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역사이야기 (독서)/1.인천이야기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2015)

동방박사님 2024. 4. 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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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껏 우리가 몰랐던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뒷이야기

적의 허를 찌른, 전사(戰史)에 길이남을 위대한 작전은
어떤 방식으로 구상되었고, 어떤 각오로 실행되었는가?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20권에 해당하는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는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전쟁영웅으로, 그러나 또 일부 반(反들) 대한민국 세력들에겐 전쟁광으로 평가받는 맥아더를 중심으로,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인 인천상륙작전을 자세히 설명한 책이다. 그간 알려져 있던 6.25남침전쟁 당시의 인천상륙작전뿐 아니라 그 전에도 인천상륙작전 계획이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맥아더는 유엔군과 국군이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동안,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만류하는 인천상륙작전을 특유의 과단성으로 밀어붙여 전황을 일거에 뒤집는 데 성공했다. 맥아더는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하늘이 내린 명장이었다.
한미관계사, 한국현대사, 한국전쟁사 등에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 중 1명으로 꼽히는 이상호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이 풍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알기 쉽게 써내려간 것이 이 책의 특징.
‘영웅사관’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을 성실성과 통찰력을 구비한 인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영웅은 성실성과 통찰력이라는 정신적 자질을 갖춘 위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칼라일은 이러한 영웅을 알아보려면 일반인 역시 성실성과 통찰력을 구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역사적 인물이라도 그 행적에 따라 공(功)과 과(過)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맥아더의 공과를 한 번 더 따져보는 것도 우리 역사를 좀 더 바로 아는 데 좋은 기준이 될 것이다.

목차

머리말 · 7
1부 제1차 인천상륙작전과 미군의 진주
1장 제2차 세계대전 종전 · 13
2장 38선 분단과 미군의 진주계획 · 19
3장 제1차 인천상륙작전 · 24
4장 하지와 주한미군 정부 · 36
5장 주한미군 철수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 42
2부 한국전쟁의 발발과 인천상륙작전의 구상
1장 한국전쟁의 발발 · 51
2장 스미스 특임대대의 초기 분전 · 60
3장 맥아더의 한강선 시찰과 크로마이트 작전 구상 · 63
4장 대작전의 발판 ━ 팔미도 정보작전 · 68
5장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준비 · 72
3부 제2차 인천상륙작전
1장 인천상륙작전의 임무와 장애 · 79
2장 인천상륙작전의 전개 · 83
3장 월미도를 넘어 인천, 그리고 서울로 · 86
4장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사전인지설과 오류 · 90
5장 인천상륙작전의 결과 · 96
4부 북진과 중국군 참전 그리고 맥아더의 해임
1장 북진 명령과 중국군 참전 · 103
2장 웨이크섬 회담과 미군의 정보 오판 · 112
3장 크리스마스 귀국작전과 후퇴 · 116
4장 미군의 후퇴와 맥아더의 확전 주장 · 123
5장 맥아더의 해임 · 129
5부 맥아더 평전
1장 맥아더의 어린 시절과 초급장교 시절 · 137
2장 제1차 세계대전과 맥아더 · 141
3장 제2차 세계대전과 맥아더 · 147
4장 한국과 맥아더 · 154
5장 사라지는 노병 · 158
참고문헌 · 161
 
저자 소개
저 : 이상호 (李相昊)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 연구원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사업을 담당했으며, 건국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강의교수, 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지금은 건국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맥아더와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책 속으로

한편으로는 ‘영원한 우상’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잔혹한 전쟁광’으로서 평가받고 있는 맥아더는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행적에 대한 공과(功過)를 통해 인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려줘야 한다. --- p.8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는 1947년 4월 29일 합동전략조사위원회(Joint Strategic Survey Committee)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대외 원조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구체화되었다. 보고서에서 남한은 대외원조의 위급성에서 18개국 가운데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이란에 이어 5번째, 원조의 중요성에서 16개국 가운데 15위로, 종합하면 16개국 가운데 13위였다. --- p.43

본격적인 작전 준비를 위해서는 우선 상륙부대의 선정이 우선시되었다. 당시 미 제7사단은 낙동강 전선에 있는 제24, 25사단에 인원이 차출되어 심각한 병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다. 따라서 8월 11일 맥아더는 워커에게 미 제7사단의 부족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군 약 7,000명을 확보하여 일본으로 보내도록 긴급 지시하였다. --- p.72

최근 중국이 발간한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서에 따르면 중국은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을 정확히 예측했다고 한다. 1950년 8월 23일 총참모부 작전실 주임 레이잉푸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에게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올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레이잉푸는 나중에 발표한 증언록에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작전을 행할 가능성을 총참모부 작전실이 정리했다고 지적했다. --- p.93

1951년 4월 9일, 맥아더의 발언에 대한 심각한 토의 끝에 미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의 해임에 대해 만장일치의 견해를 모았다. 합동참모본부 의장인 브래들리는 트루먼에게 맥아더의 해임을 공식으로 건의했다. 결국 트루먼은 합참의 건의를 받아들여 4월 11일 맥아더를 전격적으로 해임했다. --- p.133

인천상륙작전의 구상은 북한군의 모든 역량이 낙동강 전선에 집중되어 있고 인천에 대한 방어능력은 극히 미약하며 북한의 증원 또한 기대될 수 없으리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맥아더는 전략적·심리적·정치적 이유를 들어 서울을 신속히 탈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서울이 한국의 상업 중심지이고 주요 도로와 철도의 주요 교착지점이기 때문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