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2.개항기.구한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동방박사님 2021. 11. 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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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그와 관련된 역사 속 비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은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며 대한제국을 건립한다. 하지만 허울 뿐인 제국은 일본의 힘에 굴복하고 대한제국은 단명하고 만다. 영친왕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다. 조선의 제 28대 왕통을 계승했지만, 형님이자 선왕인 순종이 승하했을 때는 이미 나라가 사라져 계승할 왕위도 없어진 뒤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그에게 비루한 삶을 강요했다. 해방되기 전에는 볼모로 일본에 끌려갔고, 해방된 뒤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견제로 귀국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친왕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때가 오기까지는 모든 것을 꾹 참고 기다리라는 고종의 마지막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영친왕은 황태자로서의 기품과 격조를 잃지 않았으며, 작은 일이라도 조국과 민중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늘 고심했다. 영친왕의 평전을 쓴 저자인 김을한은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로, 타계할 때까지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노력했다. 이 책에 담긴 영친왕과 관련된 다양한 비사는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목차

끝 없는 한, 마르지 않는 눈물(無窮限不盡淚)·김을한
영친왕과 덕혜옹주, 그리고 내 아버지 김을한·김수동
영친왕을 위해 곡하다(哭英親王)·박종화

제 1부·왕조의 석양
도쿄에서
해방은 되었건만
이승만과 영친왕
윤대비의 기품
가엾은 덕혜옹주
사랑의 귀공자
의친왕과 이건 공
명성황후는 미인이었다
세 번의 통곡
고종의 고심
마지막 가르침

제 2부·망국의 볼모
정략결혼의 안팎
만년처녀 민 규수
여운형의 도쿄 방문
신혼마차에 날아든 폭탄
유럽 여행
상해임시정부의 영친왕 납치 기도
헤이그에서
10년 만의 득남
마지막 황제 부의와의 만남
하얼빈에서
불타는 민족혼
도쿄의 제 2 종묘

제3부·자유 없는 자유인
일본의 패전
평민으로 산다는 것
아들의 미국 유학
환국은 통일 후에
홍사익 중장의 비극
헐버트 박사의 귀국
6·25전쟁
밀항 학생들을 구하다
고집스러운 이 대통령
구황실 재산처리법
이승만과 요시다의 호랑이 문답
왕저는 사라지고
문제의 패스포트
이중의 국제결혼
지난한 국적 환원

제4부·창덕궁의 봄
창덕궁으로 환궁한 윤대비
창덕궁의 괴화(怪火)
주영대사를 고사하다
영친왕 쓰러지다
박 대통령과의 면담
덕혜옹주의 귀국
그리운 조국으로
고독의 왕자, 침묵의 왕자

에필로그
영친왕 연보
 

저자 소개 

저 : 김을한 (金乙漢)
 
김을한은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였다. 동명(東溟) 김을한은 190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을사년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을한(乙漢)으로 지었다. 병자호란 때의 충신 김상헌의 후손인 그는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보 2학년 때 3·1운동을 맞았다. 그 직후 도쿄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는 김기진 등과 함께 극단 토월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귀국한 직후인 1924년, 조선일보 한기악 편집국장의 발탁으로 신문기자가 되었다.

사회부기자 김을한은 그 당시 발생했던 큰 사건들을 밑바닥에서부터 파헤쳐 일제의 악랄한 식민정책을 폭로함으로써 이름을 떨쳤다. 광주학생운동, 장진강 토지사건, 만주사변의 치열한 현장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생생한 실상을 보도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을한은 서울신문사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게 되었고, 이때 영친왕을 처음 만났다. 이후 20여 년 동안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언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덕혜옹주의 유치원 동무였던 아내 민덕임을 먼저 보내고 못내 그리워하다 1992년 서울 반포에서 세상을 버리고 그 곁으로 갔다.

『인간 이은』『월남선생 일대기』『여기 참사람이 있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