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기독교역사 (연구>책소개)/1.세계기독교역사

이성에서의 도피

동방박사님 2022. 2. 2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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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간은 죽었다. 신도 죽었다. 인생은 의미 없는 삶의 존속일 뿐이며, 인간은 거대한 조직의 일개 부품일 뿐이다. 유일한 탈출의 길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체험, 약물, 부조리, 광기와 같은 비이성적, 비합리적 판타지 세계에 있다.” 이와 같은 현대인의 참담한 결론은 어떻게 해서 내려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 절망의 상태에서 기독교 신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프랜시스 쉐퍼는 포스트모던 정신에 대한 놀라운 선경지명으로 비극적 결말에 처한 20세기의 정신이 등장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현시대와 다가오는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목적과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

현대인의 절망은 삶의 의미와 기준에 대한 통일된 해답을 포기한 데서 온다. 그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유일무이한 준거인 성경으로의 회귀이다.
자율적인 반항을 고집하였으나 지식과 인생에 대한 답을 발견하는 데 실패한 인간은 결국 비합리적 비약을 시도하였고 그마저 좌절함으로써 이제까지 인간이 갈망하던 것이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절망에 처하게 되었다. 그 해답 없는 비이성 영역으로의 도피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혼란 없는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말씀해 주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불변의 참된 진리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구 문예와 철학 사상을
분석하여 진단한 현대인의 절망의 원인과 해법
20세기 복음주의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세계적 지성, 프랜시스 쉐퍼는 ??이성에서의 도피??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은총과 자연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이성으로부터 격리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파헤침으로써 현대의 불안과 목적 없는 공허함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있다.
인간은 이분법적 관점으로 자율을 추구하면서 절대적 준거점과 통일된 세계관을 상실하였고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인생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에는 이성과 지식으로부터 단절된 진리를 얻기 위해 비합리적 비약을 하는 헛된 노력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그마저도 허사가 되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도 답해 주지 않는 상황에 떨어지면서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 대해 쉐퍼가 제시한 해답은 현대인들이 손놓아 버린 인생과 세계에 대한 통일된 답을 최종 권위인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전인적 존재이기에 유한한 창조 세계와 역사에 관한 진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근거 삼아 삶에 대한 통일된 해답을 찾고 합리성을 회복할 수 있다.
기독교는 검증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의 도약’에 근거하는, 일단의 전달 불가능한 모호한 체험이 아니다. 신자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회심도 성화의 과정에서 성장하는 영성도 결코 도약이 아니다. 이 두 경험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절대 진리와 연관되어 있다. 거기서 인간은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할 일,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며 인생과 세상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해 놓으신 하나님과 세상과 역사에 대한 참된 진리로 돌아가 거기에 순복함으로써 인간은 부조리와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절망의 위기에 처한 현대인들은 모든 사고와 사물에 대하여 참된 것을 말해 주는 성경 말씀으로 복귀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나타난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수긍하고 시인하며, 그 기독교적 절대 기준을 따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쉐퍼의 ??이성에서의 도피??는 성경으로의 회귀가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임을 시대별 문예 사조와 문화 현상을 통해 흥미로우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20세기를 지나 여전히 상대주의적인 세계관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에게 변하는 세계에서도 불변의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보여준다.

 

목차

한국어판에 부치는 글
저자 서문
역자 서문
화보 목록

제1장 자연과 은총
자연과 은총 | 아퀴나스와 자율 | 화가와 저술가 | 은총 대 자연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

제2장 자연과 은총의 통일
자연과 은총의 통일 | 종교 개혁과 인간 | 인간의 모습 |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와 도덕 | 전인(全人)

제3장 절망선
초기의 근대 과학 | 칸트와 루소 | 현대적 근대 과학 | 현대적 근대 도덕 | 헤겔 | 키에르케고르와 절망선

제4장 도약
도약 | 세속적 실존주의 | 종교적 실존주의 | 신신학 | 상층부 경험 | 언어 분석과 도약

제5장 상층부로 도약하는 예술
상층부로 도약하는 예술 | 시(詩) : 후기의 하이데거 | 예술 : 앙드레 말로 | 피카소 | 번스타인 | 외설 문학(포르노그래피) | 부조리 연극

제6장 신비주의
정신 이상 | 영화와 TV에서 보는 상층부 | 상층부의 신비 | 정의되지 않은 표상(表象), 예수

제7장 이성과 신앙
이성과 신앙 | 성경의 독자성(獨自性) |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했으나 | 필요한 지식의 원천 | 어둠 속에서 도약하는 정신 | 변하는 세계 속에 있는 불변의 것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 프란시스 쉐퍼 (Francis A. Schaeffer)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사이자 신학자, 장로교 목사이자 강연가, 철학가이자 저자인 프랜시스 쉐퍼는 1912년 필라델피아의 한 유서 깊은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5년 햄던-시드니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같은 해 중국내지선교회 선교사의 딸인 이디스 시빌(Edith Seville)과 결혼하였다. 역시 같은 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코닐리어스 밴 틸(Cornelius Van Til)과 존 그레...
 

책 속으로

「제1장. 자연과 은총」 p. 20-41 중에서
현대인의 기원은 몇몇 시기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킨 한 사람의 사상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흔히 ‘자연과 은총’으로 불리는 것을 처음 논의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중략] 토마스 아퀴나스 이전에는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지극히 거룩한 하늘의 것들을 크게 강조했으며, 또 이것을 묘사할 때는 상징을 사용했고, 자연 그 자체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퀴나스가 등장함에 따라 진정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요소들이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다.
아퀴나스의 자연과 은총에 대한 견해에는 이 양자 간의 완전한 불연속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양자 간의 통일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 시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은총의 통일을 위한 끊임없는 논란이 있었으며, 합리성이 이 양자에 대한 어떤 설명을 해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중략] 아퀴나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 성경이 말하는 타락에 대한 이 불완전한 견해로 말미암아 갖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다. 인간의 지성이 자율적인 것이 되었다. 인간은 이제 이 한 영역에서만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었다. [중략]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원리는 자연이 자율을 얻자 곧 은총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단테의 시대로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대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를 통틀어, 자연은 점차 완전한 자율을 갖게 되었다. 인본주의 철학자들이 더욱 자유롭게 사고하기 시작함에 따라 자연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할 즈음에는 자연이 은총을 몽땅 삼켜 버리고 말았다.
[중략]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살던 시대는 이미 신플라톤주의가 피렌체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가진 때였다. [중략] 사람들은 이념과 이상을, 다시 말하면 보편자를 회복하기 위해 신플라톤주의를 도입했다. [중략] 여기서 보편자는 모든 개별자에게 의미와 통일성을 주는 것을 말하며 개별자는 모든 개체 사물들을 말한다. [중략] 이 문제를 달리 표현하면, ‘다양성을 허용할 경우 어디서 통일성을 발견할 것인가? 개별자를 풀어 주면 어떻게 그것을 다시 모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문제와 씨름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일컫는 바와 같이 신플라톤주의 화가요 현대 수학의 시조이다. 만일 자율적인 합리성에서 시작한다면 결국은 수학(측량할 수 있는 것)으로 귀착하게 되며, 수학은 개별자만을 다루고 보편자는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결국 기계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통일의 필요성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그는 이해했다. 그리하여 그는 영혼을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중략] 그가 회화 작품을 많이 남기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보편자를 나타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략] 조반니 젠틸레는 레오나르도가 개별자와 보편자를 한데 묶는 합리적인 통일에 대한 희망을 실현할 수 없었으므로 낙심한 가운데 임종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낙심을 피하려고 했다면 레오나르도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통일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현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일된 지식의 영역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지성인으로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제7장. 이성과 신앙」 p. 156-158 중에서
[중략] 성경의 가르침은 다른 사상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 주는 유일한 종교 또는 철학 체계이다. 사실상 우리 자신을 떠나서는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눈을 통해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진정한 문제가 있다. 무슨 권리로 내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다른 종교나 철학은 그러한 권리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해야 할 일, 즉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성경은, 태초에 만물이 인격적이고 무한하신 언제나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만물은 근원적으로 비인격적이라기보다는 인격적이다. 성경은 또한 하나님이 자신 밖에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자신 밖에’라는 말이 20세기 사람들에게 창조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공간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는 신의 본질의 연장이라고 보는 범신론적 견해를 부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그분은 언제나 존재해 온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신 밖에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와 같이 우주는 참으로 인격적 기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랑과 의사소통이 본래적인 것과 상치되지 않는다. 우주는 비인격적 기원에서가 아니라 인격적 기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의사소통에 대한 갈망은 본래적인 것과 상치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참으로 자신 밖에 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세계는 실재적인 세계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므로 참된 역사적 인과(因果)가 있다. [중략]
만일 우주의 기원이 본래적으로 인격적이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 다음에 오는 결과는 무엇인가? 인간은 비인격적인 것+시간+우연의 산물이란 해답밖에 없다. 이러한 근거에서 인격을 발견해 내는 데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략] 우리가 비인격적인 것+시간+우연의 산물이라는 결론은 우리가 인격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면 불가피한 결론이 된다. 또한 어떻게 시간+우연이 비인격적인 것에서 인격적인 것이 되는 질적 변화를 낳는가를 입증한 사람은 없다.
만일 이러한 질적 변화가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는 여기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인격적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희망적인 시발점을 제시한다. 어떠한 인본주의의 사상도 인간이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못했다.
성경의 해답은 유일무이하다. 성경은 인간이 해야 할 일, 즉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는 일을 해도 되는 이유를 제시하며, 이에 적절한 준거점, 즉 무한하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말해 준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해야 할 이유도,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자기에게서부터 시작하는 다른 사상과는 완전히 대조가 된다고 하겠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화보 목록

『예수님의 세례』, 얀 반 에이크 作.
『재상 롤랭의 마돈나』, 얀 반 에이크 作.
산타마리아델카르미네 성당 브란카치 예배당의 왼쪽 벽면 프레스코화.
산타마리아델카르미네 성당 브란카치 예배당의 오른쪽 벽면 프레스코화.
『두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자』, 프라 필리포 리피 作.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作.
『성체에 관한 논의』, 라파엘로 作.
칼빈의 『기독교 강요』 1536년판 속표지.
칼빈의 『기독교 강요』 1559년 결정판 속표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죽음』,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作.
『베아트리체와 마주친 단테』, 헨리 홀리데이 作.
기호 논리학의 대가, 앨프레드 로스 화이트헤드.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했던 이론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프랜시스 베이컨의 『학문의 신기관』 1645년판 속표지.
프랜시스 베이컨의 『학문의 신기관』 1762년판 속표지.
『프랜시스 베이컨』, 파울루스 반 소머 作.
『장-자크 루소』, 앨런 램지 作.
‘사디즘’이라는 용어를 낳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사드 후작.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야코프 슐레징어 作.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제창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독일 실존 철학의 대표자, 카를 야스퍼스.
실존주의적 존재론을 전개한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린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치가, 앙드레 말로.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 올가 코클로바.
『안락의자에 앉은 올가』, 파블로 피카소 作.
1963년에 발매된 『교향곡 3번, 카디시』의 커버.
레너드 번스타인, 1964년 『교향곡 3번, 카디시』 미국 초연 사진.
『침묵』 촬영장에서 아역 배우 요르겐 린드스트룀과 한때를 보내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
1963년 영화 『침묵』의 스웨덴 첫 상영일 풍경.
‘불가지론’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
『정의는 백성을 영화롭게 한다』, 폴 로버트 作.
『사도 바울의 회심』,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