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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대하여 (2024)

동방박사님 2024. 7. 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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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온 우리 안의 ‘욕망’
욕망에 관한 인문학의 질문들

‘욕망’은 오랫동안 부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었기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신장된 현대 사회에서 욕망은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다양한 양상으로 분출되고 있다. 욕망은 속삭인다. “인간은 가진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내가 무엇을 욕망하느냐가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말해준다면, 우리의 욕망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온 동력이 아닐까?

욕망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싶게 하고, 이미 가진 것은 더 갖고 싶게 한다. 욕망은 없애거나 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금욕주의가 가져온 결과는 늘 불행했다. 그렇다고 욕망을 마냥 분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더구나, 거대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지금, 아니, 기후변화와 불평등 심화 등 성장보다 먼저 생존을 생각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도무지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욕망에 대해 좀 더 본격적이고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욕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다루지 못한다면 거대한 실패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도 인간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고, AI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지식이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담론의 주제를 선정해 매해 우리 곁을 찾아오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의 ‘인문학 공동연구 총서’. 이번에는 ‘욕망’에 대하여 말한다.

목차

발간사 / 강창우
서설: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 이강재

제1부 욕망의 변주, 소유 혹은 사랑

1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 한국인 자동차 소유 욕망의 전개와 한계 / 고태우
2 프쉬케와 쿠피도의 사랑 이야기: 즐거움의 탄생 / 안재원
3 불가능한 기원: 입양 서사와 친족의 욕망들 / 김정하
4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욕망: 운영·춘향·초옥의 사랑 / 정길수

제2부 욕망이 남긴 삶의 여적

5 삼세기영지가의 영예: 강세황의 명예에 대한 열망 / 장진성
6 소설 『요재지이』에 투영된 여우와 귀신의 심상한 욕망 / 김월회
7 16세기 일본 무사의 고명이라는 욕망 / 박수철
8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속 욕망의 궤적 :프로이트에서 라캉까지 / 임호준
9 스탈린 시대 소련 공산당원의 욕망 / 노경덕

제3부 욕망으로 철학하기

10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들 / 윤비
11 플라톤과 욕망의 다면성 / 강성훈
12 푸코 철학의 실용성: 성적 욕망의 계보학을 넘어서 / 도승연
13 공맹이 사유한 리더의 공적 욕망과 사적 욕망 / 이강재

책 속으로

지난 세기 한국은 미군이 남긴 지프를 두드려 자동차를 만들다가, 이제 연간 300만 대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이와 함께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50년 전 10만 대 수준에서 현재 2,500만 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자동차 소유는 생산, 소비와 연관되며, 자동차를 둘러싼 각종 제도와 이해관계, 권력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핵심 사안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자동차 환경이 변화한 한국 사회에 담긴 자동차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현대 사회의 위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 한국인 자동차 소유 욕망의 전개와 한계」 중에서

왜 우리는 사랑의 욕망이 지닌 순수함과 진실함,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범위를 넓히며 체제 너머를 상상하게 했던, 사랑의 폭발적인 힘을 긍정하다가, ‘초옥의 사랑’에 이르러서는 긍정하기를 주저하게 되는가? 초옥 역시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우리는 초옥의 사랑을 당당히 지지하지 못하는가? 새로운 사랑을 위해, 이전에 맺은 ‘사랑의 약속’, 또는 부부간의 신의를 저버렸기 때문일까? 앞서 「운영전」과 「춘향전」의 사랑에서 자유와 인간의 가치를 읽으며 사랑을 예찬하던 우리는 「포의교집」의 사랑에 이르러 사랑과 자유의 허용 범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욕망: 운영ㆍ춘향ㆍ초옥의 사랑」 중에서

〈자화상〉은 자신의 일생을 그림으로 드러낸 세계 초상화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강세황은 평상복인 야복 차림에 관모인 사모(紗帽)를 쓴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사모를 쓸 경우 관복을 입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강세황은 야복(野服)을 입고 사모를 쓰고 있다. 왜 강세황은 이러한 특이한 자화상을 남긴 것일까? (…) 만 권의 책을 읽어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문장과 서화에 능해 세상을 뒤흔들 만한 재주를 지녔지만 그는 60년간 야인으로 무명 생활을 하였다. 그 누구도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아 주는 이가 없었다. (…) 이 그림을 통해 그는 ‘결국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 강세황이 누구인지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 「삼세기영지가의 영예: 강세황의 명예에 대한 열망」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수는 통제하지 못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 많은 이타심이 이 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그 아래에는 과거로부터 성장해 온 금욕주의적 사고의 전통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정치 사회적 문제를 더 가지고 누리려 하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환원시키고 ‘회개하라’라는 식의 도덕론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런 도덕론은 현대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대 사회와 국가는 최초 금욕주의가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원리로 등장할 때와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도외시하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이기심이냐 이타심이냐 차원에서 접근하기에는 현대 사회와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이 이미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들」 중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필요 없는 것들을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불법적인 것들을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좋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우리 안에 있는 좋음에 대한 생각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과 설득 등의 상호 작용이나 외부적 영향에 의해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좋음에 대한 생각의 이 모든 복잡함과 다면성은 바로 우리가 갖는 욕망의 복잡함과 다면성의 다른 모습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성과 다면성 속에서 우리가 어떤 욕망들을 갖는지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며, 우리가 좋은 삶을 살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게 된다.
--- 「플라톤과 욕망의 다면성」 중에서

현대 사회에서 범법자인 부친을 업고 도망가서 숨어 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는 전통 사회라고 해도 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맹자의 주장은 공적 영역과 사적 욕망이 충돌할 때의 자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공적인 정의를 사적인 관계 때문에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더라고 해도 가족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리더는 순임금처럼 자기 가족의 잘못에 대해 사직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법률을 악용해서 가족을 지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맹자는 강조한다. 사적인 관계인 가족을 지키는 것이 결국 공적인 영역에서 누군가 타인의 억울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맹자는 사적인 욕망을 인정하되 그것이 공적인 역할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사적 욕망을 공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 「공맹이 사유한 리더의 공적 욕망과 사적 욕망」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서울대학교 ‘인문학 공동연구 총서’
이번에는 욕망을 말하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2019년부터 매년 이 시대의 한 가지 화두를 주제로 선정하여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다. 매년 10월이면 인문대학 내 여러 학과의 교수가 한 자리에 모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아직 여물지 않은 그 연구를 교수들은 겨울 동안 이렇게 저렇게 붙들고 있다가 다음 해 봄까지 하나의 완결된 원고로 완성한다. 그리고 그해 여름, 드디어 탐스러운 연구의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나온다. 깊은 숲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짙은 초록색 양장 커버를 두르고서 우리 곁을 찾아온 이번 인문학 공동연구 총서 『욕망에 대하여』는 바로 그 연구의 결실이다. 초록색 커버는 마치 생명의 숨처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이번 책에서는 다양한 대상으로 변주된 욕망을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이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욕망은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책은 욕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진정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욕망의 변주, 소유 혹은 사랑

1부에서는 소유욕과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변주된 욕망에 대하여 말한다. 1장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고태우 교수가 한국인의 자동차 소유 욕망을 다룬다. 한국은 “미군이 남긴 지프를 두드려 자동차를 만들다가, 이제 연간 300만 대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우리 사회를 이 지점으로 빠르게 옮겨 놓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마이카’에 대한 욕망이다. 그렇다면 마이카에 대한 우리의 담론은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난 걸까? 1994년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가 사치품이냐 필수품이냐’라는 물음에 전체 14.8%가 ‘사치품’, 75.8%는 ‘생활필수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끝난 것 같았던 ‘자동차가 사치품이냐 생활필수품이냐’의 질문은 기후변화 등 생태 위기를 직면한 지금, 탈탄소 체제로의 전환에서 새로운 쟁점이 되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고태우 교수는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 앞에는 파국의 길과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로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 방향키는 자동차에 대한 집단적 욕망을 어떻게 대체하느냐에 달렸다. 고태우 교수의 연구는 마이카에 대한 욕망을 두고 불평등의 문제와 과시적 소비 현상, 기후변화까지 논하면서 인문학 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장 「프쉬케와 쿠피도의 사랑 이야기」에서는 안재원 교수가 프쉬케의 과감하고도 위험천만한 욕망에 대해 들려준다. 쿠피도가 쏜 화살에 맞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화살에 자기 엄지를 찔러서 사랑에 빠진 프쉬케의 이야기는 왠지 현실 세계에 대입해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저자는 프쉬케의 이야기에서 ‘욕망 밖에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욕망을 뛰어넘어야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욕망을 뛰어넘은 곳에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욕망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욕망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3장 「불가능한 기원」에서 김정하 교수는 친족의 기원을 찾는 ‘입양 서사’로 욕망에 대해 말한다. 미국에 입양된 디앤 볼셰이 리엠은 영화감독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 나선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감독은 친부모를 찾고 자기 안의 상실을 채우려고 하지만 친어머니를 만난다고 해도 “상실이라는 이름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이 과정에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연결하고, 상실이라는 욕망을 좇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로 이어진다.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언뜻 끊임없는 반복의 굴레로 인간을 지치게 하는 일일 것 같지만, 그 과정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이 글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중간이라는 요동이 서사적 진실, 나아가 서사라는 삶의 진실일지 모른다.”(125쪽) 4장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욕망」에서는 정길수 교수가 한국의 고전소설에 나타난 청춘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욕망의 문제를 다룬다. 「운영전」의 궁녀 운영, 「춘향전」의 기생 춘향, 「포의교집」의 행랑 새댁 초옥은 모두 신분 등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다. 작품 안에서 이들의 사랑은 처음에는 오해로 비롯된 해프닝, 또는 허영심의 발로로 보여진다. 그러나 사랑의 욕망이 지닌 순수함과 진실함은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범위를 넓히면서 독자로 하여금 체제 너머를 상상하게 한다고 이 글은 말하고 있다.

욕망이 남긴 삶의 여적

2부에서는 욕망이 남긴 것들을 돌아본다. 5장 「삼세기영지가의 영예」는 역모 사건에 친형과 장인이 억울하게 연루되면서 60년 동안 벼슬 없는 야인으로 살아야 했던 강세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강세황은 평생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어 우울증과 좌절감으로 고통받았지만,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을 져버리지 않았고, 「표옹자지」를 써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비범함을 알리고자 하였다. 무명의 재야 문인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지만, 그는 끝내 벼슬을 하게 되고 초고속 승진하여 일종의 명예의 전당인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게 됐다. 그의 호는 노죽(露竹), ‘이슬을 머금은 대나무’라는 의미다. 장진성 교수는 “차가운 공기가 사방을 뒤덮은 새벽, 이슬이 대나무에 맺혀도 대나무는 결코 휘지 않는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대나무처럼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도 강세황은 그 험난한 세월을 묵묵히 견뎠다.”(190쪽)라고 말한다. 욕망은 어쩌면 뜨겁고 들끓는 성질의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푸른 빛의 대나무처럼 고고하게 우리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강세황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듯하다.

6장 「소설 『요재지이』에 투영된 여우와 귀신의 심상한 욕망」에서는 여우-귀신 서사를 통해 한층 다채로운 인간 욕망의 실제를 다룬다. 김월회 교수는 인간의 욕망과 비교할 때 소설 속 여우와 귀신의 욕망이 권력 지향적이지 않다는 점, 소시민적 욕망에 만족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이 아닌 이들 주인공은 세속적 부귀영화의 추구를 비웃고 혐오하기도 하며,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남의 원한을 사서는 안 된다는 오묘한 이치를 깨닫기도 한다. 현실 속 우리가 특별히 욕망하지 않는 욕망의 대상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여우-귀신 서사는 제공하고 있다. 7장 「16세기 일본 무사의 고명이라는 욕망」에서 박수철 교수는 16세기 일본 사회의 지배층이라 할 무사에게서 볼 수 있었던 ‘고명(高名)’이라는 명예욕을 다룬다. 고명은 전쟁터에 나가 이름을 떨치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당시 일본인에게 고명은 단순히 명예라는 무형의 추상적 가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귀라는 실질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 글은 고명이라는 욕망을 통해 당시 조선과 달랐던 일본 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8장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속 욕망의 궤적」에서 임호준 교수는 스페인 영화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작품으로 욕망을 다룬다. 부뉴엘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욕망이다. 부뉴엘은 서구 문명이 욕망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신경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을 그는 영화에서 일그러진 형태로 표출되는 도착적인 욕망으로 표현했다. 영화에서는 욕망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주인공이 욕망하는 여자 배역을 두 명의 여배우가 연기하게 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서로 다르게 생긴 두 명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원한다는 것은 그의 욕망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9장 「스탈린 시대 소련 공산당원의 욕망」에서 노경덕 교수는 소련 역사 연구의 주요 패러다임이 바라보는 공산당원의 욕망 문제를 다룬다. 전체주의, 수정주의, 푸코주의, 신전통주의가 공산당원의 욕망을 서로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주의론자들은 공산당원의 개성과 개인적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오히려 바라보는 그 당사자의 욕망이 발견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욕망으로 철학하기

3부에서는 욕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10장 「서양 정치사상사에서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들」에서 윤비 교수는 전근대 서양 정치사상에 끼친 금욕주의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여전히 금욕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에도 금욕주의적 정치관이 시민들의 도덕 윤리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제도적인 결함을 놓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갖고 쓰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적게 소비하고 (더 쉬고 즐기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더 많이 일해야 부유해지고 사회와 국가가 발전한다는 생각이 일방적으로 강조될 경우 복지나 생활 수준 개선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어렵게 된다.”(332쪽)라고 윤비 교수는 말하고 있다.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면, 금욕주의 역시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생각하게 한다.
11장 「플라톤과 욕망의 다면성」에서 강성훈 교수는 우리를 혼돈 속으로 데리고 가는데, 바로 좋음에 대한 표면적 믿음과 실제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다.
욕망은 좋음에 대한 생각과 긴밀한 관계가 있고, X를 욕망하는 것은 X를 좋아하는 것, X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사실에는 별로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X가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X에 대한 특별한 욕망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꾸로, X가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X를 욕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344쪽)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실제로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영향에 의해 좋다고 믿어지는 것일까? ‘좋다’라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느낌 혹은 생각조차 이토록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욕망들을 갖는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며, 우리가 ‘좋은’ 삶을 살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게 된다고 이 글은 말하고 있다.

12장 「푸코 철학의 실용성」에서 도승연 교수는 “철학의 실용성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경제적이거나 도구적 관점이 아닌 삶을 분투하게 하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도구의 가능성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인가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과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한계를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사유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395쪽)라고 말하는 이 글은 철학의 실용성에 관한 질문으로 욕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3장 「공맹이 사유한 리더의 공적 욕망과 사적 욕망」에서 이강재 교수는 공자와 맹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와 『맹자』를 중심으로 리더의 욕망에 대해 다룬다. 공맹 사상에서는 사적인 욕망을 인정하되 그것이 공적인 역할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단, 공맹 사상은 기본적으로 욕망의 절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욕망을 절제해야 함을 주장한다기보다 리더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정치사상의 측면이 강하다고 이강재 교수는 말한다.

이 글의 말미에서 소개하는 그림 〈계탐도〉에는 세상의 온갖 귀한 물건을 다 가지려고 하는 ‘탐’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설상의 동물이 등장한다. 이 그림에는, 탐이 하늘의 태양까지 갖고자 달려들었다가 끝내 타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만물을 생장하게 하지만 오래 바라보는 것으로도 눈을 멀게 하는 태양이라는 존재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지금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토록 모순적인 욕망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