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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1 .2 (2022민족문제연구소)

동방박사님 2022. 10. 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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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전2권)은 일본군 병영지와 용산역 일대에 관한 것을 1권으로 하고, 효창원과 옛 용산 지역에 관한 것을 2권으로 하고 있다. 경부선 철길과 만초천 물길을 기준으로 그 동쪽 일대가 1권이고, 서쪽 일대가 2권에 해당한다.

1권에서는 일제가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의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곳, 무수히 많은 조선인 청년들이 징병·징용으로 머나먼 이역에 끌려가야 했던 강제동원의 출발지인 용산역에 관한 내용도 본격적으로 다룬다. 또한 용산역 일대에 흩어진 철도관련 시설로서 용산철도병원, 철도순직자조혼비의 소재지인 용산철도공원, 철도구락부로 옮겨진 개성 연복사탑중창비의 내력, 한강철교와 인도교, 삼각지의 유래, 한때 군수공업의 원료공급처로 활용됐던 용산와사제조소, 일본인 유곽의 대명사인 야요이쵸(彌生町)의 존재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목차

제1부 일본군 병영지와 그 주변

01 용산(龍山), 아주 오래된 이방인들의 땅 10
02 욱일기(旭日旗), 침략전쟁의 선봉에 선 일본군대의 깃발 30
03 통칭호(通稱號), 침략군대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암호명 41
04 용산 보병 제78연대, 조선의 수부 경성을 수비하는 주력부대 56
05 전쟁기념관으로 남은 용산 보병 제79연대 자리의 내력 70
06 누구도 살지 않는 불가사의의 아방궁, 용산총독관저 86
07 용산총독관저 앞 언덕에 초대형 무선 송신탑이 들어선 까닭은? 96
08 용산 사견대(四見臺)에 있던 군악대 음악당은 왜 탑골공원으로 옮겨졌나? 108
09 용산 해행사(偕行社), 일본군 육군장교들의 사교클럽 119
10 남영동(南營洞)이라는 고약한 지명을 남기고 사라진 용산연병장 132
11 경룡관(京龍館), 군사배후지역 연병정의 유일한 영화상영관 142
12 용산육군묘지, 남산 기슭 이태원리에 터를 잡은 침략전쟁의 기념공간 153
13 야스쿠니의 분신 역할을 했던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 168
14 용산중학교, 일본 군인과 철도 종사원의 자제들을 위한 교육기관 179
15 일본 개신교의 카마쿠라보육원으로 변신한 후암동 ‘전생서’ 옛 터 193
16 그해 겨울 그는 왜 맨발로 남산성벽을 넘어야 했나? 208

제2부 용산역과 경의선철도

17 용산역(龍山驛), 침략군대가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공간 222
18 철도순직자조혼비, 조선철도 1천리(?) 돌파가 남긴 기념물 237
19 용산철도병원, 드물게 남아 있는 용산지역의 등록문화재 250
20 조선개국의 기념물은 왜 용산철도구락부로 옮겨졌을까? 262
21 한강철교(漢江鐵橋), 무너지고 고쳐짓기를 겁듭하다 277
22 한강인도교(漢江人道敎)는 어떻게 죽음의 다리로 변했을까? 292
23 거대한 가스탱크가 만초전 끝자락에 터를 잡은 연유는? 309
24 가수 배호는 삼각지(三角紙)의 유래를 알았을까? 324
25 융문당과 융무당은 왜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나? 340
26 청일전쟁 때 일본군 개선식은 왜 용산 벌판에서 벌어졌을까? 351
27 야요이쵸(彌生町), 일본군 병영의 배후에 자리한 그들의 유곽(遊廓)
28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장면의 현장, 도화동 공동묘지
 

저자 소개

저 : 이순우
 
1962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비교정치전공, 석사과정수료)을 나왔고, 10여 년 가량 증권회사와 투자자문회사에 몸을 담았다가 돌연 인생의 행로를 바꿔 거의 20여 년째 역사탐방과 사료발굴에 몰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송작가이자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이던 시절에 일제강점기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문화재 수난사에 대한 기록발굴과 뒤틀린 근대 역사의 흔적들에 대한 글쓰기에 ...
 

출판사 리뷰

길 위의 역사학자 이순우
오욕의 땅, 용산을 말하다


『정동과 각국공사관』, 『손탁호텔』, 『광화문 육조앞길』 등의 연구 성과를 내며 근대 서울의 공간 변천사를 천착해온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한국근현대사 수난의 현장 용산에 대한 본격 인문 해설서를 내놓았다. 이순우 연구원은 10여 년간 증권맨으로 일하다 돌연 인생행로를 바꾼 뒤, 20년 째 역사탐방과 사료발굴에 몰두해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관심은 일제시기 우리 문화재 수난사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탐구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역사학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던 근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시공간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자신만의 시각으로 은폐되거나 잊혀졌던 역사를 발굴·조명해왔다. 스토리텔러로서 그의 강점은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대중적 글쓰기에 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일상의 공간과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고 역사와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용산은 어떤 곳인가?

근대 이후 서울 용산은 일본군 주둔지로서 일제침략의 교두보를 거쳐 강압적 식민지배의 본산으로 자리 잡았다. 해방이 되면서 미 점령군이 이를 이어받았으며 한국전쟁을 계기로 장기간 주한미군의 중추로 기능해왔다. 한 세기 넘게 외국군의 핵심 주둔지라는 멍에를 쓰게 되면서 이곳은 우리에게 사실상 이방인들의 땅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식민과 분단 시대의 상흔이 오롯이 담긴 한국근현대사의 그늘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4년 12월 미군기지 평택이전협정이 체결되고, 2009년에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마련됨에 따라 변화가 시작됐다. 현재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사령부는 이전을 마쳤고, 기지의 각종 편의시설도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2008년 말로 명기된 반환 시한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1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언제 이전 절차가 끝날지 알 수 없는 채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문화와 환경생태적 측면에서 환골탈태를 위한 대전환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난 세기를 넘어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원대한 시각으로 우리는 이곳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역사를 만들 것인가? 그 답은 어쩌면 용산이 겪어온 지난날의 경험에서 찾는 것이 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폭과 깊이를 더한 용산의 근대사

용산에 대한 탐구는 일본군 군영지의 조성 과정이나 일대의 일제잔재 등에 초점이 두어졌으나, 최근에는 공원화 계획을 둘러싼 활용 방안과 역사문화적인 보존가치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용산 기지 자체의 연혁과 공간변화를 포괄하면서도, 배후지로 시야를 넓히고 미시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일본군 병영지 안쪽은 물론이고 그 배후 지역을 이루고 있는 용산역, 남영동, 후암동, 효창원, 그리고 옛 용산 지역인 원효로 일대의 공간변천을 두루 조망하는 한편, 그간 지역사 연구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다수의 근대 역사 공간들을 새롭게 소개한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으나 결코 의미가 적지 않은 역사의 흔적들을 추적 발굴한 것이다.

수록된 방대한 자료들은 책의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한 희귀 실물자료와 저자가 조사한 사료들은 저자의 해석에 설득력을 더해 주면서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전문해설서의 단점을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욱일기는 어떻게 전범기가 되었을까
일본군 주둔지 주변의 깨알 같은 역사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전2권)은 일본군 병영지와 용산역 일대에 관한 것을 1권으로 하고, 효창원과 옛 용산 지역에 관한 것을 2권으로 하고 있다. 경부선 철길과 만초천 물길을 기준으로 그 동쪽 일대가 1권이고, 서쪽 일대가 2권에 해당한다.

우선 1권은 용산 지역 외국군의 주둔 내력과 함께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 병영지의 조성과정과 공간이 재배치되는 과정, 용산 주둔 일본군 주력부대인 보병 제78연대 및 제79연대의 편성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이에 곁들여 침략전쟁의 선봉에 선 일본군의 특징적인 면모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이 사용한 욱일기(旭日旗)와 각 부대의 군기, 침략군대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사용했던 각 부대 암호명의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이밖에 용산총독관저를 비롯하여 육군무선전신소, 군악대 음악당, 육군장교의 사교클럽인 용산해행사 등 일본군 병영지 안에 포진하고 있는 각종 부속시설의 연혁과 그 배후공간에 자리했던 침략전쟁의 기념공간인 용산육군묘지, 조선판 야스쿠니신사였던 경성호국신사, 변두리 재개봉관의 대명사 성남극장(옛 경룡관), 용산중학교를 비롯한 각종 일본인 학교의 내력도 살피고 있다. 특히 저자는 용산연병장 앞에 있다고 하여 생겨난 ‘연병정(練兵町)’이 해방 이후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남영동’으로 돌변한 과정을 추적하면서 아직까지도 지명에 버젓이 남아있는 고약한 일제잔재를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강제동원의 출발지 용산역
빼앗긴 조국, 끌려간 사람들


1권에서는 일제가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의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곳, 무수히 많은 조선인 청년들이 징병·징용으로 머나먼 이역에 끌려가야 했던 강제동원의 출발지인 용산역에 관한 내용도 본격적으로 다룬다. 또한 용산역 일대에 흩어진 철도관련 시설로서 용산철도병원, 철도순직자조혼비의 소재지인 용산철도공원, 철도구락부로 옮겨진 개성 연복사탑중창비의 내력, 한강철교와 인도교, 삼각지의 유래, 한때 군수공업의 원료공급처로 활용됐던 용산와사제조소, 일본인 유곽의 대명사인 야요이쵸(彌生町)의 존재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노름꾼 친일귀족 이지용의 흥망성쇠
용산 만초천 주변의 공간변천사


제2권에서는 효창원과 만초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역사공간들을 포착하여 이에 대한 세밀한 자료발굴을 통해 공간변천의 내력을 알차게 담아낸다. 일제의 인위적인 공간변경에 따라 청파배다리가 사라지고 갈월동 굴다리가 생겨난 이유를 비롯하여 일제패망기에 난데없이 등장한 연합군포로수용소(신광여고 자리), 도량형법의 산실인 상공과 용산분실 자리, 조선고무신의 대명사였던 대륙고무공장, 당고개 지역에 있던 카토신사(加藤神社)의 유래와 그 흔적을 추적한다.

옛 용산 지역에 해당하는 원효로 끝자락에 일진회장 이용구의 묘지가 있었던 사실이라든가, 노름꾼 친일귀족 이지용의 흥망성쇠가 어린 용산강정(龍山江亭)에 대한 자료추적도 흥미를 더해준다. 또한 저자는 이 지역에 유달리 일본인 불교사찰들이 많이 몰려 있던 연유를 살펴보고, 용산 전원국으로 사용된 군자감 터의 변천, 한강변 용산발전소, 용산과 마포의 경계를 이뤘던 별영창 구역의 공간변천사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조선왕조의 유산인 효창원이 애국선열 묘역으로 거듭난 사연은?
숙명여자전문학교가 효창원 인근에 자리한 까닭은?


저자는 효창원의 역사도 주요하게 다룬다. 조선 시대 이래 효창원의 공간변화와 함께 이곳이 왜 일제의 기념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는지 효창원의 수난사를 조명한다. 또 해방 이후에도 효창원의 수난은 그치지 않았기에 왜 효창원의 공간 훼손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던진다. 물론 왕조시대의 유산이었던 이곳이 난데없이 애국선열의 묘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경위도 더불어 밝히고 있다.

효창원의 공간수난사와 관련하여 일제강점기 총독부 고관들과 친일귀족들의 골프장 이야기, 한국병탄을 영구히 기리고자 기획된 ‘기념식수일’의 연원에 관한 풍경들도 다룬다. 숙명여자전문학교가 효창원에 인접하여 들어선 연유, 이토 히로부미가 학교명을 지어줬다는 선린상업학교의 연혁, 그리고 누에치기 열풍 속에 뽕나무 밭으로 변한 만리창 일대, 총독부 관변단체의 하나인 수양단 조선본부와 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 등의 존재도 저자가 이 책에 꼼꼼히 담아내고 있는 꼭지들이다.

연화봉 자락에 걸쳐 있던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 터와 이곳 산등성이에 자리했던 오포대(午砲臺), 그리고 을미사변의 대역죄인 이주회의 묘지가 자리했던 용산 서룡사 등도 관심 있게 살펴볼 용산 지역의 역사공간들이다. 이러한 내용 외에도 드물게 남아 있는 일제 침탈에 대한 항거지로서 제1권에서 소개된 후암동 고봉근 집터(김상옥 의사의 총격전 현장), 이른바 ‘철도파괴범’의 처형지였던 도화동 공동묘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제2권에서는 효창원 앞쪽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집터에 대한 흔적을 재구성하여 소상하게 담아냈다.

식민과 분단의 상흔 따라 우리 근현대사 읽기
용산의 어제와 오늘에서 민족의 미래를 묻는다


용산은 오랜 세월 외세의 영향 아래 놓인 지역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이 응축되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는 ‘이방인들의 땅’ 용산이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지 지혜를 모으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용산에 어떤 역사를 써나갈 것인가? 미래세대에게 어떤 모습의 용산을 물려줄 것인가? 이미 사라졌거나 잊혀지고 있는 지난날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이 역사탐방과 교육자료를 넘어 미래를 구상하는 조그만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책소개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전2권)은 일본군 병영지와 용산역 일대에 관한 것을 1권으로 하고, 효창원과 옛 용산 지역에 관한 것을 2권으로 하고 있다. 경부선 철길과 만초천 물길을 기준으로 그 동쪽 일대가 1권이고, 서쪽 일대가 2권에 해당한다.

제2권에서는 효창원과 만초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역사공간들을 포착하여 이에 대한 세밀한 자료발굴을 통해 공간변천의 내력을 알차게 담아낸다. 일제의 인위적인 공간변경에 따라 청파배다리가 사라지고 갈월동 굴다리가 생겨난 이유를 비롯하여 일제패망기에 난데없이 등장한 연합군포로수용소(신광여고 자리), 도량형법의 산실인 상공과 용산분실 자리, 조선고무신의 대명사였던 대륙고무공장, 당고개 지역에 있던 카토신사(加藤神社)의 유래와 그 흔적을 추적한다.

옛 용산 지역에 해당하는 원효로 끝자락에 일진회장 이용구의 묘지가 있었던 사실이라든가, 노름꾼 친일귀족 이지용의 흥망성쇠가 어린 용산강정(龍山江亭)에 대한 자료추적도 흥미를 더해준다. 또한 저자는 이 지역에 유달리 일본인 불교사찰들이 많이 몰려 있던 연유를 살펴보고, 용산 전원국으로 사용된 군자감 터의 변천, 한강변 용산발전소, 용산과 마포의 경계를 이뤘던 별영창 구역의 공간변천사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목차

제1부 옛 용산과 만초천 물길

01 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10
02 만초전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21
03 식민지 조선에도 난데없이 연합군포로수용소가 만들어진 까닭은? 34
04 평식원(平式院) 혹은 상공과 용산분실 자리의 공간 내력 47
05 대륙고무(大陸護謨), 친일귀족세력과 일본자본의 결합체 63
06 카토신사(加藤神社), 당고개에 터를 잡은 왜군장수의 추모공간 79
07 용산 주변에 유달리 일본인 불교사찰들이 많이 몰려 있는 이유는 ? 91
08 조선은행권 지폐를 찍어내던 총독부 인쇄소의 공간 내력 105
09 이지용의 용산강정(龍山江亭), 노름꾼 친일귀족의 흥망성쇠가 어린공간 121
10 용산 한강변 언덕에 터를 잡았던 일진회장 이용구(李容九)의 묘지 143
11 용산에 있던 경성전기의 발전소가 끝내 당인리로 옮겨진 까닭은? 160
12 한강변의 절경지로 알려진 읍청루(?靑樓)는 어떻게 사라졌을까? 176

제2부 효창원과 연화봉 일대

13 효창원, 일제의 기념물이 그득했던 수난의 공간 194
14 효창공원, 결국 애국선열묘역으로 남다 211
15 “그깟 종묘의 어보를 읽었다고 꼴푸놀이도 못한단 말이요?” 231
16 한국병탄의 대업을 영구히 기리고자 기획된 식목일 행사의 기원 241
17 누에치기 열풍 속에 뽕나무 밭으로 변한 만리창(萬里倉) 일대 256
18 친일파인사 35명이 요리집 식도원(食道園)에 급히 모인 까닭은? 273
19 ‘미도리가오카’ 신흥 주택지로 변신한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 터 287
20 연화봉 산등성이에서 매일 오포(午砲)소리가 울리던 시절 303
21 효창원 구역에 터를 잡은 숙명여자전문학교의 건립 내력 319
22 동포상애와 유한단련을 기치로 내건 수양단(修養團)의 정체는? 331
23 하마터면 오쿠라상업학교가 될 뻔했던 선린상업학교 345
24 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京城佛敎慈濟院)의 공간 내력 358
25 용산 서룡사, 일진회의 배후인 일본인 승려 타케다의 활동근거지 368
 
 
 

출판사 리뷰

길 위의 역사학자 이순우
오욕의 땅, 용산을 말하다


『정동과 각국공사관』, 『손탁호텔』, 『광화문 육조앞길』 등의 연구 성과를 내며 근대 서울의 공간 변천사를 천착해온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한국근현대사 수난의 현장 용산에 대한 본격 인문 해설서를 내놓았다. 이순우 연구원은 10여 년간 증권맨으로 일하다 돌연 인생행로를 바꾼 뒤, 20년 째 역사탐방과 사료발굴에 몰두해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관심은 일제시기 우리 문화재 수난사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탐구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역사학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던 근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시공간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자신만의 시각으로 은폐되거나 잊혀졌던 역사를 발굴·조명해왔다. 스토리텔러로서 그의 강점은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대중적 글쓰기에 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일상의 공간과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고 역사와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용산은 어떤 곳인가?

근대 이후 서울 용산은 일본군 주둔지로서 일제침략의 교두보를 거쳐 강압적 식민지배의 본산으로 자리 잡았다. 해방이 되면서 미 점령군이 이를 이어받았으며 한국전쟁을 계기로 장기간 주한미군의 중추로 기능해왔다. 한 세기 넘게 외국군의 핵심 주둔지라는 멍에를 쓰게 되면서 이곳은 우리에게 사실상 이방인들의 땅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식민과 분단 시대의 상흔이 오롯이 담긴 한국근현대사의 그늘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4년 12월 미군기지 평택이전협정이 체결되고, 2009년에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마련됨에 따라 변화가 시작됐다. 현재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사령부는 이전을 마쳤고, 기지의 각종 편의시설도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2008년 말로 명기된 반환 시한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1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언제 이전 절차가 끝날지 알 수 없는 채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문화와 환경생태적 측면에서 환골탈태를 위한 대전환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난 세기를 넘어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원대한 시각으로 우리는 이곳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역사를 만들 것인가? 그 답은 어쩌면 용산이 겪어온 지난날의 경험에서 찾는 것이 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폭과 깊이를 더한 용산의 근대사

용산에 대한 탐구는 일본군 군영지의 조성 과정이나 일대의 일제잔재 등에 초점이 두어졌으나, 최근에는 공원화 계획을 둘러싼 활용 방안과 역사문화적인 보존가치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용산 기지 자체의 연혁과 공간변화를 포괄하면서도, 배후지로 시야를 넓히고 미시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일본군 병영지 안쪽은 물론이고 그 배후 지역을 이루고 있는 용산역, 남영동, 후암동, 효창원, 그리고 옛 용산 지역인 원효로 일대의 공간변천을 두루 조망하는 한편, 그간 지역사 연구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다수의 근대 역사 공간들을 새롭게 소개한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으나 결코 의미가 적지 않은 역사의 흔적들을 추적 발굴한 것이다.

수록된 방대한 자료들은 책의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한 희귀 실물자료와 저자가 조사한 사료들은 저자의 해석에 설득력을 더해 주면서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전문해설서의 단점을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욱일기는 어떻게 전범기가 되었을까
일본군 주둔지 주변의 깨알 같은 역사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전2권)은 일본군 병영지와 용산역 일대에 관한 것을 1권으로 하고, 효창원과 옛 용산 지역에 관한 것을 2권으로 하고 있다. 경부선 철길과 만초천 물길을 기준으로 그 동쪽 일대가 1권이고, 서쪽 일대가 2권에 해당한다.

우선 1권은 용산 지역 외국군의 주둔 내력과 함께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 병영지의 조성과정과 공간이 재배치되는 과정, 용산 주둔 일본군 주력부대인 보병 제78연대 및 제79연대의 편성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이에 곁들여 침략전쟁의 선봉에 선 일본군의 특징적인 면모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이 사용한 욱일기(旭日旗)와 각 부대의 군기, 침략군대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사용했던 각 부대 암호명의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이밖에 용산총독관저를 비롯하여 육군무선전신소, 군악대 음악당, 육군장교의 사교클럽인 용산해행사 등 일본군 병영지 안에 포진하고 있는 각종 부속시설의 연혁과 그 배후공간에 자리했던 침략전쟁의 기념공간인 용산육군묘지, 조선판 야스쿠니신사였던 경성호국신사, 변두리 재개봉관의 대명사 성남극장(옛 경룡관), 용산중학교를 비롯한 각종 일본인 학교의 내력도 살피고 있다. 특히 저자는 용산연병장 앞에 있다고 하여 생겨난 ‘연병정(練兵町)’이 해방 이후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남영동’으로 돌변한 과정을 추적하면서 아직까지도 지명에 버젓이 남아있는 고약한 일제잔재를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강제동원의 출발지 용산역
빼앗긴 조국, 끌려간 사람들


1권에서는 일제가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의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곳, 무수히 많은 조선인 청년들이 징병·징용으로 머나먼 이역에 끌려가야 했던 강제동원의 출발지인 용산역에 관한 내용도 본격적으로 다룬다. 또한 용산역 일대에 흩어진 철도관련 시설로서 용산철도병원, 철도순직자조혼비의 소재지인 용산철도공원, 철도구락부로 옮겨진 개성 연복사탑중창비의 내력, 한강철교와 인도교, 삼각지의 유래, 한때 군수공업의 원료공급처로 활용됐던 용산와사제조소, 일본인 유곽의 대명사인 야요이쵸(彌生町)의 존재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노름꾼 친일귀족 이지용의 흥망성쇠
용산 만초천 주변의 공간변천사


제2권에서는 효창원과 만초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역사공간들을 포착하여 이에 대한 세밀한 자료발굴을 통해 공간변천의 내력을 알차게 담아낸다. 일제의 인위적인 공간변경에 따라 청파배다리가 사라지고 갈월동 굴다리가 생겨난 이유를 비롯하여 일제패망기에 난데없이 등장한 연합군포로수용소(신광여고 자리), 도량형법의 산실인 상공과 용산분실 자리, 조선고무신의 대명사였던 대륙고무공장, 당고개 지역에 있던 카토신사(加藤神社)의 유래와 그 흔적을 추적한다.

옛 용산 지역에 해당하는 원효로 끝자락에 일진회장 이용구의 묘지가 있었던 사실이라든가, 노름꾼 친일귀족 이지용의 흥망성쇠가 어린 용산강정(龍山江亭)에 대한 자료추적도 흥미를 더해준다. 또한 저자는 이 지역에 유달리 일본인 불교사찰들이 많이 몰려 있던 연유를 살펴보고, 용산 전원국으로 사용된 군자감 터의 변천, 한강변 용산발전소, 용산과 마포의 경계를 이뤘던 별영창 구역의 공간변천사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조선왕조의 유산인 효창원이 애국선열 묘역으로 거듭난 사연은?
숙명여자전문학교가 효창원 인근에 자리한 까닭은?


저자는 효창원의 역사도 주요하게 다룬다. 조선 시대 이래 효창원의 공간변화와 함께 이곳이 왜 일제의 기념물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는지 효창원의 수난사를 조명한다. 또 해방 이후에도 효창원의 수난은 그치지 않았기에 왜 효창원의 공간 훼손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던진다. 물론 왕조시대의 유산이었던 이곳이 난데없이 애국선열의 묘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경위도 더불어 밝히고 있다.

효창원의 공간수난사와 관련하여 일제강점기 총독부 고관들과 친일귀족들의 골프장 이야기, 한국병탄을 영구히 기리고자 기획된 ‘기념식수일’의 연원에 관한 풍경들도 다룬다. 숙명여자전문학교가 효창원에 인접하여 들어선 연유, 이토 히로부미가 학교명을 지어줬다는 선린상업학교의 연혁, 그리고 누에치기 열풍 속에 뽕나무 밭으로 변한 만리창 일대, 총독부 관변단체의 하나인 수양단 조선본부와 행려병인 수용소였던 경성불교자제원 등의 존재도 저자가 이 책에 꼼꼼히 담아내고 있는 꼭지들이다.

연화봉 자락에 걸쳐 있던 친일귀족 민병석의 별장 터와 이곳 산등성이에 자리했던 오포대(午砲臺), 그리고 을미사변의 대역죄인 이주회의 묘지가 자리했던 용산 서룡사 등도 관심 있게 살펴볼 용산 지역의 역사공간들이다. 이러한 내용 외에도 드물게 남아 있는 일제 침탈에 대한 항거지로서 제1권에서 소개된 후암동 고봉근 집터(김상옥 의사의 총격전 현장), 이른바 ‘철도파괴범’의 처형지였던 도화동 공동묘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제2권에서는 효창원 앞쪽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집터에 대한 흔적을 재구성하여 소상하게 담아냈다.

식민과 분단의 상흔 따라 우리 근현대사 읽기
용산의 어제와 오늘에서 민족의 미래를 묻는다


용산은 오랜 세월 외세의 영향 아래 놓인 지역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이 응축되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는 ‘이방인들의 땅’ 용산이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지 지혜를 모으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용산에 어떤 역사를 써나갈 것인가? 미래세대에게 어떤 모습의 용산을 물려줄 것인가? 이미 사라졌거나 잊혀지고 있는 지난날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이 역사탐방과 교육자료를 넘어 미래를 구상하는 조그만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