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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 왕실의 즉위의식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가운데 왕실의 행사를 다룬 세 권의 책 『왕실의 천지제사』 『왕실의 혼례식 풍경』『즉위식, 국왕의 탄생』 가운데 마지막 책. 조선시대에 새 왕이 보위에 오르는 의식인 즉위식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과, 세자가 왕의 후계자인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식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즉위의례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경전에서 찾아보고 그 의미를 살핀다. 명대 이전 중국 역대 왕조의 즉위식과, 조선 즉위의례의 직접적인 연원이 된 명대의 즉위의례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먼저 고려시대의 즉위식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로의 변화와 추이를 살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과, 각 즉위식의 ‘실제’를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즉위식의 공간인 문問과 전殿,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왕위에 오르는 의식의 상징물인 대보大寶와 교명敎命, 복식과 각종 의장, 음악, 관련 기록 등 즉위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4부에서는 고종황제 즉위식을 통해 황제국으로의 변모를 살펴본다. 황제국의 선포와 황제 칭호를 통한 진정한 독립국으로의 열망이 일었던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과 황제국 수립의 과정을 개괄하고, 변화된 황제의장과 복식, 내용과 규모 등을 황제 등극의를 기록한 『(고종)대례의궤』를 위주로 살펴본다.
제5부에서는 왕세자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는 의식들을 살펴본다. 왕세자는 책봉의식, 입학의식, 관례, 대리청정, 조참의식 등을 통해 왕의 후계자로 공인받았는데, 왕의 즉위식에 비해 훨씬 풍부한 기록과 시각자료들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왕세자 공인의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제6부에서는 조선 국왕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문화 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가운데 왕실의 행사를 다룬 세 권의 책 『왕실의 천지제사』 『왕실의 혼례식 풍경』『즉위식, 국왕의 탄생』 가운데 마지막 책. 조선시대에 새 왕이 보위에 오르는 의식인 즉위식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과, 세자가 왕의 후계자인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식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즉위의례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경전에서 찾아보고 그 의미를 살핀다. 명대 이전 중국 역대 왕조의 즉위식과, 조선 즉위의례의 직접적인 연원이 된 명대의 즉위의례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먼저 고려시대의 즉위식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로의 변화와 추이를 살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과, 각 즉위식의 ‘실제’를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즉위식의 공간인 문問과 전殿,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왕위에 오르는 의식의 상징물인 대보大寶와 교명敎命, 복식과 각종 의장, 음악, 관련 기록 등 즉위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4부에서는 고종황제 즉위식을 통해 황제국으로의 변모를 살펴본다. 황제국의 선포와 황제 칭호를 통한 진정한 독립국으로의 열망이 일었던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과 황제국 수립의 과정을 개괄하고, 변화된 황제의장과 복식, 내용과 규모 등을 황제 등극의를 기록한 『(고종)대례의궤』를 위주로 살펴본다.
제5부에서는 왕세자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는 의식들을 살펴본다. 왕세자는 책봉의식, 입학의식, 관례, 대리청정, 조참의식 등을 통해 왕의 후계자로 공인받았는데, 왕의 즉위식에 비해 훨씬 풍부한 기록과 시각자료들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왕세자 공인의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제6부에서는 조선 국왕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문화 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즉위의례의 연원과 의미
1 유교 경전에 보이는 즉위의례의 연원
순舜임금과 선양禪讓의 즉위의례 | 주周무왕武王과 개국開國의 즉위의례 |주周강왕康王과 사위嗣位의 즉위의례
2 유교 경전을 통해 본 즉위의례의 의미
3 중국 역대의 즉위의례
진한秦漢시기의 즉위의례: 봉선封禪과 황제 공덕의 과시 | 위진魏晉남북조南北朝시기의 즉위의례: 선양禪讓으로 미화된 권력 쟁탈 | 당송唐宋시기의 즉위의례: 예전禮典의 편찬과 즉위의례의 정비
4 명대明代의 즉위의례
즉위의례의 실제, 명明태조太祖의 즉위의례 | 명대 예전禮典에 등재된 즉위의례와 관련 의례들 |『대명회전』의 황제 등극의
제2부 국왕의 즉위의례
1 조선시대 이전의 즉위의식
2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
수선受禪 | 사위嗣位 | 반정反正
3 조선시대 즉위의식의 실제
개국, 태조의 즉위식 | 수선, 세종의 즉위식 | 사위, 슬픔 속의 즉위식 | 반정, 중종·인조의 즉위식
4 즉위를 공인하는 부대 행사들
외교의례, 천하에 새 왕의 즉위를 알리다 | 하늘에 고하고 천덕을 함께하다 | 종묘에 고하고 계술을 천명하다 | 새로운 시작을 백성과 함께 축하하다
제3부 즉위의례의 상징과 기록
1 즉위식의 공간, 문門과 전殿
2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3 즉위식의 상징과 기록
대보大寶 | 국왕 즉위식의 복식 | 국왕의 노부의장 | 즉위식의 음악 | 즉위식의 기록과 기억
제4부 황제의 즉위의식
1 고종의 황제국 선포와 대례의식
2 대례의식의 실제
3 황제국의 상징들
황제의 복식 | 황제의 노부의장
제5부 왕세자, 이극貳極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다
1 왕위 계승을 공식화하는 의식들
책봉의식; 왕세자로 정해졌음을 선포하다 | 입학의식; 왕세자 학교에 가다 | 관례; 왕세자의 성인식 | 대리청정과 조참, 왕세자의 정치무대 신고식
2 이극貳極을 공인하는 의식의 실제
왕세자 책봉의식 | 왕세자 입학의식 | 왕세자 관례의식 | 대리청정 조참의식
3 이극의 상징들
교명과 책인 | 왕세자의 공간과 기관, 그리고 사람들 | 왕세자의 노부의장
4 이극에 오르는 의식의 복식
왕세자 책봉과 복식 | 왕세자 입학과 복식 | 왕세자 관례복식 | 대리청정 조참 복식
제6부 국왕 즉위식의 활용과 현대적 의미
1 국왕 즉위식의 의례적 특성
2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 재현의 현황
3 즉위의례 복원의 현대적 의미
부록
참고문헌
도판목록
찾아보기
제1부 즉위의례의 연원과 의미
1 유교 경전에 보이는 즉위의례의 연원
순舜임금과 선양禪讓의 즉위의례 | 주周무왕武王과 개국開國의 즉위의례 |주周강왕康王과 사위嗣位의 즉위의례
2 유교 경전을 통해 본 즉위의례의 의미
3 중국 역대의 즉위의례
진한秦漢시기의 즉위의례: 봉선封禪과 황제 공덕의 과시 | 위진魏晉남북조南北朝시기의 즉위의례: 선양禪讓으로 미화된 권력 쟁탈 | 당송唐宋시기의 즉위의례: 예전禮典의 편찬과 즉위의례의 정비
4 명대明代의 즉위의례
즉위의례의 실제, 명明태조太祖의 즉위의례 | 명대 예전禮典에 등재된 즉위의례와 관련 의례들 |『대명회전』의 황제 등극의
제2부 국왕의 즉위의례
1 조선시대 이전의 즉위의식
2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
수선受禪 | 사위嗣位 | 반정反正
3 조선시대 즉위의식의 실제
개국, 태조의 즉위식 | 수선, 세종의 즉위식 | 사위, 슬픔 속의 즉위식 | 반정, 중종·인조의 즉위식
4 즉위를 공인하는 부대 행사들
외교의례, 천하에 새 왕의 즉위를 알리다 | 하늘에 고하고 천덕을 함께하다 | 종묘에 고하고 계술을 천명하다 | 새로운 시작을 백성과 함께 축하하다
제3부 즉위의례의 상징과 기록
1 즉위식의 공간, 문門과 전殿
2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3 즉위식의 상징과 기록
대보大寶 | 국왕 즉위식의 복식 | 국왕의 노부의장 | 즉위식의 음악 | 즉위식의 기록과 기억
제4부 황제의 즉위의식
1 고종의 황제국 선포와 대례의식
2 대례의식의 실제
3 황제국의 상징들
황제의 복식 | 황제의 노부의장
제5부 왕세자, 이극貳極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다
1 왕위 계승을 공식화하는 의식들
책봉의식; 왕세자로 정해졌음을 선포하다 | 입학의식; 왕세자 학교에 가다 | 관례; 왕세자의 성인식 | 대리청정과 조참, 왕세자의 정치무대 신고식
2 이극貳極을 공인하는 의식의 실제
왕세자 책봉의식 | 왕세자 입학의식 | 왕세자 관례의식 | 대리청정 조참의식
3 이극의 상징들
교명과 책인 | 왕세자의 공간과 기관, 그리고 사람들 | 왕세자의 노부의장
4 이극에 오르는 의식의 복식
왕세자 책봉과 복식 | 왕세자 입학과 복식 | 왕세자 관례복식 | 대리청정 조참 복식
제6부 국왕 즉위식의 활용과 현대적 의미
1 국왕 즉위식의 의례적 특성
2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 재현의 현황
3 즉위의례 복원의 현대적 의미
부록
참고문헌
도판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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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새로운 국왕의 탄생을 알리는 조선 왕실의 즉위의식
조선의 최고 통치자인 국왕은 어떤 모습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을까? ‘즉위식’ 하면 많은 사람들이 19세기 화가 다비드의 그림인 〈나폴레옹의 대관식〉처럼 새로운 왕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왕으로서의 상징물을 전달하는 광경이나, 현대의 대통령 취임식처럼 드넓은 공간에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진행되는 축제적 성격의 행사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즉위식은 우리의 상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국왕의 즉위를 표현하는 당시의 용어는 ‘등극’登極이었다. 등극에서 ‘극’은 뭇 별들의 중심인 북극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덕적 표준이자 중심 원리로서 황극皇極을 의미하기도 했다. 따라서 등극이란 여러 해석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의미를 지녔다. 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은, 모든 갈등을 조화로 이끌 수 있는 ‘덕’과 갈등을 제압할 수 있는 ‘물리력’이라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기대되었으며, 이러한 ‘바람직한 군주’에 대한 국가 공동체의 바람과 기대가, 즉위식의 형식과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조선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의식은 계승의 형식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는 개국開國, 선왕이 살아계실 때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수선受禪, 왕이 돌아가신 뒤에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위嗣位, 선대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추대된 왕이 왕위에 오르는 반정反正의 네 가지이다. 개국은 태조 이성계, 수선은 정종ㆍ태종ㆍ세종ㆍ세조ㆍ예종ㆍ순종의 여섯 왕의 예, 반정은 중종과 인조 두 왕의 예가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18명의 왕)의 경우는 사위嗣位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 네 가지 계승의 형식에 따라, 즉위식의 장소나 그 절차 및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의 즉위식과 현대 대통령의 취임식
조선 왕의 즉위의식은 왕실의 다채로운 행사 가운데 가장 중대한 행사였으며, 행사의 독특한 절차와 의식에는 고유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조선의 왕ㆍ황제ㆍ왕세자를 공인하는 의례를 통해서 우리는 조선인의 정치의식과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는 2월 25일 새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현대의 대표적 국가 의전인 취임식과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본문 309쪽). 한국의 유교적 전통문화와 왕실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상징의례인 조선의 즉위식은 보존되거나 복원될 수 있는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전통문화와 현대 의전을 접목하여 새로운 국가 의전 체계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 훌륭한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 왕, 대한제국 황제, 이극貳極(왕세자)을 공인하는 의식의 상징과 기록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새 왕이 보위에 오르는 의식인 즉위식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과, 세자가 왕의 후계자인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식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즉위의례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경전에서 찾아보고 그 의미를 살핀다. 명대 이전 중국 역대 왕조의 즉위식과, 조선 즉위의례의 직접적인 연원이 된 명대의 즉위의례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먼저 고려시대의 즉위식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로의 변화와 추이를 살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과, 각 즉위식의 ‘실제’를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즉위식의 공간인 문問과 전殿,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왕위에 오르는 의식의 상징물인 대보大寶와 교명敎命, 복식과 각종 의장, 음악, 관련 기록 등 즉위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4부에서는 고종황제 즉위식을 통해 황제국으로의 변모를 살펴본다. 황제국의 선포와 황제 칭호를 통한 진정한 독립국으로의 열망이 일었던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과 황제국 수립의 과정을 개괄하고, 변화된 황제의장과 복식, 내용과 규모 등을 황제 등극의를 기록한 『(고종)대례의궤』를 위주로 살펴본다.
제5부에서는 왕세자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는 의식들을 살펴본다. 왕세자는 책봉의식, 입학의식, 관례, 대리청정, 조참의식 등을 통해 왕의 후계자로 공인받았는데, 왕의 즉위식에 비해 훨씬 풍부한 기록과 시각자료들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왕세자 공인의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제6부에서는 조선 국왕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문화 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수선受禪의 대표적인 예, 세종대왕의 즉위식
선왕이 살아있을 때 왕위를 물려주는 “수선受禪”은, 왕위의 혈연 계승이 일반화되기 이전 시대에 요堯임금으로부터 순舜임금이 왕위를 이어받은 사례를 통해 아름다운 왕위 계승의 전형으로 인식되어왔다. 태종이 막내아들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사례는,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예 가운데 ‘왕위가 유덕자有德者에게 승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대표적인 선위의 예였다. 세종대왕의 즉위 절차는, 태종이 왕을 상징하는 국새와 의장물인 홍양산을 세자에게 내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세종은 그로부터 이틀 후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세종의 즉위식 광경에 대한 기록은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가장 상징성이 강한 즉위식으로 인식되어 현대에 유일하게 문화 행사로 재현되고 있다.
전殿이 아닌 문門에서 장례식 중 치러진 즉위식, 사위嗣位
선왕의 사망 후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위嗣位”는 조선의 즉위식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서, 조선왕조 기간 동안 9명의 왕을 제외하고 18명 모두 사위嗣位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사위의 경우 새 왕의 즉위식은 선왕 국상의식의 일부로 포함되어 치러졌고, 그 과정은 조선 초기의 의례서인 『세종실록』「오례」 중 ‘흉례’에 포함되어 일찌감치 제도화되었다. 이 경우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 근정문, 후기에는 주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이 행해졌다. 문에서 의례를 행한 것은 선왕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차마 선왕이 계시던 ‘전’에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과 함께, 선왕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편하게 ‘전’에서 의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으며, 선왕이 닦아놓은 위업을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이어받은 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첫 번째로 사위했던 왕인데, 새 왕은 국상 중에 상복을 잠시 벗고 면복(왕의 대례복, 면류관에 곤룡포)으로 갈아입은 후 즉위의례를 치렀으며, 비교적 간단히 의식을 치른 후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사위의 의례는 선왕이 돌아가신 지 6일째 되는 날 이뤄졌는데, 『국조의례의』에 기록된 사위의 절차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왕이 남긴 말씀인 유교遺敎를 받는 절차, 왕이 됨을 상징하는 대보大寶를 새 왕에게 전달하는 절차, 어좌에 오르는 의식인 승좌陞座, 종친과 문무백관들에게 인사를 받는 하례賀禮이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왕은 면복을 벗고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으며, 다음으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즉위교서 반포식을 거행한다. 즉위의례 이후 행해지는 부대행사들로는 종묘와 영녕전에 즉위 사실을 고하는 일, 중국에 전왕의 사망을 알리는 절차, 새 왕의 즉위를 공인하는 외교행사 등이 있었다. 특히 즉위교서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처음에 크게 화해한다’는 의미로, 중죄 이외의 잡범들을 풀어주는 특별 사면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위식의 상징 요소들, 어보ㆍ어좌ㆍ어복ㆍ의장물
조선시대에 국왕으로 공식 인정하는 의식 절차 가운데 핵심은 대보大寶(왕을 상징하는 도장)를 받는 의식이었다. 면복을 입은 왕은 대보를 받은 후 어좌에 올랐으며, 즉위식의 현장에는 왕을 상징하는 의장물과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악대가 배치되었다(하지만 사위嗣位의 경우에는, 상중이었기 때문에 악대를 배치만 하고 연주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즉위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 요소들이라면 대보, 어좌, 왕 및 참여자들의 복식, 음악, 의장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대보의 전달은 실질적인 정권 이양을 상징했다. 왕이 된 이후에도, 왕이 사용하는 어보는 공식적인 왕의 거둥에 늘 함께하는 등 국가와 왕권 자체를 상징했다. 다음으로 어좌는 대보를 받은 왕이 최종적으로 오르는 자리로, 임금만이 앉을 수 있는 최고 통치자의 권한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용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문에서 즉위하는 경우에도 왕을 상징하는 어좌와 오봉병 병풍을 치고 어좌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는 새 왕의 면복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의례서’ 및 ‘의궤’와 현대의 재현 그림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총 9가지의 무늬가 그려진 구장복(황제는 십이장복)에 면류관을 쓰는 복장으로, 본문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12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면복의 구성물과 장착법을 소개하고 있다(본문 117-126쪽). 국왕의 행차에 동반되는 가마나 깃발, 시위하는 사람들을 총칭하여 의장이라 하는데, 임금이 타는 대여大輿와 대연大輦, 임금을 상징하는 홍양산과 주장(붉은 지팡이), 임금의 행차 시에 사용되는 의장물 행렬을 지칭하는 대가노부大駕鹵簿가 즉위식에 사용되었다. 이의 구성과 모습은 본문에 실린 도판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다.
진정한 독립국에의 열망, 대한제국 황제의 즉위식
이미 국왕의 자리에 있었던 고종이 황제의 칭호를 받고 황제국을 선포했던 일은,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세우고 조선 왕을 중국 황제와 대등한 지위로 격상시키려는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개화파 내각은 국왕을 황제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벌였고, 고종은 1895년 ‘홍범 14조’의 공표를 통해 독립내각을 세워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1895년 윤5월에는 황제국의 상징인 환구단을 조성하고, 왕후가 궁 안에서 피살되고 국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제천의례를 위한 환구단 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1897년 2월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8월 ‘광무’라는 새 연호를 정하고 환구단에서 이를 알리는 고유제를 거행했다. 이해 9월부터 황제의 칭호를 받고 황제국을 천명하라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10월 3일 고종은 이를 윤허하기에 이른다. 1897년 10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 동안에 걸쳐, 고종의 황제국 선포와 황제 등극의식이 거행되었고, 이 행사의 전모가 『(고종)대례의궤』에 기록되었다. 최초의 황제 등극의식이었으므로 명나라의 예를 참조하였고, 의식이 치러지기 일주일 전인 10월 7일에 의식의 큰 틀이 결정되었다. 환구에 고하는 제사, 왕세자를 황태자의 자리에 올리는 행사, 종묘와 사직에 고하는 고유제, 의식에 사용하는 황제의 국새와 책봉을 상징하는 다양한 의물들의 제작과 준비가 철저히 계획되었다. 실제 황제의 등극의식은 하늘에 알리는 환구단에서의 제사가 끝난 후, 제단 앞에서 진행되었다. 조선의 국왕이 구장복을 입고 왕위에 올랐다면 황제는 십이장복을 입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가마와 의장 등도 부분적으로 황제국에 걸맞은 새로운 의장으로 바뀌었다.
이극貳極,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례
왕세자는 국왕의 후계자로서 왕실에서 왕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였으므로, 그가 국왕의 후계자로 공인받는 의례 또한 매우 비중 있는 의식으로 행해졌다. 왕세자로 정해졌음을 선포하는 책봉의식, 왕세자도 유학을 계승한 학생임을 천하에 알리는 입학의식, 왕세자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 왕세자의 정치무대 신고식인 대리청정과 조참의식 등의 순으로 거행되었는데, 이는 모두 왕세자가 책봉된 이후 국왕으로 즉위하기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였다. 『국조오례의』 등의 의례서에 그 절차가 규정되어 있으며, 『왕세자입학도첩』『수교도첩』『시민당도』『왕세자책봉의궤』 등에 실제 행사의 그림과 기록이 남아 있다. 사위가 대부분이었던 조선 즉위식에서 선왕의 장례의식인 ‘흉례’의 일부로 슬픔 속에 치러졌던 국왕의 즉위식에 비해, 후계자인 왕제자를 공인하는 일련의 의식들은 기쁨의 의례인 ‘가례’로 행해져 오히려 상세한 기록으로 전한다.
왕세자의 입학의식과 책봉의식, 관례의식은 순조의 세자이며 헌종의 아버지이기도 한 효명세자(익종-추존왕)의 기록이 왕세자 관련 기록으로서 가장 풍부하고 상세하여, 본문에서는 주로 효명세자 관련 기록인 『왕세자책봉의궤』(효명세자)와 『왕세자입학도첩』(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수교도첩』을 통해 구체적인 절차와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본분에서는 위에 소개한 다양한 그림 자료들을 통하여 왕세자의 자리에 오르는 의식과 관련된 다채로운 복식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복원 및 계승 방안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에서는 서울의 고궁을 활용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궁중문화 재현 행사를 추진했다. 이중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을 활용한 행사로 세종대왕 즉위식이 주목되었다. 이에, 1997년 문화재관리국 주최로 근정전에서 세종대왕의 즉위식이 처음으로 재현되었으며, 2003년에는 문화재청 주관으로 고종황제 즉위식이 재현되었다. 이중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세종대왕 즉위식이 유일하다. 이러한 재현 행사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실에 기초하여 사실에 근접한 재현 작업이 이뤄져야 하며, 즉위식 대상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앞서 밝힌 네 가지 즉위식의 유형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즉위식 복원도 필요할 것이다.
조선 왕실의 가장 중대한 의례인 즉위식을 과거의 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현대의 문화요소로 복원하는 일은,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조선 국왕의 즉위식은 한국의 유교적 전통문화와 왕실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의례이며, 5대 궁궐과 정전의 문에서 진행된 의례로서 고궁을 활용한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치가 높다. 또한 현재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의 취임식도 조선 국왕의 즉위식과 접목시켜 그 체계를 보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으로 현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대표적인 국가 의전인 대통령 취임식을 보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특성과 국가의 문화적 위상,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지닌다.
이 책은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가운데 왕실의 행사를 다룬 세 권의 책 『왕실의 천지제사』 『왕실의 혼례식 풍경』『즉위식, 국왕의 탄생』 가운데 마지막 책이다. 이 시리즈가 국왕 즉위식을 비롯한 우수하고 독창적인 조선왕실 의례와 행사를 발굴ㆍ복원하여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소중한 인류문화의 자산으로서 보존하고 재발견하는 일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조선의 최고 통치자인 국왕은 어떤 모습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을까? ‘즉위식’ 하면 많은 사람들이 19세기 화가 다비드의 그림인 〈나폴레옹의 대관식〉처럼 새로운 왕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왕으로서의 상징물을 전달하는 광경이나, 현대의 대통령 취임식처럼 드넓은 공간에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진행되는 축제적 성격의 행사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즉위식은 우리의 상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국왕의 즉위를 표현하는 당시의 용어는 ‘등극’登極이었다. 등극에서 ‘극’은 뭇 별들의 중심인 북극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덕적 표준이자 중심 원리로서 황극皇極을 의미하기도 했다. 따라서 등극이란 여러 해석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의미를 지녔다. 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은, 모든 갈등을 조화로 이끌 수 있는 ‘덕’과 갈등을 제압할 수 있는 ‘물리력’이라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기대되었으며, 이러한 ‘바람직한 군주’에 대한 국가 공동체의 바람과 기대가, 즉위식의 형식과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조선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의식은 계승의 형식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는 개국開國, 선왕이 살아계실 때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수선受禪, 왕이 돌아가신 뒤에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위嗣位, 선대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추대된 왕이 왕위에 오르는 반정反正의 네 가지이다. 개국은 태조 이성계, 수선은 정종ㆍ태종ㆍ세종ㆍ세조ㆍ예종ㆍ순종의 여섯 왕의 예, 반정은 중종과 인조 두 왕의 예가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18명의 왕)의 경우는 사위嗣位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 네 가지 계승의 형식에 따라, 즉위식의 장소나 그 절차 및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의 즉위식과 현대 대통령의 취임식
조선 왕의 즉위의식은 왕실의 다채로운 행사 가운데 가장 중대한 행사였으며, 행사의 독특한 절차와 의식에는 고유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조선의 왕ㆍ황제ㆍ왕세자를 공인하는 의례를 통해서 우리는 조선인의 정치의식과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는 2월 25일 새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현대의 대표적 국가 의전인 취임식과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본문 309쪽). 한국의 유교적 전통문화와 왕실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상징의례인 조선의 즉위식은 보존되거나 복원될 수 있는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전통문화와 현대 의전을 접목하여 새로운 국가 의전 체계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 훌륭한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 왕, 대한제국 황제, 이극貳極(왕세자)을 공인하는 의식의 상징과 기록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새 왕이 보위에 오르는 의식인 즉위식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과, 세자가 왕의 후계자인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식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즉위의례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경전에서 찾아보고 그 의미를 살핀다. 명대 이전 중국 역대 왕조의 즉위식과, 조선 즉위의례의 직접적인 연원이 된 명대의 즉위의례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먼저 고려시대의 즉위식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로의 변화와 추이를 살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즉위식의 유형과, 각 즉위식의 ‘실제’를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즉위식의 공간인 문問과 전殿, 즉위식에 초대된 사람들, 왕위에 오르는 의식의 상징물인 대보大寶와 교명敎命, 복식과 각종 의장, 음악, 관련 기록 등 즉위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4부에서는 고종황제 즉위식을 통해 황제국으로의 변모를 살펴본다. 황제국의 선포와 황제 칭호를 통한 진정한 독립국으로의 열망이 일었던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과 황제국 수립의 과정을 개괄하고, 변화된 황제의장과 복식, 내용과 규모 등을 황제 등극의를 기록한 『(고종)대례의궤』를 위주로 살펴본다.
제5부에서는 왕세자의 자질과 지위를 공인받는 의식들을 살펴본다. 왕세자는 책봉의식, 입학의식, 관례, 대리청정, 조참의식 등을 통해 왕의 후계자로 공인받았는데, 왕의 즉위식에 비해 훨씬 풍부한 기록과 시각자료들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왕세자 공인의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제6부에서는 조선 국왕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문화 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수선受禪의 대표적인 예, 세종대왕의 즉위식
선왕이 살아있을 때 왕위를 물려주는 “수선受禪”은, 왕위의 혈연 계승이 일반화되기 이전 시대에 요堯임금으로부터 순舜임금이 왕위를 이어받은 사례를 통해 아름다운 왕위 계승의 전형으로 인식되어왔다. 태종이 막내아들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사례는,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예 가운데 ‘왕위가 유덕자有德者에게 승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대표적인 선위의 예였다. 세종대왕의 즉위 절차는, 태종이 왕을 상징하는 국새와 의장물인 홍양산을 세자에게 내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세종은 그로부터 이틀 후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세종의 즉위식 광경에 대한 기록은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가장 상징성이 강한 즉위식으로 인식되어 현대에 유일하게 문화 행사로 재현되고 있다.
전殿이 아닌 문門에서 장례식 중 치러진 즉위식, 사위嗣位
선왕의 사망 후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위嗣位”는 조선의 즉위식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서, 조선왕조 기간 동안 9명의 왕을 제외하고 18명 모두 사위嗣位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 사위의 경우 새 왕의 즉위식은 선왕 국상의식의 일부로 포함되어 치러졌고, 그 과정은 조선 초기의 의례서인 『세종실록』「오례」 중 ‘흉례’에 포함되어 일찌감치 제도화되었다. 이 경우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 근정문, 후기에는 주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이 행해졌다. 문에서 의례를 행한 것은 선왕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차마 선왕이 계시던 ‘전’에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과 함께, 선왕이 돌아가신 상황에서 편하게 ‘전’에서 의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으며, 선왕이 닦아놓은 위업을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이어받은 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첫 번째로 사위했던 왕인데, 새 왕은 국상 중에 상복을 잠시 벗고 면복(왕의 대례복, 면류관에 곤룡포)으로 갈아입은 후 즉위의례를 치렀으며, 비교적 간단히 의식을 치른 후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사위의 의례는 선왕이 돌아가신 지 6일째 되는 날 이뤄졌는데, 『국조의례의』에 기록된 사위의 절차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왕이 남긴 말씀인 유교遺敎를 받는 절차, 왕이 됨을 상징하는 대보大寶를 새 왕에게 전달하는 절차, 어좌에 오르는 의식인 승좌陞座, 종친과 문무백관들에게 인사를 받는 하례賀禮이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왕은 면복을 벗고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으며, 다음으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즉위교서 반포식을 거행한다. 즉위의례 이후 행해지는 부대행사들로는 종묘와 영녕전에 즉위 사실을 고하는 일, 중국에 전왕의 사망을 알리는 절차, 새 왕의 즉위를 공인하는 외교행사 등이 있었다. 특히 즉위교서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처음에 크게 화해한다’는 의미로, 중죄 이외의 잡범들을 풀어주는 특별 사면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위식의 상징 요소들, 어보ㆍ어좌ㆍ어복ㆍ의장물
조선시대에 국왕으로 공식 인정하는 의식 절차 가운데 핵심은 대보大寶(왕을 상징하는 도장)를 받는 의식이었다. 면복을 입은 왕은 대보를 받은 후 어좌에 올랐으며, 즉위식의 현장에는 왕을 상징하는 의장물과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악대가 배치되었다(하지만 사위嗣位의 경우에는, 상중이었기 때문에 악대를 배치만 하고 연주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즉위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 요소들이라면 대보, 어좌, 왕 및 참여자들의 복식, 음악, 의장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대보의 전달은 실질적인 정권 이양을 상징했다. 왕이 된 이후에도, 왕이 사용하는 어보는 공식적인 왕의 거둥에 늘 함께하는 등 국가와 왕권 자체를 상징했다. 다음으로 어좌는 대보를 받은 왕이 최종적으로 오르는 자리로, 임금만이 앉을 수 있는 최고 통치자의 권한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용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문에서 즉위하는 경우에도 왕을 상징하는 어좌와 오봉병 병풍을 치고 어좌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는 새 왕의 면복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의례서’ 및 ‘의궤’와 현대의 재현 그림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총 9가지의 무늬가 그려진 구장복(황제는 십이장복)에 면류관을 쓰는 복장으로, 본문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12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면복의 구성물과 장착법을 소개하고 있다(본문 117-126쪽). 국왕의 행차에 동반되는 가마나 깃발, 시위하는 사람들을 총칭하여 의장이라 하는데, 임금이 타는 대여大輿와 대연大輦, 임금을 상징하는 홍양산과 주장(붉은 지팡이), 임금의 행차 시에 사용되는 의장물 행렬을 지칭하는 대가노부大駕鹵簿가 즉위식에 사용되었다. 이의 구성과 모습은 본문에 실린 도판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다.
진정한 독립국에의 열망, 대한제국 황제의 즉위식
이미 국왕의 자리에 있었던 고종이 황제의 칭호를 받고 황제국을 선포했던 일은,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세우고 조선 왕을 중국 황제와 대등한 지위로 격상시키려는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개화파 내각은 국왕을 황제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벌였고, 고종은 1895년 ‘홍범 14조’의 공표를 통해 독립내각을 세워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1895년 윤5월에는 황제국의 상징인 환구단을 조성하고, 왕후가 궁 안에서 피살되고 국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제천의례를 위한 환구단 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1897년 2월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8월 ‘광무’라는 새 연호를 정하고 환구단에서 이를 알리는 고유제를 거행했다. 이해 9월부터 황제의 칭호를 받고 황제국을 천명하라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10월 3일 고종은 이를 윤허하기에 이른다. 1897년 10월 9일부터 14일까지 6일 동안에 걸쳐, 고종의 황제국 선포와 황제 등극의식이 거행되었고, 이 행사의 전모가 『(고종)대례의궤』에 기록되었다. 최초의 황제 등극의식이었으므로 명나라의 예를 참조하였고, 의식이 치러지기 일주일 전인 10월 7일에 의식의 큰 틀이 결정되었다. 환구에 고하는 제사, 왕세자를 황태자의 자리에 올리는 행사, 종묘와 사직에 고하는 고유제, 의식에 사용하는 황제의 국새와 책봉을 상징하는 다양한 의물들의 제작과 준비가 철저히 계획되었다. 실제 황제의 등극의식은 하늘에 알리는 환구단에서의 제사가 끝난 후, 제단 앞에서 진행되었다. 조선의 국왕이 구장복을 입고 왕위에 올랐다면 황제는 십이장복을 입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가마와 의장 등도 부분적으로 황제국에 걸맞은 새로운 의장으로 바뀌었다.
이극貳極, 왕세자로 공인받는 의례
왕세자는 국왕의 후계자로서 왕실에서 왕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였으므로, 그가 국왕의 후계자로 공인받는 의례 또한 매우 비중 있는 의식으로 행해졌다. 왕세자로 정해졌음을 선포하는 책봉의식, 왕세자도 유학을 계승한 학생임을 천하에 알리는 입학의식, 왕세자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 왕세자의 정치무대 신고식인 대리청정과 조참의식 등의 순으로 거행되었는데, 이는 모두 왕세자가 책봉된 이후 국왕으로 즉위하기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였다. 『국조오례의』 등의 의례서에 그 절차가 규정되어 있으며, 『왕세자입학도첩』『수교도첩』『시민당도』『왕세자책봉의궤』 등에 실제 행사의 그림과 기록이 남아 있다. 사위가 대부분이었던 조선 즉위식에서 선왕의 장례의식인 ‘흉례’의 일부로 슬픔 속에 치러졌던 국왕의 즉위식에 비해, 후계자인 왕제자를 공인하는 일련의 의식들은 기쁨의 의례인 ‘가례’로 행해져 오히려 상세한 기록으로 전한다.
왕세자의 입학의식과 책봉의식, 관례의식은 순조의 세자이며 헌종의 아버지이기도 한 효명세자(익종-추존왕)의 기록이 왕세자 관련 기록으로서 가장 풍부하고 상세하여, 본문에서는 주로 효명세자 관련 기록인 『왕세자책봉의궤』(효명세자)와 『왕세자입학도첩』(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수교도첩』을 통해 구체적인 절차와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본분에서는 위에 소개한 다양한 그림 자료들을 통하여 왕세자의 자리에 오르는 의식과 관련된 다채로운 복식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즉위식의 현대적 의미와 복원 및 계승 방안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에서는 서울의 고궁을 활용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궁중문화 재현 행사를 추진했다. 이중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을 활용한 행사로 세종대왕 즉위식이 주목되었다. 이에, 1997년 문화재관리국 주최로 근정전에서 세종대왕의 즉위식이 처음으로 재현되었으며, 2003년에는 문화재청 주관으로 고종황제 즉위식이 재현되었다. 이중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세종대왕 즉위식이 유일하다. 이러한 재현 행사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실에 기초하여 사실에 근접한 재현 작업이 이뤄져야 하며, 즉위식 대상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앞서 밝힌 네 가지 즉위식의 유형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즉위식 복원도 필요할 것이다.
조선 왕실의 가장 중대한 의례인 즉위식을 과거의 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현대의 문화요소로 복원하는 일은,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조선 국왕의 즉위식은 한국의 유교적 전통문화와 왕실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의례이며, 5대 궁궐과 정전의 문에서 진행된 의례로서 고궁을 활용한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치가 높다. 또한 현재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의 취임식도 조선 국왕의 즉위식과 접목시켜 그 체계를 보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으로 현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대표적인 국가 의전인 대통령 취임식을 보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특성과 국가의 문화적 위상,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지닌다.
이 책은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가운데 왕실의 행사를 다룬 세 권의 책 『왕실의 천지제사』 『왕실의 혼례식 풍경』『즉위식, 국왕의 탄생』 가운데 마지막 책이다. 이 시리즈가 국왕 즉위식을 비롯한 우수하고 독창적인 조선왕실 의례와 행사를 발굴ㆍ복원하여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소중한 인류문화의 자산으로서 보존하고 재발견하는 일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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