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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유길준·주시경 (2024) - 조선의 근대를 개척하다

동방박사님 2024. 8. 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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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비상한 재주를 지니고 비상한 때를 만나”
근대의 파고를 몸소 감당한 개화 지식인들

창비 한국사상선 제17권 『김옥균·유길준·주시경: 조선의 근대를 개척하다』는 한반도가 쇄국에서 개방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근대화 방안을 제시하고 구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근대 지성인 셋의 글을 담은 책이다. 한반도 바깥에서 자국의 이익을 탐하며 조선을 속국화하려 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꿈꾸었던 김옥균, 유길준, 주시경이 나아간 길은 조선의 운명 그 자체였다. 편저자 최원식은 이 책을 펴내며 단순히 그들의 글을 엮는 데 그치지 않고, 20세기 초 한반도 근대 지식인들의 계보를 무척 선명하게 그려 보인다. 그는 “서재필의 근본이 김옥균임을 절감했고 주시경 역시 이 계열에 드는데, 이승만이 정치적 후계자라면 주시경은 언어사상적 상속자인 셈”(43면)이라면서, 김옥균과 유길준을 뿌리로 두고 각각 뻗어나간 계보를 이야기해준다. 이 같은 계보를 머릿속에 그리며 이 흥미진진한 책을 읽다보면 바로 “이 출중한 사상가들이 서양 및 아시아 근대와 부딪친 그 특이한 접촉 속에 비맑스주의적 근대극복의 사유가 숨쉬고”(15면)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삼인행三人行

핵심저작

【김옥균】

1장 치도약론
2장 갑신일록
3장 마지막 상소

부록
소설 『청년 김옥균』에 부친 박영효의 증언
청산묘비문

【유길준】

1장 과문폐론
2장 언사소
3장 중립론
4장 서유견문
5장 흥사단 취지서
6장 소학교육에 대한 의견
7장 노동야학 독본 제일
8장 『대한문전』 자서
9장 『20세기지대참극 제국주의』의 서

부록
선친약사

【주시경】

1장 국문론
2장 국문
3장 국어와 국문의 필요
4장 한나라말
5장 큼과 어렵음

부록
『독립신문』 창간사

김옥균 연보
유길준 연보
주시경 연보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김옥균
조선 후기의 정치인이자 혁명가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고 개화당을 조직하여 개화사상을 확산시키며 활동했다.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하여 개화파 정권을 수립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뒤 중국 상해에서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저서로 『기화근사』 『치도약론』 『갑신일록』 등이 있다.
 
저 : 주시경 (周時經)
1876~1914. 황해도 봉산 출생. 국어학자. 초명은 상호相鎬, 일명 한힌샘, 백천白泉.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894년 9월 배재학당에 입학. 도중에 탁지부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인천부 관립이운학교 속성과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졸업. 1896년 4월 다시 배재학당 보통과에 입학.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에게 발탁되어 독립신문사 회계사무 겸 교보원이 됨. 순한글 신문제작에 종사하게 되자, ...

원저 : 유길준 (兪吉濬)

개화사상가, 계몽운동가. 갑오개혁을 주도한 정치관료. 근대한국 최초의 일본, 미국 유학생. 한성 계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성무(聖武), 호는 구당(矩堂). 유년기에 유학교육을 받았고 1870년대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김윤식 등과 교유하면서 개혁사상을 접했다. 1881년 조사시찰단 어윤중을 수행하여 일본을 견문하였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게이오의숙에서...

출판사 리뷰

구한말 조선의 대표적 지성 3인의 엇갈린 삶

‘갑신정변의 혁명가, 고균 김옥균.’ 세간의 평가는 그의 섣부르며 성급했던 결정, 부득불일지언정 한반도에 일본을 끌어들여 그 영향력을 키워준 오판 등을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갑신정변이 단순히 김옥균 무리의 독자적인 쿠데타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뒤흔든 대격동의 출발점이었다고 못 박는다. 편저자는 갑신정변의 출발점으로, 멀리 베트남에서 일어난 청불전쟁(1884~85)을 꼽는다. 청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김옥균이 대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김옥균의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그 뒤 청이 프랑스에 패하면서 청나라의 권력이 양무파에서 변법파로 넘어간다. 일본 역시 기존에 내걸었던 ‘아시아 연대’의 깃발을 내리고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기조의 탈아입구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침략의 길을 걷는다. 한마디로 갑신정변이 향후 동아시아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 셈이다.

김옥균 사상의 열쇳말 중 첫번째는 ‘조선프랑스론’이라 할 수 있다. 김옥균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를 따르는 것을 면밀히 비교했고, 특히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입헌군주제를 선호한다는 것을 참고했다. 조선을 ‘아세아의 불란서’로 만들자고 했던 김옥균의 꿈은 곧 그가 “일본과 대결할 다른 조선”(16면)을 꿈꾸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두번째 열쇳말은 ‘삼화론(三和論)’이다. 여기서 삼(三)은 조선·청·일본을 가리킨다. 갑신정변 이전까지 김옥균은 반청(反淸)을 분명히 했지만 그 뒤로는 삼화론을 통해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 것을 꿈꿨다. 즉 김옥균의 꿈은 “그 간신한 독립을 견지하면서 궁극에는 일본에도 청에도 당당한 프랑스 같은 강국을 세우는 꿈”(18면)이었다.

그 어수선했던 시기에 김옥균이 이처럼 폭넓고도 날카로운 입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실학 덕택이었다. 서울 재동의 그 유명한 환재 박규수의 사랑방이 김옥균과 그 동료들의 회의 장소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연스레 연암 박지원과 환재의 실학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갑신정변은 김옥균과 그의 친구들이 박규수를 통해 전수받은 연암학파의 실학으로 넓혀나간 지식과 시야를 토대로 조선의 안팎에서 벌인 사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김옥균 편의 핵심저작 첫번째 글은 「치도약론」으로, 이 글은 김옥균이 실학을 어떻게 계승하고자 했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갑신일록』은 갑신정변 당시의 긴박감이 생생히 담겨 있는 글로, 편저자가 원문의 열악한 상태를 감수하고 최대한 정본을 만들고자 애를 쓴 작품이다. 「마지막 상소」는 세계열강의 형편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진로를 밝힌 논설로, 김옥균 “최후의, 그러나 최고의 논설”(24면)로 꼽힌다.

“고균이 난세의 혁명가라면 구당은 치세의 능신(能臣)이다.”(24면) 구당 유길준을 설명한 이 한마디 말처럼 유길준은 어지러운 정국 아래에서 다재다능함을 뽐내면서, 대작 『서유견문』을 비롯해 여러 애국계몽 관련 논설을 펼쳐 ‘국민주의’ 사상가로서 큰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 나라를 뺏긴 것을 평생 자책하며 여생을 산 불행한 애국자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김옥균이 ‘프랑스 공화국’에 기울었다면 유길준은 ‘영국 입헌군주제’에 매료되었고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양절체제(복합체제)’를 더욱 벼렸다. 그는 당시의 조선이 청나라에 조공을 바쳤기에 하나의 속국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임을, 즉 복합체제하에 놓였으니 청을 잘 달래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보았다. 좀더 정확하게 쓰자면 “청일전쟁 전에는 청을 달래고, 후에는 일본을 설득하는 현실주의를 구사한”(26면) 소국주의자였다.

다른 한편, 김옥균이 당시로선 급진적인 평등파였다면 유길준은 ‘국민개사론자’ 즉 ‘누구나 선비가 될 수 있다’는 기조하에서 특히 농업, 상업, 공업의 장인들이 도약해야 한다는 실용적 사고를 펼쳤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십세기적 대참극 제국주의』에 부친 서」라는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글에서 “국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바로 통일의 도구로 되는 데 불과”(32면)하다며 자신의 실용주의자적 면모를 선보이는데, 유길준의 이 같은 현실주의와 세계정부론이라는 이상이 연결되는 지점을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그밖에 과거제 폐지를 주장하는 「과문폐론」, 러시아 문제를 언급한 「언사소」, 이미 널리 알려진 「중립론」, 그리고 『서유견문』 등 유길준이 써낸 여러 다채로운 글을 담았다.

한힌샘 주시경의 별명은 ‘주보따리’였다고 한다. 언제나 분주한 몸짓으로 강의용 책을 큰 보자기에 싸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붙은 이름이다. 비단 이와 같은 예를 들지 않더라도, 주시경이 과학적 연구에 바탕을 두어 국어를 정립하고 보급하는 데 열정을 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업적을 꼽자면, 국어를 문법적으로 분석해 품사론의 기틀을 세운 점, ‘모든 종성은 다시 초성을 쓴다’라는 훈민정음의 원칙을 되살린 점, ‘가로풀어쓰기’를 도입한 점 등으로, 나열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이뿐 아니라 ‘국어연구학회’부터 ‘배달말글몯음’ ‘한글모’에 이르는 연구조직들을 만들어냄으로써 현대 국어학의 산실을 조성한 것 또한 그의 탁월한 면모 중 하나다. 국어 연구자를 양성하고자 한 그의 노력이 이후 분단체제하에서도 남과 북의 성실한 국어학자들을 꾸준히 배출해내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은 따로 기록해둘 만하다.

주시경은 국어학자를 넘어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의 독립협회 활동은 그 자체로 혁혁했거니와, 그가 기독교에서 대종교로 개종하는 등 당대의 개벽사상 등에도 회통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에서는 『주시경전집』에서 네편을 추려내 소개했는데, 그 첫번째 글이 『독립신문』에 발표한 그의 첫 논문 「국문론」이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쓴 글임에도 무척 과감하면서도 그 요지가 잘 정돈되어 있다. 그밖에 「국문」 「국어와 국문의 필요」 「한나라말」 「큼과 어렵음」 등을 실었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김옥균, 유길준, 주시경을 포함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