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2.개항기.구한말

세계사와 포대 읽는 한국 100년동안의 역사2권 (개항전야) 세도정치에서 강화도 조약 전야까지

동방박사님 2021. 12. 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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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장 냉철하고 객관적인 한국 근현대사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 조선후기부터 개항과 망국까지, 세계사의 판 위에 우리 역사를 포개놓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최초의 이성적인 작업!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실체와 그 멘탈리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기 세계는 패권 세력 영국과 G2로 부상하는 도전 세력 러시아의 각축장. 청나라는 이미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일본은 변화의 몸부림을 친다. 조선, 아~ 조선은 여전히 성리학자들의 무지한 세계인식-소중화주의가 국가정체성을 이루고 쇄국의 노선을 택한다.

저자 김용삼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엄정하고, 깊이있는 눈으로 한국근현대사를 그야말로 가슴으로 쓰고 있다. 방대한 자료 수집, 냉철한 세계 인식, 진정성 -이 모두를 두루 갖춘 한 탁월한 역사 저술가의 탄생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

제2권 서문

제1장_ 외척 세도정치의 개막
제2장_ 천주교, 조선에서 피를 흘리다
제3장_ 내부 모순으로 몰락하는 조선 왕조
제4장_ 근대화를 향한 일본의 질주
제5장_ 위로부터의 혁명, 메이지유신
제6장_ 흥선대원군
제7장_ 프랑스와 격돌, 병인양요
제9장_ 개국의 길로 떠밀려간 조선
제10장_ 대원군 실각, 고종 친정
제11장_ 막오른 일본의 아시아 침략

제2권 연표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김용삼
 
대전고, 중앙대 문예창작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 시사월간지 [월간조선] 편집장, 경기도 대변인, 경기콘텐츠진흥원 감사를 역임했다. [월간조선] 기자로 활동하며 50여 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전·현직 국가원수 4명을 특종 인터뷰했다. 또한 황장엽 망명사건 특종보도로 제1회 대한민국 언론상 수상, 2008년 해양사상 보급에 공헌한 공로로 장보고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 『이승만과 기업가...
 

책 속으로

근대화 시기, 일본의 국가 지도부와 지성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국강병을 외쳐댔다. ‘양이(洋夷)’들에게 주권을 강탈당하지 않고, 업신여김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국가 자존을 지키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스스로 부강해지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같은 시기 조선의 국가 지도부는 한결같이 부국강병을 몹쓸 짓, 야만적인 행위, 주자 성리학적 가치에 반하는 반문명적 행위로 인식했다. 그 위급한 시기에 조선이 추구한 길은 부국강병이 아니라, 주자 성리학이 이상으로 삼은 왕도 정치였다 (……)

위정척사파는 왕도 정치 없는 국가를 상상할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선택의 기로에서 위정척사파는 단연코 ‘자기식 문명의 길’을 택했다. 근대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 p.9

메이지유신은 1858년 이후 막부가 외교·국방은 물론 내 정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자 그동안 천황이 쇼군에게 위임했던 통치권을 회수하여 직접 행사하겠다고 나선 정치적 격변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조슈·사쓰마번의 하급 사무라이들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메이지유신의 주인공은 ‘독서하는 사무라이’ ‘칼을 찬 사대부’ 같은 신흥 계급들이었다. 이들은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자각한 집단이었다. 이들이 일본의 자주독립을 위해 266개의 번과 막부로 구성된 봉건 체제를 해체하고 근대 국가를 수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메이지유신이다.
--- p.141

‘해외 침략을 통한 일본의 확장’이라는 정신적 맥락을 계승한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 요시다 쇼인의 만주·중국·인도 침략론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 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현실화되었다. 일본의 팽창 지향적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은 식민지가 되기 싫으면 스스로 강대국이 되어 하나의 권역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 p.299-300

조선 백성들이 가난해질수록 유교 전통의 왕도 정치는 멀어져갔다. 황현은 고종에 대해 “스스로 자신의 웅략을 자부하면서 불세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위로 열성조와 비교될 뿐만 아니라 동방에서 처음 있는 군왕이 되려고 정권을 거머쥐고 세상일에 분주한 군주였다. 그는 군주가 갖춰야 할 미덕을 단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가혹한 인물평을 남겼다.

고종의 친정은 이처럼 대혼란 속에서 개막됐다. 쇄국과 척화의 아이콘 대원군의 퇴장, 그리고 고종의 등장은 조선이 쇄국 정책을 폐기하고 개국으로 나가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한편에선 대원군 시절 도입했던 각종 개혁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조치를 연발했다. (……) 나라가 망하든 말든 왕조만 건재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그 후 고종을 특징짓는 결정적 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 p.334~337

일본의 타이완 침략과 청의 무력한 대응을 보고 서양 열강들은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는 중국은 돈을 내길 원할지언정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 둘째는 일본을 잘 키워 길들이면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메이지유신으로 신정부를 구성한 양대 세력은 조슈와 사쓰마였다. 사쓰마는 타이완 문제는 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과업이라고 판단했고, 조슈는 조선 문제는 자기들이 해결해야 할 영역이라고 바라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이후 역사 진행 과정에서 더욱 굳어져 조선은 조슈 파벌의 전리품 같은 존재가 된다.

1894년 청일전쟁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조선 주재 공사나 통감, 합방 후 조선 총독, 일본 군부 실력자들의 면면은 거의 모두가 조슈번(현 재의 야마구치 현) 출신이란 사실은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 p.351~352
 

출판사 리뷰

안으로부터 무너진 조선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는 개항과 망국까지의 우리 역사를 세계사 위에 포개 읽으면서, 올바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바로 보려는 기획이다.

그 둘째 권, 『개항 전야: 세도정치에서 강화도 조약 전야까지』는 1800년 정조 사후 조선 사회가 안으로 병들어가는 모습과, 같은 시기 일본이 미국에 강제 개국(1854)을 당한 충격을 딛고 메이지유신(1868)을 통해 근대화로 나아가는 모습을 대비해 다룬다.

정조 사후 잇따른 소년 왕들의 등장은 노론(老論) 세도정치를 불러와, 외척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번갈아 국정을 농단했다. 늘어나는 양반들은 ‘큰 도적, 굶주린 솔개’였다. 양반들의 납세·군역 이탈과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민란의 시대가 열리며 조선은 국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세계사와 정치경제학적 안목을 결여한 반쪽짜리 개혁이었고, 천주교 탄압과 척화(斥和)는 자충수가 되었다.

조선의 혹심한 천주교 탄압은 문명사의 오점이었다. 선교사 처형은 프랑스 침입의 빌미가 되었고, 이양선(異樣船) 격침은 태평양으로 눈 돌린 미국의 조선 침입의 구실이 되었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는 그러나 아직 조선 폐망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홀로 자강에 성공한 일본

서구 제국주의와 맞설 때, 자강을 거부한 결과는 굴종이었다. 아시아에서 단 한 나라, 일본만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배우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 페리 함대의 포함 외교로 강제 개국을 당하고, 지방에서도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 영주들도 영국과의 전쟁에서 참패한다. 그러나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지식 혁명과 서구 유학을 통해 실력을 기르고 있었고, 메이지유신이라는 ‘위로부터의 조용한 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로 나아간다.

이 시기 유럽은 크림 전쟁,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아시아에 눈 돌릴 겨를이 없던 것은 일본의 자강에 절호의 기회였다. 청나라와 대등한 근대적 조약을 체결한 후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한 일본은 대만을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에 나서고, 그다음 제물로 조선을 택한다. 그러나 조선은 아직까지 자기만 알고 상대를 몰랐다.

무엇을 위한 위정척사였나

성리학적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떠받든 조선의 지도부는 부국강병을 반문명적 패도 정치라며 배척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내세우며 나라의 문을 닫고, 극소수 개화파의 싹을 억눌렀다. 위정척사파는 민비(명성황후) 세력과 결탁해 대원군 실각시키고 고종 친정(親政) 시대를 열었으나, 그 실질은 민씨 세도정치였다. 군주의 미덕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고종은 군비 감축과 재정 실패로 국력을 더욱 쇠퇴시킨다. 10년 사이에 프랑스와 미국의 내습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 군함 운요(雲揚)호의 공격을 받은 강화도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조선은 준비 안 된 개국의 길로 떠밀려 간다.

훗날의 갑오개혁(1894)이나 대한제국(1897)은 근대화·국민국가의 길과 거리가 멀었다. 서구와 일본의 침탈에 맞서 위정척사를 기치로 일어난 한말 의병 운동도 실질은 ‘양반들만의 지상낙원’을 사수하려는 반(反) 근대화 운동이었다. 조선 지도부는 근대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를 거부했다.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는 이 기간 한·중·일 각국의 내부 사정과 상호작용에 더하여, 세계사라는 더 큰 틀에 포개어 서세동점과 동아시아의 대응을 살펴본다. 제2권의 세계사적 무대는, 크림 전쟁과 남북전쟁으로 잠시 동아시아를 방치했던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이 본격적으로 다시 동아시아를 압박하기 시작한 1850~70년대, 상반된 일본과 조선의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