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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새신자, 구도자를 위한 필독서!
예수님에게 직접 듣는 예수 소개서!
오직 성경만 따라가면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예수님이 직접 알려 주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제대로 알 때 바르게 따를 수 있다.
성경은 일종의 신입사원 안내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신앙의 세계에 입문한 아들이 반드시 읽어서 숙지해야 할 필독서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예수가 누군지,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를 알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8가지 키워드로 자기를 소개한다.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들의 문, 선한 목자, 부활 생명, 길과 진리, 포도나무, 내가 그라. 타인에게서 간접적으로 듣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소개하는 예수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 수 있다. 예수님께 직접 듣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름길이다. 이 책은 특히 새신자와 구도자들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목차
1. 생명의 떡
: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다
2. 세상의 빛
: 내 안에 예수님이 임하면 세상이 바뀐다
3. 양들의 문
: 예수님을 출입하며 양은 자란다
4. 선한 목자
: 사랑하기에 기꺼이 헌신한다
5. 부활 생명
: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접속하다
6. 길과 진리
: 세상은 복음으로만 달라진다
7. 포도나무
: 예수님 말씀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
8. 내가 그라
: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다
2. 세상의 빛
: 내 안에 예수님이 임하면 세상이 바뀐다
3. 양들의 문
: 예수님을 출입하며 양은 자란다
4. 선한 목자
: 사랑하기에 기꺼이 헌신한다
5. 부활 생명
: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접속하다
6. 길과 진리
: 세상은 복음으로만 달라진다
7. 포도나무
: 예수님 말씀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
8. 내가 그라
: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책 속으로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님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예수님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면 신앙은 쉽고 단순해지지만 예수님을 모르면 신앙이 힘들고 복잡해집니다. 예수님에게 직접 들으면 신앙은 너무 쉽고 분명해지지만 예수님을 안다는 사람들에게서 들으면 들을수록 복잡하고 불분명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차고 흘러넘치는 것이라면, 종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본질의 두께가 두터워져서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1970년대에 회사에 입사한 뒤 좀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당시 회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윗사람들과 따져서 바꿔보겠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역시 그 조직이 마음껏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저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니 번번이 부딪칠 수밖에 없고 회사 생활은 점점 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일종의 신입사원 안내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앙에 첫발을 내디딜 때 반드시 알아 둬야 할 지침서입니다. 읽고 또 읽어서 숙지해야 합니다. 성경을 알면 고생을 덜할 것이고 모르면 이유도 모른 채 고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분이 오신다, 반드시 오신다, 왜 오셔야 하느냐를 말하고 있고, 신약은 그 이야기 끝에 오셨다, 어떻게 오셨다, 왜 오셨냐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선포하는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는 예수님에게서 직접 듣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 pp. 10~12
예수님이 지금 양의 특징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양의 이 같은 특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말씀을 하신 걸까요? 도대체 바리새인들, 너희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냐고 묻고 계신 겁니다. 너희의 삶은 과연 이토록 연약한 양들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그토록 의존적인 양을 이용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선한 목자는 앞장서며 양 떼를 보호하고 인도합니다. 그러나 악한 목자는 양 떼를 돌보는 척하면서 살진 양으로 자기 배를 채우는 데만 관심을 갖습니다.
--- pp. 51-52
예수님이 삯꾼은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서 온 자들도 절도요 강도라 했고 예수님 뒤에 온 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도요 강도인 삯꾼 목자의 특징은 편 가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 양, 남의 양 식별해서 내 양에는 아예 낙인을 찍습니다. 베이직교회의 성도들은 어느 한 교회의 교인이 되지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냥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어느 교회 다니느냐고 물으면 “제가 교회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 대답은 예수님이 불러 주신 것이고 예수님이 진심으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 pp. 75-76
예수님은 나사로 사건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티저 영상처럼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 부활 생명의 동일한 시청각 재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흑암과 혼돈과 공허라는 죽음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부활한 생명의 증인들이 아닙니까? 이미 부활 생명이 주어졌기에 우리는 이미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시간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에 접속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안에 이미 부활 생명이 있다면 나는 대체 이 육신의 목숨을 어떻게 써야 합니까?
--- p. 100
왜 예수님만 길입니까? 오셨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목숨을 버린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길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을 억압하고 이용하며 심지어 살해한다면 그것은 길이 아닙니다. 길 없는 길이거나 길 아닌 길일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저는 1970년대에 회사에 입사한 뒤 좀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당시 회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윗사람들과 따져서 바꿔보겠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역시 그 조직이 마음껏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저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니 번번이 부딪칠 수밖에 없고 회사 생활은 점점 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일종의 신입사원 안내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앙에 첫발을 내디딜 때 반드시 알아 둬야 할 지침서입니다. 읽고 또 읽어서 숙지해야 합니다. 성경을 알면 고생을 덜할 것이고 모르면 이유도 모른 채 고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분이 오신다, 반드시 오신다, 왜 오셔야 하느냐를 말하고 있고, 신약은 그 이야기 끝에 오셨다, 어떻게 오셨다, 왜 오셨냐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선포하는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는 예수님에게서 직접 듣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 pp. 10~12
예수님이 지금 양의 특징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양의 이 같은 특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말씀을 하신 걸까요? 도대체 바리새인들, 너희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냐고 묻고 계신 겁니다. 너희의 삶은 과연 이토록 연약한 양들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그토록 의존적인 양을 이용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선한 목자는 앞장서며 양 떼를 보호하고 인도합니다. 그러나 악한 목자는 양 떼를 돌보는 척하면서 살진 양으로 자기 배를 채우는 데만 관심을 갖습니다.
--- pp. 51-52
예수님이 삯꾼은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서 온 자들도 절도요 강도라 했고 예수님 뒤에 온 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도요 강도인 삯꾼 목자의 특징은 편 가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 양, 남의 양 식별해서 내 양에는 아예 낙인을 찍습니다. 베이직교회의 성도들은 어느 한 교회의 교인이 되지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냥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어느 교회 다니느냐고 물으면 “제가 교회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 대답은 예수님이 불러 주신 것이고 예수님이 진심으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 pp. 75-76
예수님은 나사로 사건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티저 영상처럼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 부활 생명의 동일한 시청각 재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흑암과 혼돈과 공허라는 죽음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부활한 생명의 증인들이 아닙니까? 이미 부활 생명이 주어졌기에 우리는 이미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시간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에 접속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안에 이미 부활 생명이 있다면 나는 대체 이 육신의 목숨을 어떻게 써야 합니까?
--- p. 100
왜 예수님만 길입니까? 오셨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목숨을 버린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길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을 억압하고 이용하며 심지어 살해한다면 그것은 길이 아닙니다. 길 없는 길이거나 길 아닌 길일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 p.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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