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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제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쓴 구한말의 역사! 미국 패권강화, 중국의 부상, 일본의 군사대국화, 러시아의 대두...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는 또다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어떤 전략과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그 해답은 지금과 유사한 상황에 당면했던 100년 전의 한반도 역사를 꼼꼼하게 되짚어보는 데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사의 좁은 지평을 벗어나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구한말의 역사를 다시 쓴 책이다.
주변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꾀해야 하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개항의 높은 파도 앞에서 국내외 세력이 합의를 구하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달았던 100년 전 구한말의 역사를 꼼꼼하게 되짚어볼 때다. 제국의 시대, 조선의 운명을 통해 세계화의 시대, 대한민국의 운명을 통찰한다.
주변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꾀해야 하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개항의 높은 파도 앞에서 국내외 세력이 합의를 구하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달았던 100년 전 구한말의 역사를 꼼꼼하게 되짚어볼 때다. 제국의 시대, 조선의 운명을 통해 세계화의 시대, 대한민국의 운명을 통찰한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_왜 하필 구한말인가?
1. 은둔의 왕국
잊혀진 역사, 대륙과 바다의 지배자
고려의 도전과 시련
중국을 섬기다
양대 전쟁과 조선의 수난
아시아에 상륙한 제국주의
흐름으로 읽는 역사 서양의 제국주의 침탈, 이렇게 자행되었다
대원군의 선택과 한계
흐름으로 읽는 역사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유출 문화재들
2. 나라의 문이 열리다
폭풍 전야의 현해탄
포성 속에 이루어진 개항
흐름으로 읽는 역사 일본 고유의 동아시아질서관과 메이지 유신
봇물 터진 개화 물결
흐름으로 읽는 역사 한반도를 세계에 소개한 서양인들
고개 드는 반작용
3. 외세의 알력 속에 길을 잃다
척화세력의 대반격
민씨 일가를 구한 청 황조
흐름으로 읽는 역사 서울 용산과 외국군 주둔 역사
개화당의 야망
3일천하, 그들만의 혁명
거세지는 열강의 줄다리기
흐름으로 읽는 역사 19세기 ‘영국 대 러시아’의 세계 경쟁
4. 혼돈의 세기말
국제분쟁으로 번진 농민 봉기
개혁의 이름으로
헛물 켠 일본
흐름으로 읽는 역사 독일-유럽의 주연, 동아시아 조연
을미사변과 후폭풍
흐름으로 읽는 역사 을미사변과 ‘중전 민씨 재평가’에 대한 진실
5. 마지막 기회를 놓친 대한제국
대한제국, 그 찬란했던 시작
좌절된 국민국가
마지막 쟁탈전
이 날을 목놓아 통곡하노라
최후의 몸부림
흐름으로 읽는 역사 안중근과 동아시아 평화사상
끝내 망국으로
흐름으로 읽는 역사 대한제국 황실, 그 후의 이야기
글을 맺으며_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
참고문헌
구한말 주요 사건 연표
찾아보기
1. 은둔의 왕국
잊혀진 역사, 대륙과 바다의 지배자
고려의 도전과 시련
중국을 섬기다
양대 전쟁과 조선의 수난
아시아에 상륙한 제국주의
흐름으로 읽는 역사 서양의 제국주의 침탈, 이렇게 자행되었다
대원군의 선택과 한계
흐름으로 읽는 역사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유출 문화재들
2. 나라의 문이 열리다
폭풍 전야의 현해탄
포성 속에 이루어진 개항
흐름으로 읽는 역사 일본 고유의 동아시아질서관과 메이지 유신
봇물 터진 개화 물결
흐름으로 읽는 역사 한반도를 세계에 소개한 서양인들
고개 드는 반작용
3. 외세의 알력 속에 길을 잃다
척화세력의 대반격
민씨 일가를 구한 청 황조
흐름으로 읽는 역사 서울 용산과 외국군 주둔 역사
개화당의 야망
3일천하, 그들만의 혁명
거세지는 열강의 줄다리기
흐름으로 읽는 역사 19세기 ‘영국 대 러시아’의 세계 경쟁
4. 혼돈의 세기말
국제분쟁으로 번진 농민 봉기
개혁의 이름으로
헛물 켠 일본
흐름으로 읽는 역사 독일-유럽의 주연, 동아시아 조연
을미사변과 후폭풍
흐름으로 읽는 역사 을미사변과 ‘중전 민씨 재평가’에 대한 진실
5. 마지막 기회를 놓친 대한제국
대한제국, 그 찬란했던 시작
좌절된 국민국가
마지막 쟁탈전
이 날을 목놓아 통곡하노라
최후의 몸부림
흐름으로 읽는 역사 안중근과 동아시아 평화사상
끝내 망국으로
흐름으로 읽는 역사 대한제국 황실, 그 후의 이야기
글을 맺으며_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
참고문헌
구한말 주요 사건 연표
찾아보기
* 우리는 100년 전 구한말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구한말하면 사람들은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듣기에도 어려운 여러 사건들을 금방 떠올린다. 일본에 의해 무력으로 나라의 문을 열게 된 사건이 강화도 조약이고, 구식군대들이 처우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킨 사건이 임오군란이며, 김옥균 등이 일본을 등에 업고 혁명을 기도한 사건이 갑신정변이라는 사실은 잠깐만 생각하면 금방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피상적인 지식에서 더 나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단순한 사실을 암기시키는데 그친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저 사건들에 ‘왜?’라는 질문을 붙여보거나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물어보는 순간 여실히 드러난다. ‘임오군란’이 구식군대들이 처우에 반대해 봉기한 사건이라는 것이 피상적인 사건 기술이라면 더 중요한 것은 그 배후에 깔려있는 또 다른 이유다. 그 배후에는 고종 황제의 친정 선포로 인해 권력에서 물러난 지 9년째가 되는 대원군의 정권 재탈환을 위한 기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임오군란의 주동자였던 김장손, 유춘만 등을 배후에서 은밀하게 행동지침을 전달하며 조종했던 대원군은 결국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계속된 나흘 동안의 폭동이 지난 후 고종의 요청에 따르는 형식으로 창덕궁에 입성하게 된다.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을미사변은 일제가 계획적으로 불량배들을 동원해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사건으로 세간에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일본은 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주축이 된 외교적 압력으로 인해 어렵사리 차지한 요동반도까지 내주어야 했고, 조선 정부에는 러시아와 가까운 인물들이 대거 진출하게 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보다 조선 내부에서 러시아와의 제휴에 중추적인 인물을 제거하는 쪽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일본이 지목한 제거대상이 다름 아닌 중전 민씨. 하지만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다고 알려질 경우에는 감당하지 못할 국제적 비판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책임은 은폐하는 가운데 ‘중전 민씨의 제거’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략을 짜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을미사변이다.
이 을미사변의 전후사정을 알아야, 고종과 40여명의 수행원들이 궁궐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맡기는 ‘아관파천’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도망쳐 나와 미국 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아관파천’은 바로 을미사변 직후 신변안전에 위협을 느낀 데다 극심해진 일본의 내정간섭을 뿌리치기 위해 선택되고 고안된 것이다. 말하자면 ‘러시아를 통한 일본 견제’라는 중전 민씨의 구상이 그녀가 죽은 후 고종에 의해 아관파천으로 비로소 실천된 셈이었다.
* 우리가 100년 전 한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바다 건너 서양의 아주 시시콜콜한 미시사까지도 소상하게 알고 있는 교양인들도 막상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나 이 시기의 긴박했던 국내외 상황의 전후관계, 나라 안팎의 사정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구한말이 그 누구도 들여다보기 싫고 등돌리고 싶어하는 한민족 최대의 시련기이자 치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00년전 한국사』의 저자 김재엽씨는 비단 역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일반인들도 이 시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 안팎의 상황이 1세기 전 구한말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세계질서를 움직였던 양극화된 이념대립은 10여년전에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에서는 영유권과 과거사의 유산 등으로 인한 분쟁이나 대립구조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 주요분쟁의 당사자들은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지역강대국 들이다. 일본은 부동의 세계2위 아시아 최대의 경제대국이며 점차 군사력을 확대시키고자 기도하고 있다. 또 1세기 전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던 중국도 20년간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 정치 부문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는 어떤가? 냉전 이후의 험난한 과도기를 거쳤지만 여전히 거대한 규모의 군사력과 풍부한 석유, 천연가스 매장에 힘입은 경제력 재건을 통해 다시금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복귀하려 하고 있다.
물론 100년 전 조선의 국력과 작금의 한민족이 지닌 역량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우리는 어느새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세계 12위의 교역규모를 갖춘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민족이 앞으로 직면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제들을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주목해온 주변 강대국들이 또다시 개입하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이 1세기 전의 과거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1세기전 한국의 역사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구한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압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나라가 자신을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힘’은 갖출 기회가 있었다. 현재 필요한 것도 바로 다른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갖추는 것이다. ‘물류, 운송의 지역중심’이라든가 ‘정치, 외교적인 지역 중재자’의 역할을 현명하게 떠맡는 방법 등으로 ‘동아시아에 KOREA가 없으면 도저히 일이 안 된다’는 분야를 하나라도 점유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세기 전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기에 허망하게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던 역사를 돌아보며 얻은 결론이다. 또한 저자는 ‘믿을 만한 동맹국 없이 홀로 선’ 경우 한반도는 1세기 전의 구한말만큼 만만한 ‘길들이기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기에,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식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방적인 대외정책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 시대에 전하는 구한말의 ‘징비록’
『100년전 한국사』의 저자는 4세기 전 서애 유성룡 선생께서 임진왜란의 참상을 겪고 난 후 『징비록』을 저술하여 후세에 교훈을 전하셨던 마음가짐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100년전 구한말이나 2006년 현재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는 유사하다. 그 ‘힘’이 총포를 앞세운 무력이냐 아니면 ‘돈’을 앞세운 ‘경제력’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경제력의 차이, 국력의 차이는 언제든 물리적인 침탈로 전화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민족 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역량의 결집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보다 대중적이고 쉽게 읽히는 구한말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학자들의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평이한 용어로, 사건간의 전후관계와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한말의 역사를 다시 썼다. 한마디로 이야기처럼 읽히는 100년 전 구한말의 역사인 셈이다.
동아시아와 세계의 안정이 위태로웠던 시기는 바로 한반도의 평화가 깨어졌던 시기와 일치한다. 한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책임져야 할 현재, 다음 세대의 책임은 막중하다. 한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구한말하면 사람들은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듣기에도 어려운 여러 사건들을 금방 떠올린다. 일본에 의해 무력으로 나라의 문을 열게 된 사건이 강화도 조약이고, 구식군대들이 처우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킨 사건이 임오군란이며, 김옥균 등이 일본을 등에 업고 혁명을 기도한 사건이 갑신정변이라는 사실은 잠깐만 생각하면 금방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피상적인 지식에서 더 나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단순한 사실을 암기시키는데 그친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저 사건들에 ‘왜?’라는 질문을 붙여보거나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물어보는 순간 여실히 드러난다. ‘임오군란’이 구식군대들이 처우에 반대해 봉기한 사건이라는 것이 피상적인 사건 기술이라면 더 중요한 것은 그 배후에 깔려있는 또 다른 이유다. 그 배후에는 고종 황제의 친정 선포로 인해 권력에서 물러난 지 9년째가 되는 대원군의 정권 재탈환을 위한 기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임오군란의 주동자였던 김장손, 유춘만 등을 배후에서 은밀하게 행동지침을 전달하며 조종했던 대원군은 결국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계속된 나흘 동안의 폭동이 지난 후 고종의 요청에 따르는 형식으로 창덕궁에 입성하게 된다.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을미사변은 일제가 계획적으로 불량배들을 동원해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사건으로 세간에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일본은 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주축이 된 외교적 압력으로 인해 어렵사리 차지한 요동반도까지 내주어야 했고, 조선 정부에는 러시아와 가까운 인물들이 대거 진출하게 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보다 조선 내부에서 러시아와의 제휴에 중추적인 인물을 제거하는 쪽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일본이 지목한 제거대상이 다름 아닌 중전 민씨. 하지만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다고 알려질 경우에는 감당하지 못할 국제적 비판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책임은 은폐하는 가운데 ‘중전 민씨의 제거’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략을 짜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을미사변이다.
이 을미사변의 전후사정을 알아야, 고종과 40여명의 수행원들이 궁궐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맡기는 ‘아관파천’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도망쳐 나와 미국 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아관파천’은 바로 을미사변 직후 신변안전에 위협을 느낀 데다 극심해진 일본의 내정간섭을 뿌리치기 위해 선택되고 고안된 것이다. 말하자면 ‘러시아를 통한 일본 견제’라는 중전 민씨의 구상이 그녀가 죽은 후 고종에 의해 아관파천으로 비로소 실천된 셈이었다.
* 우리가 100년 전 한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바다 건너 서양의 아주 시시콜콜한 미시사까지도 소상하게 알고 있는 교양인들도 막상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나 이 시기의 긴박했던 국내외 상황의 전후관계, 나라 안팎의 사정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구한말이 그 누구도 들여다보기 싫고 등돌리고 싶어하는 한민족 최대의 시련기이자 치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00년전 한국사』의 저자 김재엽씨는 비단 역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일반인들도 이 시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 안팎의 상황이 1세기 전 구한말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세계질서를 움직였던 양극화된 이념대립은 10여년전에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에서는 영유권과 과거사의 유산 등으로 인한 분쟁이나 대립구조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 주요분쟁의 당사자들은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지역강대국 들이다. 일본은 부동의 세계2위 아시아 최대의 경제대국이며 점차 군사력을 확대시키고자 기도하고 있다. 또 1세기 전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던 중국도 20년간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 정치 부문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는 어떤가? 냉전 이후의 험난한 과도기를 거쳤지만 여전히 거대한 규모의 군사력과 풍부한 석유, 천연가스 매장에 힘입은 경제력 재건을 통해 다시금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복귀하려 하고 있다.
물론 100년 전 조선의 국력과 작금의 한민족이 지닌 역량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우리는 어느새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세계 12위의 교역규모를 갖춘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민족이 앞으로 직면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제들을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주목해온 주변 강대국들이 또다시 개입하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이 1세기 전의 과거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1세기전 한국의 역사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구한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압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나라가 자신을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힘’은 갖출 기회가 있었다. 현재 필요한 것도 바로 다른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갖추는 것이다. ‘물류, 운송의 지역중심’이라든가 ‘정치, 외교적인 지역 중재자’의 역할을 현명하게 떠맡는 방법 등으로 ‘동아시아에 KOREA가 없으면 도저히 일이 안 된다’는 분야를 하나라도 점유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세기 전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기에 허망하게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던 역사를 돌아보며 얻은 결론이다. 또한 저자는 ‘믿을 만한 동맹국 없이 홀로 선’ 경우 한반도는 1세기 전의 구한말만큼 만만한 ‘길들이기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기에,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식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방적인 대외정책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 시대에 전하는 구한말의 ‘징비록’
『100년전 한국사』의 저자는 4세기 전 서애 유성룡 선생께서 임진왜란의 참상을 겪고 난 후 『징비록』을 저술하여 후세에 교훈을 전하셨던 마음가짐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100년전 구한말이나 2006년 현재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는 유사하다. 그 ‘힘’이 총포를 앞세운 무력이냐 아니면 ‘돈’을 앞세운 ‘경제력’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경제력의 차이, 국력의 차이는 언제든 물리적인 침탈로 전화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민족 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역량의 결집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보다 대중적이고 쉽게 읽히는 구한말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학자들의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평이한 용어로, 사건간의 전후관계와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한말의 역사를 다시 썼다. 한마디로 이야기처럼 읽히는 100년 전 구한말의 역사인 셈이다.
동아시아와 세계의 안정이 위태로웠던 시기는 바로 한반도의 평화가 깨어졌던 시기와 일치한다. 한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책임져야 할 현재, 다음 세대의 책임은 막중하다. 한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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