제2차 세계대전의 준비
3. 독일의 침략과 예수회
(오스트리아 - 폴란드 - 체코슬로바키아 - 유고슬라비아)
4.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의 예수회 활동
5. 게슈타포와 예수회
6. 죽음의 수용소와 반유대주의 십자군
7. 예수회와 러시아의 신학교
8. 교황 요한 23세 가면을 벗다
책 속으로
지금까지 본 저서를 통하여 4백년 동안 예수회가 전개한 다양한 활동들 중 일부를 기록하였다. 또한 명성 높은 그들의 군대식 특성과 “교황의 비밀 군대”라는 명칭에 걸맞는 교황지상주의 기구(예수회)에 대하여 파악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특히 교황의 영광을 위하여 수행한 활동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병사들이 자랑으로 여기며 긍지를 가지는, 자신들에게 내려진 명령이다. 그들은 본 저서와 같은 사실적인 출판물을 검열, 감독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진실을 은폐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지지하는 지역에서 수행한 사역에 대해서는 적극 소개하고 있다.
예수회는 교활한 속임수, 순수의 거부, 흉악한 음모 등으로 적대자들에게 추악한 이미지를 심어 놓았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이 근거없는 사실이라고 부정을 하고 있으나, 그들에 대한 대중 언론의 한결같은 적대감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악한 음모에 대한 불가피한 조치로 모든 국가, 더욱이 카톨릭 국가에서조차도 추방된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널리 알려진 추방 횟수만 해도 56회나 되므로 논란의 여지는 없다. 이 사실만으로도 예수회의 악한 본성이 충분히 입증되어질 것이다.
교황의 가장 유능한 이 기관이 각국 정부에 적용하는 방침은 본질상 그 나라의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회에 전혀 이로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기회주의자인 교황은 자신의 이익과 합치될 때에만 예수회를 적극 지원하였다. 1914년과 1939년에 그같은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회가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결과는 무엇으로보나 전혀 무익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1918년과 1945년에 역사적 사실로 나타난 결과였다.
예수회의 적이었으며 예수회를 반대했던 바티칸은 자기들의 종교적, 정치적인 이중성으로 예수회의 친구가 되었으며 지각있는 사람들은, 연합한 후 그들이 자행할 음흉한 공격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동반관계는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하여 1874년에 융(T. Jung)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고 여겨지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프랑스의 국력은 로마 교황청 당국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복종의 강도와 반비례한다.”
“대륙적으로(그리고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일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카톨릭 당국의 정책적 개입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고 반프랑스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고 최근 프랑스의 〈불복종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를 쓴 조셉 하우어(Josep Hours)는 밝히고 있다.
사실 방금 언급한 “경향”이라는 용어는 실제보다 약한 표현이다. 결과적으로 “복종”이 보다 적합한 용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격한 카톨릭 교도였던 폴란드의 전 외무상 콜로넬 베크(Colonel Beck)와 같이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차라리 그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바티칸은 내 조국의 비극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주요 당사자이다. 우리가 추구해 온 외교정책은 카톨릭 교회에게만 유익한 사업이었음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더군다나 교회에 충성했던 합스부르크 가의 운명도 그렇게 내세울 만한 것은 되지 못하였다. 독일의 경우에 있어서도 교황들, 특히 피오 12세가 심혈을 기울여 희생적 지원을 하였지만 끝내 독일은 그 보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예수회에 의하여 추구되어 온 세계지배에 대한 야욕으로 로마 교회가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0년 전쟁에서부터 히틀러의 십자군에 이르기까지 이들 선동가들이 증오와 폭력을 전파하고 유럽을 파괴하며 살육하도록 조장한 4백년 간의 행로에 있어서 로마 교회가 이득의 기쁨을 누렸는가, 아니면 손실의 고통을 겪었는가?
그 답변은 간단하다. 가장 명백한 결과는 “성 베드로의 유산”을 지속적으로 깍아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도 많은 죄악을 저지른 후의 슬픈 운명이랄까!
예수회의 활동은 바티칸 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지 않았던가? 그 사실도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한 카톨릭 비평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회의 목적은 언제나 자신들이 통제할 카톨릭의 힘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교황의 무오성 주장은 주교들과 각 정부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예수회는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교황의 무오성을 주장했지만, 1870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실현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회의 명성은 교회 내에서 그들의 친구들만큼이나 적들도 매혹시킨다. 우리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갖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예수회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들을 대비해야만 한다.”
또 다른 카톨릭 작가는 교황 중심의 이러한 권력 집중의 의미에 대하여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예수회는 이단의 근원과 생명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세력을 반대하였다.”
트렌트 종교회의는 이미 카톨릭의 계획 아래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그것은 그나마 순수했던 마지막 종교회의였다.
“이후로는 그 종교회의에서 미결된 안건을 신성하게 만든 바티칸 공의회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회의의 결말로 교황이 무엇을 얻었는지 잘 알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고 초라한 일인가! 로마의 기독교 제도는 그후로 교황의 무오성을 근거로 절대군주제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구도는 멋지지만, 생명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은 로마로부터 나왔으며 로마는 오로지 로마의 작품인 것이다.” 게다가 그 저자는 그 유명한 예수회가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신념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회는 그 어떤 협약을 통해서라도 교회의 파멸을 다소 늦추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로욜라적 세력 아래 어떤 경화증이 만연하면서 교회를 부패시키고 있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설립한 그레고리 교황 대학교의 졸업자들이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광신적인 숭배를 강조한 진부한 교리를 철저하게 수호했던 예수회 회원들은 신학교의 교육을 검토하면서, 선교단을 지휘하고, 종교재판소에서 세도를 부리며, 카톨릭 행동대를 지원하고, 각지의 종교신문을 관장하며, 루르데스(Lourdes), 리슈(Lisieux), 파티마(Fatima) 등과 같은 위대한 순례 중심지를 열성으로 보호?육성하였다. 한 마디로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때에도 반드시 예수회 회원의 도움을 받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황의 고해신부 역시 예수회 회원이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교황 중심으로 모든 힘의 결집을 완수함으로써 예수회는 자신들과 교황을 위하여 모든 일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일의 명백한 수혜자인 교황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그들의 지배자요,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따를 것이라.”
그러므로 예수회의 활동과 교황의 활동을 구분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교회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는 이 예수회는 교회를 완전히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오랫동안 주교들은 로마의 명령보다는 예수회의 명령에 따르는 예수회의 충실한 집행관인 “종”일 뿐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회의 제자들은 늘어가는 전체주의 제도의 모순점을 신자들의 시야에서 가려야 했다. 그래서 예수회의 관장 하에 있는 카톨릭계 신문을 이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이상에 대한 어떤 독립적인 환상을 갖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조작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인 신부들은 환상가들을 속이는 이들 사기꾼의 농간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 작은 농락 뒤에는 영원한 예수회의 감시가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작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타협은 예수회의 천성이다. 속임수에 유능한 기술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집념을 고수하는 데 탁월하다.”
예수회는 자신들의 교리, 즉 성모 마리아 기적 숭배를 비롯한 헌신적인 우상숭배의 교리들을 자신들의 활동에서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것들로 ‘근대’의 과학정신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집념과 교활함을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 성공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과 불이 맞닥뜨리면 증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참된 믿음으로 많은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더라도 이미 완악해진 마음에는 대립해서 나온 수증기조차 기쁨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탄아 물러 가라!”)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데 있어서는 독일의 형이상학이 가장 유용하였다. 그 안에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것조차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후일 현학적 취급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의 심각성이나 심오함도 얻을 수 없는 유치한 미신만은 아니었다. 각종 문화단체의 정기 간행물과 정기 보고서의 논쟁에 참가하는 기쁨도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글자 그대로가 아닌 이면에 내포, 함축된 의미를 추구하는 자들은 다소 무리한 경향이 있을지라도 자신들이 원하던 중요한 의미를 찾게 된다.
어쨌든 커다란 야망에 불타는 자들은 순수한 이론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못한다. 그래서 뛰어난 신부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지식적인” 견실한 기반을 다졌노라고 자신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넘치는 영의 선물을 받는 기본적인 이점까지를 보강하게 되었다. 샤를 마뉴 대제 시대에는 카톨릭으로 개종한 색슨족에게 선물로 흰 셔츠를 주는 것이 전통이었다. 오늘날, 이들 신앙을 재발견한 학생들에게 학문계와 과학계는 남다른 선물을 주고 있다. 그렇게 영리하지도 못한 카톨릭 학생들이 별 어려움없이 시험에 통과하며,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서 손쉽게 교수가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 “신앙인”인 의사는 많은 환자가 따르기 마련이며, 또 사회활동에 참여하려고 한다면 우선권이 주어지게 된다. 이 분야를 선택한 학생들은 또 다른 학생들을 데려올 것이고, 이러한 구조적인 틀 안에서 ‘신앙인’들의 수는 늘어나 힘을 갖게 되며, 그들의 활동은 각 단체의 지도부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위와 같은 사례는 스페인에서 발생했고,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1956년 5월 7일자 〈르 몽드〉지에 의하면 앙리 페스꾸에(Henri Fesquet)는 스페인의 “오푸스 데이”(Opus Dei)라는 중요한 기사를 제공하였다. 이 경건하고 신비스런 조직의 활동을 파헤치면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조직내 회원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하여 지식적으로 완벽한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 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페스꾸에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스페인의 대학, 정부, 정계 등의 요직을 점유하고 이교도들과 자유주의자들의 진출을 막거나 축출하려는 그들의 야욕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오푸스 데이”는 1954년 11월, 2명의 사제와 5명의 평신도 의사와 의과 대학생들을 프랑스에 은밀히 잠입시켰다. 이러한 파견이 주로 프랑스의 의학계와 교육계에 그들의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시험과 경쟁의 잡음은 계속 드러났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업”이라고 여겨지는 이 프랑스 침투 활동은 프랑소와 모리악(Francois Mauriac)에 의하여 결국 만천하에 폭로되고 말았다.
“나는 엉뚱한 비밀의 소유자였다. 그 사실은 너무도 이상하여 그 카톨릭 비평가가 내가 신뢰하는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의 주장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친구는 주목할 만한 기사를 써서 정기 간행물 출판사에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 기사는 결코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참다 못한 친구는 정기 간행물 관리자에게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되었다. 아마 당신도 아시겠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오푸스 데이’가 그 원고의 인쇄를 절대적으로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나에게 물었습니다. ‘오푸스 데이’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러나 나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바이다.”
만일 프랑소와 모리악이 편집센터에서 극히 단순한 정보라도 흘리지 않았다면,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그러한 의문점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일면, “오푸스 데이”가 일부 예수회 회원들의 모임이라고 여긴다면 그 단체는 단지 경쟁계열의 분파로 볼 수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집단은 상황에 따라 모습을 결정하는 완벽하리 만큼 현실에 민감한 자들이다. 〈르 몽드〉지에 글을 기고했던 쟝 크리치(Jean Creach)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스페인 예수회 회원의 순교〉라는 작품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작품은 프랑스에서 문학 작품으로는 제약을 받고 있다. 실제로 예수회 검열관은 “현대인”이 아닌 것 같다고 쟝 크리치는 판단하고 있다.
“만일 가르멘니아 신부가 지하의 그레코 추기경을 되살렸던 타베라(Tavera) 추기경의 능력만 있었어도 스페인은 문학 속에서, 참수된 순교자들을 되살릴 수 있었으리라.”
위의 저자는 레버런드(Reverend) 신부의 몇 가지 예를 든 후에 이러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 예수회의 지도부는 승리를 바로 앞에 두고도 그 작은 위험을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왜 이렇게 연약한가? 해로운 혀가 있기 때문인가? 친구들 말해 보시오, 그대들을 연약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이 우스꽝스러운 비평에 대하여, 그 지도부의 연약함은 예수회의 교육으로 생긴 것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언제나 되돌아가야만 하는 자리이다. 다소 간의 명예, 유명함, 예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특별한 사명을 통하여 스스로 자유 정신의 척결을 맹세하는 것이다. 정신을 정화하라!
이것은 그들의 나약함과 위험만큼이나 강력하다. 안드레 마터는 완전한 전체주의에 대하여 매우 강경하게 말하고 있다. “모든 회원들이 그 훈련을 통하여 결속되지만,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다. 이것이 예수회의 광신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로마 교회의 절대 군주제 보다도 더욱 끔찍한 점은 오늘날 예수회의 광신은 세계 정치 분쟁에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각국의 군사작전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 교황조직과 나찌당의 정책 아래 자유주의는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으며 히틀러가 유럽에게 약속한 “신 중세기”를 실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레도코브스키의 원대한 계획, “우리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인 히믈러, 죽음의 수용소, 국민정신을 부패시키는 카톨릭 행동대, 허위선전에 열을 올린 독일 예수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택한 자”의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으며, “성 베드로의 유산”은 동양에서 늘어난 만큼 서양에서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한다. 국가 사회주의 정부, 즉 ‘과거 과격한 카톨릭 독일’은 야만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악무도하고 잔혹하였다. 많은 신앙인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그 전에 좀 더 현명한 판단이 있었더라면... 예수회의 제도를 모방했던 예수회의 ‘나라’에서는, 제3제국의 지도자가 자신의 희망에 따라서 ‘SS엘리트’를 창단하였으며, 이들로 하여금 세상이 몸살을 앓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메스꺼움으로 토하도록 만들었다. 위의 원인이 이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이들의 훈련은 인간의 혼을 부패시키는 것이었으며, 양심을 파괴할 뿐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영웅주의로 위장해 버렸다. 즉 인간의 혼이 부패한다면 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그 사회에 철저하게 예속될 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중요성을 상당히 상실하게 된다.”
사실 나찌당의 그 총통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예수회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우상에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 복종의 결과는 누렘베르크(나찌 전범을 재판한 도시)에서 고발된 무서운 범죄로 드러났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예수회의 광신을 매우 잘 분석한 위 저자의 마지막 판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예수회와 그들의 모든 기술, 정책 및 속임수를 비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책임을 그들의 계획과 숨은 동기와 비열한 침략행위에 돌리는 바이다. 우리는 예수회와 함께 예수회 회원들의 지식 또한 비난한다. 예수회 때문에 커다란 실망을 겪지 않은 나라는 한 곳도 없으며, 그들이 가는 지역마다 수치스런 추문에 대한 분노가 일지 않는 곳도 없었다.”
“만일 그들의 권모술수가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면, 모든 문명국에서 예수회가 겪은 유사한 경험으로, 예상할 수 있는 재앙 속으로 이들 신중하고 사려깊은 자들을 끊임없이 몰아넣는 것은, 바로 예수회 자신들이 아니었던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매우 위대한 천재들이 예수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천재들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마치 장애물을 파괴하듯이 적들을 밀쳐 버린다. 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러한 천재들은 장군이 아니며, 참모도 아니며, 지방장관도 아니며, 더구나 모든 가정의 가장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거대한 조직체 안의 살아 있는 천재이며, 양심을 희생시키고 지식을 구속한 결과로 얻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회의 파괴적이고 오만한 횡포이며, 그들의 천성으로 얻어지는 결과이다.”
“엄청나게 압축된 구름 속에 번개가 치면 폭풍이 휘몰아치게 된다.”
1939년과 1945년 사이에 몰아친 폭풍은 5천 7백만의 인명을 살상하였고 전유럽을 유린하고 파괴하였다.
우리는 주의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 비참한 또 다른 재앙이 그와 같은 구름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다시 번개가 치게 되면, “현명한 사람들만이 예견할 수 있는 파멸” 속으로 세계는 빠져들 것이며, 만일 그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떤 힘도 파멸을 막을 수는 없다.
로마의 대변인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 대비란 것은 바티칸의 정책이나 예수회의 정책을 면밀히 연구하고 그들의 동기와 방법을 비난하는 “반성직주의”가 아니라, 과거에도 입증되었듯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물러설 줄 모르는 광신자들의 교활한 활동을 대중에게 자각시키는 것이다.
앞에서 18세기 유럽의 군주들이 이같이 사악한 예수회의 압력에 어떻게 굴복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위장된 평화 속에서 그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들은 크게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현재 예수회로 인하여 초래될 세계적 재난의 위험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상태이며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시보다도 훨씬 더 큰 상태이다.
이제 또다시 분쟁이 야기된다면 그 치명적인 결과는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특히 교황의 영광을 위하여 수행한 활동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병사들이 자랑으로 여기며 긍지를 가지는, 자신들에게 내려진 명령이다. 그들은 본 저서와 같은 사실적인 출판물을 검열, 감독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진실을 은폐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지지하는 지역에서 수행한 사역에 대해서는 적극 소개하고 있다.
예수회는 교활한 속임수, 순수의 거부, 흉악한 음모 등으로 적대자들에게 추악한 이미지를 심어 놓았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이 근거없는 사실이라고 부정을 하고 있으나, 그들에 대한 대중 언론의 한결같은 적대감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악한 음모에 대한 불가피한 조치로 모든 국가, 더욱이 카톨릭 국가에서조차도 추방된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널리 알려진 추방 횟수만 해도 56회나 되므로 논란의 여지는 없다. 이 사실만으로도 예수회의 악한 본성이 충분히 입증되어질 것이다.
교황의 가장 유능한 이 기관이 각국 정부에 적용하는 방침은 본질상 그 나라의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회에 전혀 이로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기회주의자인 교황은 자신의 이익과 합치될 때에만 예수회를 적극 지원하였다. 1914년과 1939년에 그같은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회가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결과는 무엇으로보나 전혀 무익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1918년과 1945년에 역사적 사실로 나타난 결과였다.
예수회의 적이었으며 예수회를 반대했던 바티칸은 자기들의 종교적, 정치적인 이중성으로 예수회의 친구가 되었으며 지각있는 사람들은, 연합한 후 그들이 자행할 음흉한 공격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동반관계는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하여 1874년에 융(T. Jung)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고 여겨지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프랑스의 국력은 로마 교황청 당국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복종의 강도와 반비례한다.”
“대륙적으로(그리고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일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카톨릭 당국의 정책적 개입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고 반프랑스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고 최근 프랑스의 〈불복종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를 쓴 조셉 하우어(Josep Hours)는 밝히고 있다.
사실 방금 언급한 “경향”이라는 용어는 실제보다 약한 표현이다. 결과적으로 “복종”이 보다 적합한 용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격한 카톨릭 교도였던 폴란드의 전 외무상 콜로넬 베크(Colonel Beck)와 같이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차라리 그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바티칸은 내 조국의 비극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주요 당사자이다. 우리가 추구해 온 외교정책은 카톨릭 교회에게만 유익한 사업이었음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더군다나 교회에 충성했던 합스부르크 가의 운명도 그렇게 내세울 만한 것은 되지 못하였다. 독일의 경우에 있어서도 교황들, 특히 피오 12세가 심혈을 기울여 희생적 지원을 하였지만 끝내 독일은 그 보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예수회에 의하여 추구되어 온 세계지배에 대한 야욕으로 로마 교회가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0년 전쟁에서부터 히틀러의 십자군에 이르기까지 이들 선동가들이 증오와 폭력을 전파하고 유럽을 파괴하며 살육하도록 조장한 4백년 간의 행로에 있어서 로마 교회가 이득의 기쁨을 누렸는가, 아니면 손실의 고통을 겪었는가?
그 답변은 간단하다. 가장 명백한 결과는 “성 베드로의 유산”을 지속적으로 깍아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도 많은 죄악을 저지른 후의 슬픈 운명이랄까!
예수회의 활동은 바티칸 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지 않았던가? 그 사실도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한 카톨릭 비평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회의 목적은 언제나 자신들이 통제할 카톨릭의 힘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교황의 무오성 주장은 주교들과 각 정부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예수회는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교황의 무오성을 주장했지만, 1870년 바티칸 공의회에서 실현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회의 명성은 교회 내에서 그들의 친구들만큼이나 적들도 매혹시킨다. 우리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갖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예수회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들을 대비해야만 한다.”
또 다른 카톨릭 작가는 교황 중심의 이러한 권력 집중의 의미에 대하여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예수회는 이단의 근원과 생명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세력을 반대하였다.”
트렌트 종교회의는 이미 카톨릭의 계획 아래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그것은 그나마 순수했던 마지막 종교회의였다.
“이후로는 그 종교회의에서 미결된 안건을 신성하게 만든 바티칸 공의회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회의의 결말로 교황이 무엇을 얻었는지 잘 알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고 초라한 일인가! 로마의 기독교 제도는 그후로 교황의 무오성을 근거로 절대군주제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구도는 멋지지만, 생명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은 로마로부터 나왔으며 로마는 오로지 로마의 작품인 것이다.” 게다가 그 저자는 그 유명한 예수회가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신념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회는 그 어떤 협약을 통해서라도 교회의 파멸을 다소 늦추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로욜라적 세력 아래 어떤 경화증이 만연하면서 교회를 부패시키고 있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설립한 그레고리 교황 대학교의 졸업자들이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광신적인 숭배를 강조한 진부한 교리를 철저하게 수호했던 예수회 회원들은 신학교의 교육을 검토하면서, 선교단을 지휘하고, 종교재판소에서 세도를 부리며, 카톨릭 행동대를 지원하고, 각지의 종교신문을 관장하며, 루르데스(Lourdes), 리슈(Lisieux), 파티마(Fatima) 등과 같은 위대한 순례 중심지를 열성으로 보호?육성하였다. 한 마디로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때에도 반드시 예수회 회원의 도움을 받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황의 고해신부 역시 예수회 회원이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교황 중심으로 모든 힘의 결집을 완수함으로써 예수회는 자신들과 교황을 위하여 모든 일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일의 명백한 수혜자인 교황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그들의 지배자요,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따를 것이라.”
그러므로 예수회의 활동과 교황의 활동을 구분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교회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는 이 예수회는 교회를 완전히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오랫동안 주교들은 로마의 명령보다는 예수회의 명령에 따르는 예수회의 충실한 집행관인 “종”일 뿐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회의 제자들은 늘어가는 전체주의 제도의 모순점을 신자들의 시야에서 가려야 했다. 그래서 예수회의 관장 하에 있는 카톨릭계 신문을 이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이상에 대한 어떤 독립적인 환상을 갖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조작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인 신부들은 환상가들을 속이는 이들 사기꾼의 농간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 작은 농락 뒤에는 영원한 예수회의 감시가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작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타협은 예수회의 천성이다. 속임수에 유능한 기술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집념을 고수하는 데 탁월하다.”
예수회는 자신들의 교리, 즉 성모 마리아 기적 숭배를 비롯한 헌신적인 우상숭배의 교리들을 자신들의 활동에서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것들로 ‘근대’의 과학정신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집념과 교활함을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 성공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과 불이 맞닥뜨리면 증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참된 믿음으로 많은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더라도 이미 완악해진 마음에는 대립해서 나온 수증기조차 기쁨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탄아 물러 가라!”)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데 있어서는 독일의 형이상학이 가장 유용하였다. 그 안에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것조차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후일 현학적 취급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의 심각성이나 심오함도 얻을 수 없는 유치한 미신만은 아니었다. 각종 문화단체의 정기 간행물과 정기 보고서의 논쟁에 참가하는 기쁨도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무엇인가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글자 그대로가 아닌 이면에 내포, 함축된 의미를 추구하는 자들은 다소 무리한 경향이 있을지라도 자신들이 원하던 중요한 의미를 찾게 된다.
어쨌든 커다란 야망에 불타는 자들은 순수한 이론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못한다. 그래서 뛰어난 신부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지식적인” 견실한 기반을 다졌노라고 자신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넘치는 영의 선물을 받는 기본적인 이점까지를 보강하게 되었다. 샤를 마뉴 대제 시대에는 카톨릭으로 개종한 색슨족에게 선물로 흰 셔츠를 주는 것이 전통이었다. 오늘날, 이들 신앙을 재발견한 학생들에게 학문계와 과학계는 남다른 선물을 주고 있다. 그렇게 영리하지도 못한 카톨릭 학생들이 별 어려움없이 시험에 통과하며,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서 손쉽게 교수가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 “신앙인”인 의사는 많은 환자가 따르기 마련이며, 또 사회활동에 참여하려고 한다면 우선권이 주어지게 된다. 이 분야를 선택한 학생들은 또 다른 학생들을 데려올 것이고, 이러한 구조적인 틀 안에서 ‘신앙인’들의 수는 늘어나 힘을 갖게 되며, 그들의 활동은 각 단체의 지도부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위와 같은 사례는 스페인에서 발생했고,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1956년 5월 7일자 〈르 몽드〉지에 의하면 앙리 페스꾸에(Henri Fesquet)는 스페인의 “오푸스 데이”(Opus Dei)라는 중요한 기사를 제공하였다. 이 경건하고 신비스런 조직의 활동을 파헤치면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조직내 회원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하여 지식적으로 완벽한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 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페스꾸에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스페인의 대학, 정부, 정계 등의 요직을 점유하고 이교도들과 자유주의자들의 진출을 막거나 축출하려는 그들의 야욕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오푸스 데이”는 1954년 11월, 2명의 사제와 5명의 평신도 의사와 의과 대학생들을 프랑스에 은밀히 잠입시켰다. 이러한 파견이 주로 프랑스의 의학계와 교육계에 그들의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시험과 경쟁의 잡음은 계속 드러났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업”이라고 여겨지는 이 프랑스 침투 활동은 프랑소와 모리악(Francois Mauriac)에 의하여 결국 만천하에 폭로되고 말았다.
“나는 엉뚱한 비밀의 소유자였다. 그 사실은 너무도 이상하여 그 카톨릭 비평가가 내가 신뢰하는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의 주장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친구는 주목할 만한 기사를 써서 정기 간행물 출판사에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 기사는 결코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참다 못한 친구는 정기 간행물 관리자에게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되었다. 아마 당신도 아시겠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오푸스 데이’가 그 원고의 인쇄를 절대적으로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나에게 물었습니다. ‘오푸스 데이’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러나 나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바이다.”
만일 프랑소와 모리악이 편집센터에서 극히 단순한 정보라도 흘리지 않았다면,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그러한 의문점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일면, “오푸스 데이”가 일부 예수회 회원들의 모임이라고 여긴다면 그 단체는 단지 경쟁계열의 분파로 볼 수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집단은 상황에 따라 모습을 결정하는 완벽하리 만큼 현실에 민감한 자들이다. 〈르 몽드〉지에 글을 기고했던 쟝 크리치(Jean Creach)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스페인 예수회 회원의 순교〉라는 작품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작품은 프랑스에서 문학 작품으로는 제약을 받고 있다. 실제로 예수회 검열관은 “현대인”이 아닌 것 같다고 쟝 크리치는 판단하고 있다.
“만일 가르멘니아 신부가 지하의 그레코 추기경을 되살렸던 타베라(Tavera) 추기경의 능력만 있었어도 스페인은 문학 속에서, 참수된 순교자들을 되살릴 수 있었으리라.”
위의 저자는 레버런드(Reverend) 신부의 몇 가지 예를 든 후에 이러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 예수회의 지도부는 승리를 바로 앞에 두고도 그 작은 위험을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왜 이렇게 연약한가? 해로운 혀가 있기 때문인가? 친구들 말해 보시오, 그대들을 연약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이 우스꽝스러운 비평에 대하여, 그 지도부의 연약함은 예수회의 교육으로 생긴 것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언제나 되돌아가야만 하는 자리이다. 다소 간의 명예, 유명함, 예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특별한 사명을 통하여 스스로 자유 정신의 척결을 맹세하는 것이다. 정신을 정화하라!
이것은 그들의 나약함과 위험만큼이나 강력하다. 안드레 마터는 완전한 전체주의에 대하여 매우 강경하게 말하고 있다. “모든 회원들이 그 훈련을 통하여 결속되지만,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다. 이것이 예수회의 광신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로마 교회의 절대 군주제 보다도 더욱 끔찍한 점은 오늘날 예수회의 광신은 세계 정치 분쟁에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각국의 군사작전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 교황조직과 나찌당의 정책 아래 자유주의는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으며 히틀러가 유럽에게 약속한 “신 중세기”를 실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레도코브스키의 원대한 계획, “우리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인 히믈러, 죽음의 수용소, 국민정신을 부패시키는 카톨릭 행동대, 허위선전에 열을 올린 독일 예수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택한 자”의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으며, “성 베드로의 유산”은 동양에서 늘어난 만큼 서양에서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한다. 국가 사회주의 정부, 즉 ‘과거 과격한 카톨릭 독일’은 야만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악무도하고 잔혹하였다. 많은 신앙인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그 전에 좀 더 현명한 판단이 있었더라면... 예수회의 제도를 모방했던 예수회의 ‘나라’에서는, 제3제국의 지도자가 자신의 희망에 따라서 ‘SS엘리트’를 창단하였으며, 이들로 하여금 세상이 몸살을 앓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메스꺼움으로 토하도록 만들었다. 위의 원인이 이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이들의 훈련은 인간의 혼을 부패시키는 것이었으며, 양심을 파괴할 뿐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영웅주의로 위장해 버렸다. 즉 인간의 혼이 부패한다면 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그 사회에 철저하게 예속될 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중요성을 상당히 상실하게 된다.”
사실 나찌당의 그 총통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예수회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우상에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 복종의 결과는 누렘베르크(나찌 전범을 재판한 도시)에서 고발된 무서운 범죄로 드러났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예수회의 광신을 매우 잘 분석한 위 저자의 마지막 판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예수회와 그들의 모든 기술, 정책 및 속임수를 비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책임을 그들의 계획과 숨은 동기와 비열한 침략행위에 돌리는 바이다. 우리는 예수회와 함께 예수회 회원들의 지식 또한 비난한다. 예수회 때문에 커다란 실망을 겪지 않은 나라는 한 곳도 없으며, 그들이 가는 지역마다 수치스런 추문에 대한 분노가 일지 않는 곳도 없었다.”
“만일 그들의 권모술수가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면, 모든 문명국에서 예수회가 겪은 유사한 경험으로, 예상할 수 있는 재앙 속으로 이들 신중하고 사려깊은 자들을 끊임없이 몰아넣는 것은, 바로 예수회 자신들이 아니었던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매우 위대한 천재들이 예수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천재들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마치 장애물을 파괴하듯이 적들을 밀쳐 버린다. 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러한 천재들은 장군이 아니며, 참모도 아니며, 지방장관도 아니며, 더구나 모든 가정의 가장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거대한 조직체 안의 살아 있는 천재이며, 양심을 희생시키고 지식을 구속한 결과로 얻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회의 파괴적이고 오만한 횡포이며, 그들의 천성으로 얻어지는 결과이다.”
“엄청나게 압축된 구름 속에 번개가 치면 폭풍이 휘몰아치게 된다.”
1939년과 1945년 사이에 몰아친 폭풍은 5천 7백만의 인명을 살상하였고 전유럽을 유린하고 파괴하였다.
우리는 주의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 비참한 또 다른 재앙이 그와 같은 구름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다시 번개가 치게 되면, “현명한 사람들만이 예견할 수 있는 파멸” 속으로 세계는 빠져들 것이며, 만일 그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떤 힘도 파멸을 막을 수는 없다.
로마의 대변인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 대비란 것은 바티칸의 정책이나 예수회의 정책을 면밀히 연구하고 그들의 동기와 방법을 비난하는 “반성직주의”가 아니라, 과거에도 입증되었듯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물러설 줄 모르는 광신자들의 교활한 활동을 대중에게 자각시키는 것이다.
앞에서 18세기 유럽의 군주들이 이같이 사악한 예수회의 압력에 어떻게 굴복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위장된 평화 속에서 그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들은 크게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현재 예수회로 인하여 초래될 세계적 재난의 위험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상태이며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시보다도 훨씬 더 큰 상태이다.
이제 또다시 분쟁이 야기된다면 그 치명적인 결과는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 p.307
출판사 리뷰
모르면 속는다.
수억명의 사람들이 거짓에 속고 있다.
속지 않으려면 지금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먼저 알고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카톨릭의 사악한 실체를 알려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왜 카톨릭을 창녀하고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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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광적인 종교인들로서, 특히 그들이 조직을 형성하고 권좌에 오르게 되면 더욱더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실체를 모르는 무지한 대중들은 그들을 깊이 존중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이들 종교인들은 살인은 물론, 필요하다면 혁명이나 전쟁까지도 사양하지 않는다. 지능적이며 교활한 이들 종교적 정치인들은 거룩한 척 하지만 음모나 꾸미는 어둠의 세력일 뿐이다. 본 저서인 〈예수회의 비밀 역사〉에서 고찰한 그와 같은 예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불리웠던 유대의 율법박사들에게서도 보여지며, 그와 같은 악령은 로마 황제로 하여금 초대 교회를 박해하도록 만들었다.
“초기의 교부들은” 대체로 고대 바빌론에서 제도를, 헬라(그리이스)에서 철학을, 유대(이스라엘)에서 신학을 수용, 병합하였다. 이로 인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의 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토대는 마련되었지만,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대부분 왜곡시켜 버렸다. 그들은 신앙심이 지나쳐서 함부로 성경을 비판하고, 수정하며, 가감시켰던 것이다. 이들에게 작용했던 적그리스도의 영이 16세기에 또다시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de Loyola)의 예수회 창설, 바로 그것이다.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하여 비밀리에 수행해야 할 두 가지 주요 목적을 가지고 창설되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세계 정치 권력의 장악이며, 두 번째 목적이 세계 종교의 통합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6장, 13장, 17장, 18장에 각각 예언된 바 있다.
16세기 경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카톨릭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등장하였다. 그는 생각하기를, “‘교회’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미니크파 수도사들이 행하였듯이 종교재판소를 통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함으로써 교황과 교회의 세속권에 의한 교회법과 교리에 의하여 다스리는 것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만 된다면 프로테스탄트는 자연히 소멸될 것이며 교황권만이 득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교세회복을 위하여 건의한 다수 의견 중, 교황 바오로 3세가 선택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예수회는 병원, 학교, 대학 등 개신교 세력권에 침투하여 그들의 은밀한 선교활동을 수행하였으며 오늘날 거의 완벽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성경에 의하면, 각 지역교회의 운영권은 각 교회의 목자에게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간교한 예수회의 활동으로 지역교회의 운영권이 소속된 교파의 지도부에게 넘어가도록 만들어졌으며, 거의 모든 개신교 각 교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바티칸을 방문하도록 만들어졌다. 바로 이것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의도했던 카톨릭의 세계화와 개신교의 자연 소멸을 성취하기 위하여 계획한 것이었다.
〈예수회의 비밀 역사〉를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저자 에드몽 파리는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이 복합적인 요인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종교, 교육, 군사적인 각종 혼란을 야기시킴으로써 독재 정치 체제를 조성하거나, 미합중국의 경우와 같이 세계 여러 나라의 각 정부 내부로 침투하여 역사의 진행을 임의로 조작하려는 예수회 활동의 의도를 파헤치고 있다.
추천평
유럽에서 한 음성이 들린다. 그 음성은 우리에게 진실들을 알려주는데 그것들은 전직 신부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역사적인 진실이다.
이 책의 저자 에드몽 파리는 바티칸의 역사 전반에 걸쳐 세계의 정치와 음모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의심할 여지없이 로마카톨릭은 참된 교회가 아니며, 한번도 참됨 교회였던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말할 때, 로마카톨릭은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창녀다. 불쌍한 카톨릭 교도들은 항상 배반당해왔고, 지금도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책을 사용하시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하는 카톨릭 교도들을 진리로 인도하게 해 주시기 원하며,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받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 - Chick Publications 잭 T. 칙 -
수억명의 사람들이 거짓에 속고 있다.
속지 않으려면 지금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먼저 알고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카톨릭의 사악한 실체를 알려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왜 카톨릭을 창녀하고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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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광적인 종교인들로서, 특히 그들이 조직을 형성하고 권좌에 오르게 되면 더욱더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실체를 모르는 무지한 대중들은 그들을 깊이 존중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이들 종교인들은 살인은 물론, 필요하다면 혁명이나 전쟁까지도 사양하지 않는다. 지능적이며 교활한 이들 종교적 정치인들은 거룩한 척 하지만 음모나 꾸미는 어둠의 세력일 뿐이다. 본 저서인 〈예수회의 비밀 역사〉에서 고찰한 그와 같은 예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불리웠던 유대의 율법박사들에게서도 보여지며, 그와 같은 악령은 로마 황제로 하여금 초대 교회를 박해하도록 만들었다.
“초기의 교부들은” 대체로 고대 바빌론에서 제도를, 헬라(그리이스)에서 철학을, 유대(이스라엘)에서 신학을 수용, 병합하였다. 이로 인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의 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토대는 마련되었지만,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대부분 왜곡시켜 버렸다. 그들은 신앙심이 지나쳐서 함부로 성경을 비판하고, 수정하며, 가감시켰던 것이다. 이들에게 작용했던 적그리스도의 영이 16세기에 또다시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de Loyola)의 예수회 창설, 바로 그것이다.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하여 비밀리에 수행해야 할 두 가지 주요 목적을 가지고 창설되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세계 정치 권력의 장악이며, 두 번째 목적이 세계 종교의 통합이다. 이는 요한계시록 6장, 13장, 17장, 18장에 각각 예언된 바 있다.
16세기 경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카톨릭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등장하였다. 그는 생각하기를, “‘교회’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미니크파 수도사들이 행하였듯이 종교재판소를 통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함으로써 교황과 교회의 세속권에 의한 교회법과 교리에 의하여 다스리는 것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만 된다면 프로테스탄트는 자연히 소멸될 것이며 교황권만이 득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교세회복을 위하여 건의한 다수 의견 중, 교황 바오로 3세가 선택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예수회는 병원, 학교, 대학 등 개신교 세력권에 침투하여 그들의 은밀한 선교활동을 수행하였으며 오늘날 거의 완벽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성경에 의하면, 각 지역교회의 운영권은 각 교회의 목자에게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간교한 예수회의 활동으로 지역교회의 운영권이 소속된 교파의 지도부에게 넘어가도록 만들어졌으며, 거의 모든 개신교 각 교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바티칸을 방문하도록 만들어졌다. 바로 이것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의도했던 카톨릭의 세계화와 개신교의 자연 소멸을 성취하기 위하여 계획한 것이었다.
〈예수회의 비밀 역사〉를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저자 에드몽 파리는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이 복합적인 요인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종교, 교육, 군사적인 각종 혼란을 야기시킴으로써 독재 정치 체제를 조성하거나, 미합중국의 경우와 같이 세계 여러 나라의 각 정부 내부로 침투하여 역사의 진행을 임의로 조작하려는 예수회 활동의 의도를 파헤치고 있다.
추천평
유럽에서 한 음성이 들린다. 그 음성은 우리에게 진실들을 알려주는데 그것들은 전직 신부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역사적인 진실이다.
이 책의 저자 에드몽 파리는 바티칸의 역사 전반에 걸쳐 세계의 정치와 음모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의심할 여지없이 로마카톨릭은 참된 교회가 아니며, 한번도 참됨 교회였던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말할 때, 로마카톨릭은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창녀다. 불쌍한 카톨릭 교도들은 항상 배반당해왔고, 지금도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책을 사용하시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하는 카톨릭 교도들을 진리로 인도하게 해 주시기 원하며,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받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 - Chick Publications 잭 T. 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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