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우둔한 정치인들 때문에 혹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철거된,
살아 있는 역사 속의 건물들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
이 책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위대한 건축물들을 연민과 반성으로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축물들을 조심스럽게 찾아보고 왜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는 그의 작업은 그 깊이와 광범위함에서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많은 건축물들을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시간이 흘러서 무너져 내리거나 신의 행동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에리두와 가까운 우루크 신전에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타워까지,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우리는 왜 잊지 못하는 것일까?
정치적 이유로 멀쩡한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신앙의 경건함으로 지켜졌으며, 과학 기술 발전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고 인류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즉 잃어버린 건축물들은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하던 산물이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한 인류의 꿈의 자취인 것이다. 영국 《가디언》의 건축 및 디자인 에디터이자 유명 비평가인 저자 조너선 글랜시는 역사에서 사라진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그리고 왜 잃어버렸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살아 있는 역사 속의 건물들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
이 책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위대한 건축물들을 연민과 반성으로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축물들을 조심스럽게 찾아보고 왜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는 그의 작업은 그 깊이와 광범위함에서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많은 건축물들을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시간이 흘러서 무너져 내리거나 신의 행동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에리두와 가까운 우루크 신전에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타워까지,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우리는 왜 잊지 못하는 것일까?
정치적 이유로 멀쩡한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신앙의 경건함으로 지켜졌으며, 과학 기술 발전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고 인류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즉 잃어버린 건축물들은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하던 산물이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한 인류의 꿈의 자취인 것이다. 영국 《가디언》의 건축 및 디자인 에디터이자 유명 비평가인 저자 조너선 글랜시는 역사에서 사라진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그리고 왜 잃어버렸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목차
서론
Chapter 1 신화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2 평화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3 전쟁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4 너무 일찍 잃어버리다
Chapter 5 신의 행동으로 잃어버리다
Chapter 6 정치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7 꿈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8 스스로 자취를 잃어버리다
Chapter 9 건축가의 제도판 위에 머물다
찾아보기
Chapter 1 신화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2 평화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3 전쟁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4 너무 일찍 잃어버리다
Chapter 5 신의 행동으로 잃어버리다
Chapter 6 정치 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7 꿈속에서 잃어버리다
Chapter 8 스스로 자취를 잃어버리다
Chapter 9 건축가의 제도판 위에 머물다
찾아보기
책 속으로
건물은 우산이나 선글라스, 휴대전화처럼 버스나 기차에 두고 내렸다가 다시 찾아지거나 제발 분실물센터에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게 되는 그런 일상의 물건이 아니다. 주머니에 뚫린 구멍으로 쏙 빠져나가거나 마룻바닥 틈새에 끼일 수도 없다. 장난감이나 모형이 아닐 바에는 침대 밑이나 소파 뒤 중에서 구석에서 발견될 리도 만무하다. 모두 새삼스런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우리 인류는 마치 구리동전이나 머리핀, 자동차열쇠를 잃어버리듯 습관적으로 건축물을 잃어버렸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위대함을 칭송해 마지않던 기념물에 대해서도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해왔다.---p. 8 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듯한 두 개의 도시도 지난 몇백 년 동안 작가, 예술가, 역사가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들은 대체 카르타고와 트로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해했다. 과연 실재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전설이나 꿈에 불과했던 걸까? 두 도시 모두 확실한 실재이다.---p. 51 중에서
옛날 리전트 스트리트Regent Street6도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현대의 리전트 스트리트가 인기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원래 것보다 세련됨이 덜할 뿐이다. 지금도 리전트 스트리트는 멋지게 쭉 뻗은 런던의 큰 길이다. 다만 거기에 서 있는 건물들이 다소 좀 거만하고 또 지루해 보인다. 가장 멋진 부분은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와 로워 리전트 스트리트Lower Regent Street로 통하는 남 중에서 끝 곡선도로인데 1920년대 레지날드 블럼필드 경(1856∼1942)이 약간은 음울한 고전주의적 보자르 양식으로 건축했다. 이 건축 계획은 1927년에 가서야 최종적으로 완성됐는데, 이제 리전트 스트리트는 더 이상 섭정시대의 거리가 아니었다.--pp. 75~76 중에서
우리가 코번트리에서 잃어버린 것은 14세기 후반 혹은 15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엄 높은 중세 교회의 실질적 심장부였다. 세인트 마이클St. Michael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교구 교회로 1918년에 이르러서야 성당의 지위로 격상됐다. 한편 코번트리는 중세시대의 담장 안과 주변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킨 현대적인 성당 환경을 새로 얻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건축가 바실 스펜스Basil Spence(1907∼1976)는 1950년 새로운 성당의 설계 공모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공사는 6년 후에 시작돼 1962년에 완성됐다. 성당 내부의 한 번 접히고 또 다시 접히는 형식의 벽은 최고의 현대예술품이자 수공예품으로, 존 파이퍼John Piper(스테인드글래스), 그래엄 서덜랜드Graham Sutherland(태피스트리), 존 허튼John Hutton(유리판각)이 작업했다. 아무런 개념 없이 공장에다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펜스의 성당은, 한마디로 역작이다. 폭격 맞은 성당의 돌 담벼락이 마치 망토처럼 새 성당을 감싸는 모습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pp. 118~120 중에서
사실 펜스테이션은 맨해튼에 늦게서야 도착했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전기 철도가 허드슨 강 아래에 건설되기 전까지, 펜실베이니아 철도는 강의 서 중에서인 뉴저지 주 익스체인지 플레이스 역에서 멈춰 서야 했다. 사람들은 거기서 페리를 타고 맨해튼에 들어왔다. 전기 기차가 나오고 터널이 뚫리면서 드디어 펜스테이션이 건설됐다. 그나마 이 기차의 전당을 찍어놓은 훌륭한 사진들이 많아서 다행인데, 어떻게 그리 장엄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건물이 철거되고 그 위에 윤기라고는 전혀 없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 단지가 들어서자 건축역사가 빈센트 스컬리는 펜스테이션의 옛것과 새것을 비교하면서, 한때는 “신처럼 들어왔던 도시에 이제는 쥐새끼처럼 종종거리며 들어온다”고 말했다. 1964년 뉴욕의 펜스테거가 위대한 역사적 건축물의 죽음을 의미했다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새 기차역은 무시무시하게도 미국의 위대한 현대건축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은 기차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p. 158~159 중에서
지진은 현대의 기념물과 도시도 파괴했다. 지진으로 산산조각 난 도쿄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거대도시를 재건하는 일은 다음 세대에게 너무나도 큰 부담이자 심지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정력과 생기,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낸 그 도시를 포기해버리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가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도시 전역에 맹렬한 불길이 타올랐다. 아놀드 겐테가 찍은 유명한 사진에서는 아름다운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집 위에 올라앉은 샌프란시스코 사람들과 그들 주변으로 무너져 내리는 도시가 보인다. 사진은 다가오는 대혼란에서 질서정연하게 대피해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은 엄청난 공포와 약탈이 있었다. 군인들은 약탈자에 발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약 500명이 사살됐다. 리히터 지진계 7.7에서 8.3을 기록한 이 지진과 뒤이은 화재로 사망자가 총 2,000명을 헤아렸다. 파괴된 건물의 숫자는 어마어마했고 도심이 완전히 재건돼야 했는데 1915년에 가서야 굵직한 작업들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p. 217 중에서
1990년 성당재건 계획이 실행에 들어갔다. 소련이 해체되자 당국은 옛날 방식 내지는 옛날 건축물 중 몇 개를 되살리고자 했다. 구세주 예수 성당의 재건축은 스스로 망해버린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자 러시아의 정교회로의 귀환을 확증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번에는 비록 새롭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초자본주의의 화려한 옷을 걸쳤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알렉시 데니소프가, 나중에는 주라브 체르테텔리가 설계하여 부활한 성당은 어느 정도는 옛날과 똑같았다. 아주 놀랍도록 천박한(원래 성당은 19세기 비평가들한테는 더 심하게 경멸을 받았다), 덕지덕지 대리석을 바른 대형 건물이 338피트(103미터) 높이의 돔을 얹고서 2000년에 축성됐다.---p. 262 중에서
그 많은 환상 속 건축물에 진짜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바로 영화예술이다. 사람들은 100년을 이어온 영화 속에서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건축적 순간을 만났을 것이다. 아직도 나를 흥분시키는 영화 중 하나는 특수효과를 비롯해 음흉하면서도 짐짓 아무것도 아닌 듯 뱉어내는 풍자가 일품인 스탠리 큐브릭의 대서사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하 〈2001〉)다. 이 범상치 않은 영화에서 인간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뻔지르르하게 진부하고 지극히 따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점에서 얼간이들에 불과했으며 특수효과야말로 진짜 주인공이었다. 앤서니 매스터즈, 해리 랑게, 어니스트 아처라는 뛰어난 재능의 디자이너들이 한 팀을 이뤄 영화의 시각적 분위기와 구체적인 디자인을 창조했다. 제프리 언스워스의 노련한 카메라워크는 놀라울 정도로 산뜻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2001〉은 여전히 매우 설득력이 있다.---p. 298 중에서
현대의 건물들은 여러 가지 안전규제검사를 받기 때문에 옛날 건축물보다 훨씬 구조가 안전하다고 믿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주의 깊게 설계된 건물조차도 갑자기 붕괴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1981년 7월 17일,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하얏트 리전시 호텔의 드넓은 아트리움 로비에는 머리 위로 3개의 콘크리트 통로가 서로 교차되게끔 지어져 있었는데 그중 2개의 통로가 무너져 내려서 114명이 죽고 2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운 나쁘게도 그날, 이 화려한 40층짜리 새 호텔의 로비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는데 문을 연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호텔에서 인기 있는 춤 경연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4층 통로는 강철봉으로 지지가 됐었는데 사람들이 난간 너머를 보려고 몰려들어서 그 무게를 못 이기고 아래 댄스플로어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p. 323 중에서
높이 138피트(42미터)로 치솟은 중앙신도석과 접시 모양의 돔, 자그마한 아치형 채광창, 53개의 촛불이 밝혀진 측면 제단 등으로 이뤄진 엄숙하고 숭고한 실내는 모두 화강암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영국에 이와 같은 건축물은 없었다. 세인트 폴 성당이 밝은 분위기의 예배당으로 지어졌다면 리버풀 성당은 가톨릭 신앙의 신비로움을 모시는 장소가 되고자 했다. 주춧돌은 1933년 6월 5일에 놓아졌다. 그로부터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히틀러가 독일에서 독재 권력을 손에 넣었다. 1941년 건축이 중단될 때까지, 약 400만 개의 벽돌과 펜리스Penrith의 화강암 4만 입방피트(1,132입방미터)가 놓였는데 성당 지하실은 거의 완공됐다. 런던대공습 때 공습대피소로 사용됐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듯한 두 개의 도시도 지난 몇백 년 동안 작가, 예술가, 역사가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들은 대체 카르타고와 트로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해했다. 과연 실재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전설이나 꿈에 불과했던 걸까? 두 도시 모두 확실한 실재이다.---p. 51 중에서
옛날 리전트 스트리트Regent Street6도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현대의 리전트 스트리트가 인기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원래 것보다 세련됨이 덜할 뿐이다. 지금도 리전트 스트리트는 멋지게 쭉 뻗은 런던의 큰 길이다. 다만 거기에 서 있는 건물들이 다소 좀 거만하고 또 지루해 보인다. 가장 멋진 부분은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와 로워 리전트 스트리트Lower Regent Street로 통하는 남 중에서 끝 곡선도로인데 1920년대 레지날드 블럼필드 경(1856∼1942)이 약간은 음울한 고전주의적 보자르 양식으로 건축했다. 이 건축 계획은 1927년에 가서야 최종적으로 완성됐는데, 이제 리전트 스트리트는 더 이상 섭정시대의 거리가 아니었다.--pp. 75~76 중에서
우리가 코번트리에서 잃어버린 것은 14세기 후반 혹은 15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엄 높은 중세 교회의 실질적 심장부였다. 세인트 마이클St. Michael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교구 교회로 1918년에 이르러서야 성당의 지위로 격상됐다. 한편 코번트리는 중세시대의 담장 안과 주변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킨 현대적인 성당 환경을 새로 얻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건축가 바실 스펜스Basil Spence(1907∼1976)는 1950년 새로운 성당의 설계 공모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공사는 6년 후에 시작돼 1962년에 완성됐다. 성당 내부의 한 번 접히고 또 다시 접히는 형식의 벽은 최고의 현대예술품이자 수공예품으로, 존 파이퍼John Piper(스테인드글래스), 그래엄 서덜랜드Graham Sutherland(태피스트리), 존 허튼John Hutton(유리판각)이 작업했다. 아무런 개념 없이 공장에다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펜스의 성당은, 한마디로 역작이다. 폭격 맞은 성당의 돌 담벼락이 마치 망토처럼 새 성당을 감싸는 모습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pp. 118~120 중에서
사실 펜스테이션은 맨해튼에 늦게서야 도착했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전기 철도가 허드슨 강 아래에 건설되기 전까지, 펜실베이니아 철도는 강의 서 중에서인 뉴저지 주 익스체인지 플레이스 역에서 멈춰 서야 했다. 사람들은 거기서 페리를 타고 맨해튼에 들어왔다. 전기 기차가 나오고 터널이 뚫리면서 드디어 펜스테이션이 건설됐다. 그나마 이 기차의 전당을 찍어놓은 훌륭한 사진들이 많아서 다행인데, 어떻게 그리 장엄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건물이 철거되고 그 위에 윤기라고는 전혀 없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 단지가 들어서자 건축역사가 빈센트 스컬리는 펜스테이션의 옛것과 새것을 비교하면서, 한때는 “신처럼 들어왔던 도시에 이제는 쥐새끼처럼 종종거리며 들어온다”고 말했다. 1964년 뉴욕의 펜스테거가 위대한 역사적 건축물의 죽음을 의미했다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새 기차역은 무시무시하게도 미국의 위대한 현대건축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은 기차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p. 158~159 중에서
지진은 현대의 기념물과 도시도 파괴했다. 지진으로 산산조각 난 도쿄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거대도시를 재건하는 일은 다음 세대에게 너무나도 큰 부담이자 심지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정력과 생기,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낸 그 도시를 포기해버리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가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도시 전역에 맹렬한 불길이 타올랐다. 아놀드 겐테가 찍은 유명한 사진에서는 아름다운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집 위에 올라앉은 샌프란시스코 사람들과 그들 주변으로 무너져 내리는 도시가 보인다. 사진은 다가오는 대혼란에서 질서정연하게 대피해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은 엄청난 공포와 약탈이 있었다. 군인들은 약탈자에 발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약 500명이 사살됐다. 리히터 지진계 7.7에서 8.3을 기록한 이 지진과 뒤이은 화재로 사망자가 총 2,000명을 헤아렸다. 파괴된 건물의 숫자는 어마어마했고 도심이 완전히 재건돼야 했는데 1915년에 가서야 굵직한 작업들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p. 217 중에서
1990년 성당재건 계획이 실행에 들어갔다. 소련이 해체되자 당국은 옛날 방식 내지는 옛날 건축물 중 몇 개를 되살리고자 했다. 구세주 예수 성당의 재건축은 스스로 망해버린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자 러시아의 정교회로의 귀환을 확증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번에는 비록 새롭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초자본주의의 화려한 옷을 걸쳤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알렉시 데니소프가, 나중에는 주라브 체르테텔리가 설계하여 부활한 성당은 어느 정도는 옛날과 똑같았다. 아주 놀랍도록 천박한(원래 성당은 19세기 비평가들한테는 더 심하게 경멸을 받았다), 덕지덕지 대리석을 바른 대형 건물이 338피트(103미터) 높이의 돔을 얹고서 2000년에 축성됐다.---p. 262 중에서
그 많은 환상 속 건축물에 진짜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바로 영화예술이다. 사람들은 100년을 이어온 영화 속에서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건축적 순간을 만났을 것이다. 아직도 나를 흥분시키는 영화 중 하나는 특수효과를 비롯해 음흉하면서도 짐짓 아무것도 아닌 듯 뱉어내는 풍자가 일품인 스탠리 큐브릭의 대서사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하 〈2001〉)다. 이 범상치 않은 영화에서 인간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뻔지르르하게 진부하고 지극히 따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점에서 얼간이들에 불과했으며 특수효과야말로 진짜 주인공이었다. 앤서니 매스터즈, 해리 랑게, 어니스트 아처라는 뛰어난 재능의 디자이너들이 한 팀을 이뤄 영화의 시각적 분위기와 구체적인 디자인을 창조했다. 제프리 언스워스의 노련한 카메라워크는 놀라울 정도로 산뜻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2001〉은 여전히 매우 설득력이 있다.---p. 298 중에서
현대의 건물들은 여러 가지 안전규제검사를 받기 때문에 옛날 건축물보다 훨씬 구조가 안전하다고 믿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주의 깊게 설계된 건물조차도 갑자기 붕괴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1981년 7월 17일,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하얏트 리전시 호텔의 드넓은 아트리움 로비에는 머리 위로 3개의 콘크리트 통로가 서로 교차되게끔 지어져 있었는데 그중 2개의 통로가 무너져 내려서 114명이 죽고 2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운 나쁘게도 그날, 이 화려한 40층짜리 새 호텔의 로비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는데 문을 연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호텔에서 인기 있는 춤 경연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4층 통로는 강철봉으로 지지가 됐었는데 사람들이 난간 너머를 보려고 몰려들어서 그 무게를 못 이기고 아래 댄스플로어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p. 323 중에서
높이 138피트(42미터)로 치솟은 중앙신도석과 접시 모양의 돔, 자그마한 아치형 채광창, 53개의 촛불이 밝혀진 측면 제단 등으로 이뤄진 엄숙하고 숭고한 실내는 모두 화강암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영국에 이와 같은 건축물은 없었다. 세인트 폴 성당이 밝은 분위기의 예배당으로 지어졌다면 리버풀 성당은 가톨릭 신앙의 신비로움을 모시는 장소가 되고자 했다. 주춧돌은 1933년 6월 5일에 놓아졌다. 그로부터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히틀러가 독일에서 독재 권력을 손에 넣었다. 1941년 건축이 중단될 때까지, 약 400만 개의 벽돌과 펜리스Penrith의 화강암 4만 입방피트(1,132입방미터)가 놓였는데 성당 지하실은 거의 완공됐다. 런던대공습 때 공습대피소로 사용됐다.
---p. 368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건축물들을 잃어버렸는가?
이 책의 원제는 [Lost Building]이다.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잃어버린 건축물이 된다. 하지만 저자가 서론에도 썼듯이 건축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동전이나 머리핀, 우산처럼 잃어버릴 만한 것이 결코 못 된다. 그러나 그야말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한 건축물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 건축물들을 비롯하여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웅장함을 자랑하던 멋진 건축물들을 이제는 그림이나 사진으로밖에 볼 수가 없어졌다.
아름다운 파르테논 신전은 자취만 남았고, 웅장함을 자랑하던 런던의 유스턴 아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름다운 13세기 고딕 양식의 성당들은? 판화로만 남아 있는 화려한 칼튼 하우스는? 그리고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건축기술 발전의 성과로 여겨지던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은?
우리가 그 많은 건축물들을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시간이 흘러서 무너져 내리거나 신의 행동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이유로 멀쩡한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신앙의 경건함으로 지켜졌으며, 과학 기술 발전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고 인류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즉 잃어버린 건축물들은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하던 산물이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한 인류의 꿈의 자취인 것이다. 영국 《가디언》의 건축 및 디자인 에디터이자 유명 비평가인 저자 조너선 글랜시는 역사에서 사라진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그리고 왜 잃어버렸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왜 잃어버렸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무려 여섯 개씩이나 잃어버리고, 조지 왕조시대의 더블리을 무참히 쳐부수고 런던의 유스턴 아치를 무너뜨린 이유를 냉철하게 묻고 있다. 더구나 에너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시대에도 환경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직 멀쩡하고 심지어 새로 지은 건물마저 무분별하게 철거해버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환상적인 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바벨탑에서 에리두의 신전, 지진으로 파괴된 크레타 궁전, 페르시아 제국의 위대한 자취를 보여주는 페르세폴리스 유적, 트로이의 항구 등 이제는 유적으로만 남은 그 영화의 흔적을 풍부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놓치고 사는지 깨닫게 해준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유적에 대한 발견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태만과 노골적인 탐욕에 눈 먼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빚어낸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건축물들은 또 어떠한가.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코번트리 시내와 코번트리 성당에 가해진 독일 루프트바퍼의 무차별적인 폭격은 영국인의 영혼에 대한 공격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경건함으로 지켜져야 했던 종교적 건축물인 코번트리 성당을 정복자들은 현지인들의 영혼을 괴롭히고 짓밟기 위해 부수었던 것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의 경우 소리 없는 침략자인 빗살수염벌레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만 화재는 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1666년 런던 대화재 때는 세인트 폴 성당 등 런던의 중세 건축물 상당수가 파괴되기도 했다. 또한 신의 행동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화재, 홍수, 태풍, 지진 등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파괴에 의해서도 건축물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영국의 초기 고전주의 주택 중 가장 잘생긴 건축물 중 하나인 버크셔의 콜스힐 하우스도 화재로 사라지고 정원과 마당만 남아 있다.
장엄한 신전의 모습을 한 유스턴 아치는 ‘변화’와 ‘현대화’라는 정치적 논리 속에 사라지기도 했다. 19세기 초의 뛰어난 건축적 창조물이자 영국이 개척한 철도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기념물로 인정받은 유스턴 아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무관심과 무교양에 사라졌던 것이다. 건축물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평화시에도 사라져갔다. 평화시에도 역사적인 건축물, 위대한 건축물들은 가장 크게 경제원리에 의해 무너졌다. 새것에 열광하듯 개발의 논리에 푹 빠진 경영계와 정치계의 마녀사냥적 열풍 속에서 런던의 컬럼비아 마켓이 사라졌듯이 말이다.
해박한 건축 지식과 매력적인 글쓰기로 풀어낸 잃어버린 건축물들에 대한 애가
저자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위대한 건축물들을 연민과 반성으로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축물들을 조심스럽게 찾아보고 왜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는 그의 작업은 그 깊이와 광범위함에서 놀랍기만 하다. 오랫동안 건축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으로 다져진 해박한 지식은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던 우리에게 건축물을 둘러싼 역사와 건축가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려줌으로써 잃어버린 건축물들에 대한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일깨운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건축물들에 대한 기록물들을 곁들인 그의 이야기 솜씨는 독자의 세계건축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이 책의 원제는 [Lost Building]이다.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잃어버린 건축물이 된다. 하지만 저자가 서론에도 썼듯이 건축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동전이나 머리핀, 우산처럼 잃어버릴 만한 것이 결코 못 된다. 그러나 그야말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한 건축물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 건축물들을 비롯하여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웅장함을 자랑하던 멋진 건축물들을 이제는 그림이나 사진으로밖에 볼 수가 없어졌다.
아름다운 파르테논 신전은 자취만 남았고, 웅장함을 자랑하던 런던의 유스턴 아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름다운 13세기 고딕 양식의 성당들은? 판화로만 남아 있는 화려한 칼튼 하우스는? 그리고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건축기술 발전의 성과로 여겨지던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은?
우리가 그 많은 건축물들을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시간이 흘러서 무너져 내리거나 신의 행동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이유로 멀쩡한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도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신앙의 경건함으로 지켜졌으며, 과학 기술 발전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고 인류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즉 잃어버린 건축물들은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하던 산물이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한 인류의 꿈의 자취인 것이다. 영국 《가디언》의 건축 및 디자인 에디터이자 유명 비평가인 저자 조너선 글랜시는 역사에서 사라진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그리고 왜 잃어버렸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왜 잃어버렸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무려 여섯 개씩이나 잃어버리고, 조지 왕조시대의 더블리을 무참히 쳐부수고 런던의 유스턴 아치를 무너뜨린 이유를 냉철하게 묻고 있다. 더구나 에너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시대에도 환경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직 멀쩡하고 심지어 새로 지은 건물마저 무분별하게 철거해버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환상적인 그림으로만 남아 있는 바벨탑에서 에리두의 신전, 지진으로 파괴된 크레타 궁전, 페르시아 제국의 위대한 자취를 보여주는 페르세폴리스 유적, 트로이의 항구 등 이제는 유적으로만 남은 그 영화의 흔적을 풍부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놓치고 사는지 깨닫게 해준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유적에 대한 발견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태만과 노골적인 탐욕에 눈 먼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빚어낸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건축물들은 또 어떠한가.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코번트리 시내와 코번트리 성당에 가해진 독일 루프트바퍼의 무차별적인 폭격은 영국인의 영혼에 대한 공격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경건함으로 지켜져야 했던 종교적 건축물인 코번트리 성당을 정복자들은 현지인들의 영혼을 괴롭히고 짓밟기 위해 부수었던 것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의 경우 소리 없는 침략자인 빗살수염벌레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만 화재는 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1666년 런던 대화재 때는 세인트 폴 성당 등 런던의 중세 건축물 상당수가 파괴되기도 했다. 또한 신의 행동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화재, 홍수, 태풍, 지진 등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파괴에 의해서도 건축물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영국의 초기 고전주의 주택 중 가장 잘생긴 건축물 중 하나인 버크셔의 콜스힐 하우스도 화재로 사라지고 정원과 마당만 남아 있다.
장엄한 신전의 모습을 한 유스턴 아치는 ‘변화’와 ‘현대화’라는 정치적 논리 속에 사라지기도 했다. 19세기 초의 뛰어난 건축적 창조물이자 영국이 개척한 철도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기념물로 인정받은 유스턴 아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무관심과 무교양에 사라졌던 것이다. 건축물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평화시에도 사라져갔다. 평화시에도 역사적인 건축물, 위대한 건축물들은 가장 크게 경제원리에 의해 무너졌다. 새것에 열광하듯 개발의 논리에 푹 빠진 경영계와 정치계의 마녀사냥적 열풍 속에서 런던의 컬럼비아 마켓이 사라졌듯이 말이다.
해박한 건축 지식과 매력적인 글쓰기로 풀어낸 잃어버린 건축물들에 대한 애가
저자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위대한 건축물들을 연민과 반성으로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축물들을 조심스럽게 찾아보고 왜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는 그의 작업은 그 깊이와 광범위함에서 놀랍기만 하다. 오랫동안 건축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으로 다져진 해박한 지식은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던 우리에게 건축물을 둘러싼 역사와 건축가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려줌으로써 잃어버린 건축물들에 대한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일깨운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건축물들에 대한 기록물들을 곁들인 그의 이야기 솜씨는 독자의 세계건축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56.문화예술 입문 (독서>책소개) > 1.건축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종훈회장의 현대건축 여행 (0) | 2022.08.07 |
---|---|
55 세계의 도시 건축문화 (0) | 2022.07.12 |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 (0) | 2022.07.12 |
옛 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답사 (0) | 2022.07.12 |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 (0) | 2022.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