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미술의 이해 (독서>책소개)/4.한국미술사

살롱 드 경성 (2023)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동방박사님 2024. 9. 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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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이 예술이 되다!
가장 헐벗고 참혹했던 순간에도 문학과 미술을 꽃피운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오늘날 한국 미술계를 향한 전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프리즈 등 세계적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열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김환기 등 한국 화가의 작품이 100억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다. 이처럼 불과 100여 년 만에 한국 미술이 안팎으로 급성장하기까지, 열악한 환경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선구자들이 있었다. 바로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 과도기에 활약했던 근대 미술가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대기 한국 작가들이라고 하면 이중섭과 박수근 정도만 떠올릴 뿐,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의『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이중섭 백년의 신화』『내가 사랑한 미술관』『윤형근』등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했던 큐레이터 김인혜가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정리한『살롱 드 경성』을 펴냈다. 2021년부터『조선일보』에 연재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동명의 칼럼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구본웅,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이성자, 장욱진, 권진규, 문신 등 주요 미술가 30여 명과 문인들의 우정과 사랑, 작품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혼란의 개화기와 암흑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이라는 가혹한 시대를 뚫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던 그들의 생애는 슬프도록 찬란하다.

목차

1장 화가와 시인의 우정 미술과 문학이 났을 때

01 곡마단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경성의 두 천재 _이상과 구본웅
02『조선일보』편집국에는 세기의 시인과 화가가 있었다 _백석과 정현웅
03 경성의 베스트셀러 시집을 함께 만든 시대의 선구자들 _정지용과 길진섭
04 신문사 사회부장과 수습기자로 만난 시인과 화가 _김기림과 이여성
05 성북동 이웃사촌을 넘어 소울메이트가 되다 _이태준과 김용준
06 그림 같은 시를 쓴 시인, 그리고 그가 가장 아꼈던 화가 _김광균과 최재덕
07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박수근의 삶에서 시작되었다 _박수근과 박완서
08 텅 빈 시대를 글과 그림으로 채우다 _김환기와 그가 사랑한 시인들

2장 화가와 그의 아내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했다

09 소박해서 질리지 않는 조선백자처럼, 삶을 예술로 만들다 _도상봉과 나상윤
10 ‘국민 화가’ 이중섭을 길러낸 유학파 부부 화가 _임용련과 백남순
11 아내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미치지 않았을까 _이중섭과 이남덕
12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와 그의 삶을 지지한 아내 _유영국과 김기순
13 서로가 존재했기에, 마침내 완성된 우주 _김환기와 김향안
14 찬란히 빛나던 낮의 화가, 그보다 더 영롱하던 밤의 화가 _김기창과 박래현

3장 화가와 그의 시대 가혹한 세상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15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 영원히 못 갈 것이오” _나혜석
16 일제강점기 독일에서 한류의 씨앗을 뿌린 망국의 유학생들 _이미륵, 김재원, 배운성
17 전쟁이 할퀸 중국의 도시 풍경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리다 _임군홍
18 격랑의 시대 수많은 걸작을 남긴 한국의 미켈란젤로 _ 이쾌대
19 러시아에서 성공한 초상화의 대가, 죽어서야 고국의 품으로 _변월룡
20 누가 이 천재 화가에게 총을 쏘았는가 _이인성
21 그럼에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다 _오지호

4장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

22 전쟁의 트라우마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이겨내다 _ 이대원
23 절대 고독 속에서 그림에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린 화가 _장욱진
24 그의 산에는 청년의 우울, 장년의 패기, 노년의 우수가 있다 _박고석
25 경계의 미학, 모순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인 화가 _김병기
26 헤어진 세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다 _이성자
27 “세상에 잠시 소풍 나온 아이가 죄 없이 끄적여놓은 감상문” _백영수
28 제주의 자연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 ‘폭풍의 화가’ _변시지
29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한국 근대 조각의 거장 _권진규
30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했다 _문신

 

저자 소개

저 : 김인혜 (Kim Inhye)
김인혜는 미술사가이자 2023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근대미술팀장으로 근무했다. 《아시아 리얼리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0), 《아시아 큐비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05) 등의 전시를 공동기획하며 중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와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의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기획하여, 과천관 미술연구센터 및 서울관 디지...

책 속으로

혼돈의 시대, 어둠울 뚫고 빛을 발했던 예술가들을 재조명하다

한국은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 혼란의 개화기와 암흑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을 통과한 나라이다. 이 파란만장한 시대에 삶을 영위했던 인물들의 자취를 찾는 일은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진정한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삶 속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예술’에 사활을 걸었던 사람들이라니! 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책 없이 이런 일을 했던 걸까? 요즘 같은 ‘실리주의’ 시대에 이들의 ‘낭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혼돈의 시대일수록 어둠을 뚫고 빛을 발한 인물들의 활약은 두드러져 보이게 마련이다. 한국 근대기의 수많은 예술가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각자의 시련을 딛고 내면을 벼리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한 이들이었다. 세상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예술가끼리는 서로 자유롭게 연대하고 의지하며, 굶어 죽어도 ‘멋’을 유지했던 인간들이었다.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높은 가치였기 때문에, 세속의 무가치한 경쟁과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나는 금산도 싫고, 금논도 싫다. 나는 화가가 될 것이다!”_유영국

박수근은 1965년 5월 작고했는데, 같은 해 10월 유작전이 열렸다. 유작전이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전시회에 갔다가 박수근의 작품 앞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동을 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소설가 박완서였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심정을 안고서, 박수근과의 인연을 소재로 한 소설『나목』을 썼다. 그리고 이 소설이 1970년『여성동아』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주부로 살아가던 박완서는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다. 나이 39세가 될 때까지 주부였던 사람이 이런 훌륭한 소설을 썼을 리 없다며, 잡지사에서 집으로 찾아가 진짜 박완서가 쓴 것인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장 〈07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박수근의 삶에서 시작되었다_박수근과 박완서〉」중에서

“대신 당신의 아호(어릴 때 부르던 이름)인 향안(鄕岸)을 내게 주세요.” 이렇게 해서 변동림은 김환기의 아호를 받아 김향안이 되었다. ‘같이 죽자’는 이상과의 사랑이 죽음을 맞은 후, 변동림은 김환기에게 ‘같이 살자’는 희망을 안겨주며, 김향안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략) 김향안은 1944년 김환기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후, 1974년 김환기가 뉴욕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년간 그의 생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예술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김환기를 위해, 김향안은 1955년 홀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김환기의 작품 슬라이드만 달랑 들고서! 그녀는 소르본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에 다니면서, 프랑스어와 미술사를 먼저 공부했다. 그리고 파리 화단의 주요 인사와 교제하여 김환기의 아틀리에를 구하고, 개인전 일정도 잡은 후에 김환기를 파리로 불러들였다.
---「2장 〈13 서로가 존재했기에, 마침내 완성된 우주_김환기와 김향안〉」중에서

시골 출신의 한국인 화가가 이런 일에 일생을 걸겠다고 결심한 것은 분명 무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평생 알아주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림으로는 도저히 돈을 벌 수 없다는 현실을 감내할 만큼, 유영국은 이 일이 가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김기순은 유영국의 그런 태도에 이끌렸다. 그림이 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사람이 하나뿐인 인생을 걸고 이토록 열심히 매진하는 일에는 가치를 둘 수 있다는 확신이다. “만약 그렇게 열심히 해서 만들어놓은 것이 바가지라 하더래두요, 그건 그냥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건 아니죠.” 김기순의 말이다.
---「2장 〈12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와 그의 삶을 지지한 아내_유영국과 김기순〉」중에서

나혜석이 죽은 지 74년 흐른 2022년, 그의 작품 한 점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에 전시되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전《사이의 공간: 한국미술의 근대》에 출품된 것으로, 1928년경 나혜석이 그린 우울한〈자화상〉이다. 훗날 한국은행 총재가 된 나혜석의 막내아들 김건이 수원시에 기증한 작품이다. 방탄소년단 RM이 이 전시회의 작품 설명 오디오 가이드 녹음을 해주었는데, 거기 이 작품도 포함되었다. 나혜석이 100여 년 전 죽을힘을 다해 남긴 유산이 오늘날 이렇게 향유된다. 뜻밖의 만남도 있었다. 2022년 9월, 이 전시회의 개막식에 나혜석의 손자가 찾아왔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 간 나혜석의 차남 김진 교수의 아들 스탠 김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미술을 공부해, 지금은 미술치료사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작품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소감을 묻는 나의 질문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자랑스럽고, 슬프다.”
---「3장 〈15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 영원히 못 갈 것이오”_나혜석〉」중에서

그런데 동네 사람에게 이인성이란 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권력자이기는커녕 그림 그리는 화가라고 하지 않는가. 화가 치민 치안대원들이 ‘환쟁이 주제에’ 하는 생각으로 이인성의 집을 찾아가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공포탄을 쏜다는 것이 그만 이인성의 머리에 적중하고 말았다. “오발이다!” 외마디를 남기고 대원들은 사라졌다. 무방비 상태의 이인성은 어린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튿날 숨을 거두었다. 향년 38세였다. 후에 소설가 최인호는 이인성의 어이없는 죽음을 두고, 절규에 가까운 글을 쏟아냈다.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
---「3장 〈20 누가 이 천재 화가에게 총을 쏘았는가 _이인성〉」중에서

이쾌대는 추위 속에서 천막을 짓고 포로수용소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다. 이 열악하고 험악한 곳에서도 이쾌대가 저녁 시간을 쪼개 한 일은 어린 화가 지망생을 위해 손수 인체 데생 교본을 제작한 것이다. 같은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던 이주영이 미술에 재능을 보이자 그를 위해 ‘미술 해부학’을 강의하고 기록한 노트이다. 총 40여 쪽에 달하는 이 노트는 인체의 균형과 골격, 근육, 동작의 원리를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한 수준급 교본이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아무런 참고 자료도 없이 이런 교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에는 종이도 귀해 뼈와 근육의 이름과 역할, 움직임을 가르친 후 땅에다 막대로 그려보게 하면서, 강의와 교재 제작을 이어갔다고 한다.
---「3장 〈18 격랑의 시대 수많은 걸작을 남긴 한국의 미켈란젤로_이쾌대〉」중에서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는 그의 삶뿐 아니라 작품에 철저하게 녹아 있다. 1958년에 그린〈까치〉라는 작품을 보자. 이중섭에게는 ‘황소’가 화가의 자화상과 같은 것이었다면, 장욱진에게는 ‘까치’가 그러했다. 장욱진은 마을 주변을 낮게 날며 세상 사람을 관찰하는 이 작고 영리한 새를 좋아했다. 그림 속 까치는 그믐날 깜깜한 밤에 홀로 나무 위에 앉아 있다. 일견 조형적으로 단순하고 귀여운 작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는 화면 전체를 밤의 어둠으로 새까맣게 뒤덮은 다음, 매우 가느다란 도구로 수천수만 번의 손놀림을 통해 검은 물감을 ‘긁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
---「4장 〈23 절대 고독 속에서 그림에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린 화가〉」중에서

작품을 제작하면서 이성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동시에 어머니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세 아들을 생각했다. “내가 붓질을 한 번 하면서, 이건 내가 우리 아이들 밥 한술 떠먹이는 것이고,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렸다”고 이성자는 말했다. 그녀는 자식을 키우던 모든 열정을 오롯이 작품을 생산하는 에너지로 변환시킨 것이다. 이성자는 진정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고향이 그립고 그래서 슬프지 않으냐는 파리 친구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슬프지 않다. 내가 서 있는 곳 발끝에 내 고향이 있다.” 그런 ‘초월’의 세계관이 그녀의 삶을 지탱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세 아들은 어땠을까? 진짜 밥을 주는 대신, 밥 주듯이 그림을 그린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반전은 여기서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세 아들은 진심으로 예술가로서의 이성자를 존경했다. 물론 성장기에는 고난이 있었겠지만, 세 아들은 결국 이성자를 지지하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라났다.
---「4장 〈26 헤어진 세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다 _이성자〉」중에서

출판사 리뷰

연구자의 전문성과 베테랑 큐레이터의 대중성 및 내공으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관한 감동의 기록을 펼쳐내다


무엇보다 저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들의 아카이브(편지, 일기, 사진, 노트 등)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는 업무를 주도하면서, 자료에 기반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전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다양한 아카이브를 통해 예술가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직접 진행한 유족 인터뷰, 오늘날 후손들로 이어지는 놀라운 계보, 작가의 생애 및 작품에 얽힌 숨은 이야기 등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진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근대기 신(新) 문화의 첨단에 있던 화가와 문인 들이 장르를 넘나드는 우정과 협업을 통해 서로의 예술 세계를 성장시켜 간 과정을, 2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적인 배우자이자 예술적 동지이며 후원자였던 아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3장은 가장 헐벗고 참혹했던 시대를 관통해야 했던 화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 속에서도 꽃피운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4장은 고통과 방황을 거듭하면서도 오로지 예술을 통해 구원받을 수밖에 없었던 화가들의 짙고 깊은 ‘운명’을 이야기한다.

굳어버린 감성과 삶의 열망을 깨우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삶의 방식

경성 최고의 잡지를 함께 만들었던 영화감독 봉준호와 발레리나 강수진의 외조부 박태원과 구본웅, 39세의 주부 박완서가 펜을 들게 한 화가 박수근의 묵직한 예술혼, 세계마저 감동시킨 예술적 동지 김환기와 김향안, 예순까지 그림 한 점 팔지 못했던 한국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 포로수용소에서도 미술교본을 만들어 후학을 가르친 한국의 미켈란젤로 이쾌대, 앞서 탐구하는 자의 고된 운명을 받아들였던 나혜석, 자신만의 광대한 우주를 창조했던 화가이자 어머니 이성자, 어이없는 총탄에 스러진 비운의 천재 이인성…….

작가는 책을 통해 예술가들의 초월성과 위대함을 강조하거나, 작품의 기법이나 사조 등의 미술 지식을 전파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우선 생애를 조망하며, 거기에서 비롯된 철학과 작품 간의 유기적 맥락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작가들의 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누구보다 인간적인 결핍과 숱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분투와 삶의 방식이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기를 희망한다. 예술가들이 대단한 점은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시련 앞에서도 인간의 기본과 본성에 충실했던 데 있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지켜낸 예술가의 정직한 표현’에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일상의 셈법에 뭉툭해진 삶의 열망을 자극받는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로 초대하는 지상(紙上)의 전시관이자 최고의 교과서

약 400여 쪽에 달하는 책에는 200여 편의 도판과 사진을 수록했고, 150개에 이르는 주석을 통해 충분한 설명과 근거를 밝혀두어 더 심화된 관심과 공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작가 특유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각 화가들의 인생 여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철학 및 작품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분석이 어우러지며 마치 미술관에서 베테랑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는 듯한 생생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적 안목과 식견을 키우고, 나아가 K-컬처의 단단한 뿌리를 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미술작품 감상을 좀더 깊이 있게 즐기고픈 사람들은 물론, 예술사를 공부하는 학생, 전시현장에서 대중에게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 등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누구라도 책을 덮는 순간, 우리 미술에 대한 거리가 한층 좁혀지며 당장 미술관에 가고 싶어질 것이다.

추천평

“이 책은 우리 근대문화사의 소중한 증언록이다!”_유홍준

몇 해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회는, 암울했던 우리의 근대 시기에 그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영롱히 꽃피운 문학과 예술의 애잔한 향연이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김인혜가 근대 문학인과 미술인들의 예술적 열정과 시대에 대한 고뇌, 그리고 따뜻한 우정을 생생히 기록한 이 책은 우리 근대문화사의 소중한 증언록이라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 유홍준 (미술사가·명지대 석좌교수)
봄이 움트는 덕수궁 찻집에서 우리는 ‘거사’를 도모했다. 김인혜는 폄훼된 한국 근대미술의 위대한 여정을 지상(紙上)에 전시하기로 했다. 이상, 구본웅, 박태원을 시작으로 백석, 김기림, 나혜석, 이중섭, 박래현 등 ‘경성 천재’들의 파란의 삶과 예술, 뜨거웠던 사랑을『천일야화』로 써내려간 원고를 읽으며 나는 울고 웃었다. 엄혹한 고난의 시대를 역동의 르네상스로 꽃피운 모더니스트들의 낭만과 투지는 경이로웠다.
- 김윤덕 (『조선일보』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