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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1918-1975)

동방박사님 2023. 1. 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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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18-1975, 장준하 탄생 100주기 기념 개정판 출간
‘장준하 타살 사건’의 실체에 바짝 다가선 생생한 르포!

2012년 37년 만에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공개되면서 박정희 독재 세력에 의한 명백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조사관 고상만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과 여전히 오해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파헤쳐 이 사건의 재조사가 시급함을 역설했다. 2018년 장준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장준하 타살 사건’의 실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고.

‘한국 현대사의 순교자’ 장준하는 1918년 8월 27일에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이 책은 장준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 펴내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2012년 11월 26일 초판 발행, 돌베개)의 개정판이다.「개정판을 내며: 장준하 선생 태어나신지 100년, 그리고 2018년 7월의 부고」와 「개정판 에필로그: 장준하 비밀 밝혀줄 단서, 나는 어디 있는지 안다」를 새로 붙였으며, 본문을 새로 다듬었다.

목차

개정판을 내며 | 장준하 선생 태어나신지 100년, 그리고 2018년 7월의 부고
추천사 1 | 고상만 선생, 참으로 고맙소 _정연주(전 KBS 사장)
추천사 2 | 검은 구름 흩어지면 밝은 달 절로 드러난다 _명진(전 봉은사 주지)
프롤로그 | 나는 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나

1부 독립군 장준하 대 친일파 박정희
장준하를 처음 만나다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 “박정희는…”
장준하,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연인을 위해 일본군 징집을 선택한 장준하
일본군 탈출 후 임시정부를 향한 6,000리 대장정
장준하, 《사상계》 를 통해 언론인으로 서다
장준하와 박정희의 격돌은 운명
장준하의 두 번째 구속, 정치의 길로 접어들다
돈 없는 장준하의 선거운동, ‘사탕과 손수건’의 비밀
편치 않은 정치인의 길
박정희의 영구집권 계획을 폭로한 김대중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다던 박정희, 그가 지킨 약속은…
민주주의와 인권 압살, ‘유신시대’의 개막
긴급조치 남발, ‘거대한 감옥’으로 변한 대한민국
장준하를 석방하라, 미국 정부의 압력

2부 장준하 사건 조사관이 되다
장준하, 의문의 죽음
김대중 대통령의 인권 관련 업적 세 가지
‘교수의 양심’ 최종길 교수가 맞이한 참담한 최후
1973년 10월 19일, 중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의문사위원회가 규명한 사건들
1986년 서울대 김성수, 19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의문사 첫 번째 담당 사건, ‘남현진 이병 의문사’
구타 진술을 은폐한 군 헌병대 수사
헌병대 수사관도 믿지 않는 ‘구타 없는 군대’
밝혀진 남현진 이병 의문사의 진실
당신이 맡을 사건은 따로 있소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이 되다

3부 장준하 사건은 왜 의문사인가
1975년 8월 17일, 장준하를 본 사람들
장준하 사건에 얽힌 ‘오해와 진실’
구당 김남수의 장준하 치료설
김남수는 왜 장준하를 치료했다고 주장했을까
장준하 사건 조사팀이 세운 세 가지 원칙
답은 늘 쉬운 곳에 있었다
폐기된 ‘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찾아라!
극적으로 찾아낸 장준하 의문사 관련 기록들
사라진 ‘1시간 7분’ 증언, 녹음테이프를 찾다
국가와 민간 전문가를 동원한 음성 복원 싸움
사건 후 3일간 행적이 묘연한 목격자
김용환, 그는 왜 사실이 아닌 신원보증을 말하나
김용환, 그는 누구인가
직업 없이 무슨 돈으로 살았을까
1971년 이후 사라진 김용환이 다시 장준하에게 나타나다

4부 목격자 김용환, 그에게 묻다
김용환은 정말 목격자인가
장준하는 정말 군인 두 명을 만났을까
장준하의 약사봉 산행은 과연 사실일까
최초 공개, 1975년 8월 20일 김용환은 뭐라고 말했나
장준하는 나무를 잡은 사실이 없다? 목격자의 ‘반란’
사건 직후 사라진 목격자의 미스터리
사라진 그가 다시 사건 현장에 나타났다
장준하는 약사봉을 등반하지 않았다
장준하는 정말 벼랑에서 추락했나
사라진 보안사령관 직보 문서
유족에게 걸려온 괴전화의 정체를 추적하다
중앙정보부 ‘중요 상황 보고’에 적힌 괴전화의 주인공
괴전화를 했다는 김용환의 분노, “모두 조작이다”
괴전화를 부정한 이유, ‘새로운 늪’
김용환은 중정의 ‘사설 정보원’이다
김용환의 ‘특수인물 존안 카드’
‘박정희’의 9년 3개월 비서실장, 김정렴을 만나다
“장준하가 누구지”, 생각지도 못한 김정렴의 반격
뜬금없는 김정렴의 발언, ‘긴급조치 10호’와 김재규의 비밀
김정렴이 들려준 ‘박근혜와 구국선교단’, 그리고 진실
‘무소유’ 법정 스님이 말하는 장준하의 거사
장준하의 거사를 알고 있었던 중정
1975년 7월 29일 김대중과 장준하는 왜 만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해준 ‘조언’
2004년 3월, 의문사위원회는 왜 시국성명을 발표했나
감사원으로부터 받은 시국선언 배후 조사
‘개구리 소년’ 법의학자, 마지막 희망을 쏘다

초판 에필로그 | 장준하 사건은 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되었나
개정판 에필로그 | 장준하 비밀 밝혀줄 단서, 나는 어디 있는지 안다
 

저자 소개

저 : 고상만
 
1970년 경기도 판교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1992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를 시작으로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전국연합 인권위’, ‘천주교 인권위’ 등에서 활동가로 일해 왔다.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06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이후 서울...
 

출판사 리뷰

■ 장준하가 꿈꾼 독립과 자주, 민주주의 정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릴 것인가

‘한국 현대사의 순교자’ 장준하는 1918년 8월 27일에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이 책은 장준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 펴내는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2012년 11월 26일 초판 발행, 돌베개)의 개정판이다.「개정판을 내며: 장준하 선생 태어나신지 100년, 그리고 2018년 7월의 부고」와 「개정판 에필로그: 장준하 비밀 밝혀줄 단서, 나는 어디 있는지 안다」를 새로 붙였으며, 본문을 새로 다듬었다.
초판 출간 후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장준하 의문사 사건’은 정부와 여당의 훼방으로 오히려 잊혀져갔다. 장준하 선생의 의문의 죽음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했다 자처한 김용환 또한 2017년 9월 사망해 사건의 진실은 더더욱 멀어진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2018년 7월 2일 별세하셨다. 기품 있는 넉넉한 미소와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위대한 애국자의 위대한 아내’ 김희숙 여사를 기억하는 고상만은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취임식날 방문했던 고인과의 만남을 아프게 술회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한 김희숙 여사는 갑작스러운 흉통으로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심장 쪽에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는데 다행히 악성 종양은 아니라 전하는 의사에게 여사는 이렇게 물었다 한다. ‘앞으로 5년은 꼭 살아야겠는데, 더 살 수 있겠느냐’고. ‘더 오래 사셔야지 왜 5년이냐’는 저자의 물음에 여사는 ‘저 세상에 가서 만난 영감이,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누가 하고 있소, 물으면 차마 답을 못할 것 같아서’라 했다 한다. 그리고 5년 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저자는 김희숙 여사의 영전 앞에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다짐한다. 그동안 밝혀낸 사실과 새롭게 드러난 진실을 더하여 곧 이어질 진실화해위원회 2기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히 하는데 힘을 쏟겠다고. 누가 무엇을 감추고 있으며 어떤 것을 밝혀야 하는지 분명히 하겠다고. 이 책은 그 약속의 시작이다.
마침 2018년 장준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였던 선생을 기리고 뜻을 알리고자 조직된 ‘장준하100년위원회’가 지난 6일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공동위원장은 장호권 장준하 선생 장남, 박원순 서울시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맡았다. 우선 장준하100년위원회는 포천시청과 MOU를 맺어 장준하가 의문사한 약사봉 계곡을 장준하를 기념하는 장소화 하기로 하고 오는 8월 18일 43주기 추모식을 이곳에서 갖는다. 이어 8월 26일에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장준하 100년 어울림 한마당’을 열고, 또한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연하동에 위치한 장준하 선생 생가 방문과 복원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장준하 부활’의 움직임 속에 오랫동안 민주와 인권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수사반장’ 고상만의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의 개정판을 새로 펴낸다.

■ 37년 만에 사자후를 토해낸 장준하 선생의 유골, “나는 이렇게 타살되었다!”

▶ 장준하, 그는 누구인가

1918년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1944년 1월 김희숙과 결혼식을 올린 지 불과 14일 만에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쉬저우의 부대로 전속되었으나 부대를 탈출하여 무려 6,000리를 걸어 광복군에 합류했다. 이후 OSS(미국 전략첩보대) 1기 훈련을 마치고 이범석 장군 휘하에서 국내 진입 훈련을 하던 중, 닷새 차이로 해방을 맞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5년 11월에 임정요인들과 귀국하여 김구 주석의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등을 역임했다.
1953년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계》를 창간하여 지식인과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당 정권, 박정희 독재를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양심과 등불 역할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 연행되고 구속되는 등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나 이 공로로 1962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19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구속된 상태에서 제7대 총선에 신민당 후보로 옥중 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후 제8대 총선에서 여당의 부정선거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엄혹한 유신독재 시절이었던 1973년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이라는 어이없는 선고를 받았으나 이듬해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1975년 ‘제2차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준비하던 중 거사 발표 3일 전인 그해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당시 검·경은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이 ‘실족 추락사’라고 밝혔으나 75도 경사진 곳에서 15미터나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깨끗한 시신의 상태,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엇갈리는 진술, 보온병과 안경이 전혀 깨지지 않은 점 등 숱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해 대표적인 의문사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많은 비에 묘지 석축이 붕괴되어 2012년 이장을 하는 과정에서 37년 만에 선생의 유골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누가 봐도 선명한 지름 6센티미터 크기의 가격흔(加擊痕)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써 결국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독재 세력에 의해 타살되었으리라는 그간의 의혹이 진실에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 조사관 고상만, ‘장준하 타살’의 증거를 쫓다
2003년 7월부터 1년간 제2기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은 처음에 이 책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12년 8월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 여기저기에 글을 쓰고 방송 출연을 해오면서도 사건의 전말을 궁금해 하는 많은 기자들에게 고 조사관은 자신이 작성하여 국가기록원에 이관시킨 최종 보고서를 참고하라고 말해왔다. 그러다 국가기록원에서 장준하 사건 관련 자료를 2074년까지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진실을 덮으려는 정부의 비열한 ‘꼼수’에 맞서 이 사건의 전말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불철주야 집필에 매달려 2012년 11월에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초판을 발행한다.
그가 작심하고 밝힌 사건의 전말과 세세한 조사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영화와도 같다. 특히 ‘없는 자료도 실제로 없음을 확인한다’는 원칙하에 1975년 문익환, 계훈제 등이 장준하 발인 전날 찾아온 김용환과 사고 경위에 대해 1시간 7분 동안 나눈 문답이 담긴 녹음테이프와 19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과정을 보면 그가 이 사건을 얼마나 철저히 조사했는지 잘 드러난다. 더욱이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오락가락하는 진술, 《월간조선》과 가진 사실과 다른 인터뷰 내용 등을 엮어서 읽다 보면 당시 중앙정보부와 기무사령부가 끝내 협조해주지 않은 존안 자료가 하루 빨리 공개되어야 이 사건이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최초 공개 자료, 어떤 것들이 있었나
이 책에는 저자가 최초로 밝힌 여러 자료들이 들어 있다. 우선 문익환 목사의 혜안으로 남게 된 녹음테이프 내용을 비롯해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한 타살을 확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 9년 3개월간이나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정렴이 들려준 김재규와 긴급조치 10호의 비밀,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 비리 관련 사실!, 법정스님으로부터 확인한 장준하 ‘거사’의 실체,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상세한 과정, ‘진상규명 인정’ 의견을 밝힌 한상범 · 홍춘의 · 이기욱 위원의 ‘소수 의견서’와 당시 위문사위 위원장이었던 한상범 교수의 ‘인정 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서’ 전문 등이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가장 상세히, 또 정확히 알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숱한 자료 협조 요청에 번번이 ‘존안 자료 없음’이라는 여섯 글자의 뻔뻔한 답을 되풀이해온 국가정보기관과 재조사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외면했던 이명박 · 박근혜 정부의 후안무치와 술수가 낱낱이 드러난다.

▶ 문제의 인물 김용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자는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을 최소한 열여덟 번 이상 만났다. 평범한 시골 아저씨 같은 김용환에게서 저자는 인간적인 연민을 여러 차례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자를 가장 안타깝게 만든 것은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김용환의 진술이었다. 항간에 떠도는 김용환 관련 의혹들에 대해 저자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 조사 결과 진실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해서만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일례로 김용환이 중정의 ‘사설 정보원’이었다는 ‘설’은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이외에도 김용환은 정말 유일한 목격자가 맞는지, 중정의 ‘중요 상황 보고’ 문서에 사고 당일 유족에게 ‘괴전화’를 건 인물이 김용환으로 명기되어 있는데도 왜 그는 한사코 그 문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등등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많다.
저자는 사건의 중심에 서서 오랫동안 시달려온 김용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하루 빨리 재조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이 책을 김용환을 비난하는 근거로 삼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용환이 2017년 9월에 사망함으로써 그의 ‘진실’은 이제 추적하는 자와 시대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