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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픽 한국 불교사 (2024) - 36개 테마로 보는 한국 불교의 스펙트럼

동방박사님 2024. 8. 1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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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36개의 테마로 풀어낸 1,700년 전통의 한국 불교사,
그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비친 한국적 심성과 가치관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는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동아시아의 각지로 전파되었으며 고도의 철학적 사유이자 보편적 종교로서 문명사적인 영향을 미쳤다. 불교가 수용되고 토착화되면서 각 지역에서는 수많은 문화 접변과 변용의 현상이 펼쳐졌고, 이는 한반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 한국사는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질적 도약을 경험했다. 또한 한국에서 불교는 인도나 중국과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냈고 한국적 토양에 맞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왔다.

불교는 한국의 역사에서 사상과 종교, 문화와 의례, 문학과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빛나는 역할을 해왔고 그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심성과 가치관의 밑바닥에는 유교와 함께 불교가 알게 모르게 깊이 스며들어 있다. 또한 불교는 과거의 유산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전통이자 미래다. 이 책에서는 36개 토픽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통해 한국 불교가 걸어온 발자취, 어제가 만들어낸 오늘, 오늘에 비친 내일을 열어보려 한다.

「머리말」 중에서 

목차

머리말

1부 한국인의 삶 속에 들어온 불교

1장 불교, 인도에서 나와 중국으로 오다
2장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 새로운 문명을 열다
3장 신라 왕실이 불교를 택한 이유: 왕권강화의 시너지 효과
4장 불교, 토착신앙을 딛고 뿌리를 내리다
5장 교학 이해의 전주곡: 학파불교의 싹을 키우다

2부 신라 불교, 사상과 신앙의 나래를 펴다

1장 정토: 내세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2장 원효: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뛰어넘다
3장 교학불교의 만개: 의상 화엄과 해동 유식
4장 통일과 융합: 불교문화의 찬란한 꽃이 피다
5장 시대의 아이콘: 선과 풍수지리

3부 고려 불교, 전성기를 노래하다

1장 고려는 과연 불교국가인가?
2장 선과 교의 공존: 광종의 기획과 의천의 승부수
3장 결사의 시대와 개척자들: 지눌과 요세
4장 문화국가의 자긍심, 대장경을 만들다
5장 고려의 불교의례와 신앙의 향연
6장 한국 불교의 자화상을 담다: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
7장 원간섭기: 변동의 서막과 간화선의 전수

4부 조선 불교, 유교와의 힘겨루기

1장 유불 교체의 상징과 조선 불교 다시 보기
2장 조선 전기: 억불의 깃발을 들다
3장 전통의 유산: 왕실불교와 국왕
4장 선교 양종의 재건: 도약의 디딤돌이 되다
5장 임진왜란 의승군 나라를 구하다

5부 유교사회와 불교, 공생을 꿈꾸다

1장 임제법통의 성립과 문파의 형성
2장 선과 교, 염불의 융합: 이력과정과 삼문
3장 종교 지형의 확대: 내세와 정토, 민간신앙의 습합
4장 조선 후기 승역의 실상과 사원경제의 기반
5장 유불 교류의 양상과 불교 심성론
6장 중국 불서의 전래와 화엄의 전성시대
7장 19세기 선 논쟁의 전개와 선과 교의 이중주
8장 불교 역사서의 찬술: 전통을 아로새기다

6부 근대화의 격랑과 불교의 활로 모색

1장 불교, 문명개화와 근대화의 횃불을 들다
2장 사찰령 체제의 질곡: 물 건너간 불교 자주화
3장 승려의 결혼: 불교의 사회화와 세속화의 추구
4장 근대불교학의 수용과 불교 전통의 형상화
5장 식민지 유산의 청산: 불교정화의 빛과 그림자
6장 현대 한국 불교의 발자취, 그리고 오늘과 내일

연표 / 도판출처

저자 소개 

저 : 김용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수학하며 중국 송대 화엄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사상사학회·불교학연구회 연구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임제법통과 교학전통』(2010), 『Glocal History of Korean ...

책 속으로

붓다가 제시한 다르마의 내용은 그렇게 어렵고 사변적인 것은 아니었다. 붓다가 깨닫고 실천한 것은 진리 자체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이를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불경에 나오는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보면,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을 때 누가 왜 화살을 쏘았는지를 일일이 따지기보다 일단 독이 퍼지는 것을 막고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삶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붓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렇기에 붓다는 시간이나 공간의 끝은 어디인지, 신과 영혼의 실체는 무엇인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누구나 가장 절실한 문제에 집중해서 스스로가 해답을 찾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논쟁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p.17

신라의 불교와 왕권의 관계를 언급할 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왕실에서 표방한 ‘진종眞種’ 관념이다. 진종 관념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인식으로 신라 왕족이 인도의 왕과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 더 구체적으로는 부처가 속한 석가족의 혈통에서 유래한 ‘참된 혈족’이라는 뜻이다. 신라 왕실은 진종 관념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바로 석가족과 다름없다고 자부했고, 진흥왕?진지왕?진평왕?진덕여왕까지 네 명의 국왕이 왕명에 ‘진眞’자를 썼다. 신라 김씨 왕족을 지칭하는 ‘진골眞骨’이라는 명칭도 이러한 진종 관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왕의 직계 일가는 부처의 직계 가족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성스러운 권위를 갖는 ‘성골聖骨’이라고 불렀다.
---p.36

화엄학은 한국의 불교사상을 대표하는 교학으로서 통일신라시대에 유식학과 함께 교학불교의 전성기를 열었다. 의상은 중국 화엄에는 없는, 보편적 원리들이 서로 상통하는 이리상즉理理相卽의 이론을 제시했고, 자기가 쌓은 공덕을 널리 함께하는 회향廻向, 그리고 깨달음과 중생 구제의 서원을 동시에 행하는 원력을 강조해 교학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했다. 의상에서 비롯된 실천적 면모는 해동 화엄의 특징이 되었고 그의 존재 덕분에 한국은 ‘화엄의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한편 당과 신라의 유식학자들이 주도하면서 화엄학과 쌍벽을 이룬 유식학은 불교학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pp.86,87

고려시대 선종은 북종선과 남종선, 임제종이나 조동종처럼 선의 기풍에서 차이가 나는 중국의 선종 유파와는 달리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승관계를 기준으로 한 인적 계보 위주의 산문 전통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 말인 9세기에 희양산문의 개조 도헌이 북종선의 전수를 표방했지만 그 손제자인 긍양은 남종선을 높였다. 이와 같이 산문의 적전嫡傳 계보 안에서도 선풍이 달라지는 사례가 간혹 보이는데, 이는 한국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고려 중기에는 9산 선문을 선적종禪寂宗이라 통칭한 기록이 전하며, 의천이 선종의 하나로 천태종을 개창한 후에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기존의 선종을 조계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p.124

경성제대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이조불교李朝佛敎』(1929)에서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학술담론으로 정착시켰다. 그는 조선시대 불교가 억불정책으로 쇠퇴했고 후기에는 거의 멸절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조선시대 불교를 바라보는 기본 틀로 굳어졌다. 해방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타율성론, 정체성론 같은 식민사관이 비판·극복되었지만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시대 전통 하면 흔히 유교만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불교는 존재했고 가장 중요한 주류 신앙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 후기에도 교학과 수행, 종교적 측면에서 불교는 살아 있었고 현존하는 전통사찰 대부분도 17세기 이후에 중창되었다.
---p.180

조선 후기에 수행이나 신앙으로서 염불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먼저 승려의 경우를 살펴보면, 석실石室 명안明安(1646-1710)은 만년에 ‘염불왕생문’에 귀의해 1709년 지리산 칠불암에서 70여 명이 참여한 서방도량 염불결사를 결성하고 『현행법회예참의식現行法會禮懺儀式』을 간행했다. 명안은 언제 어느 때나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정토왕생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염불가念佛歌」를 지었고 입적하기 직전 서쪽을 향해 세 번 절했다고 한다.
(중략) 교학에 뛰어났던 연담蓮潭 유일有一(1720-1799)은 “극락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고 하면서, “반드시 불교를 믿고 염불을 하지 않더라도 선행을 한 이들은 왕생할 수 있다. 또한 천당이 있다면 그곳은 군자가 오르는 곳이므로 잘못을 깨닫고 참된 자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왕생의 기준이 참회와 수행에 있지만 선행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유교사회의 시대성에 걸맞은 주장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p.242

의승군 전통을 이은 승군의 운용과 승역의 관행화는 조선 후기 불교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불교는 국가 입장에서 정책적 활용의 대상이었지 억압과 배제, 타파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 불교의 출세간적 지향과는 배치되는 것이었고, 오랜 역사 속에서 국가가 보장하던 ‘면세·면역 계층인 승려상’이 무너진 것이기도 했다. 시야를 넓혀보면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세속의 정치권력에 기본적으로 종속되었고 자율권과 성역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 불교와 국가의 관계는 이러한 동아시아 세계의 공통 지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국가와의 강한 정책적·경제적 유착이라는 면에서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
---p.257

출판사 리뷰

살아 있는 전통이자 미래인 한국 불교의 자화상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중국 전진에서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오면서 한반도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이후 1,700여 년이 흘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이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불교는 한반도에서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해온 다양한 토착신앙을 흡수하면서 한국적 토양에 맞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다 유교를 통치이념의 전면에 내세운 조선에 들어와 불교는 크나큰 시련을 맞이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자생적으로 퍼져나간 천주교, 그리고 서구 근대문명이 물밀 듯 들어온 19세기 말부터는 개신교와 경쟁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종교 유무나 어떤 종교를 믿는지와 무관하게 대다수 한국인의 인식 속에는 ‘고려는 불교국가였다’라는 단편적 시각과 ‘조선시대 불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여성과 서민의 비주류 신앙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으며 심지어 승려의 지위가 천민 수준으로 떨어졌다’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안일한 인식이다. 특히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잿빛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경성제대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高橋가 1929년에 펴낸 『이조불교李朝佛敎』의 영향이 크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드리워져 있던 타율성론, 정체성론 같은 식민사관은 매서운 비판을 받고 어느 정도 극복되었지만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한국 불교 전문가인 김용태 교수가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로 『토픽 한국 불교사』를 펴내게 되었다. 36개의 흥미로운 토픽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를 두루 살펴보는 이 책은 딱딱한 개설서나 통사가 아니다. 불교에 대해 익숙한 사람이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든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 불교의 본래면목을 온전히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교양서다.
한국의 명산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고찰과 빛나는 불교 문화유산들은 1,700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말해주듯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굳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원효, 의상, 의천 등의 유명한 대사들과 임진왜란 때 맹활약을 펼친 사명당 같은 의승군의 존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석굴암, 팔만대장경,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문화재들에 대해서도 자부심과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요즘에는 붓다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배우기 위해 기꺼이 ‘템플스테이’를 가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나아가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서양인들의 숫자 또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오랜 세월 부당한 핍박과 오해 속에서도 결코 그 빛이 바래지 않은 자율과 평등, 이타주의, 비폭력과 생태주의, 조화와 상생 같은 불교적 가치관의 힘 때문일 것이다. 불교는 단순히 무無, 공公, 업業, 윤회, 전생, 인연, 수행, 해탈, 열반, 서방정토, 극락 같은 단어들의 카테고리로만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크고 깊은 세계다. 또한 오래전 역사적 사실이나 심오한 교학에 대해 많이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불교의 핵심에 닿기 어려울 것이다. 화두를 들고 참선에 드는 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일반인은 따라 하기도 쉽지 않은 수행법이다.
불교는 너무나 거대한 산이다. 종교 같기도 하고 철학 같기도 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외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기도 하지만 ‘돈오점수’ 대 ‘선교겸수’, 교종 대 선종 등의 골치 아픈 논쟁쯤은 알아야 할 것 같아 어렵다는 생각부터 든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 자체에 아예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굳이 불교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종교적 측면보다는 불교가 우리 역사와 한국인의 심성, 가치관에 끼친 영향에 더 많은 무게를 두었다는 점에서 색다른 한국사이며 그만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국인 심성의 저변에 흐르는 불교적 가치관

“그 사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다음 생에는…”, 굳이 드라마나 영화, 웹툰이 아니더라도 윤회나 전생과 관련된 말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에도 차고 넘친다. 각 개인이 전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의 집단 무의식 한가운데에는 불교적 심성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반면 효와 충 등 우리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치관의 상당수는 유교의 영향이 크다. 나아가 천당과 지옥이라는 관점에서 평소 착하게 살아야 하며 잘못을 하더라도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도덕관을 심어준 기독교는 서구 근대문명의 도입과 함께 우리 사회에 튼실하게 안착했다. 그뿐인가. 우리는 오랜 세월 아주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린 풍수지리, 도교적 가치관, 무속신앙에도 친숙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온갖 종교적 심성이 어우러진 바탕 위에서 현실을 살아가며 각자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간 자체가 종교적 심성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한국사를 반만년의 역사라고들 한다. 구석기, 신석기, 철기, 청동기 시대를 지나 강력한 국가 중심의 시대를 거쳐 개인이 중심인 서구적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서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한국 불교의 역사는 얼추 1,700여 년에 달한다. 이는 한국사 전체 기간의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세월이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정식으로 공인을 받기까지 엄청난 박해와 시련에 시달렸던 것처럼 신라에 전파된 불교 또한 국가 차원에서 공인을 받기까지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차돈의 순교’가 대표적이다. 이후 한국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거의 천년 동안 순항하면서 왕족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고려에 대한 인식인데, 고려시대에 불교가 매우 존숭되고 융성했던 것은 사실이나 국가의 통치이념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고려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며 도교와 풍수, 무속신앙 등이 탄탄한 사회적 저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현재 한국 불교의 원형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간화선의 선양과 임제법통 계승, 선교겸수 지향과 화엄교학 중시, 염불정토신앙의 대중적 확산은 조선시대를 거치며 불교 전통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시대 불교는 고려와 오늘날의 불교를 잇는 매개이자 가교라고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한국인의 심성과 세계관의 밑바탕에는 흔히 생각하듯 유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불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전통에서 불교의 정당한 지분을 찾는 과정이며, 한국의 역사 전통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는 데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180쪽)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중앙의 권세가, 하급관리와 아전, 각 지역의 토호 등 다양한 계층에서 불교를 믿었다. 물론 국가의례와 양반 사대부 계층의 가례에서 불교식 제의와 내세관은 설자리를 잃었고, 유교의 제례와 사후 관념이 사회적으로 점차 확산되어갔음은 분명하다. 조선 후기에 들어 유교사회가 본격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삶뿐 아니라 죽음의 문제까지도 유교가 힘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세의 문제에서 불교가 가진 오랜 기득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유교가 전면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 사람들 대다수는 업과 윤회로 상징되는 불교의 내세관을 잊지 않았고, 망자의 명복을 빌거나 정토로의 왕생을 꿈꾸는 이에게 불교는 내세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었다. 성리학적 관념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유교식 제의가 일반 대중에까지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239쪽)

한국 불교의 도전과 미래

한국 불교는 고려 말과 조선 초, 조선 후기와 미군정기에 이어 1980년 10?27 법난까지 숱한 도전과 시련을 겪어왔다. 고려 말에는 사회적 분열과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의 양극화가 심해져 백성의 살림이 날로 피폐해졌고 불교계는 승려 수나 경제적 측면에서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내적으로는 인적 수준이 하락하고 도덕적 타락이나 불감증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고려 말 불교계의 모습은 교학 연구나 선 수행의 풍토 대신 기복과 공덕신앙이 중심이 되었고, 교단은 자정능력을 잃고 기득권 유지에 골몰했다. 한편 유교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온힘을 쏟던 조선 초에는 개창세력인 정도전을 비롯한 성리학자들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다. 조선 후기에는 당시 유학자들조차 내세관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불교의 별파로 인식한 천주교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으나 ‘전통의 안’에 있던 불교가 효의 실천을 현세에서 내세로까지 연장하고 국왕의 장수, 나라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함으로써 천주교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가 하면 1945년부터 3년간 미군정 통치기에 여러 특혜를 누리면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키운 기독교가 또 하나의 강력한 도전세력으로 떠올랐다. 오랫동안 미국에 머물다 귀국한 이승만 등 일부 정치가들은 미군정과 기독교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기독교 편향 정책은 계속되었다. 이후 1980년 5월 17일에 전두환의 신군부세력이 군사쿠데타를 마무리하고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조계종 총무원 측이 군사정권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사를 밝히자 흉흉하던 민심을 다잡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좋은 먹잇감으로 찍혀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전통종교인 불교에 비해 천주교와 개신교는 로마 교황청이나 미국 등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또 사회 지도층 인사와 유력자 중에 기독교 신자가 많았기 때문에 폭력을 가하거나 막무가내로 건드리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이에 비해 불교는 신군부 입장에서 가장 만만한 거대 종교였고 비리 혐의를 씌우고 정화의 명분을 찾는 데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어난 것이 바로 10?27 법난이었다.
이처럼 한국 불교는 찬란하게 융성했던 시절과 고달픈 시련의 과정을 모두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밀레니엄 시대라 불리는 20세기 이후로는 과학의 눈부신 발달 덕에 새로운 ‘세계종교’가 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기존 전통종교들도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종교로 ‘과학’을 꼽기도 하고 현실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작금의 신이 바로 ‘돈’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기도 한다. 진실이 과연 무엇이든 한국 불교의 미래를 장밋빛이라고 쉽게 단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한국 불교의 미래는 불교의 장점을 살려서 현재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달려 있다. (중략) 불교는 1,700년 동안 한국인의 심성과 가치관을 형성해왔고 DNA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뿐 아니라 현재까지 살아 있는 주류 종교로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시야를 확대해서 보면 지난 2,500년간 불교는 고도의 사유체계이자 보편적 세계종교로서 아시아 각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인류 문명사에 크게 기여했다.
수많은 붓다의 계승자들은 종교적 경건함과 구도의 치열함으로 무장한 채 신앙과 수행, 교화에 생애를 바쳤다. 불교의 미래적 가치는 바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아올린 업과 인연에서 출발하며, 그 종교문화의 밝은 빛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다. 한국 불교도 21세기 불교의 세계화와 인류 문명의 길 안내자 역할에 동참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할 때다. (346~3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