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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국가와 나 (2022 장호권) -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의 회고록

동방박사님 2023. 1. 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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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장호권 선생이 자신이 살아온 칠십 평생의 삶을 덤덤하게 때론 격정 있게 토로한 회고록을 펴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파란만장’했다. 파도의 물결치는 것이 만장(萬丈)의 길이나 될 정도로 많은 시련과 풍파를 겪었다. 그의 아버지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제1세대 민주화운동가였다. 해방 후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에 통일을 염원하였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자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세 번 구속되었고 37번 연행되었다. 결국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포천의 약사봉 계곡에서 등산 중 의문의 주검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진정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살아온 장호권 선생의 삶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장호권 선생은 70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아름드리 그림자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회고록』이 마지막이 아니라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는 새로운 출발이 되길 희망한다.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목차

제1부 아버지와 나; 나의 아버지 장준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다.
6·25전쟁 발발 이후 부산으로 피난 가다.
[사상계]를 창간한다.
서울에 올라와 생활기반을 닦다.
[사상계], 민족 정론지로 거듭나다.
4·19혁명 이후 국토건설본부에 참여하다.
5·16군사정변 이후 부정 축재자로 몰리다.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민정 이양을 반대하다.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나서다.
정치인의 길로 나가 사카린 밀수사건을 파헤치다.
야당 ‘4자 회담’을 이끌다.
옥중 출마하여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다.
아버지가 나를 해군에 입대시키다.
베트남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
[사상계], 폐간당하다.
『돌베개』를 출판하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하다.
‘헌법개정백만인서명운동’을 전개하다.
감옥에서 나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퇴원 후 야당 통합에 진력하다.
나의 결혼식장이 시국강연회장이 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배성사를 올리다.
약사봉에서 갑작스러운 의문사를 당하다.
아버지의 시신을 안방 안치하고 검안하다.
검찰 측, 실족사로 처리하다
명동성당에서 아버지의 영결식을 치르다.

제2부 나와 아버지; 홀로서기와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

의문사 현장에서 진상 규명에 나서고 추모비를 세우다.
사건 진실을 밝히려다 테러를 당하다.
가족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하다.
말레이시아로 도피성 외유를 떠나다.
싱가포르로 떠나서도 아버지를 기리다.
‘장준하 새긴돌’을 세우다.
싱가포르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닦다.
귀국 후 낯선 고국 생활을 시작하다.
귀국 전 진상 규명에 한계를 느끼다.
귀국 후 진상규명에 직접 나서다.
[사상계]를 복간하다.
18대 총선에 나가다.

제3부 민족·국가와 나; 일주명창(一炷明窓)

장준하공원을 조성하면서 37년 만에 아버지를 유골로 만나다.
전면적 재조사와 진상 규명에 나서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하다.
장준하선생암살의혹규명국민대책위원회 발족, 진상 규명하다,
‘겨레장’으로 영원한 안식처에 안장하다.
긴급조치 위반, 무죄 선고를 받고 국가 배상을 청구하다.
평화운동가, 통일운동가로 나서다.
‘장준하 선생 등 과거 사건 진실규명과 정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다.
친일파 청산에 앞장서다.
C-47 비행기, 여의도공원에 전시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다.
‘장준하 100년 위원회’ 출범,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
한신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하다.
‘장준하기념사업회’를 이끌다.
‘장준하 평화관’ 건립을 추진하다.
광복회 서울지부장으로 활동하다.
광복회 서울시지부의 지회장들과 함께 6천 리 대장정에 나서다.
큰딸 원경이를 먼저 보내다.

글을 마치며
 

저자 소개

저 : 장호권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걸었던 민족운동과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신념을 새기며 살아왔다. 1949.5.14 출생 / 1965.3~1967.2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 1968.6~1971.9 해군 복무 / 1971.9 군 제대 후 아버지 수행비서 역할 / 1973.2 제9대 국회의원 선거원으로 활동 / 1973.12 ‘헌법개정백만인서명운동’ 전개 / 1975.5 결혼 ...
 

출판사 리뷰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의 회고록

장호권 선생이 자신이 살아온 칠십 평생의 삶을 덤덤하게 때론 격정 있게 토로한 회고록을 펴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파란만장’했다. 파도의 물결치는 것이 만장(萬丈)의 길이나 될 정도로 많은 시련과 풍파를 겪었다. 그의 아버지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제1세대 민주화운동가였다.

해방 후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에 통일을 염원하였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자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세 번 구속되었고 37번 연행되었다. 결국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포천의 약사봉 계곡에서 등산 중 의문의 주검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진정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살아온 장호권 선생의 삶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장호권 선생은 자신의 회고록 제1부에서 ‘아버지와 나; 나의 아버지 장준하’라는 제목으로 어머니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거나 자신이 경험했던 아버지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장호권 선생이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칠십여 년 동안에 26년 정도이지만, 군 제대 후 21살부터 5년 동안은 비서처럼 아버지를 측근에서 모셨다. 장준하 선생의 전기문이 여러 권 나왔지만,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을 처음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신촌 집에서 살 때가 짧지만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제2부는 ‘나의 아버지; 홀로서기와 의문사 진상규명활동’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였다. 1979년 8월 아버지가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무사를 당한 뒤부터 2008년 4월까지 29여 년의 삶을 회고했다. 회고록 전체에서 가장 긴 시간이지만, 내용은 가장 짧다. 제목에서 ‘홀로서기’라고 되어 있지만,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었나 한다.

아버지가 의문사를 당한 뒤로도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독재정권이 계속되었기에 그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어 망명 아닌 망명의 길을 떠나 해외에서 지내야만 했다. 25년 동안의 해외 생활을 접고 국내에 들어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폐간된 [사상계]를 이어가고자 했으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매듭을 풀고자 아버지가 경계했던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총선에 도전했지만 이마저도 이루질 못했다.

제3부는 ‘민족·국가와 나; 일주명창’에서 비치듯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힌다’라는 글귀처럼 불의한 정권에 맞서 ‘하나의 심지’, ‘하나의 불꽃’처럼 사셨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아버지 주검의 진실을 밝히고자 37년 만에 관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불효자로서 한겨울에 맨발로 아버지께 술을 올렸다. 아버지를 다시 묻고는 시묘살이도 했다. 이후 장호권 선생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규명을 위해 애썼고, 인권·평화·통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진정한 ‘홀로서기’를 했다. 그 길이 아버지의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장호권 선생은 70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아름드리 그림자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회고록』이 마지막이 아니라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는 새로운 출발이 되길 희망한다.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추천평

고 장준하 선생님은 질곡의 시대에 국민의 등불이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평생을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그 삶을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회장님이 이 회고록에 담았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은 수많은 구속과 탄압 속에서도 민주와 정의를 이루기 위한 저항과 투쟁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이 생애를 바쳐 이루고자 하셨던 그 뜻을 이제 우리들이 완성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불꽃이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도록 이 책이 그 심지가 되어줄 것입니다.
- 이낙연(제45대 국무총리)

마지막 광복군에서 언론인으로, 정치인으로, 재야민주화운동 지도자로 통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장준하 선생님의 아들, 장호권 교수의 생생한 증언은 잃어버린 현대사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 맞추고 있습니다. 역사의 스승이신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교수의 치열했던 삶을 읽고 흥분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또 슬펐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장준하 선생님의 지상명령을 유업으로 여기고 매진하고자 하는 장호권 교수의 조국애에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이 많은 젊은이에게 용기를 줄 것입니다. 국민이 읽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이재정(경기도 교육감)

장준하 선생은 청년광복군시절 항일수기 『돌베개』를 남겼다.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서 탈출한 후 광복군 되고자 몸부림을 쳤던 중국에서의 6천리 길을 왜 다시금 떠올려야 했을까. 왜 선생은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라는 말을 수차례에 걸쳐서 수기에 남겼을까.

장준하 선생의 아들이자 고난에 찬 한국현대사를 걸어온 장호권 선생이 쓴 회고록 『민족·국가와 나』라는 책이 내 앞에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대기와 의문의 죽음, 그리고 죽음을 딛고 일어선 진상 규명 과정에 관하여 상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또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삶, 장기간 도피성 해외 거주 이후 돌아온 조국에서의 치열한 노력을 나누고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참으로 귀한 증언이자 소중한 역사의 한 장면이리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한국현대사는 낯설고 부담스럽고 잘 모르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그러한 답답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함께 읽고 보다 나은 역사의 진보를 향하여 함께 나아가자.
-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