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생각의 힘 (독서>책소개)/1.국제사회정치비평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 (2024) - 기울어진 세계에서 생존하는 법

동방박사님 2024. 8. 2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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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상은 평등에도 순위를 매긴다!”
평등조차 불평등한 시대의 생존자들을 위한 필독서

★★★노틸러스 북어워드 금상 수상작
★★★내셔널 안티레이시스트북 페스티벌 선정작
★★★포치라이트 올해의 책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ESG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을 뜻하는 ESG는 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영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근본적으로 인류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공존하는 환경, 모두가 공평한 사회, 모두에게 공정한 구조, 이러한 세계야 말로 인류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공생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를 가능케 하려면 사회에 팽배한 인종, 성별, 계층, 사회적 지위 등 여러 기준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철폐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 이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은 교묘하게 이러한 연대를 훼방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10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뒤 여러 층위의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며 성장한 미셸 미정 김은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불공정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고질적인 ‘백인우월주의’에 있을 분명하게 짚어주고, 그 누구도 억압 받지 않는,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기본 원칙과 ‘좋은 행동’들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 모두의 투쟁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그때 우리는 모두 평등한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들어가는 글

1부 토대 다지기

1장 ‘좋은 사람들’의 사각지대
2장 자기만의 이유 찾기
3장 자신의 이야기에 눈뜨기

2부 방향 설정하기

4장 우리 안의 백인우월주의
5장 언제나 맥락을 살펴라
6장 ‘대표성’이라는 양날의 검

3부 당당하게 나서기

7장 가장 주변화된 이들을 중심으로
8장 지적받을 용기
9장 언어를 통한 변화
10장 패턴 깨부수기
11장 기꺼이 포기할 것은 무엇인가
12장 트라우마를 조심스럽게 다루기
13장 자기만의 해방적 도구 갖기

4부 함께 움직이기

14장 자기만의 최전선에서
15장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기
 

저자 소개

한국에서 10대 초반에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퀴어, 여성으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요한 이슈인 다양성과 공정성, 포용력 문제에 관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 젊은 활동가이자 바쁘게 불려 다니는 강연자이다. 여러 기업과 정부 기관, 비영리 단체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의 조직과 최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형평성 및 포용성 교육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DEI 컨설팅 기업 어웨이큰(Awaken)의...
 
역 : 허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주로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만들어왔다. 퀴어, 페미

책 속으로

체계적 억압의 흔한 징후 중 하나는 수평적 폭력, 즉 불평등한 조건에 대한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억압자가 아닌 다른 억압받는 집단으로 돌리는 것이다. 수평적 폭력은 주변화된 이들이 함께 더 많은 것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작은 부스러기를 두고 서로 싸우게 만드는 데 유용하다. 소수 특권층이 권력과 자원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원을 한정하는 데 열중하는 사회에서 수평적 폭력은 현상 유지를 위해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도구가 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에서 수평적 폭력은 역사적으로도 오늘날에도 다양한 투쟁 전선에서 포착된다. 예컨대, 저소득 노동자들은 가장 주변화된 집단의 노동권을 강화하고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모든 노동자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취업의 기회가 줄어들고 경쟁률이 높아지는 데 대해 이주노동자들을 비난하며 그들에게 증오의 화살을 돌린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에서

억압이라는 해악은 단지 시스템에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 각자의 내면,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직장, 학교, 가정, 동네 등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 내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만큼, 우리가 해로운 시스템과 공모하는 측면 또한 인식해야 한다. 그런 정직한 직시가 선행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변화는 우리의 권력, 권력과의 공모, 우리 자신과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 ‘우리 자신’을 자각해야만 가능하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우리가 항상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은 아니므로, 좋은 사람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한 행동을 하며 다양한 집단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결정을 하는, 그냥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일차원적으로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악하거나 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좋은’은 정체성이 아니라 형용사이며, 일상의 행동과 그 여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좋은 사람인가?’라고 묻기보다 ‘내 행동이 좋은 영향을 가지는가?’라고 묻도록 하자.
--- 「1장 ‘좋은 사람들’의 사각지대」 중에서

아시아 혐오 문제는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그리고 다른 억압의 형태들도 포함하며, 퀴어 이슈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장애차별주의 등도 포함한다. 성차별주의만 해결하는 것은 나를 인종주의에서 해방시켜줄 수 없으며, 인종주의만 해결하는 것 역시 나를 동성애 혐오로부터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1982년에 오드리 로드는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결코 쟁점이 하나뿐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단일 쟁점에 대응하는 투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 「2장 자기만의 이유 찾기」 중에서

살면서 내가 갖지 못한 특권에 대해 배우는 동안 나는 정보 통제가 미묘한 방식으로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불어, 세상에 어떤 종류의 일자리와 기회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정보부터 계약, 가격 책정, 봉급에 관해 협상하는 법, 세금을 절약하는 투자 방법, 법적 권리와 대안에 대해 이해하는 방법에 이르는 정보들에 대해 공유를 차단하는 것은 불평등의 현상 유지를 지속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종류의 중요 정보가 소수 특권층의 배타적 권한 내에 존재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손에는 그것이 잡히지 않고 흐릿하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모두는 각성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대한 접근을 통제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떠한 공간, 자원, 지식,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권은 특권이 어떤 이들에게는 허락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 「3장 자신의 이야기에 눈뜨기」 중에서

유색인들은 뒷전으로 하고 백인 소비자를 소구대상으로 삼는 상품 디자인에도 백인우월주의는 존재한다. 흑인 학자인 조이 부올라뮈니와 팀닛 게브루가 2018년 발표한 획기적인 연구에 따르면, 안면 분석 알고리즘이 백인 남성의 얼굴에 대해 거의 완벽한 인식률을 자랑한 반면, 흑인 여성의 얼굴은 35% 가까이 오인했다. 온라인의 한 기사 보도가 유머러스하게 다루기는 했지만(2017년 〈뉴욕 포스트〉 헤드라인에 따르면, “중국 사용자들은 아이폰X의 얼굴 인식 기능이 그들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아시아인들의 얼굴 인식률이 떨어지는 아이폰X의 페이스아이디는 모든 아시아인이 다 똑같이 생겼다는 비인간적인 편견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 「4장 우리 안의 백인우월주의」 중에서

백인우월주의에 젖어 있는 조직문화는, ‘강한 직업윤리’로 잘못 통용되는 백인성의 기준(예컨대 완벽주의, 질보다 양 중시, 객관성과 수치화 가능한 데이터에 기반한 적법성 등)에 부합하는 사람들, 행동들, 특징들, 신념들을 강화하고 그것에 보상을 주는 과정과 정책들을 만든다. 동시에 그러한 조직문화는 현 상태에 도전하는 사람들, 행동들, 특징들, 신념들은 처벌하고 배제한다. 이러한 예로 편향된 채용 관행을 꼽을 수 있다. 즉, 백인 엘리트 교육기관의 졸업생들을 다른 교육기관(가령 역사적으로 흑인 학교로 여겨지는 대학, 전문대학, 직업학교, 해외 교육기관, 온라인 대학 등)의 졸업생들보다 선호하고, ‘유색민족’ 억양을 가진 이민자들보다 백인 유럽권 억양의 이민자들을,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을, 돌봄 책임이 있는 사람들보다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우대하는 것 등의 행태이다.
--- 「4장 우리 안의 백인우월주의」 중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조건, 정체성, 권력의 역학관계 등의 맥락이다. 그럼에도 DEI 컨설턴트이자 퍼실리테이터로서 나는 대개의 조직과 개인이 체계적 부정의 문제를 이해하는 일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맥락을 놓치고 있는지 수없이 봐왔다. 우리가 퍼실리테이터로서 발전해나가기 위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기술 중 하나는 어떤 갈등이든 그 근원을 밝힐 줄 아는 능력으로, 이는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요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여성이나 LGBTQ+, 혹은 유색인 직원들을 위한 모임을 꾸리려는 노력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왜 백인 남성 모임은 만들면 안 되는 거지요?” 이때 이 사람이 구조적 불평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세계가 이미 백인 남성 모임과 다를 바 없으므로 그런 모임을 만드는 건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일임을 모르고 있다고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 「5장 언제나 맥락을 살펴라」 중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한다고 주장하는 공간에서조차 가장 주변화된 이들을 배제하는 패턴이 나타나곤 한다. 청년 구성원을 포함하지 않는 청년을 위한 비영리단체, 노숙 경험이나 집을 가지지 못한 경험을 해본 구성원이 한 명도 없는 노숙인을 위한 비영리단체, 대부분 미국 기반의 백인들이 이끄는 저소득 빈곤국을 위한 비영리조직을 포함해, 나는 비영리조직의 이사회가 조직의 핵심 서비스의 실질적 수혜자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트라우마를 끝없이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고, 수많은 질문들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다른 주변화된 정체성 때문에 범죄자 취급을 받는 등 생존자에게 끔찍하기로 악명 높은 성폭력 신고 절차는 법체계가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필요를 중심에 두지 않는 식으로 설계되었음을 상기시켜준다.
--- 「7장 가장 주변화된 이들을 중심으로」 중에서

그 누구도 억압적 시스템 안에서 투쟁하면서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다. 벽을 해체하는 동안 덜 마른 페인트를 최대한 만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테지만,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해체 작업 자체를 별로 하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 이 운동에서 해악을 야기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더라도 우리는 실수를 할 것이다. 물론 스스로 배우고, 맥락을 고려하고, 가장 주변화된 이를 중심에 두면서 해악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며, 때로는 완벽하게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차차 배울 수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숙지하며, 최선의 판단을 토대로 행동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해악을 야기하지 않으려는 데 지나치게 몰두해 개입을 요하는 상황에서 과잉해석으로 인한 무기력의 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완벽성은 백인우월주의 문화의 명령이며, 우리는 이 불가능하며 인종주의적인 잣대로 우리의 행동 혹은 무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완벽한’ 방법을 찾고자 불안 속에서 꼼지락대는 동안 억압의 시스템은 우리를 비롯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인다.
--- 「8장 지적받을 용기」 중에서

해로운 문화에 펀치를 가하면 자주 다음과 같은 카운터펀치를 맞는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아요. 농담이잖아요.” “에이, 그냥 가볍게 생각해요.” 그리고 몇몇은 피식거리며 웃는다. 그 순간은 빠르게 지나갈 것이고, 사람들은 순간적인 불편함을 필사적으로 잊고자 하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것이고, 용기 낸 사람만 소외된 채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용기 낸 사람을 재빨리 소외시킴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에게 향후에라도 현 상태를 흔들려는 시도를 포기하게끔 만든다는 점이다.
--- 「10장 패턴 깨부수기」 중에서

우리는 모두 우리 삶 속의 관계들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운동의 기반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저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형태와 기원은 다르지만 각자의 상처 덕분에 회복력 있는 관계와 치유를 향한 길을 가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감사한 마음은 거대하고 압도적이며, 나는 그 마음으로 이 운동과 그 사람들에 대한 약속을 스스로 지키고자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피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들에게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말하자.
--- 「15장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우리는 불평등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가?”
혐오와 분열의 사회에서 공존과 통합의 사회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절박한 외침


지금의 우리 세계는 평등한가, 불평등한가? 이 질문에 ‘평등하다’고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된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인종, 성별, 계급, 사회적 지휘 등 다양한 구분법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 차별이 존재하고, 차별의 종류도 형태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때로는 차별 간에 차별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각각의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 여성인 누군가는 남성보다 직장에서 나쁜 대우를 받는다. 흑인인 누군가는 백인보다 경찰 검문을 더 자주 당한다. 퀴어인 누군가는 ‘올바른 성 정체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누군가는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에게 존재 가치를 부정 당한다. 전통적인 가족 구성에서 제외되는 미혼모, 딩크,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 빈곤층, 노숙자, 독거노인 등 사회적 약자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조건에서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영역의 교집합에 위치해야 하고, 당연히 그런 특권층은 전 세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가 소수에게 핍박받고 억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다수’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소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분야 활동가이자 연사, 기업가인 미셸 미정 김은 현대사회의 차별과 억압, 혐오와 분열의 문제가 교묘하게 유지되고 있는 구조적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계속해서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소수자 그룹들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도록 프레임을 구축하고 갈등을 부추긴다. 이럴 때 쉽게 나타나는 징후가 수평적 폭력이다. 즉,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억압자가 아닌 다른 억압받는 집단으로 돌리도록 하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소수 특권층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과 자원을 쟁취하기 위해 연대하는 대신 남은 부스러기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불행이 계속되는 한, 모두가 평등한 세계는 헛된 구호에 그치게 된다.

“우리의 유일한 힘은 ‘연대’이다!”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사회정의 운동을 하면서 저자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 어긋나는 모습을 계속해서 봐왔다. 하나의 적을 상대하면서도 한 팀이 되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서로 다른 신념과 서로 다른 어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럼에도 결국 우리 소수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연대와 포용뿐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각자가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갈래로 나뉜 차별과 억압의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의 시발점이 있으며, 각각의 차별과 억압이 서로 교차하고 간섭하면서 해악을 더욱 강화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민자 출신인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유색인 여성이라는 정체성, 퀴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해당 정체성에 대한 차별이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모두 연계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여성이 받는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유색인이 받는 차별을 철폐해야 하고, 유색인이 받는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억압은 동시에 싸워야 할 문제들이지,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씩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연대만이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임을 깨닫는다면, 저소득층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이 미미한 이권을 두고 싸우는 대신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모든 노동자에게 이롭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아시아계 사람들과 흑인 및 갈색인종 사람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유색인종 간의 차등을 두는 우를 범하는 대신 백인중심사회의 문제점을 타파하고 모든 인종이 공평한 기회를 누리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우리가 힘을 합치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나보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식의 이타적이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자기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수평적 폭력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아닌 좋은 행동이 필요하다!”
때로는 지적받을 용기로, 자기만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투쟁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연대만이 모두가 잘 사는 세계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모두 ‘앨라이’가 될 수 있다. 앨라이는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에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서로를 위한 앨라이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여기에 숨은 함정과 위험도 지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지구를 위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거나 성금을 내며, 인종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에 분개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자신이 비난하는 시스템에 공모하는 해악을 저지르곤 한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누군가 해준 위로에 오히려 더 마음이 더 상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좋은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나쁜 행동을 저지르곤 하는 원인이 ‘좋은 사람’과 ‘좋은 행동’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때로 해악을 야기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좋은 행동을 할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좋은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유가 될 수 없으며,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온갖 차별과 억압을 없애야 하는 이유를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거나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한 것처럼 ‘타인’에게서만 찾지 않고, 이러한 차별과 억압이 시스템으로 인해 나 역시 실제로 피해를 보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모두가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차별은 역설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불평등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차별의 특징은 차별 받는 사람들이 자신이 차별 받는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차별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자신이 왜, 누구에게, 어떻게 차별받고 있는지 인지하는 동시에, 언제, 누구를, 어떻게 차별하는지 인식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를 통해 우리의 책임이 곧 권리가 되고, 타인을 위한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