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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2021) - 그 사람, 성찰하는 꼰대

동방박사님 2024. 7. 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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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찰하는 꼰대 = 어른
어른 없는 시대의 어른 이야기


‘우리 시대의 어른’ 운운하는 유의 말이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어른’이라 쓰면 ‘꼰대’라고 읽히는 시절 아닌가. ‘아재’에서 ‘틀딱’까지 조롱만 면해도 다행이다 싶을 판인데, “50대 이상의 장년층”에다 “소신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좀처럼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자 “자기 경험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독백이 가득하고 자기 자랑이 넘쳐나며 ‘라때~’ 스토리도 한 보따리”인 13인과의 인터뷰집이라니. ‘어른이 없는 시대’를 ‘꼰대들의 행진’으로 메울 요량이 아닐진대, 웬 뜬금없는 책일까?

책을 열어 만나본 면면은 나이듦이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수 최백호, 이제 한국 사회도 남성학·남성운동이 있어야 한다는 오한숙희 (사)누구나 이사장, 기부와 나눔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실패 중독의 운명을 새로 개척해가는 명리학자 강헌, 실패를 권유하는 노벨상 후보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여성·시민운동이 자신을 살렸다는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 해맑은 예술후원의 수줍은 기업가 김판수 (주)호진플라텍 회장, 약육강식의 제도화만큼은 막겠다고 나선 작가 김훈, 가슴에 묻은 아들이 남긴 숙제를 감당하겠다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4.3을 알고 다시 작은 자들의 주교로 발언하는 강우일 전 제주교구장, 의료운동가의 질문지 받아든 병원사업가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내 생애 봄날은 바로 지금이라는 방송인 송해, 『샘터』제2막 도전에 나선 발행인 김성구 들이다. 한결같이 파란만장, 우여곡절, 생사기로 같은 단어들로 점철된 사연들이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위인전도, 인간승리 스토리도 아니다.

목차

│최백호│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12
아흔에는 아흔의 호흡으로 노래하면 된다

│오한숙희│
마이너리티 감수성으로 보는 세상 38
세상에 속지 않고 세상에 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 김성구│
“지금이 인생의 바닥”…금수저의 남다른 실패 62
『샘터』의 제2막에 도전하다

│김훈 │
삐딱한 수컷, 목놓아 울다 78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작가

│김미숙│
‘용균이 엄마’를 넘어 ‘노동운동가 김미숙’으로 98
가슴에 묻은 아들 위해 세상으로 나서다

│강우일 │
“못 짖는 개는 쓸모없다” 124
작은 자들의 주교

│박승│
남을 위해 산 시간이 짧았다는‘국민 경제교사’ 148
무엇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나눈다는 국민 윤리교사

│윤정숙│
나를 살린 여성?시민 운동 35년 172
때로는 싸움닭으로, 때로는 수도자로

│이왕준│
바벨탑 쌓는‘청년의사’에게 던지는 질문 196
의료운동가에서 병원사업가로 대찬 인생 변신

│김판수│
굴곡진 현대사의 상처 끌어안은‘키다리 아저씨’ 220
보이지 않는 나눔과 베풂,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사람

│강헌│
실패 중독의 운명을 조율하다 244
‘격렬’과 ‘간절’의 위태로운 ‘좌파 명리학자’

│송해│
전국~~~ 국민 의전서열 1위 268
“내 생애 봄날은 바로 지금”

│현택환│
넘치지만 지나치지 않는 성실과 자신감 284
난쟁이 세계에서 일군 거인의 삶

저자 소개

저 : 윤춘호
달리기를 좋아한다. 서울대에서 서양사를 공부했고, 1991년부터 SBS 기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며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SBS 온라인 사이트에 ‘그 사람’이란 타이틀로 연재중이다. 역사 속에서 잊히고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봉인된 역사 -대장촌의 ...

출판사 리뷰

꼰대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될 만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취를 이룬, 할말 많고 살아온 시간이 긴 사람을 가리켜 어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른의 경륜, 책임, 무게, 여유 등이 동전의 양면처럼 자기 경험에만 갇혀 키워진 고집, 유연하지 못한 사고, 고리타분하고 경직된 태도 등의 꼰대스러움과도 짝을 이루는 이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 역시 그런 양면을 모두 가진 보통의 연장자들이다. 일종의 ‘꼰대 어른’이라 해야 할까. 다만 이들이 꼰대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어른과 꼰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기 성찰의 강’을 끊임없이 오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할말 많은 꼰대들이 풀어내는 뻔할 듯한 이야기지만, 거기 보석처럼 박힌 자기 성찰의 대목대목마다 경륜과 지혜가 빛을 낸다. 도전과 성취, 영광과 상처, 수치와 깨달음까지도 진솔한 고백과 회한의 토로 속에 함께 자리한다.

강헌: “실패를 통해서 확실하게 배운 것은 실패는 처절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가 훨씬 재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p.258)

최백호: “창식이 형보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욕심은 있었습니다. 「영일만 친구」는 「고래사냥」을, 「입영전야」도 송창식 선배의 「왜 불러」를 의식하고 쓴 곡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송창식 선배가 쓴 「우리는」이란 노래 듣고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고 「사랑이야」 듣고는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했습니다.” (p.24)

오한숙희: “저는 돈을 물려주면 안 되고 사람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많은 부모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아이가 직업을 갖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주거를 해결해줘야 하니까 돈을 남겨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공동체가 있어야 산다고 믿어요. (…) 등산을 할 때 자기 배낭 자기가 메고 자기 발로 가는데 혼자 걸으면 완주를 못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걸으면 굉장히 풍족하고 만족스럽게 걸어요. 저는 제 아이에게도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주고 싶은 거예요.” (p.47)

박승: “(기부와 나눔 같은 일은)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행복,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사회에 태어난 한 자연인으로 주어진 내 몫을 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개인이나 가족의 성취는 작은 행복입니다. 남과 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할 때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의 큰 행복을 위한 일입니다.” (p.169)

인터뷰어의 매서운 말발과 통찰력 있는 글발

대개의 인터뷰집이 묻고 답하기의 대화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는 이 책이 “말하는 사람이 부르는 대로 적은 글이 아니라”며, “말하는 사람에 못지않게 듣는 사람의 시각과 목소리가 담긴 글을 쓰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자니 인터뷰이의 말은 전체 맥락 속에 필요최소한으로만 인용된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저자의 눈에 포착된 인터뷰이의 과거와 현재, 그 장면장면이 휘감아드는 글발에 실려 맛깔나게 펼쳐진다.

자유인의 냄새, 퇴폐적인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는 교주가 되기에 딱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다. 김훈의 왕국에서 그를 교주처럼 떠받들며 그의 신민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적어도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잠재적인 교도들의 존재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교주가 돼 달라는 그들의 애원을 애써 무시하던 그가 새삼 이름을 탐하거나 명예를 얻기 위해 깃발을 들고 나섰을 리는 없다. - 김훈, p.94

이 사람이 들려주는 그 무렵 영화판 이야기는 한 편의 무협소설이다. 정파와 사파의 자리에 안기부와 운동권이 있고,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장풍 대결을 대신한다. 열정은 넘치는데 돈은 없고, 정의감은 넘치지만 재능은 따르지 않던 청년 영화인들의 이야기는 무협지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그 당시를 어제 일처럼 복기해내는 이 사람 입담이 아니라면 그 시절 실상은 훨씬 찌질한 것일지도 모른다. - 강헌, p.253

강우일이 난곡에 간 것은 그때로부터도 16년 전이었으니 당시 난곡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빈곤의 현장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갈등과 모순이 가난이라는 형태로 난곡에 모여 있었다. 난곡은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악다구니 쓰는 사람들로 늘 시끄러웠고 매일 곡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싸움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피를 흘렸고 누군가는 핏대를 올렸고 누군가는 쓸쓸하게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세상을 등졌다. 난곡을 관할하는 당시 서울 남부경찰서의 사건 처리건수는 서울 시내에서 언제나 일등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나눔과 유대와 인정이 있었지만, 펄펄 끓는 삶의 현장이었기에 한 편의 지옥도 같은 풍경이 수시로 펼쳐졌다. - 강우일, p.127

한때는 수다가 최고의 무기였던 사람이고 수다의 명예회복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많은 것을 포기한 이 사람의 생각은 달관과 체념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도 싶었는데,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의 시선이 아득히 먼 곳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 오한숙희, p.61

내가 주역이 되면 세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할 때, 세상이 변한 줄로 알았는데 그리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니 진료실에서 평생을 보낸 아버지의 삶이 이해가 된다는 말을 할 때 이왕준은 나이 들어 보였다. 코로나 이후야말로 진정한 21세기의 시작이라며 병원을 플랫폼으로 한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할 때, 바이오 혁명에 대해서라면 10시간을 말해도 부족하다고 말할 때 그는 여전히 청년이고 혁명가였다. - 이왕준, p.218

물론 이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는 건 인터뷰어의 가차 없이 내리꽂히는, 이를테면 발행인 김성구를 향해 “샘터가 맞고 있는 위기의 원인이 물론 밖에도 있겠지만 본인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발행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생각은 안 했습니까?”와 같은 맵싸한 질문들이다.

없는 게 아니라 보려 하지 않아 없는 것?

‘세대 갈등’이 팩트인 양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 그리하여 청년들에게 어른이 안 보이게 된 건 어른에게도 청년에게도 비극이다. 어쩌면 어른은 없다기보다는 보려 하지 않아서 없는 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나이 먹은 꼰대로서의 정체성에 짓눌리면서도 남은 생을 끊임없이 자기를, 경험을, 세월을 되짚어 성찰하며 미래에 기여할 바를 찾는 이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저자로 하여금 이들 꼰대 어른들과의 만남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게 만들었으리라.

이 책은 어른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꼰대들의 이야기다. 때론 어른으로, 때론 꼰대로 둘 사이를 오가는 삶이 아마도 이들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열세 번의 만남을 통해 어른과 꼰대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성찰’ 두 글자에 있을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그 성찰의 아름다움을 함께 공감하고 싶다. 경험, 책임, 무게, 배려 같은 느낌을 주는 어른 본래의 모습을 만난 순간도 함께 나누고 싶다. - 저자,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