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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바꾼 세계사 (2023) - 석궁에서 수소폭탄까지

동방박사님 2024. 7. 2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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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기원전의 전쟁부터 1970년대의 핵 냉전 시기까지 전쟁에서 무기 체계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세계사의 변화 속에서 과학 기술과 사람, 산업과 함께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

이 책은 기원전의 전쟁부터 1970년대의 핵 냉전 시기까지 전쟁에서 무기 체계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세계사의 변화 속에서 과학 기술과 사람, 산업과 함께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무기 발달사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책이지만 1970년대 초반 냉전의 절정기까지만 다루고 있다. 이미 50여 년이나 지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브로디 부부가 이 책을 집필하고 나서 세계는 급변했다. 이 책에서도 다룬 바 있는 베트남 전쟁은 미군의 철수와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끝났고, 1980년대에는 냉전이 절정기를 맞으면서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는 SDI(전략방위구상, 1983년)가 등장하게 된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서방과 소련 간의 냉전은, 사회주의 국가의 한 축이었던 중국이 덩샤오핑의 집권 이후 1978년 12월부터 국내 체제의 개혁 및 대외 개방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붕괴하면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살상을 좋아하는 인류는 전쟁을 멈춘 적이 없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전쟁마다 새로운 양상이 보이고 있다. 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꾼다. 어찌 보면 세계사는 무기의 발달로 움직여졌다고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전쟁이 계속되는 한 무기는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누가 어느 시기에 집필하든 이 책의 주제는 완결될 수 없고 항상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역자 김승규는 공군 장교로서 전쟁의 억제와 승리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던 석사과정 시절 이 책을 읽으면서 군 간부들과 밀리터리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역사와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흥미롭고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현업 복귀와 전역, 민간 항공에서의 커리어 수행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잊고 살다가 뒤늦게 번역을 시작했다. 원서에는 각주가 전혀 없다. 그런데 서양사와 무기 체계에 정통하지 않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역자는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1천여 개의 주석을 추가했다. 이 책이, 독자들이 전쟁과 무기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는 역자의 섬세한 열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목차

추천사
서문
제1장 고대古代
제2장 중세中世
제3장 화약의 충격
제4장 17세기의 전쟁과 과학
제5장 18세기와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
제6장 19세기
제7장 제1차 세계대전, 과학의 사용과 미사용
제8장 제2차 세계대전
제9장 핵 혁명
제10장 작전과 체계 분석, 전략적 선택의 과학
제11장 최근의 무기 체계 변화(1962~1972)

저자 소개

저 : 버나드 브로디 (Bernard Brodie)
버나드 브로디 UCLA 교수는 핵전략의 기초를 수립한 ‘미국의 클라우제비츠’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군사전략가입니다. 그는 핵무기 발명 이후 이 무기의 가치와 역할을 확정하는 데 기여하고, 핵 억제 전략을 최초로 수립한 인물입니다. 그는 대소련 강경파로서, 강력한 정부의 핵무장을 통한 세계 평화가 그의 논지의 핵심입니다. 그의 주요 저서는 모두 군비 증강에 관련한 것으로 Sea Power in the Machine...
 
저 : 폰 브로디 (Fawn McKay Brodie()
공저자인 폰 브로디 UCLA 교수는 버나드 브로디의 아내로서 미국 전기 작가이자 UCLA 최초의 여성 역사 교수 중 한 명입니다. 대표작에는 Thomas Jefferson: An Intimate History(1974), a work of?psychobiography, and?No Man Knows My History(1945), an early biography of?Joseph Smith, the founde...
 
역 : 김승규
1991년 공군사관학교 제39기 졸업.
한국공군 전자전 초급/고급과정 수료.
미공군 전자전참모과정 수료.
국방대학교 안전보장학(군사전략) 석사.
공군작전사령부 작참부 전자전훈련 담당관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처 종심작전과 공중작전장교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처 조정통제과장(대리)
공군 F-5E/F 교관 조종사(총 비행시간 1,800시간)
민간항공 기장(B-737, B-777)

책 속으로

그리스는 기원전 424년에 델리엄을 공격할 때에 유황 향을 이용한 가스 공격을 하였다. 물론 선사시대에도 사용했을 만큼 단순한 가연성 물질인 불화살, 끓는 기름 솥, 석유 등을 사용하였다. 액체로 된 화염은 아시리아인들의 부조 양각bas-relief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야금술에 관계된 것을 제외하고 최근까지 화학 분야에 있어서의 과학은 거의 명맥만 유지되는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1600년대 유럽에서 사용된 화약을 제조하는 화학 공식이나 1860년에 미국에서 사용되었던 것들은 모두, 중국인들이 1232년에 타타르족과의 전투 시 원시적인 로켓에 사용하였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22

아시리아인들은 요새화된 도시를 건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공격하여 파괴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기원전 10세기경, 그들은 이미 기동성 있는 군대를 훈련하였고, 바퀴가 달리고 전면은 금속판으로 보호되는 나무로 만든 탑에 연결되어 성벽을 파괴하도록 만든 공성 추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바빌로니아인들은 공성추 끝에 금속을 입힌 거대한 창을 바퀴에 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기원전 8세기의 웃시야Uzziah 왕은 “탑 위에서나 혹은 성채의 보루 위에서 화살과 거대한 돌을 동시에 쏘아댈 수 있는” 장치를 한 투석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p.30

서유럽에서는 봉건제도가 점차로 확산되면서 전투는 완전히 국지전화되었다. 전투는 그들이 모시는 기사의 운명을 따라가는 종자들의 시중을 받는 중장갑을 한 창기병에 의해 수행되었다. 창과 활로 무장한 보병들은 일반적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무장하고 전투를 벌이는 전장에서 중요한 역할은 모두 기사들이나 잠재적 기사들에게 부여되었다. 패배한 보병 병사들은 승리한 적에 의해 사지가 절단되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기사들은 그들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인질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처럼 몸값을 요구하는 방법은 전쟁의 명분과 전술에 모두 영향을 미쳐 중세 전쟁의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다. 시어도어 롭은 당시 상황을,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보복당할 수 있는 죽은 사람보다는 몸값을 챙길 수 있는 산 사람을 선호하였다”라고 전한다.
--- p.45

아랍인들은 ‘도가니 강鋼’을 만드는 비법을 인도인들로부터 배웠고, 다마스커스와 톨레도에 야금술센터를 건립하였다. 이 도시에서 제작된 것은 ‘다마스크 강철 damascene’이라 불리며 금속 면에 금은을 상감해 넣은 물결 모양의 기법으로 아직도 유명하다. 알-킨디는 전쟁용 철과 강철 생산에 대한 처리 방법을 시리즈물로 발간하였다. 아랍인들은 풍차를 개발하였고, 십자군 원정 시 이 발명품들은 유럽인들의 눈에 띄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아랍인들은, 지중해와 인도양에서 유럽인들이 단지 호기심으로 바라보기만 하였던 나침반을 제작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 p.53

해군에서는 전함과 돛대, 깃발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17세기 중엽까지 함대의 기함들은 양각을 하고 금박과 화려한 색칠을 해서 장식을 하였다. 축성술도 공략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아름답게 설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검객들은 자신의 무기에 사용되는 철의 품질뿐만 아니라 손잡이에 우아한 장식을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중重갑옷은 17세기까지 설계되었으며 부분적으로 화승총musket의 화력에 대한 필사적인 방어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장갑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쌌으며 그것으로 신분을 나타냈다. 그래서 귀족들은 《돈키호테》가 출판된 이후에도 갑옷을 버리기 싫어하였다.
--- p.65
첫 번째 ‘대포’는 아마도 아랍인인 매드파Madfaa가 나무로 된 깊은 사발에 화약을 넣고 폭발시켜 포구 끝에 올려진 대포알을 발사시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인들은 포-드-페Pot-de-Fer로 이 대포를 발전시켰는데, 이 대포의 최초 설계도는 1326년 발견되었으며, 지금은 옥스퍼드의 예수교회에 보관 중인 채색 사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대포는 에드워드 3세가 1327년 스코틀랜드에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포-드-페는 초석과 유황이 섞여 있는 철제 용기인데, 목 부분을 가죽으로 동여맨 철 화살을 집어넣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새빨갛게 달구어진 철사가 바닥에서 점화구까지 연결되어 폭발시키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 p.69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는 매우 조악한 대포들을 성벽에 설치했는데, 발사 반동에 의하여 성벽이 약해지거나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면 공격에 두 번 실패하고 소수의 투르크 병사만이 성문 방어에 취약한 후방으로 공격했다. 그 병사들은 결국 전사했지만 도시의 방어자들에게 공황을 가져다주기엔 충분하였다. 문란하기로 유명한 모하메드는 자신의 공격부대를 다그쳐가며 세 번째의 공격을 시도하였으며 마침내 성공하였다. 콘스탄틴은 전사했지만 투르크인들은 2,000여 명의 주민을 학살하고 도시 인구 10만 명 중 6만 명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 p.74

17세기 말의 전쟁은 17세기 초의 전쟁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다. 30년 전쟁(1616?1648)은 ‘공동 사회의 충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루이 14세에 의하여 세기말에 치러진 전쟁은 육상과 해상에서 복잡한 계급 조직에 의하여 통제되는 훈련된 군대와 개량된 화약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 기술이 발전된 이유가 계속된 전투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30년전쟁의 끔찍한 파괴로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황폐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과정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진정한 무기 발달의 진보에 영향을 준 것인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 p.122

17세기 초반에는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총의 개량 활동이 계속되었다. 처음에 성공적으로 제작된 강선총(독일어로 riffeln에서 groove까지를 포함)은 비엔나의 총기 제작자인 가스파드 콜레르Goapard Koller나 뉘른베르크의 병기업자 아구스트 코터August Kotter에 의해 발명되었다. 홈강선이 있는 이 총은 원래 1400년대 말에 등장했으나, 이 홈들은 총알에 회전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약의 재를 저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새로운 강선총은 마침내 총이 매우 정교한 무기로서 제작될 수 있는 원리를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 p.130

미국 독립전쟁 당시 그는 직접 함장으로 임명되었고, 자신이 개발한 잠수함으로 뉴욕 외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 호위함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에 참가했다. 부쉬넬의 잠수함은 한 명이 탑승할 수 있었는데, 방향타Rudder와 손으로 작동되는 두 개의 스크루를 이용해 기동하였다. 이 스크루들은 각각 수직과 수평 기동을 위한 것이었다. 물탱크에 물을 채워 잠수하게 했고, 아래 방향으로의 이동은 수직 스크루에 의해 이루어졌다.
--- p.205

기뢰를 이용한 해전이 영국 해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본 사람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후에 세인트 빈센트 백작이자 해군성 장관이 된 저비스 제독은 “피트는 제해권을 가진 자가 이상한 형태의 전쟁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결국 그 이상한 형태의 전쟁에 의해서 제해권을 빼앗기는 결과가 나타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라고 비난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장교 대부분이 잠수함에 의한 기뢰 공격은 신사답지 못하고 비도덕적이며 전쟁법에 배치된다고 믿었던 것은 당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 p.208

화학은 19세기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대부분의 새로운 발견이 군사 기술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중요한 것은 화학 원소와 화합물의 분리 및 식별이었다. 영국의 전기 화학 선구자인 험프리 데이비 경은 세기 초에 칼륨과 나트륨을 분리하여 염소가 원소임을 입증했다.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존 돌턴은 데모크리토스의 주장과 같이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세분화할 수 없는 궁극적인 입자라고 믿으며 최초의 원자량 표(주기율 표)를 만들었다. 원자 하나의 발견은 1860년까지 원자량 표(주기율 표)에 60개의 원자가 번호를 매길 때까지 다른 발견을 자극했다.
--- p.225

세기 초 프랑스 화학자들 사이의 흥분은 영국의 상황과 현저한 대조를 이뤘으며, 나중에 캘빈 경이 된 젊고 훌륭한 스코틀랜드 화학자 윌리엄 톰슨은 프랑스로 가서 레그노Regnault와 함께 공부했다. 그는 후에 글래스고대학교로 돌아와서 모국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특별한 자극을 주었다. 그의 연구는 과학 연구에 자신의 삶을 바친 영국 양조업자인 제임스 프레스콧의 연구와 함께 열역학에 보편적 이론을 받아들이는 기본을 제공했다.
--- p.233

이후 모든 전쟁에서 기뢰와 어뢰가 운용되었다. 최초의 진정한 자동 어뢰는 오스트리아 피우메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버트 화이트헤드라는 사람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이 어뢰는 오스트리아가 구입했으며 1873년에는 다른 나라들의 해군이 이 무기를 채택하였다. 이 어뢰가 현대 어뢰의 원형이다. 유압 밸브와 진자추로 균형을 맞추면서 항주 수심이 조절되며, 압축 공기로 작동하는 소형 왕복 엔진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후에 자이로스코프가 개발되어 방향타를 조정하여 방향 정확도가 엄청나게 좋아졌다.
--- p.312

기뢰도 잠수함처럼 공격과 방어 양면에 모두 사용되었다. 기뢰는 연합국을 다르다넬스Dardanelles에, 독일을 리가에 봉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발트해에서 기뢰를 운용한 독일군이 우월한 전력으로 러시아의 해군력을 견제하고, 북해에 전투 함대를 집중할 수 있었다. 영국은 독일의 전투 함대보다 우월한 전력으로 도버 해협에 근접하는 것을 보조하기 위해 기뢰를 운용하였으며, 이로써 영국 대양 함대는 오크니Orkneys에서 공세적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 p.360

6개월 이내에, 하버와 베를린대학의 화학 교수인 발터 네른스트는 염소가스 공격을 위한 물질을 준비했고 만족스러운 방독면을 고안했다. 하버는 1916년에 화학전 부대의 수장이 되었고, 그 후로 전장에서의 탐지, 공급, 개인 훈련을 지도하였다. 그의 기관은 1917년에 겨자가스를 도입하였고 수백 종의 다른 물질을 실험하였다.
--- p.373

장거리 해군 대공 방어 체계는 5in(127mm)와 6in(152mm) 양용 반자동 함포로, 발사할 때마다 재장전해야 하지만, 발사 후 재장전을 위해 발사한 탄피를 배출하는 동안 표적을 조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숙달된 승무원들의 경우 5in 함포를 분당 20발의 속도로 쉽게 발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빌리 미첼Billy Mitchell 장군과 귤리오 듀에Guilio Douhet 장군과 같은 사람들이 20세기 초에 비웃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대공포 및 조준 시스템이었다.
--- p.413

제1차 세계대전의 말기에 영국은 수정quartz crystal의 압전 효과를 이용한 아스딕ASDIC, Anti-Submarine Defense Investigation Committee, 대잠방어연구위원회이라 불리는 음향 장치를 개발하였다. 수정판이 고주파에서 전기적으로 진동이 잘될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알려져 온 사실이었다. 따라서 고주파로 천음속trans-sonic 또는 비가청대역의 음파를 생산하면 공기와 물속 모두에서 매우 높은 지향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음파는 마음대로 어떤 방향으로든 보낼 수 있고 딱딱한 표면에서 반사되어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 반사파는 동조 장치로 탐지할 수 있다. 발신파와 수신파 간의 시간 차이는 반사체와의 거리를 지시하는 것이다.
--- p.416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때 다음 발견의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화학자 프랜시스 애스턴이 이미 1922년에 인류에게 “성난 원자를 조작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을 상기했다.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핵분열의 실용화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동료 중 일부는 다음 발견이 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성문의 마지막 빗장이 푸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다. 이들 중 으뜸가는 사람은 이제 미국에 도착한 레오 실라르드Leo S?ilard였다.
--- p.457

실라르드 그룹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연락하여 자신들의 일에 협력하도록 요청하자고 했다. 그의 위대한 이름이 미국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말에 무게를 실어줄 뿐만 아니라 그가 과학자라기보다는 예술가라는 고도로 재능 있는 사람들의 그룹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모후母后는 아인슈타인에게 특히 우호적이었고 벨기에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 광산 말고 당시 알려진 유일한 우라늄 광산이 있던 콩고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다.
--- p.462

열핵폭탄은 1952~1953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 전체 중량이 크게 감소하여 이제는 더 작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에도 탑재할 수 있다. 핵무기의 기본 핵분열 물질이 매우 안정적이거나 ‘반감기’가 길다는 뜻, 그 물질이 약간의 방사능에 의해 수년에 걸쳐 ‘오염’된 후 화학적으로 쉽게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에 초기의 소수의 핵무기만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축량의 점진적인 증가는 핵무기를 여유있게 보유하고 이 보유분으로 적절한 시기에 군사 작전 계획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특정한 주목할 만한 사건이나 발전으로 인해 이 과정이 크게 앞당겨졌다.
--- p.489

어쨌든 우리는 역사적 기록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기록한다. 그것은 원자폭탄의 전략적 영향에 대한 누군가의 추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처음에 합리적인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사용될 미래의 전쟁에서 전략적 영향이 막대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아마도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의 사용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가능한 가장 확실하고 냉정한 방법으로 핵무기의 놀라운 파괴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 p.492

오늘날 강대국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력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필수 전력 중 하나로, 전쟁을 억제하는 데 성공하거나 적이 반격을 하기 전에 적을 격멸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공격적인 타격력이다. 후자는 적대 관계의 한쪽이 보복 전력을 확보하지 않은 경우에만 달성할 수 있다. 일방 또는 쌍방이 필수적이며 값비싼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지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한쪽은 일부 사람들처럼 ‘전쟁을 종결짓는’ 열핵 무기에 대해 거의 말할 수가 없다. 반대로,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열핵무기는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경향 또한 있다.
--- p.50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 복무 중 적절한 훈련을 받은 민간인 및 군인뿐만 아니라 랜드연구소와 같은 조직들은 특히 무기 체계 간의 선택과 관련된 수많은 문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시스템 분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관련자들은 그들이 조사하고 있는 모든 무기 체계의 최신 기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다양한 계약자의 전망과 약속을 독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했다.
--- p.510

추천평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무기 체계의 혁명적인 진보를 이끌어냈습니다. 첨단 무기 체계들은 전쟁의 ‘마찰과 안개’와 같은 제한 요소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클라우제비츠가 언급한 ‘군사적 천재’의 존재 못지않게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습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투석기로부터 인류의 최종 병기라 할 수 있는 핵과 탄도미사일까지, 무기 체계 발전의 역사를 총망라하면서 인류 전쟁의 변혁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군의 지휘관과 참모에게는 무기 체계의 진화와 그로 인해 펼쳐질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학술적 측면에서도 전쟁 연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군이 ‘국방혁신4.0’을 통해 과학 기술 중심의 강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기에 『석궁에서 수소폭탄까지』의 발간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무기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입니다. 아울러 국방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군의 관계관들에게도 국방혁신 추진에 필요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일독을 권합니다.
- 윤병호 (공군사관학교 교장, 공군 중장)
김승규 대한항공 기장이 미국 랜드연구소 출신 버나드 브로디와 그의 부인 폰 브로디의 대작인 『석궁에서 수소폭탄까지 From Crossbow to H-Bomb』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첫째는 김승규 기장이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한글로 완판 번역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1988년에 미국 랜드연구소에서 안보정책학 박사과정 때 공부하였던 미국 핵전략의 아버지로 불리는 브로디의 책은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에 매우 어려운 책이고 이 분야를 오래 공부한 교수도 번역하기 힘든 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말이다. 둘째는 김 기장이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래 책에도 없는 각주를 1,095개나 찾아서 정성스럽게 달아놓았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김승규 기장이 왜 이 책을 번역하려고 마음먹었으며, 이 책을 번역할 만큼 실력과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공군 장교로서 군사적으로 필요한 기본 지식을 갖추었으나, 군사 전략과 무기 체계의 상관성을 더 공부하고자 공군 소령 때에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중령으로 현역을 제대하고 민간 항공사에 취업한 후에도, 본업에서 시간을 쪼개어 군사 분야 원서를 지속적으로 탐독했으며, 때때로 우리 사회의 군사 분야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지식과 정보, 판단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SNS 활동을 해 오면서 그의 군사 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 왔다고 한다.

현대전은 총력전이고 전후방을 구별할 수 없으며, 특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 국민의 국방과 과학 기술, 전략과 무기 체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 안보 의식이 높아지지 않으면 북한 핵미사일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음을 김 기장은 깨달았다고 한다. 따라서 국방과 과학 기술, 산업, 전략과 무기 체계 발달의 상호 관계에 대한 결정판인 브로디의 책을 번역해야 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필자는 김 기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리 시대의 모든 한국인이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일독함으로써 국민들의 과학적 사고 능력, 국가의 과학 기술과 산업 능력, 정부와 군의 전쟁 수행 능력, 과거를 통찰하고 올바른 교훈을 얻어 미래에 대비하는 정치가다운 리더십,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발전하여 한국의 국가 안보가 철저히 준비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한용섭 (경남대 초빙교수, 전 국방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