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사회학 연구 (독서>책소개)/5.노동문제

사람입니다, 고객님 (2024) - 콜센터의 인류학

동방박사님 2024. 10. 1.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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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구로공단 ‘공순이’가 디지털단지 ‘콜순이’가 되기까지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콜센터의 내밀한 역사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


2020년 3월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서울 지역 첫 집단감염 사례에 언론들은 콜센터의 노동 환경에 주목했고, 근본적인 문제는 상담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하청 구조에 있음이 드러났다. 오랜 시간 감정노동과 건강, 흡연과 중독에 대해 연구해온 문화인류학자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관욱은 콜센터의 내밀한 실상을 담은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의 인류학』을 출간했다.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년간 현장연구와 심층 인터뷰,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추적해온 내용을 집대성한 책으로, 콜센터 상담사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부당한 처우를 현장감 있게 들려주며 이를 둘러싼 사회적 의제들을 다각도로 파헤친다. 구로공단의 ‘공순이’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콜순이’가 된 현실부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상담사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처우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실천까지, 콜센터의 어제와 오늘을 총체적으로 살핀다.

특히 저자는 그간 콜센터에 대한 논의가 악성 고객의 갑질 논란과 상담사의 감정노동에 국한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콜센터 산업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로 시야를 확장할 것을 주문한다. 풍부한 인터뷰와 사진자료, 섬세하고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콜센터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성 노동과 인권의 문제임을 꼬집는다. 『사람입니다, 고객님』이 던지는 질문은 한국 사회 여성 하청노동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콜센터 연구하는 인류학자입니다

1부 콜센터의 탄생

1장 공순이에서 콜순이로
2장 담배 연기 속 한숨들의 무덤

2부 투구가 된 헤드셋

3장 감정 이상의 노동 현장, 콜센터
4장 어느 상담사의 하루
5장 코로나19 팬데믹이 들춰낸 콜센터의 현주소

3부 새로운 몸을 찾아서

6장 상담사들의 노동운동 도전기
7장 일단 몸부터 펴고 이야기합시다
8장 사이버타리아의 시대, 콜키퍼의 탄생

저자 소개 

저 : 김관욱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군의관 시절 군병원에서 병사들의 금연교육, 금연상담 등을 해오면서 흡연 연구를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어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흡연을 연구했다. 이후 영국 Durham University에서 의료인류학을 전공으로 박사를 마치고 서울대, 한양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강의했다. 흡연과 관련해서는 여성흡연, 궐련형 전자담배, 청소년 흡연,...

책 속으로

과거 공장노동 현장과 달리 현대식 건물 안에서 전자통신기계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담사의 노동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의 기준은 여성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는 편견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듯 보인다. 조금의 변화라도 찾아보려 했던 나에게 현장은 끊임없이 같은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어느 여성학자의 표현처럼 ‘충격적이리만치’ 여성 노동자는 오랫동안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현장에서 목격되어왔다.
--- p.8

누군가 “왜 콜센터 인류학 책을 쓰려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가 지고 싶지 않은 대상은 폭언을 하는 고객도, 강압적인 상사도, 외면하는 동료들도 아니다. 이러한 개인들을 점차 확산하게 만드는 사회와 문화에 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힘든 고통을 겪는 이들을 만나고, 때로는 정말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연구자로서 큰 무력감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 p.12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무섭다.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면 일순간 권력의 불평등이 허용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과도한 해석일까, 혹은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 중요한 것은 이런 불평등이 가능한 시대라는 점이다. 콜센터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여성 상담사에게 과도한 친절과 미소가 당연한 듯 강요된다.

특정한 감정을 특정 대상에게만 과도하게 강요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비용을 치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미 여성은 가정 안에서 무급으로 똑같은 처우를 오랜 시간 받아오지 않았던가. 그 성별 역할 구분의 장소만 가정에서 콜센터로 이동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가정 내 돌봄에 대한 남녀 간 오래된 불평등이 노동 현장으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 p.142~143

여성들은 시대가 변해 집을 벗어나도 결국 또 집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과 아버지가 고객과 상사로 바뀌었을 뿐이며, 가정 내 전통적 여성상에 대한 규범이 업체 안 규율과 통제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현대판 ‘디지털 현모양처’인 셈이다. 일과 시간 동안 집을 돌보던 ‘하우스’키퍼house- keeper가 상담 콜을 돌보는 ‘콜’키퍼call-keeper로 잠시 전환된 것뿐이다.
--- p.341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 형태를 대변하는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에 힘입어 상담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상담사들이 제대로 항변하기도 전에 감정노동이라는 용어와 설명 안에 그네들의 삶이 다 이해된 듯, 마치 다 푼 문제집처럼 한편에 내던져진 채 방치된 듯 느껴졌다. 나는 적어도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형성해놓은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새로운 언어로 여성 상담사의 삶을 대변해보고 싶었다.
--- p.352

출판사 리뷰

콜센터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학자가 만난 여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


한국 산업근대화의 상징인 구로공단이 주력하는 산업 분야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으며, 자연스레 공단 내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 구로공단에 ‘공순이’라 불린 여공들이 있었다면, 오늘날 같은 장소에서 이름을 바꾼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이하 디지털단지)에는 스스로를 ‘콜순이’라 부르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있다. 1부 「콜센터의 탄생」은 디지털단지에서 콜센터를 찾아 나선 저자가 여성 노동 및 인권의 현주소를 50여년 전 구로공단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콜센터 여성 상담사의 삶이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밝혀낸다.

특히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콜센터가 상담사들 사이에서 ‘흡연 천국’으로 불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악성 고객의 갑질과 관리자의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콜센터의 물리적?전자적 감시 시스템에 통제당하는 상담사들은 흡연실을 도피처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콜센터 흡연실은 “한숨들의 무덤”이며 “여기서 흡연이냐 아니면 뛰어내리느냐”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라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상담사가 있을 정도다. 이 책은 여성 상담사의 흡연율이 높은 원인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 있음을 낱낱이 보여주며, 노동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어떻게 그들의 건강을 해치는지 밝힌다.

‘친절, 정확, 신속’ 뒤에 가려진
감정 그 이상의 노동 현장, 콜센터


콜센터의 콜은 언제나 밀린다. ‘친절, 정확, 신속’을 외치며 항상 ‘미소 띤 음성’으로 콜을 받는 상담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은 쏟아지는 전화에 밀려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2부 「투구가 된 헤드셋」은 현장에서 상담사가 겪는 구체적인 문제상황을 생생한 인터뷰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료하게 전한다.

상담사들은 업무가 바빠 오전에는 자리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상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상담 과정에서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평가 대상이며, 점수에 따라 ‘급’이 나뉘고 월급이 차등 지급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콜센터 상담사가 사회의 필수 노동자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코로나19 관련 업무는 급증한 반면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스스로를 ‘불판 위 마른오징어’ ‘일회용 배터리’라고 표현하는 상담사들은 악성 고객은 물론 치밀하게 실적을 관리하고 압박하는 상사, 하청업체 소속 상담사를 하대하는 원청업체 직원, 그리고 잠재적 경쟁자가 되어버린 동료들과도 갈등을 겪는다. 이런 현실은 상담사의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유발하며, 실제로 콜센터 상담사는 다른 직군의 서비스업 종사자에 비해 거의 모든 질병에서 월등히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담사들은 질병을 마치 세금처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질적인 원?하청 구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소재조차 불분명한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감정노동이라는 명명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담노동을 ‘정동노동’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설명한다. 상담사들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욕적이고 부당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정동’에 길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상담사, 사람입니다”
수화기 너머에 존재하는 삶을 말하다


저자는 현장연구를 진행하며 여성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맞닥뜨렸다고 고백한다. 여성은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돌봄노동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며, 대부분이 여성인 상담사 직군(민주노총 콜센터 노조 여성 조합원 비율 94.1%, 2021년 기준) 역시 고객을 친절하게 보살피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요구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모두가 현실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 실마리를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3부 「새로운 몸을 찾아서」에서 찾는데, 상담사들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해 사측에 대항한 사례, 그리고 생활운동 모임을 운영하며 자신의 몸, 나아가 업무를 대하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개선한 사례 등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일찍이 콜센터가 발달한 영국과 인도의 사례와 한국의 사례를 비교?분석하며 전세계적으로 여성 하청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폭넓게 조망한다.

콜센터는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수화기 너머 상담사는 지워지기 일쑤다. 우리는 누구나 낯선 번호로 걸려오는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혹은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누르고 상담사 연결을 기다려본 적이 있다. 저자는 매일 수백번씩 ‘안녕’하느냐는 인사를 건네는 상담사들이 정작 스스로의 안녕을 챙기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사회, 노동 때문에 질병을 앓는 이웃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한 문화인류학자의 긴 여정이 이제 독자들에게도 안부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