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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엘 마커스가 저술한 『앵커바이블 마가복음』은 2권으로 구성된 시리즈로 1권은 1-8장까지, 2권은 9-16장까지를 다루고 있다. 마커스는 1권에서 마가복음의 서론과 본문을 주석하면서 사고와 접근 방식에 있어서 하나의 틀에 머물지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학문적 분석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기독교 공동체의 목회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본문에 접근하고 한다.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마가복음의 저술 장소를 전통적 입장인 로마로 보지 않고, 마가복음과 유대 전쟁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들어 팔레스타인에서 멀지 않은 시리아로 본다. 또한 기본적인 본문 석의 방법으로 편집비평을 취하지만, 그와 함께 내러티브의 흐름에 주의하는 문학적 분석도 시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가복음과 구약 및 유대교 문헌과의 상호 본문성과 신학적 연관성을 고려하며 본문에 대한 “주석”뿐만 아니라 적용 부분인 “해설”도 함께 실어 독자의 본문 이해를 돕고 있다. 마커스는 성경 주석의 방식에서 단편적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학문적, 목회적 상상력을 펼쳐질 수 있도록 자세한 해설과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마가복음의 저술 장소를 전통적 입장인 로마로 보지 않고, 마가복음과 유대 전쟁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들어 팔레스타인에서 멀지 않은 시리아로 본다. 또한 기본적인 본문 석의 방법으로 편집비평을 취하지만, 그와 함께 내러티브의 흐름에 주의하는 문학적 분석도 시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가복음과 구약 및 유대교 문헌과의 상호 본문성과 신학적 연관성을 고려하며 본문에 대한 “주석”뿐만 아니라 적용 부분인 “해설”도 함께 실어 독자의 본문 이해를 돕고 있다. 마커스는 성경 주석의 방식에서 단편적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학문적, 목회적 상상력을 펼쳐질 수 있도록 자세한 해설과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목차
추천사 1 (장흥길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성서학연구소 소장)/5
추천사 2 (김형동 박사: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7
서문/10
역자 서문/13
약어표/15
도표 리스트/24
서론
1장. 저자/27
1. 파피아스의 증언/35
2장. 저작배경: 마가 공동체/43
1. 지역적이며 시사적인 복음서/43
2. 박해받는 공동체/49
3. 로마 기원의 복음서?/52
4. 시리아 기원의 복음서?/59
5. 저작 시기/66
3장. 공관복음서의 연관 관계들/71
1. 공관복음서 문제/71
2. 작은 일치점들/80
3. 비밀 복음서?/85
4. 마가가 “Q”를 사용했는가?/91
5. 마가복음과 요한복음/95
6. 도마복음/97
4장. 마가복음의 구성/101
1. 원형 자료들/101
2. 보수적 편집자 혹은 독창적인 신학자?/105
3. 문학적 개요/110
4. 장르/114
5장. 기독교인의 삶과 사고에 있어서 마가복음의 위치/125
1. 종교 역사 속에서의 마가복음/125
2. 마가복음의 묵시론적 종말론/127
3. 우주적 전투/129
4. 마가와 바울/132
5. 교정 기독론/135
6장. 본서의 접근 방식/143
참고문헌/147
서문(번역, 주석, 해설)
1장. 마가복음 서막(1:1-15)/199
1. 서론/199
2. 좋은 소식/복음의 시작(1:1-3)/206
3. 세례 요한의 사역(1:4-8)/221
4. 예수님의 세례(1:9-11)/238
5. 광야의 예수님(1:12-13)/253
6. 예수님의 취임 설교(1:14-15)/260
1부 / 첫 번째 주요 부분(막 1:16-3:6)
2장. 밀월 기간(1:16-45)/273
1. 서론/273
2. 최초의 제자들을 부르심(1:16-20)/276
3. 개막전(1:21-28)/289
4. 베드로의 집에서 이루어진 치유들(1:29-34)/307
5. 사역을 향한 출발(1:35-39)/319
6. 예수께서 피부병을 가진 사람을 치유하심(1:40-45)/326
3장. 반대가 노골적으로 표출되다(2:1-3:6)/337
1. 서론/337
2.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치유하다(2:1-12)/342
3. 예수님이 세리들 및 다른 죄인들과 함께 먹다(2:13-17)/359
2부 / 두 번째 주요 부분(막 3:7-6:6a)
4장. 다툼이 격렬해지다(3:7-3:35)/415
1. 서론/415
2. 예수님으로 인한 충격이 퍼져 가다(3:7-12)/418
3. 열두 제자를 세우다(3:13-19)/428
4. 예수님은 어느 편인가?(3:20-35)/441
5장.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비유적인 담화들(4:1-6:6a)/473
1. 서론/473
2. 씨 뿌리는 자 비유(4:1-9)/478
3. 예수님이 비유들로 말하는 이유(4:10-12)/490
4. 씨 뿌리는 자 비유에 대한 해석(4:13-20)/507
5. 등불과 잣대에 관한 비유들(4:21-25)/518
6. 두 가지 추가적인 씨앗 비유들(4:26-34)/530
7. 예수님이 폭풍을 압도하다(4:35-41)/547
8.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에서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다(5:1-20)/563
9. 예수님이 여인을 고치고 소녀를 일으켜 생명을 얻게 하다(5:21-43)/589
10. 예수님이 고향에서 거부당하다(6:1-6a)/624
3부 / 세 번째 주요 부분(막 6:6b-8:21)
6장. 만찬들(6:6b-7:37)/639
1. 서론/639
2. 제자들이 선교 여행에 파송되다(6:6b-13)/641
3. 세례 요한의 순교(6:14-29)/657
4.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다(6:30-44)/681
5.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걷다(6:45-52)/709
6. 점점 더 많은 치유들(6:53-56)/732
7. 예수님이 성경과 전통에 관해 바리새인들과 논쟁하다(7:1-16)/738
8. 사람을 실제로 부정하게 만드는 것(7:17-23)/765
9. 예수님이 이방 여인의 치유 요청을 들어 주다(7:24-30)/778
10. 예수님이 귀 먹고 말 못하는 자를 치유하다(7:31-37)/796
7장. 광야 급식, 시험, 그리고 몰이해(8:1-21)/815
1. 서론/815
2. 예수님이 사천 명을 먹이다(8:1-9)/820
3.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 의해 시험을 당하다(8:10-13)/838
4. 예수님이 오해한다며 제자들을 질책하다(8:14-21)/853
부록 1 바리새인과 서기관들/871
부록 2 메시아 비밀 모티브/882
부록 3 인자/887
용어 해설/897
추천사 2 (김형동 박사: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7
서문/10
역자 서문/13
약어표/15
도표 리스트/24
서론
1장. 저자/27
1. 파피아스의 증언/35
2장. 저작배경: 마가 공동체/43
1. 지역적이며 시사적인 복음서/43
2. 박해받는 공동체/49
3. 로마 기원의 복음서?/52
4. 시리아 기원의 복음서?/59
5. 저작 시기/66
3장. 공관복음서의 연관 관계들/71
1. 공관복음서 문제/71
2. 작은 일치점들/80
3. 비밀 복음서?/85
4. 마가가 “Q”를 사용했는가?/91
5. 마가복음과 요한복음/95
6. 도마복음/97
4장. 마가복음의 구성/101
1. 원형 자료들/101
2. 보수적 편집자 혹은 독창적인 신학자?/105
3. 문학적 개요/110
4. 장르/114
5장. 기독교인의 삶과 사고에 있어서 마가복음의 위치/125
1. 종교 역사 속에서의 마가복음/125
2. 마가복음의 묵시론적 종말론/127
3. 우주적 전투/129
4. 마가와 바울/132
5. 교정 기독론/135
6장. 본서의 접근 방식/143
참고문헌/147
서문(번역, 주석, 해설)
1장. 마가복음 서막(1:1-15)/199
1. 서론/199
2. 좋은 소식/복음의 시작(1:1-3)/206
3. 세례 요한의 사역(1:4-8)/221
4. 예수님의 세례(1:9-11)/238
5. 광야의 예수님(1:12-13)/253
6. 예수님의 취임 설교(1:14-15)/260
1부 / 첫 번째 주요 부분(막 1:16-3:6)
2장. 밀월 기간(1:16-45)/273
1. 서론/273
2. 최초의 제자들을 부르심(1:16-20)/276
3. 개막전(1:21-28)/289
4. 베드로의 집에서 이루어진 치유들(1:29-34)/307
5. 사역을 향한 출발(1:35-39)/319
6. 예수께서 피부병을 가진 사람을 치유하심(1:40-45)/326
3장. 반대가 노골적으로 표출되다(2:1-3:6)/337
1. 서론/337
2.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치유하다(2:1-12)/342
3. 예수님이 세리들 및 다른 죄인들과 함께 먹다(2:13-17)/359
2부 / 두 번째 주요 부분(막 3:7-6:6a)
4장. 다툼이 격렬해지다(3:7-3:35)/415
1. 서론/415
2. 예수님으로 인한 충격이 퍼져 가다(3:7-12)/418
3. 열두 제자를 세우다(3:13-19)/428
4. 예수님은 어느 편인가?(3:20-35)/441
5장.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비유적인 담화들(4:1-6:6a)/473
1. 서론/473
2. 씨 뿌리는 자 비유(4:1-9)/478
3. 예수님이 비유들로 말하는 이유(4:10-12)/490
4. 씨 뿌리는 자 비유에 대한 해석(4:13-20)/507
5. 등불과 잣대에 관한 비유들(4:21-25)/518
6. 두 가지 추가적인 씨앗 비유들(4:26-34)/530
7. 예수님이 폭풍을 압도하다(4:35-41)/547
8.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에서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다(5:1-20)/563
9. 예수님이 여인을 고치고 소녀를 일으켜 생명을 얻게 하다(5:21-43)/589
10. 예수님이 고향에서 거부당하다(6:1-6a)/624
3부 / 세 번째 주요 부분(막 6:6b-8:21)
6장. 만찬들(6:6b-7:37)/639
1. 서론/639
2. 제자들이 선교 여행에 파송되다(6:6b-13)/641
3. 세례 요한의 순교(6:14-29)/657
4.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다(6:30-44)/681
5.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걷다(6:45-52)/709
6. 점점 더 많은 치유들(6:53-56)/732
7. 예수님이 성경과 전통에 관해 바리새인들과 논쟁하다(7:1-16)/738
8. 사람을 실제로 부정하게 만드는 것(7:17-23)/765
9. 예수님이 이방 여인의 치유 요청을 들어 주다(7:24-30)/778
10. 예수님이 귀 먹고 말 못하는 자를 치유하다(7:31-37)/796
7장. 광야 급식, 시험, 그리고 몰이해(8:1-21)/815
1. 서론/815
2. 예수님이 사천 명을 먹이다(8:1-9)/820
3.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 의해 시험을 당하다(8:10-13)/838
4. 예수님이 오해한다며 제자들을 질책하다(8:14-21)/853
부록 1 바리새인과 서기관들/871
부록 2 메시아 비밀 모티브/882
부록 3 인자/887
용어 해설/897
책 속으로
예수님을 (일시적으로) 제자들이, 특히 베드로가 버리는 것에 대한 마가복음의 냉혹한 묘사(14:27-31, 50, 66-71)는 부분적으로 마가 요한, 즉 비슷한 맥락에서 한때 바울을 버렸던 마가 요한(행 13:13; 15:38) 자신의 매우 충격적인 경험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은가? 사도행전 본문들에 나오는 마가의 저버림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 단어들 모두는(apoch?rein[아포코레인]과 aphistanai[아피스타나이]) 배교의 뉘앙스를 지니며(예를 들어, 마카비3서 2:33; 눅 8:13; 딤전 2:19; 히 3:12), 베드로의 부인의 이야기에 대한 해석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이야기 역시 믿음을 저버렸던 초기 교회 기독교인들의 경험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저버린 것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부분적인 이유는 이것이 마가 자신이 바울을 버렸던 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 p.41~42
이렇게 마가의 기독교 공동체가 예루살렘에서 데가볼리로 피난한 것은 신탁에 의해 경고를 받은 유대 지역의 교회가 유대 전쟁 전 혹은 유대 전쟁을 예견하거나(pro tou polemou[프로 투 폴레무]) 혹은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전 펠라(Pella)의 데가볼리(펠라 전승의 역사성에 관해서는 C. Koester, “Origin”과 Wehnert, “Auswanderung”을 보라)로 도망했다는 유세비우스(Church History 3.5.3)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Panarion 29.7.7-8; 30.2.7; Weights and Measures 15)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리고 유대 전쟁 중 혹은 바로 직후 시리아의 상황을 마가복음의 박해에 대한 강조와 잘 들어맞는데, 이유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이 시리아까지 영향을 미쳤고, 시리아 지역에서 이방인들에 의한 유대인들의 잦은 학살과 그 반대로 유대인들에 의한 이방인들의 학살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Marcus, “Jewish War,” 451-54을 보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던 자들로 여겨지는 일군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 의해서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Josephus, J. W. 2. 463을 보라. 그리고 Theissen, Gospels, 268-29 참조).
이상의 증거들에 비추어 볼 때 마가복음의 시리아 기원설은 저작 기원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이며, 이 기원설은 본서에서 채택되어서 마가복음의 독자들이 어떻게 특정한 본문들을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추론의 토대로 사용될 것이다. 분명 시리아 기원설은 수학적인 정확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또한 대부분의 본문 주해가 마가복음의 역사적 정황이 로마 혹은 기독교인들이 박해 가운데 놓여 있던 다른 지역이었더라도 분명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 p.64~65
마가는 아마도 자신의 복음서를 구성하면서 다른 복음서들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가는 마태와 누가 그리고 요한과 도마가 자신들의 복음서를 쓰기 전에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했다. 또한 비록 “Q”를 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가정해도(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가는 “Q”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마가의 원형 자료(raw materials)들은 무엇이었기에 이 원형 자료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했겠는가?
이 자료들 중 가장 길고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자료는 아마도 마가-이전(pre-Markan) 수난 내러티브(passion narrative)일 것이다. 즉 고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몇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마가복음 13장의 종말론 강화가 마가-이전의 핵심 자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가능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원형 자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 주석의 제2권에서 제시될 것이다. --- p.101
그렇다면 마가의 기독론과 마가의 신학 일반은 위든이 주창하는 대로 그렇게 급진적인 의미에서 교정적이지 않다. 마가는 자신의 공동체 내에 있던 이단 그룹을 파문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도 않다. 13:6-7, 22-23의 “미혹하는 자들”은 마가 공동체 내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밖에 있는 자들이다. 여기서 관심은 미혹하는 자들이 다른 자들을 미혹해 왔던 것처럼 “택한 자들을 미혹하려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마가의 신학은 마가 공동체의 어떤 자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온 근본적인 변화를 잃어버리는 성향들을 교정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기독론적인 무감각 혹은 기억상실”(Martyn, “Galatians 3:28” 참조)은 몇몇 마가의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모세 율법이 주는 확실성(7:17-18 참조)에 안주하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훨씬 더 큰 관심은 마가의 기독교 공동체가 “창조의 시작부터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환난”(13:19)이라는 그들 당대의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압도될 수 있다는 점과 그들이 폭풍우에 휩쓸리는 배에 있던 제자들처럼 미혹을 받아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4:38)라고 소리칠 수 있다는 점이다. 마가는 바람과 파도를 정복하시고 죽음의 폭풍우 치는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6:45-52 참조)를 다시 들려줌으로써 자기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러한 두려움과 절망에 대해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가는 그의 독자들에게 기독론적인 회상, 즉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상기시키고 있다(4:41 참조). --- p.141
1:4 “요한이 나타나, 세례를 베풀고” 에게네토 요안네스 밥티존(egeneto I?ann?s baptiz?n). “세례 요한”을 하나의 고착된 표현으로 취급했던 몇몇 사본들(예를 들면 시내 산 사본)은 요안네스(I?ann?s) 앞에 정관사를 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의 독법은 “세례 요한이 나타났다”(John the-Baptizing-One appeared)가 된다. 그러나 다른 사본들(예를 들면 바티칸 사본)은 정관사를 넣은 후에 “광야에서” 다음에 있는 “그리고”(and)를 제거해서 문법상 구문을 매끄럽게 만든다.
“세례를 베풀고” 밥티존(baptiz?n). 70인역을 포함해 신약 헬라어 이전 시기에 이 동사는 “담그다, 던져 넣다, 혹은 빠져들게 하다”를 의미하며, 예를 들어, 컵을 큰 술잔에 담그거나 배를 가라앉히거나 검을 사람의 몸에 찔러넣는 데 사용된다(LSJ, 305-6). 또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도 지니는데,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양한 유형의 악행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된다(10:38-39를 참조하고 Oepke, “Bapt?,” 530, 545를 보라). 신약 시대 이전에 이 단어는 물 예식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기술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죄의 용서에 이르는” 에이스 아페신 하마르티온(eis aphesin hamarti?n). 아페시스(aphesis)는 문자적으로 내보냄 혹은 벗어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책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신약의 의미는 70인역에서 유래한다(Bultmann, “Aphi?mi”를 보라). --- p.222
“비둘기 같이” 호스 페리스테란(h?s peristeran). 비둘기 같은 것이 성령인가 아니면 성령의 내려오심인가? 학자들은 성령의 내려오심을 보통 선호하지만(예를 들어, Keck, “Spirit”를 보라) 전자인 성령이 최소한 예수께서 성령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데이비스와 앨리슨이 지적하듯이(1.331) “-같이”(h?s, 호스)라는 단어는 묵시론적인 상징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 세계에 따르면 지상에서 비교될 만한 것들이 사용되어 천상의 실체들을 개략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신약의 그 어떤 다른 곳에서보다도 요한계시록에서 보다 자주 호스(h?s)가 나타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둘기 상징이 지닌 중요성은 무엇인가? 페쉬(Pesch, 1.91)는 새는 성령에 대한 적합한 상징인데, 이유는 새는 하늘과 땅 사이의 구분과 장벽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른 새가 아니고 비둘기가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데이비스와 앨리슨(1. 331-34)은 비둘기가 사용된 이유에 대해 무려 16개의 다른 개연성들을 열거하는데, 그 중 가장 개연성이 있는 이론은 비둘기가 창세기 1:2, 즉 성령이 새처럼 수면 위를 날아오르고 있다는 창세기 1:2을 반향하려는 의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b. H.ag. 15a에 의해서 지지를 받는데, 이 본문에 따르면 태고의 수면 위에 성령이 운행하시는 것은 비둘기가 새끼를 품에 안고 있는 것과 비견되며, 또한 이 이론은 창세기 1:2의 표현을 사람들에게 주어질 종말론적인 능력주심에 새롭게 적용하고 있는 4Q521 1:6(“가난한 자들 위에 성령이 맴돌 것이라”; Allison, “Baptism”을 보라)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더욱이 Gen. Rab. 2:4은 창세기 1:2을 “메시아의 영”에 대한 암시로 해석하며 이사야 11:2에 대한 언급을 첨가하고 있다(이에 대해선 아래 주석을 보라). --- p.240
20절 “불렀더라” 에칼레센(ekalesen). 이 단어는 열왕기상 19:19-21에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러 사명을 부여하는 장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이것을 제외하고 이 장면은 마가의 본문의 모델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1:19-20에 대한 해설을 보라). 그러나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서 사명을 부여하시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사 41:9; 42:6 등) 또는 개별적인 선지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제2이사야의 몇몇 본문들(사 49:1; K. Schmidt, “kaleo,” 490을 보라)에서 발견된다.
바울은 이러한 제2이사야 본문들과 선지자를 불러 사명을 부여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다른 구약 본문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도의 직임을 부여하심에 대해(예를 들면 갈 1:1, 15-16; 롬 1:1; 고전 1:1),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신 수신자들을 교회로 이끌어 가심에 대해(예를 들어, 롬 1:6; 9:24; 고전 7:17-24; Eckert, “Kale?”를 보라) 칼레인(kalein)과 이 단어의 동족어를 사용한다. 본문은 이러한 배경을 반영하는데, 이럴 경우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르심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p.280`281
8절 “삼십 배 그리고 육십 배 그리고 백 배” 헨 트리아콘타 카이 헨 헥세콘타 카이 헨 헤카톤(hen triakonta kai hen hex?konta kai hen hekaton). 사람들은 뿌려진 씨앗의 양과 수확된 곡물의 양을 비교하여 작황을 계산하였다. 예를 들어, b. Ketub. 112a인 “유대 지역에서 한 세아(se’ah)가 다섯 세아의 결실을 맺었다. 밀가루 한 세아, 좋은 밀가루 한 세아, 왕겨 한 세아, 그리고 곡물 한 세아”라는 이 탈무드 본문은 비유대적인 자료에 나오는 고대의 본문들(예를 들어, Columella, On Agriculture 3.3.4; Cicero, Against Verres 2.3.47)과 마찬가지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라는 작황이 매우 놀라운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심지어 20세기에도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20세기에도 전통적인 농사법을 활용하는 나라들의 평균치는 7-11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고대의 다른 저자들(예를 들어, Varro, On Agriculture 1.44.2; Strabo, Geography 15.3.11)도 오십 배와 백 배 또는 그 이상의 결실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보도들은 이국에서 돌아온 외지인들이 들려준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의 특징에 지나지 않는다(McIver, “Hundred-fold”를 보라). 창세기 26:12과 Sib. Or. 3:261-64이 보도하는 백 배의 결실도 이와 유사하게 전설적이다. 그러나 이것들도 마지막 때에 있을 믿을 수 없는 풍성함을 묘사하는 일부 묵시 문학과 랍비 문헌에 비하면 시시하기 그지없다. 이 문헌들은 천 배, 만 배, 심지어 십오만 배의 결실을 언급하고 있다!(Marcus, Mystery, 42-43을 보라). --- p.481
특히 유월절 문맥에서 “누룩”은 흔히 “누룩이 있는 빵”과 동의어로 사용되며(8:15의 “누룩을 주의하라”에 대한 주석을 보라), 이렇듯 양자를 동일시하는 용법은 현재 문맥과도 잘 어울린다. 실제로 이 본문은 예수님이 공급하는 빵과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서로 대조한다. 이러한 대조가 사실이라면 본문이 묘사하는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 잠언 9장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잠언 9장은 사람들에게 지혜가 제공하는 빵을 먹되 어리석은 여인이 주는 빵은 멀리해야 한다고 권면하는데, 이 어리석은 여인은 지혜의 대척점에 서 있다(잠 9:5, 17).
그러나 제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정확히 무엇인가? 만일 마가가 이 혼란스러운 어구를 통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룩이란 유대인들이 악한 경향성, 즉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파괴적이고 무법적인 충동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만드는 경향성을 표현하는 흔한 은유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8:15의 “누룩을 주의하라”에 대한 주석을 보라).
본문이 전개되면서 “누룩”이 완악한 마음과 연결된다는 사실도 이 본문에 이러한 이미지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8:17). 악한 경향성은 창세기 6:5; 8:21이라는 성경적인 연원(rootage)을 지니는 탓에 어렵지 않게 마음의 결함과 결부되었고, 1QS 5:4-5에서는 “마음의 완고함”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Marcus, “Evil Inclination in Paul,” 20 각주 48 참조).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대적들인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 버린 바로 그 동일한 악한 충동에 물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3:6; 12:13 참조). 더군다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시한 이전의 사적인 가르침도 악한 경향성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7:17-23에 대한 해설을 보라). 사실 8:10-21의 전반적인 패턴은 7:1-23의 패턴과 일치한다.
이렇게 마가의 기독교 공동체가 예루살렘에서 데가볼리로 피난한 것은 신탁에 의해 경고를 받은 유대 지역의 교회가 유대 전쟁 전 혹은 유대 전쟁을 예견하거나(pro tou polemou[프로 투 폴레무]) 혹은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전 펠라(Pella)의 데가볼리(펠라 전승의 역사성에 관해서는 C. Koester, “Origin”과 Wehnert, “Auswanderung”을 보라)로 도망했다는 유세비우스(Church History 3.5.3)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Panarion 29.7.7-8; 30.2.7; Weights and Measures 15)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리고 유대 전쟁 중 혹은 바로 직후 시리아의 상황을 마가복음의 박해에 대한 강조와 잘 들어맞는데, 이유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이 시리아까지 영향을 미쳤고, 시리아 지역에서 이방인들에 의한 유대인들의 잦은 학살과 그 반대로 유대인들에 의한 이방인들의 학살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Marcus, “Jewish War,” 451-54을 보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던 자들로 여겨지는 일군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 의해서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Josephus, J. W. 2. 463을 보라. 그리고 Theissen, Gospels, 268-29 참조).
이상의 증거들에 비추어 볼 때 마가복음의 시리아 기원설은 저작 기원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이며, 이 기원설은 본서에서 채택되어서 마가복음의 독자들이 어떻게 특정한 본문들을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추론의 토대로 사용될 것이다. 분명 시리아 기원설은 수학적인 정확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또한 대부분의 본문 주해가 마가복음의 역사적 정황이 로마 혹은 기독교인들이 박해 가운데 놓여 있던 다른 지역이었더라도 분명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 p.64~65
마가는 아마도 자신의 복음서를 구성하면서 다른 복음서들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가는 마태와 누가 그리고 요한과 도마가 자신들의 복음서를 쓰기 전에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했다. 또한 비록 “Q”를 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가정해도(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가는 “Q”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마가의 원형 자료(raw materials)들은 무엇이었기에 이 원형 자료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했겠는가?
이 자료들 중 가장 길고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자료는 아마도 마가-이전(pre-Markan) 수난 내러티브(passion narrative)일 것이다. 즉 고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몇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마가복음 13장의 종말론 강화가 마가-이전의 핵심 자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가능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원형 자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 주석의 제2권에서 제시될 것이다. --- p.101
그렇다면 마가의 기독론과 마가의 신학 일반은 위든이 주창하는 대로 그렇게 급진적인 의미에서 교정적이지 않다. 마가는 자신의 공동체 내에 있던 이단 그룹을 파문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도 않다. 13:6-7, 22-23의 “미혹하는 자들”은 마가 공동체 내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밖에 있는 자들이다. 여기서 관심은 미혹하는 자들이 다른 자들을 미혹해 왔던 것처럼 “택한 자들을 미혹하려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마가의 신학은 마가 공동체의 어떤 자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온 근본적인 변화를 잃어버리는 성향들을 교정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기독론적인 무감각 혹은 기억상실”(Martyn, “Galatians 3:28” 참조)은 몇몇 마가의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모세 율법이 주는 확실성(7:17-18 참조)에 안주하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훨씬 더 큰 관심은 마가의 기독교 공동체가 “창조의 시작부터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환난”(13:19)이라는 그들 당대의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압도될 수 있다는 점과 그들이 폭풍우에 휩쓸리는 배에 있던 제자들처럼 미혹을 받아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4:38)라고 소리칠 수 있다는 점이다. 마가는 바람과 파도를 정복하시고 죽음의 폭풍우 치는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6:45-52 참조)를 다시 들려줌으로써 자기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러한 두려움과 절망에 대해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가는 그의 독자들에게 기독론적인 회상, 즉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상기시키고 있다(4:41 참조). --- p.141
1:4 “요한이 나타나, 세례를 베풀고” 에게네토 요안네스 밥티존(egeneto I?ann?s baptiz?n). “세례 요한”을 하나의 고착된 표현으로 취급했던 몇몇 사본들(예를 들면 시내 산 사본)은 요안네스(I?ann?s) 앞에 정관사를 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의 독법은 “세례 요한이 나타났다”(John the-Baptizing-One appeared)가 된다. 그러나 다른 사본들(예를 들면 바티칸 사본)은 정관사를 넣은 후에 “광야에서” 다음에 있는 “그리고”(and)를 제거해서 문법상 구문을 매끄럽게 만든다.
“세례를 베풀고” 밥티존(baptiz?n). 70인역을 포함해 신약 헬라어 이전 시기에 이 동사는 “담그다, 던져 넣다, 혹은 빠져들게 하다”를 의미하며, 예를 들어, 컵을 큰 술잔에 담그거나 배를 가라앉히거나 검을 사람의 몸에 찔러넣는 데 사용된다(LSJ, 305-6). 또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도 지니는데,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양한 유형의 악행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된다(10:38-39를 참조하고 Oepke, “Bapt?,” 530, 545를 보라). 신약 시대 이전에 이 단어는 물 예식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기술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죄의 용서에 이르는” 에이스 아페신 하마르티온(eis aphesin hamarti?n). 아페시스(aphesis)는 문자적으로 내보냄 혹은 벗어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책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신약의 의미는 70인역에서 유래한다(Bultmann, “Aphi?mi”를 보라). --- p.222
“비둘기 같이” 호스 페리스테란(h?s peristeran). 비둘기 같은 것이 성령인가 아니면 성령의 내려오심인가? 학자들은 성령의 내려오심을 보통 선호하지만(예를 들어, Keck, “Spirit”를 보라) 전자인 성령이 최소한 예수께서 성령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데이비스와 앨리슨이 지적하듯이(1.331) “-같이”(h?s, 호스)라는 단어는 묵시론적인 상징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 세계에 따르면 지상에서 비교될 만한 것들이 사용되어 천상의 실체들을 개략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신약의 그 어떤 다른 곳에서보다도 요한계시록에서 보다 자주 호스(h?s)가 나타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둘기 상징이 지닌 중요성은 무엇인가? 페쉬(Pesch, 1.91)는 새는 성령에 대한 적합한 상징인데, 이유는 새는 하늘과 땅 사이의 구분과 장벽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른 새가 아니고 비둘기가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데이비스와 앨리슨(1. 331-34)은 비둘기가 사용된 이유에 대해 무려 16개의 다른 개연성들을 열거하는데, 그 중 가장 개연성이 있는 이론은 비둘기가 창세기 1:2, 즉 성령이 새처럼 수면 위를 날아오르고 있다는 창세기 1:2을 반향하려는 의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b. H.ag. 15a에 의해서 지지를 받는데, 이 본문에 따르면 태고의 수면 위에 성령이 운행하시는 것은 비둘기가 새끼를 품에 안고 있는 것과 비견되며, 또한 이 이론은 창세기 1:2의 표현을 사람들에게 주어질 종말론적인 능력주심에 새롭게 적용하고 있는 4Q521 1:6(“가난한 자들 위에 성령이 맴돌 것이라”; Allison, “Baptism”을 보라)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더욱이 Gen. Rab. 2:4은 창세기 1:2을 “메시아의 영”에 대한 암시로 해석하며 이사야 11:2에 대한 언급을 첨가하고 있다(이에 대해선 아래 주석을 보라). --- p.240
20절 “불렀더라” 에칼레센(ekalesen). 이 단어는 열왕기상 19:19-21에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러 사명을 부여하는 장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이것을 제외하고 이 장면은 마가의 본문의 모델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1:19-20에 대한 해설을 보라). 그러나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서 사명을 부여하시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사 41:9; 42:6 등) 또는 개별적인 선지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제2이사야의 몇몇 본문들(사 49:1; K. Schmidt, “kaleo,” 490을 보라)에서 발견된다.
바울은 이러한 제2이사야 본문들과 선지자를 불러 사명을 부여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다른 구약 본문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도의 직임을 부여하심에 대해(예를 들면 갈 1:1, 15-16; 롬 1:1; 고전 1:1),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신 수신자들을 교회로 이끌어 가심에 대해(예를 들어, 롬 1:6; 9:24; 고전 7:17-24; Eckert, “Kale?”를 보라) 칼레인(kalein)과 이 단어의 동족어를 사용한다. 본문은 이러한 배경을 반영하는데, 이럴 경우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르심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p.280`281
8절 “삼십 배 그리고 육십 배 그리고 백 배” 헨 트리아콘타 카이 헨 헥세콘타 카이 헨 헤카톤(hen triakonta kai hen hex?konta kai hen hekaton). 사람들은 뿌려진 씨앗의 양과 수확된 곡물의 양을 비교하여 작황을 계산하였다. 예를 들어, b. Ketub. 112a인 “유대 지역에서 한 세아(se’ah)가 다섯 세아의 결실을 맺었다. 밀가루 한 세아, 좋은 밀가루 한 세아, 왕겨 한 세아, 그리고 곡물 한 세아”라는 이 탈무드 본문은 비유대적인 자료에 나오는 고대의 본문들(예를 들어, Columella, On Agriculture 3.3.4; Cicero, Against Verres 2.3.47)과 마찬가지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라는 작황이 매우 놀라운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심지어 20세기에도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20세기에도 전통적인 농사법을 활용하는 나라들의 평균치는 7-11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고대의 다른 저자들(예를 들어, Varro, On Agriculture 1.44.2; Strabo, Geography 15.3.11)도 오십 배와 백 배 또는 그 이상의 결실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보도들은 이국에서 돌아온 외지인들이 들려준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의 특징에 지나지 않는다(McIver, “Hundred-fold”를 보라). 창세기 26:12과 Sib. Or. 3:261-64이 보도하는 백 배의 결실도 이와 유사하게 전설적이다. 그러나 이것들도 마지막 때에 있을 믿을 수 없는 풍성함을 묘사하는 일부 묵시 문학과 랍비 문헌에 비하면 시시하기 그지없다. 이 문헌들은 천 배, 만 배, 심지어 십오만 배의 결실을 언급하고 있다!(Marcus, Mystery, 42-43을 보라). --- p.481
특히 유월절 문맥에서 “누룩”은 흔히 “누룩이 있는 빵”과 동의어로 사용되며(8:15의 “누룩을 주의하라”에 대한 주석을 보라), 이렇듯 양자를 동일시하는 용법은 현재 문맥과도 잘 어울린다. 실제로 이 본문은 예수님이 공급하는 빵과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서로 대조한다. 이러한 대조가 사실이라면 본문이 묘사하는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 잠언 9장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잠언 9장은 사람들에게 지혜가 제공하는 빵을 먹되 어리석은 여인이 주는 빵은 멀리해야 한다고 권면하는데, 이 어리석은 여인은 지혜의 대척점에 서 있다(잠 9:5, 17).
그러나 제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정확히 무엇인가? 만일 마가가 이 혼란스러운 어구를 통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룩이란 유대인들이 악한 경향성, 즉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파괴적이고 무법적인 충동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만드는 경향성을 표현하는 흔한 은유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8:15의 “누룩을 주의하라”에 대한 주석을 보라).
본문이 전개되면서 “누룩”이 완악한 마음과 연결된다는 사실도 이 본문에 이러한 이미지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8:17). 악한 경향성은 창세기 6:5; 8:21이라는 성경적인 연원(rootage)을 지니는 탓에 어렵지 않게 마음의 결함과 결부되었고, 1QS 5:4-5에서는 “마음의 완고함”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Marcus, “Evil Inclination in Paul,” 20 각주 48 참조).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대적들인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 버린 바로 그 동일한 악한 충동에 물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3:6; 12:13 참조). 더군다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시한 이전의 사적인 가르침도 악한 경향성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7:17-23에 대한 해설을 보라). 사실 8:10-21의 전반적인 패턴은 7:1-23의 패턴과 일치한다.
--- p.861
출판사 리뷰
추천사
장흥길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성서학연구소 소장)
두 역자의 성경 번역은 영어로 된 본문을 단순하게 자구적으로 옮기는 기계적인 번역이 아니라, 마가복음을 전공한 성경 학자로서 저자의 진의를 파악하여 옮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을 만한 두 역자가 우리말로 옮긴 번역본은 필자가 확신컨대, 마가복음을 연구하고 전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김형동 박사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저자는 마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독창적인 신학자”이거나 아니면 “보수적인 편집자나 개정자”라는 어느 한 쪽의 평가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마가는 전해 받은 전승들과 그의 공동체가 직면했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확신들에 의해서 자유롭게 전승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가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성을 “메시아 비밀 모티프”를 폭넓게 활용하여 드러낸다. 그리고 하나님 아들에 대한 고백을 복음서의 처음과 중간과 끝에 전략적으로 위치시키고 있다....끝으로 본서는 학자들과 목회자들, 신학생들, 그리고 관심 있는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마가복음에 관한 새로운 지평과 깨달음을 열어 주는 창을 제공할 것이다.
장흥길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성서학연구소 소장)
두 역자의 성경 번역은 영어로 된 본문을 단순하게 자구적으로 옮기는 기계적인 번역이 아니라, 마가복음을 전공한 성경 학자로서 저자의 진의를 파악하여 옮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을 만한 두 역자가 우리말로 옮긴 번역본은 필자가 확신컨대, 마가복음을 연구하고 전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김형동 박사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저자는 마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독창적인 신학자”이거나 아니면 “보수적인 편집자나 개정자”라는 어느 한 쪽의 평가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마가는 전해 받은 전승들과 그의 공동체가 직면했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확신들에 의해서 자유롭게 전승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가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성을 “메시아 비밀 모티프”를 폭넓게 활용하여 드러낸다. 그리고 하나님 아들에 대한 고백을 복음서의 처음과 중간과 끝에 전략적으로 위치시키고 있다....끝으로 본서는 학자들과 목회자들, 신학생들, 그리고 관심 있는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마가복음에 관한 새로운 지평과 깨달음을 열어 주는 창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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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적 근거 위에 마태복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당시 저자의 종교,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정보와 함께 큰 주제인 “율법”에 대한 신선한 논의를 개진한다. 또한, 현대적 시각에서의 가정을 벗어나 1세기 팔레스타인의 전통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조망한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추천사1·5
추천사2·7
추천사3·8
서문·10
역자 서문·14
약어표·16
1장. 복음서와 정경복음서·27
도마복음서(The Gospel of Thomas)에 대한 간략한 참고문헌
2장. 마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관계·49
3장. 공관복음서의 “Q” 자료·63
4장. 마태복음의 구약 배경·69
5장. 제자들·93
6장. 하나님 나라: 인자와 메시아 공동체·102
7장. 하나님 나라: 인자와 아버지·111
8장. 하나님 나라: 하늘의 나라·125
9장. 예수님과 율법·132
부록: 휘포크리시스(Hupokrisis), 휘포크리테스(Hupokrit?s), 휘포크리네스타이(Hupokrinesthai)·145
10장. 마태복음의 기적들·156
11장. 마태복음의 비유들·165
12장. 마태복음의 메시아·189
13장. 저자와 연대·200
부록 A: 장로 요한(The Presbyter John)·233
부록 B: 요한복음과 헤르메스주의 문헌(Hermetic Literature)·235
엄선된 참고문헌·240
2부 / 번역과 주석
1장.
1. 예수님의 족보(1:1-17)·255
2. 예수님의 탄생(1:18-25)·264
2장.
3. 박사들의 방문(2:1-12)·270
4. 이집트로의 도피(2:13-15)·278
5. 영아 살해(2:16-18)·279
6. 이집트에서의 복귀(2:19-23)·281
3장.
7. 세례 요한(3:1-12)·286
8. 예수님의 세례(3:13-17)·293
4장.
9. 시험(4:1-11) ·297
10. 사역의 시작(4:12-17)·304
11. 첫 제자들(4:18-22)·306
12. 갈릴리에서의 사역(4:23-25)·308
5장.
13. 위대한 가르침: 하늘의 나라(5:1-12)·311
14. 위대한 가르침: 제자의 표지(5:13-16)·324
15. 위대한 가르침: 율법-완성(5:17-20)·327
16. 위대한 가르침: 분노(5:21-26)·331
17. 위대한 가르침: 율법-간음(5:27-30)·335
18. 위대한 가르침: 율법-혼인(5:31-32)·336
19. 위대한 가르침: 율법-맹세(5:33-37)·338
20. 위대한 가르침: 율법-보복(5:38-42)·339
21. 위대한 가르침: 율법-원수(5:43-48)·343
6장.
22. 위대한 가르침: 구제(6:1-4)·345
23. 위대한 가르침: 기도(6:5-15)·346
24. 위대한 가르침: 금식(6:16-18)·351
25. 위대한 가르침: 재물(6:19-21)·352
26. 위대한 가르침: 제자도와 초연한 삶(6:22-34)·353
7장.
27. 위대한 가르침: 제자도(7:1-14)·358
28. 위대한 가르침: 거짓 교사들(7:15-20)·361
29. 위대한 가르침: 거짓 제자들(7:21-29)·362
8장.
30. 치유(8:1-18) ·367
31. 질문자(8:19-22)·375
32. 풍랑을 잠재우심(8:23-27)·378
33. 가다라 귀신들(8:28-9:1)·380
9장.
34. 권위에 대한 질문(9:2-8)·383
35. 마태를 부르심(9:9-13)·386
36. 요한의 제자들(9:14-17)·389
37. 치유(9:18-34)·392
38. 선교와 제자도(9:35-38)·398
10장.
39. 열두 제자의 선교(10:1-15)·400
40. 제자도의 대가: 선교(10:16-25)·410
41. 제자도의 대가: 두려움(10:26-31)·415
42. 제자도의 대가: 메시아에 대한 시인(10:32-11:1)·417
11장.
43.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증언(11:2-19)·425
44. 책망(11:20-24)·435
45. 아들의 기도(11:25-30)·437
12장.
46. 율법 논쟁(12:1-15a)·442
47. 치유, 축귀, 도전(12:15b-37)·447
48. 표적을 요구함(12:38-45)·455
4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12:46-50)·458
13장.
50. 하나님 나라 비유(13:1-52)·460
51. 불신앙(13:53-58)·472
14장.
52. 세례 요한의 죽음(14:1-12)·475
53. 먹이심(14:13-21)·477
54. 물 위를 걸으심(14:22-36)·481
15장.
55. 율법에 대한 질문들(15:1-20)·484
56.수로보니게 여인과 치유들(15:21-31)·489
57. 먹이심(15:32-39)·491
16장.
58. 표적을 요구함(16:1-12)·493
59. 베드로의 고백(16:13-20)·496
60. 수난 예고(16:21-28)·504
17장.
61. 변형(17:1-13)·508
62. 믿음에 대한 가르침(17:14-21)·516
63. 수난 예고(17:22-23)·517
64. 성전세에 대한 질문(17:24-27)·518
18장.
65. 하나님 나라에서의 서열(18:1-9)·523
66. 잃어버린 양(18:10-14)·526
67. 공동체 규율(18:15-20)·529
68. 용서에 대한 질문(18:21-35)·531
19장.
69. 율법에 대한 질문(19:1-12)·533
70.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심(19:13-15)·539
71. 참된 재물(19:16-30)·540
20장.
72. 하나님 나라: 포도원의 품꾼들(20:1-16)·549
73. 수난 예고(20:17-19)·553
74. 하나님 나라에서의 서열(20:20-28)·554
75. 두 맹인(20:29-34)·565
21장.
76. 예루살렘으로의 개선(21:1-11)·567
77. 성전 정화(21:12-17)·571
78. 권위에 대한 질문(21:18-27)·578
79. 세 가지 비유(21:28-46)·581
22장.
80. 하나님 나라 비유(22:1-14)·590
81. 질문들(22:15-46)·593
23장.
82. 율법주의에 대한 경고(23:1-36)·601
83.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23:37-39)·613
24장.
84. 성전의 미래(24:1-2)·615
85. 다가오는 박해(24:3-14)·621
86. 임박한 징조들(24:15-28)·626
87. 인자의 오심(24:29-44)·631
88. 하나님 나라 비유1(24:45-25:13)·635
25장.
89. 하나님 나라 비유2(25:14-30)·639
90. 심판(25:31-46)·641
26장.
91. 유월절: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26:1-5)·650
92. 유월절: 베다니(26:6-13)·653
93. 유월절: 배반(26:14-16)·655
94. 유월절: 최후의 만찬(26:17-29)·657
95. 유월절: 겟세마네(26:30-46)·666
96. 체포당한 예수님(26:47-56)·669
97. 공회 앞에 선 예수님(26:57-68)·673
98. 베드로의 부인(26:69-75)·681
27장.
99.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님(27:1-2)·683
100. 유다의 죽음(27:3-10)·685
101. 빌라도에게 심문당한 예수님(27:11-14)·687
102. 사형을 선고 받은 예수님(27:15-26)·688
103. 조롱당함(27:27-31)·691
104. 십자가에 달림(27:32-44)·693
105. 예수님의 죽음(27:45-56)·695
106. 장사됨(27:57-66)·703
28장.
107. 예수님의 부활(28:1-15)·707
108.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28:16-20)·713
Key to the Text·717책 속으로
우리는 고고학의 증거와 세속 작가들로부터 주후 60년 후의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은 불확실성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사회 갈등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이 즈음에(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이전에) 수천의 사람들이 나라를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역과 그 정점에 대한 구전된 기억들을 기록하고 보존할 필요를 느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31
히브리어 탈미드(talmid)는 비록 구약 성경에서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대상 25:8), 성경 시대 이후의 유대교 문헌에는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단어는 결코 (영어 단어 “disciple”이 주로 의미하는) 단순한 신봉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지 않고, 배운 바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학습자에게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동사인 라마드(l?mad)는 (여기서 “talmid”[탈미드]가 파생), 구약 성경에서 비교적 일반적인 단어이다. 여기서 나온 또 다른 명사는 이사야 8:16의 중요한 연결 고리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버림받은 선지자는 충직한 제자들에게 그의 메시지를 위탁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만들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가지는 암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위탁했다는 점이다. --- p.95
48절 “온전하심” 주후 1세기의 한 관원을 인용하고 있는 한 랍비 문헌(TB, Shabbath, 133b)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처럼 행하라! 그가 은혜롭고 자비로운 것처럼 너희도 은혜롭고 자비를 베풀라!” 이 문맥 속에서 헬라어 단어 텔레이오스(teleios)는 도덕적 완벽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진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참조, 신 18:13). 바로 이 같은 의미로 70인역은 노아(창 6:9)와 욥(욥 1:1)을 언급할 때 이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70인역에서 이 헬라어 단어는 타밈(t?mim)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가나안-히브리어 단어 탐(t?m, 진실한)의 의미는 이교도의 작품이나 성경문헌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 타밈(t?mim)과 에메트( ’emeth, 진실, 진리) 사이에는 연결점이 있다. 또한 70인역에서 이 단어는 헬라어 알레티노스(al?thinos, “진실한” 사람)와 연관되어 있다. 이곳에서 이 단어는 후기 헬라어에서 발견되는 “불완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p.344출판사 리뷰
추천사
김병모 박사
(호남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앵커바이블 시리즈에 들어 있는 W. F. 올브라이트(W. F. Albright)와 C. S. 만(C. S. Mann)의 『앵커바이블: 마태복음』(The Anchor Yale Bible: Matthew)은 분별력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고마운 책이다.
올브라이트는 팔레스타인 고고학과 셈어 분야의 탁월한 대학자였다. 그것과 어울리게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주석서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의 단어들을 진지하게 다루고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전반적인 문화적, 법적, 영적 전통을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역사적, 고고학적, 언어학적 증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복음서들의 예수님을 그의 고유한 배경과 확실하게 대조하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했다”고 밝힌다. 이를 볼 때, 이 책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단어들의 역사적, 언어적 배경을 살펴보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역사적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를 아주 긴밀하게 관련시킨다. 역사적 예수님의 가르침이 구전의 방식으로 교회 공동체에 정확하게 전달되어서 교회 공동체의 신앙과 삶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또 구약 성경과 교회 공동체도 아주 밀접하게 관련시킨다.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이 바로 교회 공동체에서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내용들이 있다. 이 책은 1971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루어진 연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들은 복음서의 배후에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복음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하늘 나라”(이 시대에 세워져서 최후 심판 때까지 지속될 메시아 왕국, 즉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그 최후 심판 후에 세워질 아버지의 나라)를 구분한다. 또한 최근의 신학적 경향은 “공관복음서 문제”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이 “두 자료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여전히 마태복음에 대한 다양한 배경적 정보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유익하며 신학적 변화 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 책이 이번에 기독교문서선교회(CLC)의 기획과 이강택 박사의 수고로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어서 무척 반갑다. 맑은 마음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신학생들과 뜨거운 가슴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이 책이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땅에서 사역하는 모든 말씀 사역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권연경 박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 교수)
많은 이들에게 “교회의 책”인 마태복음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하다. 예수님의 생생하고 강렬한 가르침이 우리가 처한 틀 속에서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겐 같은 복음서 네 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네 개의 복음서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네 복음서 저마다의 맛을 느끼는 데 서툴다. 그런 점에서 저자 마태가 가진 고유의 사회적, 종교적 배경에 관심을 기울이며, 마태복음이 가진 독특함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 주석서는 “마태에 의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삶에서 그 자체로 갖는 맛과 가치를 느끼고 음미하게 돕는 최적의 동반자 중 하나이다. 또한 이 주석서를 읽는 일은 한 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교회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름의 관점을 가진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마태복음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좋은 참고서가 생긴 셈이다. 이에 적극 추천한다.
장세훈 박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앵커바이블 주석 시리즈는 내용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다른 어떤 주석 시리즈와도 비교될 수 없는 탁월한 전문성을 갖는 책들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당대 최고의 성경신학자들이 맡은 마태복음 주석은 모든 독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저자들인 고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W. F. 올브라이트(W. F. Albright) 박사와 C. S. 만(C. S. Mann) 박사의 명성은 본 주석에 대한 신뢰를 더한다.
그는 자신의 고고학적인 연구(특히 팔레스타인 도자기 유형의 규범을 발전시킨 것은 그의 주된 성과이다)를 통해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의 정 성에 대해 주장한 학자이다. 또한 그는 조셉 A.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 레이몬드 E. 브라운(Raymond E. Brown), 데이비드 노엘 프리드만(David Noel Freedman) 등 성경신학과 고대 근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들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주석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이러한 연구적 배경과 더불어 저자들은 마태복음이 도대체 어떻게 왜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목적은 자연스럽게 저자 마태에게 주목하게 하고 마태복음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복음서 본문 내용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또한 본서에서는 사복음서의 개론적 신학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마태복음의 신학적 이슈들과 그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 즉 종교, 철학,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 등이 잘 기술되어 있다. 특히 저자들은 이 고대의 복음서를 대함에 있어서 독자들의 현대적 편견을 지적하는데, 이러한 권면은 더욱 생생한 복음서의 해석에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 있어서 본서는 보다 더 넓은 독자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주석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본서의 학문적 성과와 결실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의 고고학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며 본문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45.성서신학 (연구>책소개) > 8.공관복음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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