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기독교 신학연구 (독학>책소개)/8.목회신학(설교)

성서 속 2인자들 (2024) - 하나님의 시선에서 가장 큰 사람들의 이야기!

동방박사님 2024. 9. 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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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끊임없이 다른 이와의 비교 속에서 누르고 앞지르고 잡아제치고 결국 1인자가 되는 것, 그것은 세상 싸움의 승리자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시선에서 ‘가장 큰 사람’은 아닙니다. 세상의 법칙대로 잘 살아가는 1인자보다, 관심에서 밀리고 세상살이가 불안하여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을 수밖에 없는 2인자들의 삶이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생의 억울함과 허탈감을 하나님 섭리 안에서 극복하고 온전히 채워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1등이 되라고 요구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며 동역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길을 보여 줍니다.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선포가 복음(기쁜 소식)이 된 사람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새 건물의 모퉁이 돌이 되는 신비를 맛본 사람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우리 삶 가운데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목차

프롤로그 6

새로운 공동체의 ‘어머니’, 하갈 11

약자 중의 약자, 을 중의 을인 하갈을 하나님은 살피셨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그렇게 하갈은 새로운 공동체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에서의 유감, 엄마는 왜 동생 편이었을까? 19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오히려 야곱이 이어갈 수 있겠구나!’

라반, 샘내지 않아도 되는 풍성한 복 27

한 번도 라반은 ‘야곱의 하나님’, 아니 거슬러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복된 삶’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실천한 ‘의로움의 근사치’ 36

맏형과 요셉에게 열등감도 느껴보고 여종의 자녀들에게는 위세도 부려보았던
그 애매한 자리에서 사는 동안 공동체가 함께 살길은
결국 누군가를 누르고 이기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가 2인자인가요? ‘최초의 신학자’ 미리암 44

미리암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회복과 복귀를 간절히 염원하고 기도했을
회중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지도자로 말입니다.

여인에게 질 수 없다, 바락의 내적 투쟁 52

영적인 영역에서는 이미 드보라를 인정한 그였지만,
용맹과 힘에 있어서는 1인자가 되고 싶었을 그입니다.
바락은 여인에게 그 영광을 빼앗겨 분했을까요?

야엘, 나를 지키고 여호와를 따르는 길 60

외딴 장막에서 마주한 시스라와 야엘! 여기서 물리적 힘의 우선순위는 분명합니다.
누가 패할지도 자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엘은 지혜와 용기의 결단을 합니다.

열등감이 빚은 참극, 입다의 잘못된 서원 68

입다는 생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무엇을 가장 싫어하시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요나단, 내가 어찌 우쭐대리요 76

요나단을 다윗에 못 미치는 ‘2인자’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치열한 왕권 다툼, 이미 기운 아버지의 권력, 다윗의 영민함과 신앙,
이 모든 것을 커다란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보면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신앙인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아비가일, 가장 귀한 것을 알았던 지혜의 여인 84

지혜롭고 총명한 어머니 아비가일은 아들에게 왕좌보다 더 귀한 삶을
유산으로 물려준 것 같습니다. 이 모자의 평화로운 삶을 상상하며,
세상의 잣대에서 자유로운 신앙을 소유한 사람의 지혜를 다시 한번 배웁니다

다말, 저는 결국 승리했어요! 92

그녀는 많이 기도했을 것이고, 오래도록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람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자신을 회복했을 것입니다

르호보암, 백성이 많아질 수 있었는데. 99

누가 더 인간적으로 잘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허리보다 굵다고 허언하기보다,
겸허하게 섬기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말했어야 합니다.

엘리사와 게하시, 두 수제자의 다른 선택 106

게하시는 세상의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2인자는커녕
스승의 뜻을 계승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와스디, ‘보여지는 것’을 거절한 멋진 여인 115

그녀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는 불이익은 담대하게 감내했습니다.

세례자 요한, 당신이 오실 그이니이까? 124

필시 생의 어느 순간에는 예수와 비교하기도 했을, 하여 갈등하는 순간도 있었을
사촌 형이었겠지만, 요한은 이를 신앙 안에서 잘 극복한 것 같습니다.

목자들, 메시아를 지킬 마음을 품다 132

성탄의 밤에 목자들은 정말 대단한 주인공들입니다.
메시아를 지킬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선의 승리는 이렇게 믿음으로 협력하는 사람들 덕분에 옵니다

시므온, 마침내 이룬 커다란 생의 소명 139

시므온의 삶은 여기도 저기도 완전하게 속하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의와 경전을 놓지 않았던 시므온은
다른 어떤 신앙인도 누리지 못했던 복, 아기 메시아를 품에 앉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안내하는 기쁨을 누린 안드레 147

안드레에게 서열 따위는 안중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오늘 만나고 눈 마주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안내하는 것, 그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소명에 집중하는 한, 세상의 순위는 하찮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나의 선택은 열등한가요? 마르다 이야기 155

얼른 준비하고 함께 앉아 듣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요?
다만 이 시간을 단축해 줄 사람으로 ‘여자’만을 떠올렸던 까닭에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섭섭함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살로메, 내 아들이 첫째여야 해요! 162

살로메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권력의 서열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누가 1등이 되는지, 누가 권력자의 좌우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임을 말입니다.

바나바, 위로할 수 있는 힘의 기원 171

무조건 바울 편, 무조건 마가 편을 든 것이 아니라
바나바는 ‘위로해야 하는 사람 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찌 한결같이 공동체 안에서 위로자일 수 있었을까요?
늘 성령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내와 동역한 남편, 아굴라 179

언제나 아내와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사역을 함께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따로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도 안에 어차피 1인자, 2인자 ‘따위’의 순위는 의미 없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

저 : 백소영
‘지천명’의 나이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존재의 깊이’에 도달할 줄 알았건만, 여전히 엄마로 교수로 동동거리며 일상의 관계들을 이어가고 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한 모든 관계와 씨름하는 동안 샘물처럼 길어올린 신앙적, 신학적 성찰들을 토대로 공동체 윤리를 모색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독교학(BA)과 기독교사회윤리학(MA)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보스턴대학교 신과대학에서 기독교사회윤리...

출판사 리뷰

가려진 인물들을 대신해서 혹은 더불어 말해주기

드라마나 영화, 소설과 같이 줄거리가 있는 작품은 주인공에 몰입할 때 더욱 재미있다. 하여 작가는 독자나 청중이 주인공에게 집중하도록 여러 장치를 사용한다. 외모나 지력, 재산이나 신분을 출중하게 그려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하거나, 역경에도 성취를 위해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를 돋보이게 하여 그를 응원하게 한다. 누군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반대편에 악당도 활약한다. 조연은 주인공과 악당 사이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다. 조연을 두고 흔히 극(劇)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감초는 거의 모든 한약 처방에 쓰이는데, 우리는 그것이 단맛을 내 쓴 탕약을 넘기게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초 자체의 효능은 없는 것일까? 그저 다른 약재의 보조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감초도 해독이나 항염증에 도움을 준다. 우리는 종종 조연을 주인공과 악당이 겨루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여긴다. 그러나 조연의 관점에서 보면 조연은 누군가의 배경이 아니라 나름의 인생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지어가는 거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러기에 때때로 누군가는 주인공처럼, 누군가는 조연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주인공인 그분의 구원 드라마 어느 대목에서 누군가는 주인공처럼, 누군가는 조연처럼 나온다 해도 하나님에게는, 또 당사자에게는 주인공과 조연이 구분될 수 없다. 그 모든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주인공으로 일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에게 응답하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조연으로 충실하면 그뿐이다.

가령 이 책에서 다루는 바나바를 생각해 보자. 바나바와 그가 돌본 바울은 어느 순간 각자의 신학과 사역이 ‘갈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둘은 서로에게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이나 바울 서신에서 바울이 더 큰 인물이 된 듯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평가일 뿐이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이라는 인물 자체가 그와 같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은 각자 하나님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조연으로 충실했다. 하갈이나 에서, 라반이나 마르다는 우리가 들은 이야기보다 더 많은 말을 우리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라와 야곱, 마리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그들의 호소와 속내를 미처 알아주지 못했다. 그들 역시 우리의 신앙의 선배로서 자기 삶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저자는 간혹 대변인처럼 혹은 변호자처럼 그들의 입이 되어 우리에게 잔잔한 목소리로 “우리에게도 나타나신 하나님과 나는 이렇게 사귀었노라.”라고 조근조근 말한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비극을 겪거나 상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진 이들도 등장한다. 입다나 살로메가 그러한 경우다. 저자는 이른바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그들의 은밀하거나 혹은 노골적인 욕망을 분석하면서 우리가 쉽게 비난하는 그들이 사실 우리의 욕망을 현현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반면 아비가일이나 다말, 와스디와 목자들, 시므온과 안드레는 남들의 욕망에 동조하거나 주변의 폭압적인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삶을 지키며 보물을 발견한 인물들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조연임을 알았던 대표적인 인물 세례자 요한, 주연이나 조연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주체적 결단으로 살아간 최초의 신학자 미리암과 시스라를 자신의 장막에서 죽인 야엘, 동역하는 아내의 주도성을 인정한 아굴라 등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를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살도록 돕는다. 이 책은 저자의 활기 넘치는 상상력과 탄탄한 근거가 뒷받침하는 좋은 책이다. 읽기 쉬운 그만큼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씨줄과 날줄로 짜온 신앙 이야기에 우리 자리가 어디인지 즐겁게 상상해보게 하는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 김학철 교수(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