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한국역사의 이해 (독서)/1.한국고대사

하늘의 나라 신화의 나라 (2021) - 단군, 혁거세, 주몽 등 고대 국가 시조들은 왜 하늘의 아들일까

동방박사님 2024. 2. 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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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단군, 혁거세, 주몽 등 고대 국가 시조들은 왜 하늘의 아들일까? 신라 육두품의 시조도 하늘의 아들이라고? 환웅은 왜 곰과 호랑이를 경쟁하게 만들었을까?

신화 하면 흔히들 그리스 신화를 떠올린다. 제우스, 헤라, 아테나, 아폴론 등 올림포스의 신들을 비롯해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에 반해 전 세계 건국 신화들은 단순하고 재미가 떨어진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저자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의 등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수많은 도시 국가 형태로 존재했으며, 알렉산더가 통일하기 전까지 통일 국가가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그리스 신화는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중앙집권 국가는 자국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오직 하나의 신화만을 남겨놓은 채 흡수당한 다른 국가의 신화를 역사의 심연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 역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으므로 자신들의 나라가 하늘의 나라이며, 그들의 시조가 하늘의 자손이라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건국 신화를 남겼다.

우리는 그 어떤 시조도 사람 아버지와 사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의 아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신화가 어떻게 사람의 아들을 하늘의 아들로 둔갑시키고, 사람의 나라가 아닌 하늘의 나라임을 보여주는지 우리 문명의 고대 신화 속으로 들어가 재미있게 그 해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동안 그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라 여기던 각 나라의 건국 신화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깨닫고, 고대 신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목차

열며 : 우리 문명의 풍부한 고대 신화 속으로
1. 전통 문명 시대, 하늘 숭배 사상의 보편성
2. 혁거세, 하늘의 나라 신라를 건국하다
3. 탈해, 신라에 하늘의 아들이 또 내려오다
4. 알지, 신라에 하늘의 아들이 세 번째로 내려오다
5. 신라 육두품의 시조도 하늘에서 내려왔다
6. 하늘의 나라 금관가야의 건국 신화가 살아남다
7. 주몽, 부여의 핍박을 뚫고 하늘의 나라 고구려를 건국하다
8. 중국의 역사서, 하늘의 나라 백제의 건국 신화를 전하다
9. 고구려가 부정한 부여도 하늘의 나라였다
10. 하늘의 나라 고조선의 건국 신화, 혈통을 뛰어넘다

저자 소개

저 : 이기봉
 
1967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리의 아끔말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저술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수도, 지방 도시, 마을, 풍수, 고지도, 독도, 지명, 도로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

책 속으로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탄생한 이후 농업 혁명, 그중에서도 집약 농업의 결과물인 도시 문명에서부터 하늘 숭배 사상이 나타났다. 세계 모든 문명권에서 인간 사회의 외적 존재 중 가장 높고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갖고 있던 제1의 자연은 하늘이었고, 땅은 항상 두 번째였다. 신분제 사회의 조선에서 ‘아버지는 하늘, 어머니는 땅’이라고 한 것, 기독교에서 ‘하나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라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농업이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생산물을, 땅에 곡식을 심어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느 문명권이든 농업의 풍흉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 p.20~21

박혁거세도 사람이기에 사람 어머니와 사람 아버지의 결합으로 잉태되었을 것이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편안하게 머물러 있다가 자궁을 통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에게 사람 어머니와 사람 아버지 모두를 부정해야 하는 천하의 불효자가 되어야 할 운명을 부여하였다. 이 얼마나 슬픈 운명인가. 신라의 건국 신화에서 박혁거세의 사람 어머니와 사람 아버지는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박혁거세는 사람 어머니의 뱃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보낸 보랏빛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박혁거세의 아버지는 사람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이고, 그래서 여섯 마을의 사람들은 박혁거세를 하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 p.42

탈해니사금이 제4대 임금이었고, 그 자손인 석씨 계열의 임금은 제13대를 제외하고 제9대부터 제16대까지 7대나 이어졌다. 그런데 탈해니사금의 핏줄은 신라의 건국 시조 박혁거세에게 이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짐작되는 것이 하나 있을 법하다. 바로 최초의 석씨 임금인 탈해니사금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임금으로의 즉위 과정이 신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p.70~71

신라에는 당나라를 오가면서 성씨를 갖게 된 장보고와 같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성씨로 진골의 성씨인 박·석·김 세 개와 육두품의 성씨인 이·최·손·정·배·설 여섯 개 등 아홉 개밖에 없었다. 성씨라는 측면에서 육두품은 분명히 특권을 가지고 있는 신분이었으며, 그래서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저절로 날 만한 신분이다.
--- p.112

수로는 하늘의 아들이기에 일반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장 속도를 보인다. 알에서 아이로 깨어난 지 겨우 10여 일이 지나자 키가 아홉 자나 되었고, 얼굴은 용처럼 생겼으며, 눈썹에 팔채(八彩) 문양이 있고, 눈동자가 겹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고는 태어난 바로 그달의 보름에 금관가야를 세우고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 사람이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도 금관가야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다. 수로는 일반 사람과 전혀 다른 하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래야 금관가야의 임금들은 하늘의 자손으로서 대대손손 번영할 수 있었다.
--- p.147

고구려의 건국 신화에서는 해부루 임금이 옮겨 떠나간 지역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도읍으로 삼은 해모수가 바로 하늘의 임금의 아들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이 해모수가 동명성왕의 어머니인 유화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하늘의 아들 해모수가 고구려의 건국 시조가 아닌 이상, 그는 고구려인 누구나 만날 수 있거나 확인할 수 있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 해모수는 동명성왕의 어머니 유화와 사랑을 나눈 후 곧바로 떠나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p.175

신라·가야·고구려·백제·부여의 건국 신화처럼 경쟁 구도가 없는 하늘의 아들보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처럼 경쟁 구도가 있는 하늘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그만큼 하늘의 나라 고조선의 정통성은 쉽게 깨기 어려운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 기자, 위만 등 외래 세력이 고조선의 새로 운 혈통의 임금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란 나라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계속 썼던 이유가 그렇게 탄탄한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 속에 숨어 전하고 있다고 보면 지나친 것일까.
--- p.237~238

출판사 리뷰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건국 신화를 통해
역사적 상상력과 창조적 인문 지식을 만나다!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바꿨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의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말은 잘살아보겠다며 그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을 따라잡고자 똘똘 뭉치는 데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다’와 같은 선민사상(選民思想)의 집단 이념이 한몫했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은 근대 이전 전통 문명 시대에서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건국 시조와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하늘의 나라’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이 단합하는 구심체 역할을 한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비롯해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금관가야 등도 제각기 하늘의 아들이 통치한 하늘의 나라임을 보여주는 건국 신화를 남겼다. 심지어 신라는 건국 시조인 혁거세뿐만 아니라 석씨의 시조인 탈해와 김씨의 시조인 알지, 건국의 모태가 되었던 육두품 시조 등 무려 네 개의 신화가 전해진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고고학자도 아니다. 지리학 전공자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연구한 여러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재미있게 풀어냈다. 1장에서는 하늘 숭배 사상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2장에서 5장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의 건국신화를 비롯해, 탈해, 알지, 육두품의 시조에 대해 말한다. 6장은 금관가야, 7장은 고구려, 8장은 백제, 9장은 부여, 10장은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담고 있다.

왜 다른 나라와 달리 신라에는 하늘의 아들이 여러 명일까? 그리고 건국 신화 하면 으레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떠올리는데 왜 제일 먼저 언급하지 않고 맨 마지막에 등장시켰을까? 또한 저자는 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단군 신화를 고대 국가들의 여러 신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호랑이와 곰을 경쟁시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웅녀가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며 건국 신화에 복잡한 경쟁 구도를 집어넣어 고조선의 탄탄한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한반도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줌으로써 역사적 안목을 넓혀주고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 고대 문명의 신화들이 갖고 있는 문명사적 보편성과 다양성을 인식해 창조적 인문 지식을 쌓아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