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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원하는대로 죽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죽음의 풍경과
당대 삶의 조건을 비추는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호스피스 의사, 의료인류학자, 기자가 내놓은 죽음 사용설명서
“시간이 지날수록 출생률 저하, 노령 인구 증가,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이 관계 맺는 형식과 맥락이 달라질 겁니다. 가족이 아니라 나와 전혀 모르는 타인이 나를 돌보게 될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하느냐가 '존엄한 죽음'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는 2020년 가을과 겨울 ‘죽음의 미래’라는 꼭지명으로 시사주간지 「시사IN」에 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기사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다. 죽음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사건’임을, 우리 모두 연루된 일임을 드러내 질문하고 싶었다.
당대 삶의 조건을 비추는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호스피스 의사, 의료인류학자, 기자가 내놓은 죽음 사용설명서
“시간이 지날수록 출생률 저하, 노령 인구 증가,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이 관계 맺는 형식과 맥락이 달라질 겁니다. 가족이 아니라 나와 전혀 모르는 타인이 나를 돌보게 될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하느냐가 '존엄한 죽음'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는 2020년 가을과 겨울 ‘죽음의 미래’라는 꼭지명으로 시사주간지 「시사IN」에 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기사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다. 죽음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사건’임을, 우리 모두 연루된 일임을 드러내 질문하고 싶었다.
목차
추천사 새로 쓰는 ‘죽음의 미래’
프롤로그 우리 가족은 정말 운이 좋았다
1부 삶과 질병
아픈 몸을 미워할수록 삶이 크게 흔들렸다
우리가 병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의학은 돌봄을 가르치지 않았다
고통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깊이 읽기] '존엄삶'을 위하여
2부 질병과 돌봄
죽는 것보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게 두렵다
한 사람의 전부가 집에 있었다
유언장 대신 돌봄장을 씁시다
아무도 그곳을 병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돌봄이 직업이 될 때
자유, 평등 그리고 돌봄
[깊이 읽기] '비행' 기저귀
3부 돌봄과 죽음
우리는 모두 죽음의 이해당사자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하여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
당신은 어디에서 죽고 싶습니까
내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깊이 읽기] 건강이 밑천인 세계로부터
에필로그 죽음을 어려운 일로 만드는 삶의 조건들ㅤ
프롤로그 우리 가족은 정말 운이 좋았다
1부 삶과 질병
아픈 몸을 미워할수록 삶이 크게 흔들렸다
우리가 병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의학은 돌봄을 가르치지 않았다
고통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깊이 읽기] '존엄삶'을 위하여
2부 질병과 돌봄
죽는 것보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게 두렵다
한 사람의 전부가 집에 있었다
유언장 대신 돌봄장을 씁시다
아무도 그곳을 병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돌봄이 직업이 될 때
자유, 평등 그리고 돌봄
[깊이 읽기] '비행' 기저귀
3부 돌봄과 죽음
우리는 모두 죽음의 이해당사자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하여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
당신은 어디에서 죽고 싶습니까
내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깊이 읽기] 건강이 밑천인 세계로부터
에필로그 죽음을 어려운 일로 만드는 삶의 조건들ㅤ
저자 소개
저 : 김영화
책 속으로
꼭 집에서 죽어야만 좋은 죽음이라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집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이 병원밖에 없다는 점이다. 병원은 효율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게 목표인 공간이다.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와 패배가 명확히 갈리는 곳이다.
--- p.13
"핵심이지만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인 것 같아요. 돌봄을 수용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받고, 보호자 혹은 돌봄 제공자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공백이에요."
--- p.48
"임종기를 명료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프고 돌보고 죽을 거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죽음은 '어떻게'의 문제라기보다는 '언제'의 문제입니다. 타이밍이 주요 쟁점이 됩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연명의료결정법이 있으니 '내가 원하는대로 죽을 수 있겠지' '존엄사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은 다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p.54
"아플 때 통증도 문제지만 첫 번째 두려움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서 빈곤해지는 거잖아요.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나는 절대로 아프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변화될 수 있죠. 죽음도 어떤 제도, 어떤 문화인가에 따라 꼭 비극이 아닐 수 있어요."
--- p.61
"연명의료결정법이 뭡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병원에서 생긴 갈등이 번번이 법정으로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 '현장에서 해결하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불필요하게 끼어든 조항이 있어요. 수분영양 공급, 산소 공급을 끝까지 하라는 거죠. 그게 인간에 대한 예우이고 존엄이라고 말해요. 이 법이 '안락사법'이 아니라는 의미죠. 그런데 의료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과정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연장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의료진이 판단해서 공급을 안 할수도 있지만 이걸 보호자가 법적으로 따지면 의료소송이 될 수 있고요."
--- p.84
"요양병원과 호스피스에선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호자의 돌봄 참여를 요구해요. 생계가 불안한 저소득 계층일수록 병원이 요구하는 돌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영세한 요양원에 환자를 맡기게 되죠. 많은 경우 보호자가 연락을 피하거나 잠적해요. 보호자가 잠적해도 장기요양보험 등록이 되면 한 명당 정해진 수가를 받을 수 있으니 냉정하게 말하면 일종의 '죽음 산업'입니다. 이게 사람들이 악랄해서가 아니에요. 사회가 급속히 변하면서 대비하지 못한 일을 사실상 요양원이란 공간으로 우리 모두가 몰아 넣은 거죠."
--- p.86
"한 사람의 죽음은 내 시간의 일부가 같이 소멸되는 일이기도 해요. '우리'의 이야기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동안은 목숨 살리는 거 하나만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우리 사회에 전무했죠. 좀 도발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인 거 같아요. 그렇게 생명이 중요한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 꼭 나쁜가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 p.87
"환자의 일상은 치료행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세수도 하고 산책도 하고 대화도 해야 하죠. 이런 일상적 돌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간병이 사적으로, 알아서, 시간 많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공적 담론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p.90
연명의료는 생물학적 삶과 죽음 사이에 '회색지대'를 만든다. 이 불확실한 영역에서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부터가 죽음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 회색지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입장을 초래하고, 그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줄다리기도 격렬해진다.
--- p.103
환자만큼 환자를 돌보는 사람도 고립된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기능이 저하된 노인 중 71.4%가 수발을 받고 있다. 돌봄 제공자는 89.4%가 가족이다. 간병 대부분이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내맡겨져 있다.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었고 문재인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추진했다. 그 결과 전국에 민간 요양시설이 늘어났을 뿐, 노년 돌봄은 가족의 희생과 간병인의 '값싼(보호자 입장에서는 값비싼)' 노동 없이는 불가하다.
--- p.120
"병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 해요. 질병은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니까요. 병원 진료실에 있으면 모든 게 차단돼 있으니 질병이 크게 보이는 거고, 환자 집에 가면 다른 장면들이 보이니까 질병이 작아 보이는 거죠. 대부분의 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더 큰 문제는 빈곤이에요." 그의 관점에서 치료란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환자와 함께 있어주는 '존재'가 있냐 없냐의 문제다.
--- p.131
"취약한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또 죽기 전 일정 기간 불가피하게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100세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중 40%가 타인에게 의존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 p.155
"돌봄은 고단하게 계속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고 돌봄 수혜자와 애착과 공감대가 이뤄지는 일이라 정량화가 어렵습니다. 시장의 잣대로 평가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할 수도 없죠. 그렇다 보니 돌봄이 저평가됩니다. 저는 이걸 '돌봄의 구조적 부정의'라고 표현해요. 이걸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결혼이나 육아를 전략적으로 거부하기도 하죠."
--- p.157
"돌봄을 헌법에 명문화한다는 건 이제껏 우리가 돌봄을 무시하고 배제해왔던 것에 대한 반성,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돌봄이 공적 가치로서 의미 있다는 사회적 책임, 의지 표명 등을 명문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헌법은 굉장히 실천적입니다. 하위 법령이 계속 나오니까요."
--- p.162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이들은 관계를 살피고 공동체와 연결되고자 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 p.180
"한국 의료는 대체로 과잉이거든요. 의학은 매일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건강해지지 않고 의료공백은 계속해서 발생하죠. 이를테면 저는 수술 다음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고와 수술 이후에는 반드시 손상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다음의 삶은 개인의 몫으로만 남아요. 돌봄의 부담까지 같이 바라봐야 생명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어요."
--- p.192
"진단을 내릴 때는 한 사람의 건강 상태만큼이나 이야기가 중요하거든요. '건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래요, 우리 뭐라도 한번 해보죠"라고 말해요. 단순히 못 죽게 하는 것,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걸 인정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게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같이 살펴봐요."
--- p.205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가족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가정을 이상화시키는 것보다 시설에서도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 p.206
"시간이 지날수록 출생률 저하, 노령 인구 증가,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이 관계 맺는 형식과 맥락이 달라질 겁니다. 가족이 아니라 나와 전혀 모르는 타인이 나를 돌보게 될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하느냐가 '존엄한 죽음'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 p.13
"핵심이지만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인 것 같아요. 돌봄을 수용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받고, 보호자 혹은 돌봄 제공자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공백이에요."
--- p.48
"임종기를 명료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프고 돌보고 죽을 거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죽음은 '어떻게'의 문제라기보다는 '언제'의 문제입니다. 타이밍이 주요 쟁점이 됩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연명의료결정법이 있으니 '내가 원하는대로 죽을 수 있겠지' '존엄사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은 다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p.54
"아플 때 통증도 문제지만 첫 번째 두려움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서 빈곤해지는 거잖아요.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나는 절대로 아프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변화될 수 있죠. 죽음도 어떤 제도, 어떤 문화인가에 따라 꼭 비극이 아닐 수 있어요."
--- p.61
"연명의료결정법이 뭡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병원에서 생긴 갈등이 번번이 법정으로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 '현장에서 해결하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불필요하게 끼어든 조항이 있어요. 수분영양 공급, 산소 공급을 끝까지 하라는 거죠. 그게 인간에 대한 예우이고 존엄이라고 말해요. 이 법이 '안락사법'이 아니라는 의미죠. 그런데 의료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과정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연장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의료진이 판단해서 공급을 안 할수도 있지만 이걸 보호자가 법적으로 따지면 의료소송이 될 수 있고요."
--- p.84
"요양병원과 호스피스에선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호자의 돌봄 참여를 요구해요. 생계가 불안한 저소득 계층일수록 병원이 요구하는 돌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영세한 요양원에 환자를 맡기게 되죠. 많은 경우 보호자가 연락을 피하거나 잠적해요. 보호자가 잠적해도 장기요양보험 등록이 되면 한 명당 정해진 수가를 받을 수 있으니 냉정하게 말하면 일종의 '죽음 산업'입니다. 이게 사람들이 악랄해서가 아니에요. 사회가 급속히 변하면서 대비하지 못한 일을 사실상 요양원이란 공간으로 우리 모두가 몰아 넣은 거죠."
--- p.86
"한 사람의 죽음은 내 시간의 일부가 같이 소멸되는 일이기도 해요. '우리'의 이야기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동안은 목숨 살리는 거 하나만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우리 사회에 전무했죠. 좀 도발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인 거 같아요. 그렇게 생명이 중요한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 꼭 나쁜가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 p.87
"환자의 일상은 치료행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세수도 하고 산책도 하고 대화도 해야 하죠. 이런 일상적 돌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간병이 사적으로, 알아서, 시간 많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공적 담론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p.90
연명의료는 생물학적 삶과 죽음 사이에 '회색지대'를 만든다. 이 불확실한 영역에서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부터가 죽음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 회색지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입장을 초래하고, 그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줄다리기도 격렬해진다.
--- p.103
환자만큼 환자를 돌보는 사람도 고립된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적 기능이 저하된 노인 중 71.4%가 수발을 받고 있다. 돌봄 제공자는 89.4%가 가족이다. 간병 대부분이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내맡겨져 있다.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었고 문재인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추진했다. 그 결과 전국에 민간 요양시설이 늘어났을 뿐, 노년 돌봄은 가족의 희생과 간병인의 '값싼(보호자 입장에서는 값비싼)' 노동 없이는 불가하다.
--- p.120
"병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 해요. 질병은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니까요. 병원 진료실에 있으면 모든 게 차단돼 있으니 질병이 크게 보이는 거고, 환자 집에 가면 다른 장면들이 보이니까 질병이 작아 보이는 거죠. 대부분의 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더 큰 문제는 빈곤이에요." 그의 관점에서 치료란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환자와 함께 있어주는 '존재'가 있냐 없냐의 문제다.
--- p.131
"취약한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또 죽기 전 일정 기간 불가피하게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100세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중 40%가 타인에게 의존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 p.155
"돌봄은 고단하게 계속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고 돌봄 수혜자와 애착과 공감대가 이뤄지는 일이라 정량화가 어렵습니다. 시장의 잣대로 평가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할 수도 없죠. 그렇다 보니 돌봄이 저평가됩니다. 저는 이걸 '돌봄의 구조적 부정의'라고 표현해요. 이걸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결혼이나 육아를 전략적으로 거부하기도 하죠."
--- p.157
"돌봄을 헌법에 명문화한다는 건 이제껏 우리가 돌봄을 무시하고 배제해왔던 것에 대한 반성,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돌봄이 공적 가치로서 의미 있다는 사회적 책임, 의지 표명 등을 명문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헌법은 굉장히 실천적입니다. 하위 법령이 계속 나오니까요."
--- p.162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이들은 관계를 살피고 공동체와 연결되고자 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 p.180
"한국 의료는 대체로 과잉이거든요. 의학은 매일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건강해지지 않고 의료공백은 계속해서 발생하죠. 이를테면 저는 수술 다음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고와 수술 이후에는 반드시 손상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다음의 삶은 개인의 몫으로만 남아요. 돌봄의 부담까지 같이 바라봐야 생명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어요."
--- p.192
"진단을 내릴 때는 한 사람의 건강 상태만큼이나 이야기가 중요하거든요. '건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래요, 우리 뭐라도 한번 해보죠"라고 말해요. 단순히 못 죽게 하는 것,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걸 인정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게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같이 살펴봐요."
--- p.205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가족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가정을 이상화시키는 것보다 시설에서도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 p.206
"시간이 지날수록 출생률 저하, 노령 인구 증가,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이 관계 맺는 형식과 맥락이 달라질 겁니다. 가족이 아니라 나와 전혀 모르는 타인이 나를 돌보게 될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하느냐가 '존엄한 죽음'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 p.212
출판사 리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면ㅤ
존엄하게 죽을 수 있지 않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존엄사를 원한다면 ‘존엄삶’이 먼저입니다ㅤ
- 죽음이야 말로 ‘미래’에 대한 주제입니다
- 죽음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사회적 상상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 죽음을 둘러싼 각자의 내밀한 경험이 더 많은 보편의 이야기로 나눠질 때 삶도 조금은 덜 잔인해집니다
임종 장소로 ‘집’을 조명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김영화의 머릿속에는 ‘고독사’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집보다는 병원이 안전한 것 아닌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병상 부족 문제가 거론되는데 집에서 죽는 건 비극 아닌가?’ 이처럼 우리는 죽음을 병원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병원이 사람들의 마지막 거처가 된 것은 불과 30년 만의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인 10명 중 8명은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질병과 죽음은 병원으로 ‘처박힙니다.’ 집에서 죽는다면 좀 다를까요?
20대인 나경희·김영화가 떠올린 죽음에 대한 가장 가까운 기억은 할머니의 죽음입니다. 나경희의 할머니는 집에서, 김영화의 할머니는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순수한 슬픔으로만” 할머니를 보낼 수 있었던 나경희의 경험은 여타 다른 임종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정말 ‘운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흔히 말하는 ‘좋은 죽음’이지만, 꼭 집에서 죽는 것이 반드시 좋은 죽음은 아닙니다. 김영화는 “병원에서의 죽음이 불행이냐 물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라고 씁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상반된 경험은 모두 ‘사실’입니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합니다. 2025년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늙고 병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소득·학력·지역·직업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닥쳐옵니다. 결국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면 “삶의 조건을 치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 안에는 짐작보다 훨씬 다양한 맥락과 현실이 중첩돼 있습니다. 집은 병원과 달리 죽음·질병·돌봄이 각기 다른 문제가 아닌 하나의 문제임을 폭로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법으로 반듯하게 재단된 죽음
연명의료결정법을 이끌어낸 사건으로 흔히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세브란스병원 사건을 꼽습니다. 우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존엄한 죽음을 돕는 법으로 이해하지만, 두 사건은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연명의료 결정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법으로 반듯하게 재단된 죽음은 우리를 “생의 끝자락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빼앗긴 세계”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의료인류학자인 송병기는 평범한 시민들은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은 연명의료결정법을 둘러싼 각종 쟁점을 검토합니다.
‘첨단 의료’의 정점에 있는 핵의학을 전공한 김호성은 날마다 기계와 씨름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이나 잘 죽도록 돕는 일 역시 의학이 할 일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는 삶의 방향을 호스피스 완화의료로 크게 틀어버립니다. 환자가 가진 삶의 서사가 표백된 공간에서 죽음은 '실패'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호성에게 의학은 큐어(cure)보다는 케어(care)여야 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죽음을 ‘서류화’하는 납작한 공간의 틈을 넓히기 위해 함께 이야기하자고 손 내밉니다.
책은 ‘삶과 질병’ ‘질병과 돌봄’ ‘돌봄과 죽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삶, 질병, 돌봄은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주제들이었습니다. 단정하게 구분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들도 아니었습니다. 삶을 이야기하다보면 질병이, 질병을 이야기하다보면 돌봄이, 죽음과 섞여들었습니다. 에세이, 취재기, 좌담 등 글의 형식(혹은 장르) 역시 단일하지 않습니다. 복잡성은 ‘생’이 가진 속성이기도 합니다.
질병은 죽음을 이해하는 소중한 단서입니다. ‘규칙적인 식습관, 충분한 수면, 적절한 운동’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없는 처방전입니다. 수술과 치료와 투약만으로 질병은 박멸되지 않습니다. 질병과 죽음을 둘러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질병이라는 편견과 싸우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아픈 상태로도 잘 살아갈 수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일상적인 요양공간’에 대한 상상이 시작됐습니다.
돌봄은 죽음을 해명하기 위한 증거입니다. 돌봄은 여전히 성별화되어 여성에게 전가됩니다. 환자의 죽음 가장 가까운 곳에, 늙은 여성의 노동력이 고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돌봄노동’에서 노동은 언제나 괄호 안에 갇혀 있습니다. 간병비 급여화가 수십 년째 대안으로 이야기되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간병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예방·재활·입원·간호)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이 스산한 풍경의 목격자들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죽음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은 무엇입니까.
‘죽음의 미래’를 새로 쓴다는 것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는 2020년 가을과 겨울 ‘죽음의 미래’라는 꼭지명으로 시사주간지 〈시사IN〉에 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기사에서 출발했습니다. 무엇보다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죽음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사건’임을, 우리 모두 연루된 일임을 드러내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주간지 기사 분량에 맞춰 내놓는 기사로는 이야기를 충분히 담기 어려웠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이유입니다.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 간병사 등이 모인 자리로 독자를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관련 내용을 더 깊이 읽을 수 있도록 새로 쓴 내용을 대폭 포함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소’로 이 책을 사용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가 전하는 이야기에 자신의 운명을 겹쳐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이들을 많이, 계속, 오래 만나고 싶습니다.
저자의 말
김영화
“기자라는 직업의 꽤 좋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문제에 고민을 쌓아온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잘 모르는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취재할수록 ‘이거 내(가족, 친구 등등) 이야기네...’라고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병과 돌봄 문제에서는 특히요. 뚜렷한 해결책은 없지만 한가지만큼은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요.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가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호성
“내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나를 돌봐주는 의료인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봤습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말기 돌봄의 경험이 많아서 숙련된 사람이면 좋겠고요. 통증이 있을 때 적절하게 진통제를 주고 가족들과 충분한 이야기와 연명계획에 대해 대화를 해 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노인의학’의 전문가가 아닌 돌봄의 가치를 아는 의료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의료 시스템에서 그런 일을 하는 의료진을 원활히 배출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개인의 도덕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며, 그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 일입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와 함께 그 변화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나경희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내게 함께 사는 사람이 없다면 ‘노령의 나’는 누가 부축해 줄 수 있을까요. 취재를 하는 동안 다소 안심했습니다. 이 걱정을 저만 하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우리는 과연 잘 죽을 수 있을까요? ‘죽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나눈 이야기의 결론이 책 제목이 되었습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나의 죽음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송병기
“2년 전 일본 도쿄에서 현장연구하면서 알게 된 의료진과 학자들은 한국이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는 데 매우 놀라곤 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의 반응도 무척 궁금해 하더군요. 하지만 한국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과정은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닙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일상에서 ‘좋은 죽음’의 유의어처럼 폭넓게 사용되지만, 죽음은 그런 문서 한 장으로 결판나는 승부가 아닙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를 통해 죽음과 윤리를 둘러싼 치열한 ‘사실들’을 함께 검토해보고 싶습니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지 않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존엄사를 원한다면 ‘존엄삶’이 먼저입니다ㅤ
- 죽음이야 말로 ‘미래’에 대한 주제입니다
- 죽음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사회적 상상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 죽음을 둘러싼 각자의 내밀한 경험이 더 많은 보편의 이야기로 나눠질 때 삶도 조금은 덜 잔인해집니다
임종 장소로 ‘집’을 조명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김영화의 머릿속에는 ‘고독사’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집보다는 병원이 안전한 것 아닌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병상 부족 문제가 거론되는데 집에서 죽는 건 비극 아닌가?’ 이처럼 우리는 죽음을 병원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병원이 사람들의 마지막 거처가 된 것은 불과 30년 만의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인 10명 중 8명은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질병과 죽음은 병원으로 ‘처박힙니다.’ 집에서 죽는다면 좀 다를까요?
20대인 나경희·김영화가 떠올린 죽음에 대한 가장 가까운 기억은 할머니의 죽음입니다. 나경희의 할머니는 집에서, 김영화의 할머니는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순수한 슬픔으로만” 할머니를 보낼 수 있었던 나경희의 경험은 여타 다른 임종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정말 ‘운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흔히 말하는 ‘좋은 죽음’이지만, 꼭 집에서 죽는 것이 반드시 좋은 죽음은 아닙니다. 김영화는 “병원에서의 죽음이 불행이냐 물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라고 씁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상반된 경험은 모두 ‘사실’입니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합니다. 2025년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늙고 병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소득·학력·지역·직업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닥쳐옵니다. 결국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면 “삶의 조건을 치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 안에는 짐작보다 훨씬 다양한 맥락과 현실이 중첩돼 있습니다. 집은 병원과 달리 죽음·질병·돌봄이 각기 다른 문제가 아닌 하나의 문제임을 폭로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법으로 반듯하게 재단된 죽음
연명의료결정법을 이끌어낸 사건으로 흔히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세브란스병원 사건을 꼽습니다. 우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존엄한 죽음을 돕는 법으로 이해하지만, 두 사건은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연명의료 결정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법으로 반듯하게 재단된 죽음은 우리를 “생의 끝자락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빼앗긴 세계”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의료인류학자인 송병기는 평범한 시민들은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은 연명의료결정법을 둘러싼 각종 쟁점을 검토합니다.
‘첨단 의료’의 정점에 있는 핵의학을 전공한 김호성은 날마다 기계와 씨름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이나 잘 죽도록 돕는 일 역시 의학이 할 일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는 삶의 방향을 호스피스 완화의료로 크게 틀어버립니다. 환자가 가진 삶의 서사가 표백된 공간에서 죽음은 '실패'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호성에게 의학은 큐어(cure)보다는 케어(care)여야 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죽음을 ‘서류화’하는 납작한 공간의 틈을 넓히기 위해 함께 이야기하자고 손 내밉니다.
책은 ‘삶과 질병’ ‘질병과 돌봄’ ‘돌봄과 죽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삶, 질병, 돌봄은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주제들이었습니다. 단정하게 구분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들도 아니었습니다. 삶을 이야기하다보면 질병이, 질병을 이야기하다보면 돌봄이, 죽음과 섞여들었습니다. 에세이, 취재기, 좌담 등 글의 형식(혹은 장르) 역시 단일하지 않습니다. 복잡성은 ‘생’이 가진 속성이기도 합니다.
질병은 죽음을 이해하는 소중한 단서입니다. ‘규칙적인 식습관, 충분한 수면, 적절한 운동’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없는 처방전입니다. 수술과 치료와 투약만으로 질병은 박멸되지 않습니다. 질병과 죽음을 둘러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질병이라는 편견과 싸우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아픈 상태로도 잘 살아갈 수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일상적인 요양공간’에 대한 상상이 시작됐습니다.
돌봄은 죽음을 해명하기 위한 증거입니다. 돌봄은 여전히 성별화되어 여성에게 전가됩니다. 환자의 죽음 가장 가까운 곳에, 늙은 여성의 노동력이 고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돌봄노동’에서 노동은 언제나 괄호 안에 갇혀 있습니다. 간병비 급여화가 수십 년째 대안으로 이야기되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간병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예방·재활·입원·간호)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이 스산한 풍경의 목격자들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죽음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은 무엇입니까.
‘죽음의 미래’를 새로 쓴다는 것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는 2020년 가을과 겨울 ‘죽음의 미래’라는 꼭지명으로 시사주간지 〈시사IN〉에 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기사에서 출발했습니다. 무엇보다 ‘존엄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죽음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사건’임을, 우리 모두 연루된 일임을 드러내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주간지 기사 분량에 맞춰 내놓는 기사로는 이야기를 충분히 담기 어려웠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이유입니다.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 간병사 등이 모인 자리로 독자를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관련 내용을 더 깊이 읽을 수 있도록 새로 쓴 내용을 대폭 포함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소’로 이 책을 사용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가 전하는 이야기에 자신의 운명을 겹쳐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이들을 많이, 계속, 오래 만나고 싶습니다.
저자의 말
김영화
“기자라는 직업의 꽤 좋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문제에 고민을 쌓아온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잘 모르는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취재할수록 ‘이거 내(가족, 친구 등등) 이야기네...’라고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병과 돌봄 문제에서는 특히요. 뚜렷한 해결책은 없지만 한가지만큼은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요.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가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호성
“내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나를 돌봐주는 의료인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봤습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말기 돌봄의 경험이 많아서 숙련된 사람이면 좋겠고요. 통증이 있을 때 적절하게 진통제를 주고 가족들과 충분한 이야기와 연명계획에 대해 대화를 해 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노인의학’의 전문가가 아닌 돌봄의 가치를 아는 의료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의료 시스템에서 그런 일을 하는 의료진을 원활히 배출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개인의 도덕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며, 그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 일입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와 함께 그 변화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나경희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내게 함께 사는 사람이 없다면 ‘노령의 나’는 누가 부축해 줄 수 있을까요. 취재를 하는 동안 다소 안심했습니다. 이 걱정을 저만 하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우리는 과연 잘 죽을 수 있을까요? ‘죽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 나눈 이야기의 결론이 책 제목이 되었습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나의 죽음을 운에만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송병기
“2년 전 일본 도쿄에서 현장연구하면서 알게 된 의료진과 학자들은 한국이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는 데 매우 놀라곤 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의 반응도 무척 궁금해 하더군요. 하지만 한국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과정은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닙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일상에서 ‘좋은 죽음’의 유의어처럼 폭넓게 사용되지만, 죽음은 그런 문서 한 장으로 결판나는 승부가 아닙니다.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를 통해 죽음과 윤리를 둘러싼 치열한 ‘사실들’을 함께 검토해보고 싶습니다.”
'55.인간과 건강 (독서>책소개) > 1.죽음.심령.사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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