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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톰 라이트가 풀어 밝히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권위로서 성경!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까지 모든 기독교 교회들은 교회의 삶, 선교, 교리, 권징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중심성과 권위를 단언하는 선언문들을 공적으로 발표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성경의 중심성과 권위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개인들과 교회 전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딪히는 주요 이슈들, 즉 전쟁, 동성애, 낙태 등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곧 이런 주제들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또한 교회 내의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는 구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성공회 목회자인 톰 라이트는, 이러한 혼란 가운데서 성경의 자리가 과연 어디인지와 하나님의 권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전망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오늘날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롭고도 유익한 제안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할 자리로 성경의 지위를 재확인할 길을 탐구해나감으로써, ‘성경의 권위’라는 논란 속에 허덕이는 오래된 교리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까지 모든 기독교 교회들은 교회의 삶, 선교, 교리, 권징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중심성과 권위를 단언하는 선언문들을 공적으로 발표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성경의 중심성과 권위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개인들과 교회 전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딪히는 주요 이슈들, 즉 전쟁, 동성애, 낙태 등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곧 이런 주제들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또한 교회 내의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는 구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성공회 목회자인 톰 라이트는, 이러한 혼란 가운데서 성경의 자리가 과연 어디인지와 하나님의 권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전망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오늘날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롭고도 유익한 제안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할 자리로 성경의 지위를 재확인할 길을 탐구해나감으로써, ‘성경의 권위’라는 논란 속에 허덕이는 오래된 교리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제1장 성경적 권위는 어디로부터인가?
제2장 하나님 나라 백성 이스라엘과 성경
제3장 예수와 성경
제4장 사도 시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제5장 2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기독교 역사와 성경
제6장 계몽주의의 도전
제7장 오늘날의 잘못된 성경 해석들
제8장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제9장 사례 연구: 안식일
제10장 사례 연구: 일부일처제
부록 최근의 성경 연구 자료들
성경 색인
인명 색인
주제 색인
프롤로그
제1장 성경적 권위는 어디로부터인가?
제2장 하나님 나라 백성 이스라엘과 성경
제3장 예수와 성경
제4장 사도 시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제5장 2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기독교 역사와 성경
제6장 계몽주의의 도전
제7장 오늘날의 잘못된 성경 해석들
제8장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제9장 사례 연구: 안식일
제10장 사례 연구: 일부일처제
부록 최근의 성경 연구 자료들
성경 색인
인명 색인
주제 색인
책 속으로
외부의 압박 속에서 자신 안으로 움츠러드는 오늘날의 기독교 사상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이 남긴 비유들은 돌파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1세기 유대교 세상 안으로 뚫고 들어가 낡은 사고를 깨뜨리고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생각과 기도 와 삶을 착안하는 참신한 식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해석학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같은 방식으로 성경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살아서 역동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약속한다(사 40:8 55:11 히 4:12).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새롭게 읽고 가르치는 작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신선한 관점들을 받고 그것으로 현대 문화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무기력하게 세상 문화의 틀 속에 그 관점들을 밀어 넣음으로써 중성화시키지는 않으리라고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 모든 말이 “성경”의 진술임을 고려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으며 최종적인 참된 권위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되었음을, 권위를 가지고?정말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면!?주장한다는 점이다...(중략) “성경의 권위”라는 문구를 여행 가방에서 꺼내보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이 문구가 하나님 자신의 권위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임마누엘로서 가졌던 권위가 성경에 위임되어 중재됨을 나타내는 말이며, 이렇게 이해할 때만 비로소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성경의 권위”는 “성경을 통해 발휘되는 하나님의 권위”라는 뜻으로 이해할 때만 진정한 기독교적 의미를 살리는 것이다. --- 제1장 중에서
성경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했을 때, 그분은 자신의 행위가 현실과 동떨어진, 옛날 예언들과 우연적으로 일치하는 산발적이고 무작위적인 해프닝에 그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성경의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가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믿었으며, 과거에는 암시와 그림자에 머물렀던 모든 것이 이제는 분명한 말로 표현되고 충만한 빛 가운데 드러나고 있음을 의식했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것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기 위해 왔다”(마 5:17-18)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함축하는 심오한 의미이다. --- 제3장 중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경험” 자체가 바로 성경의 권위에 순복해야 하는 대상이며, 성경의 권위가 발휘되는 정황이다. 처음부터 “권위”가 필요했던 것은, “경험”이란 유동적이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또 독실한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들이 전통과 이성을 사용하는 데 있어 심각한 다층적인 자기 속임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경험”을 권위로 여기는 것은, “권위”라는 단어 자체가 해체됨을 시인하는 일일 뿐 아니라, 이 단어가 무미건조한 옛 의미로서의 “상소 법원”으로도, 또 동시에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그분의 능력이 발휘되는 통로”로도 기능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 제6장 중에서
성경이 놓인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동시에 성경의 독자인 우리의 컨텍스트를 면밀히 이해하는 것, 이렇게 컨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며 성경을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절대 마무리될 수 없는 작업이다. 절대로 우리는 성경 텍스트가 담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함을 우리의 인간적 방식을 통해 다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성경 언어 사전의 편찬과 고고학 및 새로운 통찰력을 선사하는 다양한 학문의 연구가 이루어낸 진보에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몇몇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해도 결코 해답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미래에 올 학문의 연마는 위에서 언급한 두 교리(예수님의 신성과 이신칭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도록 도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서로 너무도 다르며, 심지어 나 자신만 보더라도 몇 년 전 과거의 모습에 비해 너무도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신에 대한 이해들을 재평가하고, 이 생각들이 발전하는 것에 대해 또 새로운 통찰이 우리의 생각 속에 자리를 잡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 제8장 중에서
안식일 준수는 창조된 세상이 어딘가 바른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표시이다. 앞서 언급했듯 창조는 실현 과정에 있는 프로젝트이지 고정된 그림이나 기계가 아니다. 안식일은 생명의 리듬을 표상한다. 이 리듬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리듬이 인간의, 이스라엘의, 그리고 피조물 전체의 리듬과 신비롭게 교차한다. 그?서 안식일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상호 작용을 나타내는 시간적 표지이다. 성전이 지리적 표시가 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겔 20:13 22:8 22:26 23:38)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과 유사하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략적 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성전이 신성한 공간인 것처럼 안식일도 신성한 시간이다. --- 제9장 중에서
밤에 켜는 촛불은 태양이 뜨면 필요가 없어진다. “성경의 권위”라는 말도, 성경이 자신 너머에 있는 것을 가리킬 때에만 의미가 있다. 성경 너머에 있는 것이란 성경이 가리키는 실체, 즉 창조와 언약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한 시간의 이야기, 진정한 세계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 안에서 절정에 도달하였고, 이제는 세상이 듣기를 갈망하는 자유와 안식의 메시지, 진정한 안식일의 메시지를 들고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이 모든 말이 “성경”의 진술임을 고려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으며 최종적인 참된 권위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되었음을, 권위를 가지고?정말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면!?주장한다는 점이다...(중략) “성경의 권위”라는 문구를 여행 가방에서 꺼내보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이 문구가 하나님 자신의 권위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임마누엘로서 가졌던 권위가 성경에 위임되어 중재됨을 나타내는 말이며, 이렇게 이해할 때만 비로소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성경의 권위”는 “성경을 통해 발휘되는 하나님의 권위”라는 뜻으로 이해할 때만 진정한 기독교적 의미를 살리는 것이다. --- 제1장 중에서
성경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했을 때, 그분은 자신의 행위가 현실과 동떨어진, 옛날 예언들과 우연적으로 일치하는 산발적이고 무작위적인 해프닝에 그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성경의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가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믿었으며, 과거에는 암시와 그림자에 머물렀던 모든 것이 이제는 분명한 말로 표현되고 충만한 빛 가운데 드러나고 있음을 의식했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것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기 위해 왔다”(마 5:17-18)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함축하는 심오한 의미이다. --- 제3장 중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경험” 자체가 바로 성경의 권위에 순복해야 하는 대상이며, 성경의 권위가 발휘되는 정황이다. 처음부터 “권위”가 필요했던 것은, “경험”이란 유동적이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또 독실한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들이 전통과 이성을 사용하는 데 있어 심각한 다층적인 자기 속임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경험”을 권위로 여기는 것은, “권위”라는 단어 자체가 해체됨을 시인하는 일일 뿐 아니라, 이 단어가 무미건조한 옛 의미로서의 “상소 법원”으로도, 또 동시에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그분의 능력이 발휘되는 통로”로도 기능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 제6장 중에서
성경이 놓인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동시에 성경의 독자인 우리의 컨텍스트를 면밀히 이해하는 것, 이렇게 컨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며 성경을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절대 마무리될 수 없는 작업이다. 절대로 우리는 성경 텍스트가 담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함을 우리의 인간적 방식을 통해 다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성경 언어 사전의 편찬과 고고학 및 새로운 통찰력을 선사하는 다양한 학문의 연구가 이루어낸 진보에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몇몇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해도 결코 해답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미래에 올 학문의 연마는 위에서 언급한 두 교리(예수님의 신성과 이신칭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도록 도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서로 너무도 다르며, 심지어 나 자신만 보더라도 몇 년 전 과거의 모습에 비해 너무도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신에 대한 이해들을 재평가하고, 이 생각들이 발전하는 것에 대해 또 새로운 통찰이 우리의 생각 속에 자리를 잡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 제8장 중에서
안식일 준수는 창조된 세상이 어딘가 바른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표시이다. 앞서 언급했듯 창조는 실현 과정에 있는 프로젝트이지 고정된 그림이나 기계가 아니다. 안식일은 생명의 리듬을 표상한다. 이 리듬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리듬이 인간의, 이스라엘의, 그리고 피조물 전체의 리듬과 신비롭게 교차한다. 그?서 안식일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상호 작용을 나타내는 시간적 표지이다. 성전이 지리적 표시가 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겔 20:13 22:8 22:26 23:38)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과 유사하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략적 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성전이 신성한 공간인 것처럼 안식일도 신성한 시간이다. --- 제9장 중에서
밤에 켜는 촛불은 태양이 뜨면 필요가 없어진다. “성경의 권위”라는 말도, 성경이 자신 너머에 있는 것을 가리킬 때에만 의미가 있다. 성경 너머에 있는 것이란 성경이 가리키는 실체, 즉 창조와 언약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한 시간의 이야기, 진정한 세계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 안에서 절정에 도달하였고, 이제는 세상이 듣기를 갈망하는 자유와 안식의 메시지, 진정한 안식일의 메시지를 들고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 제9장 중에서
추천평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주제를 다룸에 있어, 톰 라이트는 복잡한 이슈들을 놀랍게 압축하여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에는 익히 알려진 라이트의 방대한 지식, 창의적이고 깊은 신학적 사고, 번뜩이는 통찰력·달변·학문적 비판성,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고한 헌신,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위한 목회적 관심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목회자들과 신학도들뿐 아니라 지성인 평신도들에게도 아주 유익한 책이다. 이른바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에게 공히 서로 다른 이유로 때때로 이견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성경을 더 진지하게 해석하게 할 교훈을 얻도록 그들 모두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김세윤(풀러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김세윤(풀러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에 담긴 논의와 설명은,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의 통로가 되는지에 관한 전체 풍경을 광범위하면서도 강력한 회오리와도 같이 통과한다. 성경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바로잡고 성경 연구에 대해 최상급의 방식을 드러내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대가의 작품답다.
제임스 패커(리젠트 칼리지 신학 교수)
제임스 패커(리젠트 칼리지 신학 교수)
톰 라이트의 성서 해석은 사고를 형성하는 심원한 영향을 주어왔다. 이제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가진 성경에 대한 기본적 전제에 주의를 돌리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로써 우리의 사고와 대화를 마비시켜온 “자유주의” 대 “보수주의”라는 양극화 현상을 넘어설 길을 열어준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예수에게서 답을 찾다』 저자)
브라이언 맥클라렌(『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예수에게서 답을 찾다』 저자)
톰 라이트가 어떤 학자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이다. 치밀한 탐구에 근거한 도발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이 책은 오래된 질문과 해묵은 논쟁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성경을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동적인 실체로서 만나도록 이끈다. 성경을 읽는 사람 누구나,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이 책에서 비범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티모시 조지(샘포드 대학교 비손신학대학원 학장,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수석 편집자)
티모시 조지(샘포드 대학교 비손신학대학원 학장,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수석 편집자)
'45.성서신학 (연구>책소개) > 2.성경설교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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