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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교 사회의 여필종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관점으로 조선 왕비에 주목하다!
우리의 반만 년 역사에서 가장 자료가 풍부하고, 축적된 연구 자료도 많은 조선시대의 역사를 다룬 도서는 서가에 차고 넘친다. ‘조선왕조실록’을 예를 들면, ‘어린이를 위한, 한 권으로 읽는, 만화로 보는, 누구누구의~’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덕분에 독자들은 그 어마어마한 분량의 실록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그 많은 ‘조선왕조실록’이 쏟아져 나오고 또 읽었음에도, 문득 ‘조선의 왕비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봄 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왕비는 TV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한마디로 그들의 인생에 드라마적 요소가 풍부한 인물들만 접했을 뿐이다.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로 얼룩진 한 많은 삶을 살았던 한 시대의 여인으로서 말이다. 하여 역사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들이 어떤 왕비였는지,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머릿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을 터였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하면서 『이야기 우리 문화』, 『신화는 두껍다』 등을 발표한 저자 김진섭은 이제까지 조선의 왕비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과 다름없이 여필종부라는 유교적 잣대를 적용하여 ‘한 많고 기구한 삶’이나 또는 후궁들과의 갈등으로 ‘질투와 욕심의 화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관점으로 ‘조선 왕비’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원고지 3천 매에 가까운 44명 왕비들에 관한 내용을 써내려가면서, 그는 조선의 왕비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정치적 영향권에 벗어나지 못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지닌, 왕조 사회에서 엄연한 정치인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새로운 관점으로 조선 왕비에 주목하다!
우리의 반만 년 역사에서 가장 자료가 풍부하고, 축적된 연구 자료도 많은 조선시대의 역사를 다룬 도서는 서가에 차고 넘친다. ‘조선왕조실록’을 예를 들면, ‘어린이를 위한, 한 권으로 읽는, 만화로 보는, 누구누구의~’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덕분에 독자들은 그 어마어마한 분량의 실록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그 많은 ‘조선왕조실록’이 쏟아져 나오고 또 읽었음에도, 문득 ‘조선의 왕비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봄 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왕비는 TV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한마디로 그들의 인생에 드라마적 요소가 풍부한 인물들만 접했을 뿐이다.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로 얼룩진 한 많은 삶을 살았던 한 시대의 여인으로서 말이다. 하여 역사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들이 어떤 왕비였는지,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머릿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을 터였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하면서 『이야기 우리 문화』, 『신화는 두껍다』 등을 발표한 저자 김진섭은 이제까지 조선의 왕비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과 다름없이 여필종부라는 유교적 잣대를 적용하여 ‘한 많고 기구한 삶’이나 또는 후궁들과의 갈등으로 ‘질투와 욕심의 화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관점으로 ‘조선 왕비’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원고지 3천 매에 가까운 44명 왕비들에 관한 내용을 써내려가면서, 그는 조선의 왕비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정치적 영향권에 벗어나지 못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지닌, 왕조 사회에서 엄연한 정치인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목차
한양도/ 들어가는 글/ 일러두기
1장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를 내리다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가 되다 신의왕후 한씨_태조의 정비
살아서 모든 것을 성취했으나, 죽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다 신덕왕후 강씨_태조의 계비
권한대행 왕비 자리도 부담스러워하다 정안왕후 김씨_정종의 정비
꿈은 이루었으나 남편을 잃다 태종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_태종의 정비
준비되지 않은 왕비, 조선을 대표하다 소헌왕후 심씨_세종의 정비
우여곡절 끝에 왕비가 탄생했지만…… 현덕왕후 권씨_문종의 정비
기억과 기록 사이를 넘나들다 정순왕후 송씨_단종의 정비
집안을 나라로 바꾸다 정희왕후 윤씨_세조의 정비
2장 행복과 불행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정치적 야망에 가려지다 장순왕후 한씨와 안순왕후 한씨_예종의 정비와 계비
반전을 거듭하며 왕실과 인연을 이어가다 소혜왕후 한씨_덕종의 정비
짧은 생과 함께 왕실과의 인연을 끝내다 공혜왕후 한씨_성종의 정비
조선 최초로 왕비가 쫓겨나다 제헌왕후 윤씨_성종의 제1계비
기다림의 끝은 화려했다 정현왕후 윤씨_성종의 제2계비
2대에 걸친 왕실과의 인연이 불행으로 막을 내리다 거창군부인 신씨_연산군의 정비
왕비 아닌 왕비의 삶을 살다 단경왕후 신씨_중종의 정비
뜻하지 않게 기회가 찾아오다 장경왕후 윤씨_중종의 제1계비
조선의 측천무후로 비판받다 문정왕후 윤씨_중종의 제2계비
시어머니의 그림자에 가려진 삶을 살다 인성왕후 박씨와 인순왕후 심씨_인종과 명종의 정비
평생을 고독과 벗하며 살다 의인왕후 박씨_선조의 정비
중세적 흑백논리에 갇히다 인목왕후 김씨_선조의 계비
3장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기억에 남다 문성군부인 류씨_광해군의 정비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 인조의 정비, 인렬왕후 한씨
여섯 번의 상복을 입으며 당쟁에 휘말리다 장렬왕후 조씨_인조의 계비
예정에 없던 길을 걷다 인선왕후 장씨_효종의 정비
태몽부터 달랐던 여장부가 탄생하다 명성왕후 김씨_현종의 정비
궁녀의 존재감에 가려지다 인경왕후 김씨_숙종의 정비
현대 사극의 단골손님으로 주목받다 인현왕후 민씨와 희빈 장씨_숙종의 계비
정치적 소신까지 바꾸며 왕실을 지키다 인원왕후 김씨_숙종의 마지막 계비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다 단의왕후 심씨와 선의왕후 어씨_경종의 정비와 계비
역대 왕비들과 대조적인 삶을 살다 정성왕후 서씨와 정순왕후 김씨_영조의 정비와 계비
4장 꺼져가는 왕실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역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자와 혼인하다 효의왕후 김씨_정종의 정비
6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열다 순원왕후 김씨_순조의 정비
역사에 이름만 남기다 효현왕후 김씨와 효정왕후 홍씨_헌종의 정비와 계비
부부가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다 철인왕후 김씨_철종의 정비
조선과 마지막을 함께하다 신정왕후 조씨_익종(효명세자)의 정비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에 서다 명성황후 민씨_고종의 정비
4대가 왕실과 혼인하다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_순종의 정비와 계비
이 책에 등장하는 조선의 역대 왕비 정리/ 참고문헌
1장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를 내리다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가 되다 신의왕후 한씨_태조의 정비
살아서 모든 것을 성취했으나, 죽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다 신덕왕후 강씨_태조의 계비
권한대행 왕비 자리도 부담스러워하다 정안왕후 김씨_정종의 정비
꿈은 이루었으나 남편을 잃다 태종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_태종의 정비
준비되지 않은 왕비, 조선을 대표하다 소헌왕후 심씨_세종의 정비
우여곡절 끝에 왕비가 탄생했지만…… 현덕왕후 권씨_문종의 정비
기억과 기록 사이를 넘나들다 정순왕후 송씨_단종의 정비
집안을 나라로 바꾸다 정희왕후 윤씨_세조의 정비
2장 행복과 불행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정치적 야망에 가려지다 장순왕후 한씨와 안순왕후 한씨_예종의 정비와 계비
반전을 거듭하며 왕실과 인연을 이어가다 소혜왕후 한씨_덕종의 정비
짧은 생과 함께 왕실과의 인연을 끝내다 공혜왕후 한씨_성종의 정비
조선 최초로 왕비가 쫓겨나다 제헌왕후 윤씨_성종의 제1계비
기다림의 끝은 화려했다 정현왕후 윤씨_성종의 제2계비
2대에 걸친 왕실과의 인연이 불행으로 막을 내리다 거창군부인 신씨_연산군의 정비
왕비 아닌 왕비의 삶을 살다 단경왕후 신씨_중종의 정비
뜻하지 않게 기회가 찾아오다 장경왕후 윤씨_중종의 제1계비
조선의 측천무후로 비판받다 문정왕후 윤씨_중종의 제2계비
시어머니의 그림자에 가려진 삶을 살다 인성왕후 박씨와 인순왕후 심씨_인종과 명종의 정비
평생을 고독과 벗하며 살다 의인왕후 박씨_선조의 정비
중세적 흑백논리에 갇히다 인목왕후 김씨_선조의 계비
3장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기억에 남다 문성군부인 류씨_광해군의 정비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 인조의 정비, 인렬왕후 한씨
여섯 번의 상복을 입으며 당쟁에 휘말리다 장렬왕후 조씨_인조의 계비
예정에 없던 길을 걷다 인선왕후 장씨_효종의 정비
태몽부터 달랐던 여장부가 탄생하다 명성왕후 김씨_현종의 정비
궁녀의 존재감에 가려지다 인경왕후 김씨_숙종의 정비
현대 사극의 단골손님으로 주목받다 인현왕후 민씨와 희빈 장씨_숙종의 계비
정치적 소신까지 바꾸며 왕실을 지키다 인원왕후 김씨_숙종의 마지막 계비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다 단의왕후 심씨와 선의왕후 어씨_경종의 정비와 계비
역대 왕비들과 대조적인 삶을 살다 정성왕후 서씨와 정순왕후 김씨_영조의 정비와 계비
4장 꺼져가는 왕실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역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자와 혼인하다 효의왕후 김씨_정종의 정비
6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열다 순원왕후 김씨_순조의 정비
역사에 이름만 남기다 효현왕후 김씨와 효정왕후 홍씨_헌종의 정비와 계비
부부가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다 철인왕후 김씨_철종의 정비
조선과 마지막을 함께하다 신정왕후 조씨_익종(효명세자)의 정비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에 서다 명성황후 민씨_고종의 정비
4대가 왕실과 혼인하다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_순종의 정비와 계비
이 책에 등장하는 조선의 역대 왕비 정리/ 참고문헌
저자 소개
책 속으로
- 한때 같은 곳을 바라보았던 동지였지만, 권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상했음이라_원경왕후 민씨(태종의 정비)
그녀는 젊은 시절에 남편을 위해 군사를 기르고 갑주와 보검을 챙겨주던 여장부였고, 한편으로는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세종이 충녕대군 시절에 책을 너무 많이 읽자 건강을 해칠 것을 우려하여 책 몇 권만 남겨두고 자신의 처소에 갖다놓을 정도로 아들을 살뜰하게 챙긴 성군의 어머니였고,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평범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불운한 아내였고, 남편에 의해 친정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죄 많은 딸이기도 했다.
- 너무도 다른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씁쓸한 결말_소혜황후 한씨(덕종의 정비)
소혜왕후(인수대비)는 조선 왕실은 물론 명나라 황실과도 인척관계를 맺어 막강한 세력을 지닌 권세가이자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녀 역시 왕실에 들어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지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자 21세에 청상과부가 되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며 끝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소혜왕후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집안의 딸로 성장했음에도 남편(성종)에 대한 사랑만 중요하게 여기는 제헌왕후(폐비 윤씨)를 이해하고 너그러이 감싸기에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 열등감에 시달리는 선조에게 끝까지 외면받았으나 불심으로 이겨내다_의인왕후 박씨(선조의 정비)
선조와 혼인한 의인왕후의 시련은 왕비 간택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듯했다.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를 물려받은 선조는 대비 인순왕후가 법적인 어머니였다. 대비 인순왕후의 집안과 선조의 비 의인왕후의 집안은 혼인하기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선조가 왕비로 맞아들인 의인왕후에게 마음을 주지 않은 것은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선조가 왕비로 간택된 의인왕후에게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궁궐에 살게 되면서 선조는 왕실 최고 어른으로 수렴청정에 나선 대비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정국의 흐름 또한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점점 의심이 많아진 선조는 왕실 여인들이 적인지 동지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 혼인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조는 의인왕후와의 혼인을 치르기도 전에 심리적 부담만 더욱 커져갔다.
- 네 차례의 환국으로 신하들을 길들인 숙종의 유지를 계승하며 왕실을 지키다_인원왕후 김씨(숙종의 마지막 계비)
왕실 최고 어른인 왕대비 인원왕후가 전면에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녀는 노론의 정언 이정소에게 “경종이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 하루속히 왕세제를 책봉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 경종에게 자식이 없었고, 연령군은 이미 사망했기에 연잉군을 의식한 상소였다. 소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에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왕대비인 인원왕후의 명분이 더 컸으므로 논란을 잠재우며 결국 연잉군이 왕세제에 책봉되었다.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사망하자 1724년 연잉군이 즉위했고, 인원왕후는 38세의 나이로 대왕대비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영조와 나이 차가 일곱 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법적 아들과 며느리인 영조와 정성왕후의 효도 속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냈다. 그녀는 ‘매사에 엄격하고 강력한 결단력으로 조선 후기 궁중의 법도를 스스로 실천하며 궁궐의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평가처럼, 대왕대비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 외척을 왕권의 희생양으로 삼은 태종과 6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연 후손과의 기묘한 만남_순원왕후 김씨(순조의 정비)
순원왕후는 순조 2년(1802) 궁궐 생활을 시작해 32년 동안 왕비 자리를 지켰고, 이어서 손자 헌종이 즉위하여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했다. 그리고 헌종에 이어 철종이 즉위하자 다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렴청정을 했으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이르던 철종 8년(1857) 8월에 사망할 때까지 55년 동안 조선 말기의 왕실을 지켰다. 창덕궁 양심합養心閤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현재 서울 서초구에 있는 순조의 인릉仁陵에 합장되었다. 조선의 3대 왕 태종은 외척의 발호를 막고 왕권 강화를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처가는 물론 며느리의 친정까지도 희생물로 삼았던 왕이었다. 반면, 태종이 잠들어 있는 능 근처에 조성된 인릉의 주인공 순원왕후와 순조 부부는 외척의 발호로 세도정치의 문을 연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묘한 인연을 보여준다. 태종이 지하에서 까마득한 두 후손에게 무어라 조언했을지 궁금하다.
- 왕권 회복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여 마지막 수렴청정을 시행하다_신정왕후 조씨(익종의 비)
신정왕후의 정치 참여 의지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녀는 수렴청정에 나서면서 대비 이상의 지위와 국왕의 어머니라는 확실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고종을 아들로 입양하여 고종의 법적인 어머니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왕실 종친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종의 생부인 흥선군에게 정국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철종 대 이후 안동 김씨를 대신하여 국왕을 보좌해줄 새로운 정치 세력을 갈망했던 그녀는 그 대안으로 왕실 종친에 주목했던 것이다. 왕실 종친은 상황에 따라 왕권을 위협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시기에는 왕실의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지원 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 풍문의 역사와 기록의 역사 사이를 넘나드는 최초의 근대 여성 정치인!_명성황후 민씨(고종의 정비)
명성황후의 삶을 평가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단순히 왕조 사회에 존재했던 한 사람의 왕비가 아니라 근대의 대격변기인 제국주의 침략에서부터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우리 근대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왕실 여성이 공식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왕대비 또는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수렴청정에 나선 것이 아니라 왕비의 자격으로 왕이 생존해 있음에도 스스로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국정에 관여한 유일한 왕비이자 최초의 근대 여성 정치인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 남편을 위해 군사를 기르고 갑주와 보검을 챙겨주던 여장부였고, 한편으로는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세종이 충녕대군 시절에 책을 너무 많이 읽자 건강을 해칠 것을 우려하여 책 몇 권만 남겨두고 자신의 처소에 갖다놓을 정도로 아들을 살뜰하게 챙긴 성군의 어머니였고,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평범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불운한 아내였고, 남편에 의해 친정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죄 많은 딸이기도 했다.
- 너무도 다른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씁쓸한 결말_소혜황후 한씨(덕종의 정비)
소혜왕후(인수대비)는 조선 왕실은 물론 명나라 황실과도 인척관계를 맺어 막강한 세력을 지닌 권세가이자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녀 역시 왕실에 들어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지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자 21세에 청상과부가 되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며 끝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소혜왕후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집안의 딸로 성장했음에도 남편(성종)에 대한 사랑만 중요하게 여기는 제헌왕후(폐비 윤씨)를 이해하고 너그러이 감싸기에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 열등감에 시달리는 선조에게 끝까지 외면받았으나 불심으로 이겨내다_의인왕후 박씨(선조의 정비)
선조와 혼인한 의인왕후의 시련은 왕비 간택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듯했다.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를 물려받은 선조는 대비 인순왕후가 법적인 어머니였다. 대비 인순왕후의 집안과 선조의 비 의인왕후의 집안은 혼인하기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선조가 왕비로 맞아들인 의인왕후에게 마음을 주지 않은 것은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선조가 왕비로 간택된 의인왕후에게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궁궐에 살게 되면서 선조는 왕실 최고 어른으로 수렴청정에 나선 대비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정국의 흐름 또한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점점 의심이 많아진 선조는 왕실 여인들이 적인지 동지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 혼인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조는 의인왕후와의 혼인을 치르기도 전에 심리적 부담만 더욱 커져갔다.
- 네 차례의 환국으로 신하들을 길들인 숙종의 유지를 계승하며 왕실을 지키다_인원왕후 김씨(숙종의 마지막 계비)
왕실 최고 어른인 왕대비 인원왕후가 전면에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녀는 노론의 정언 이정소에게 “경종이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 하루속히 왕세제를 책봉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 경종에게 자식이 없었고, 연령군은 이미 사망했기에 연잉군을 의식한 상소였다. 소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에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왕대비인 인원왕후의 명분이 더 컸으므로 논란을 잠재우며 결국 연잉군이 왕세제에 책봉되었다.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사망하자 1724년 연잉군이 즉위했고, 인원왕후는 38세의 나이로 대왕대비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영조와 나이 차가 일곱 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법적 아들과 며느리인 영조와 정성왕후의 효도 속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냈다. 그녀는 ‘매사에 엄격하고 강력한 결단력으로 조선 후기 궁중의 법도를 스스로 실천하며 궁궐의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평가처럼, 대왕대비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 외척을 왕권의 희생양으로 삼은 태종과 6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연 후손과의 기묘한 만남_순원왕후 김씨(순조의 정비)
순원왕후는 순조 2년(1802) 궁궐 생활을 시작해 32년 동안 왕비 자리를 지켰고, 이어서 손자 헌종이 즉위하여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했다. 그리고 헌종에 이어 철종이 즉위하자 다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렴청정을 했으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이르던 철종 8년(1857) 8월에 사망할 때까지 55년 동안 조선 말기의 왕실을 지켰다. 창덕궁 양심합養心閤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현재 서울 서초구에 있는 순조의 인릉仁陵에 합장되었다. 조선의 3대 왕 태종은 외척의 발호를 막고 왕권 강화를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처가는 물론 며느리의 친정까지도 희생물로 삼았던 왕이었다. 반면, 태종이 잠들어 있는 능 근처에 조성된 인릉의 주인공 순원왕후와 순조 부부는 외척의 발호로 세도정치의 문을 연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묘한 인연을 보여준다. 태종이 지하에서 까마득한 두 후손에게 무어라 조언했을지 궁금하다.
- 왕권 회복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여 마지막 수렴청정을 시행하다_신정왕후 조씨(익종의 비)
신정왕후의 정치 참여 의지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녀는 수렴청정에 나서면서 대비 이상의 지위와 국왕의 어머니라는 확실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고종을 아들로 입양하여 고종의 법적인 어머니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왕실 종친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종의 생부인 흥선군에게 정국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철종 대 이후 안동 김씨를 대신하여 국왕을 보좌해줄 새로운 정치 세력을 갈망했던 그녀는 그 대안으로 왕실 종친에 주목했던 것이다. 왕실 종친은 상황에 따라 왕권을 위협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시기에는 왕실의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지원 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 풍문의 역사와 기록의 역사 사이를 넘나드는 최초의 근대 여성 정치인!_명성황후 민씨(고종의 정비)
명성황후의 삶을 평가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단순히 왕조 사회에 존재했던 한 사람의 왕비가 아니라 근대의 대격변기인 제국주의 침략에서부터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우리 근대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왕실 여성이 공식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왕대비 또는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수렴청정에 나선 것이 아니라 왕비의 자격으로 왕이 생존해 있음에도 스스로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국정에 관여한 유일한 왕비이자 최초의 근대 여성 정치인이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기억의 역사에서 기록의 역사까지 넘나들며
44명의 조선 왕비를 만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조선 왕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할까? 사실 조선의 역대 왕비에 관한 기록 자체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왕비의 이름도 알 수 없다.『조선왕조실록』이나 왕비의 부모와 시조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에는 왕비의 이름조차 싣지 않았다. 그저 어느 성씨의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렇듯 정사正史에까지 왕비에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 사회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에는 순탄하게 왕비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은 물론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들, 그리고 세자빈의 자리에 올랐지만 본인이 요절했거나 배우자인 세자가 요절하여 끝내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후에 왕비에 추존된 소혜왕후와 신정왕후 등 모두 44명의 왕비들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 27대 왕을 기준으로 하여, 1장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가 되다’에는 1대 태조(이성계)에서 7대 세조(이유)까지, 2장 ‘행복과 불행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에는 8대 예종(이황)에서 14대 선조(이연)까지, 3장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에는 15대 광해군(이혼)에서 21대 영조(이금)까지, 마지막 4장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에는 22대 정조(이산)에서 27대 순종(이척)까지, 왕의 정비와 계비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를 살펴보면, 숙부의 왕위 찬탈로 쫓겨난 단종(이홍위)의 정비 정순왕후 송씨, 왕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고 쫓겨난 성종(이혈)의 계비 제헌왕후 윤씨, 패륜으로 지목된 남편과 함께 폐위된 연산군(이융)의 정비 거창군부인 신씨, 반정공신들에게 7일 만에 쫓겨난 중종(이역)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 남편과 함께 폐위된 광해군의 정비 문성군부인 류씨 그리고 후궁에서 왕비로 올랐으나 끝내 사약을 받아 죽은 희빈 장씨 등 6명이다. 이 가운데 정순왕후 송씨는 200여 년 만에, 단경왕후 신씨는 233년 만에 복위되었다.
세자빈에 올랐으나 요절하여 이후 왕비에 추존된 인물로는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 경종(이윤)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 조선의 마지막 세자빈이자 최초의 황태자비 순종의 정비 순명효황후 등 3명이다. 이와 약간 상황이 다른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가 있다. 요절한 세자와 함께 추존되어 왕비에 오른 인물로는 세조(이유)의 맏아들 의경세자(이장, 덕종)의 비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 순조(이공)의 맏아들 효명세자(이영, 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조대비) 등 2명이다.
이렇게 12명을 제외한 32명의 왕비 가운데 세자빈 재위를 포함하여 가장 재위기간이 긴 왕비는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로 10세에 왕세손비로 간택되어 38년 동안 왕비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로, 13세에 연잉군과 혼인하여 뒤늦은 30세에 왕세제비로 책봉되어 36년 동안 왕실을 지켰지만 실제로 영조와는 53년이란 세월을 함께 해로했다. 그 뒤를 이어 순조의 비 순원왕후는 32년으로, 영조와 정조·순조 3대에 걸쳐 정비들이 30년을 넘게 왕비 자리를 지켰다.
세자빈이나 왕비에 올랐지만 10대에 요절한 왕후가 있다.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는 세자빈 시절인 17세, 그리고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 한씨는 왕비에 오른 지 5년 만인 1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두 왕비는 자매 사이로 한명회의 딸들이기도 했다. 또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헌종의 비로, 헌종보다 한 살 어린 10세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4년 뒤에 비로소 가례를 올린 효현왕후는 왕비에 오른 지 6년 만인 1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왕비는 7일 만에 궁궐에서 쫓겨난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이다. 폐위된 연산군의 정비는 친정으로 따지면 단경왕후의 고모였고,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실 족보로는 손위 동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왕실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왕비들이었다. 단경왕후는 이후로 71세까지, 거창군부인은 62세까지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행장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조선 왕비의 평균 수명은 51세로, 왕의 평균 수명인 45세보다 6년을 더 살았다. 그렇다면 왕비들 가운데 천수를 누린 왕비는 누구일까?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의 비 신정왕후가 83세, 숙부에게 왕위와 목숨을 빼앗긴 남편(단종)과 사별한 정순왕후가 82세, 이 책에서는 정식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이선)의 비인 혜경궁 홍씨가 81세로,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들이었다.
특별하고도 색다른 만남,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
조선 초기에는 왕권 강화와 왕실 보전이라는 미명하에 왕비의 친정이 희생양이 되는가 하면, 외척의 세력 분산을 위해 후궁들을 들이기도 했다.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태종(이방원)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로 친정 4형제를 모두 잃었다. 또한 세종(이도)이 즉위하자마자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아버지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고변으로 자결을 명받아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 모두 태종의 왕권 확립을 위한 조치였다.
존재감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 왕비들이 있는가 하면, 왕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면서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던 왕비도 있다. 조선에서는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대비 자리에 올라 수렴청정을 처음 시행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전前 왕은 과거가 되고, 새로 즉위한 왕이 현재이자 미래가 되어 단절된 느낌이 들지만, 이처럼 왕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좀 더 연속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왕비는 왕실의 웃어른으로 군림하면서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 27명 가운데 적장자가 왕위를 이은 경우는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 등 7명에 지나지 않지만, 명종 대까지는 모두 정비에게서 태어나 왕실의 적통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명종(이환)의 비 인순왕후가 낳은 순회세자는 13세에 요절했고, 이후 후사를 잇지 못해 적장자 우선의 원칙이 깨지면서 왕위가 방계로 이어지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또한 현대 사극의 단골로 등장하는 숙종(이순)의 계비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를 둘러싼 네 차례의 환국으로 숙종은, 후궁은 절대 정비가 될 수 없게 명문화했다.
44명의 왕비들을 살펴보면 왕의 존재감이 높을수록 왕비의 존재감도 높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사후의 왕릉 조성에서도 나타난다. 이 책에는 세상을 떠난 왕비의 능 조성 과정과 능의 위치를 알 수 있게 그림으로 능을 표현해 놓았고, 능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였다.
능에 얽힌 이야기에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는 태종의 앙갚음으로 능이 사대문 밖으로 천장되고, 종묘에 신주도 없이 260여 년을 떠돌기도 했다. 또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 안산에 묻힌 문종의 비 현덕왕후는 친정이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자 사후에 폐출되어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능이 파헤쳐져 허름한 바닷가로 이장된다. 이후 55년 만에 복위되어 남편 문종 맞은편에 안장되고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 왕비 이야기는 읽는 재미와 함께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이끌어준다. 왕비 단락 말미에 능을 안내하는 그림을 보면, 한 번쯤 그곳에 들러 고인과 대화를 나누고픈 충동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첫 장을 펼치면 17세기의 「한양도」와 함께, 각 표제지 뒷장에 왕과 왕비의 관계도를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책의 말미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역대 왕비들의 간략한 정보를 표로 정리했다. 이 책, 역사의 한 축을 이룬 주체로서 구중궁궐 담장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온 44명 왕비들과의 만남은 특별하고도 색다른 기회이자,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44명의 조선 왕비를 만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조선 왕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할까? 사실 조선의 역대 왕비에 관한 기록 자체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왕비의 이름도 알 수 없다.『조선왕조실록』이나 왕비의 부모와 시조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에는 왕비의 이름조차 싣지 않았다. 그저 어느 성씨의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렇듯 정사正史에까지 왕비에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 사회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에는 순탄하게 왕비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은 물론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들, 그리고 세자빈의 자리에 올랐지만 본인이 요절했거나 배우자인 세자가 요절하여 끝내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후에 왕비에 추존된 소혜왕후와 신정왕후 등 모두 44명의 왕비들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 27대 왕을 기준으로 하여, 1장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가 되다’에는 1대 태조(이성계)에서 7대 세조(이유)까지, 2장 ‘행복과 불행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에는 8대 예종(이황)에서 14대 선조(이연)까지, 3장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에는 15대 광해군(이혼)에서 21대 영조(이금)까지, 마지막 4장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에는 22대 정조(이산)에서 27대 순종(이척)까지, 왕의 정비와 계비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를 살펴보면, 숙부의 왕위 찬탈로 쫓겨난 단종(이홍위)의 정비 정순왕후 송씨, 왕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고 쫓겨난 성종(이혈)의 계비 제헌왕후 윤씨, 패륜으로 지목된 남편과 함께 폐위된 연산군(이융)의 정비 거창군부인 신씨, 반정공신들에게 7일 만에 쫓겨난 중종(이역)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 남편과 함께 폐위된 광해군의 정비 문성군부인 류씨 그리고 후궁에서 왕비로 올랐으나 끝내 사약을 받아 죽은 희빈 장씨 등 6명이다. 이 가운데 정순왕후 송씨는 200여 년 만에, 단경왕후 신씨는 233년 만에 복위되었다.
세자빈에 올랐으나 요절하여 이후 왕비에 추존된 인물로는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 경종(이윤)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 조선의 마지막 세자빈이자 최초의 황태자비 순종의 정비 순명효황후 등 3명이다. 이와 약간 상황이 다른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가 있다. 요절한 세자와 함께 추존되어 왕비에 오른 인물로는 세조(이유)의 맏아들 의경세자(이장, 덕종)의 비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 순조(이공)의 맏아들 효명세자(이영, 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조대비) 등 2명이다.
이렇게 12명을 제외한 32명의 왕비 가운데 세자빈 재위를 포함하여 가장 재위기간이 긴 왕비는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로 10세에 왕세손비로 간택되어 38년 동안 왕비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로, 13세에 연잉군과 혼인하여 뒤늦은 30세에 왕세제비로 책봉되어 36년 동안 왕실을 지켰지만 실제로 영조와는 53년이란 세월을 함께 해로했다. 그 뒤를 이어 순조의 비 순원왕후는 32년으로, 영조와 정조·순조 3대에 걸쳐 정비들이 30년을 넘게 왕비 자리를 지켰다.
세자빈이나 왕비에 올랐지만 10대에 요절한 왕후가 있다.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는 세자빈 시절인 17세, 그리고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 한씨는 왕비에 오른 지 5년 만인 1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두 왕비는 자매 사이로 한명회의 딸들이기도 했다. 또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헌종의 비로, 헌종보다 한 살 어린 10세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4년 뒤에 비로소 가례를 올린 효현왕후는 왕비에 오른 지 6년 만인 1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왕비는 7일 만에 궁궐에서 쫓겨난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이다. 폐위된 연산군의 정비는 친정으로 따지면 단경왕후의 고모였고,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실 족보로는 손위 동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왕실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왕비들이었다. 단경왕후는 이후로 71세까지, 거창군부인은 62세까지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행장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조선 왕비의 평균 수명은 51세로, 왕의 평균 수명인 45세보다 6년을 더 살았다. 그렇다면 왕비들 가운데 천수를 누린 왕비는 누구일까?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의 비 신정왕후가 83세, 숙부에게 왕위와 목숨을 빼앗긴 남편(단종)과 사별한 정순왕후가 82세, 이 책에서는 정식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이선)의 비인 혜경궁 홍씨가 81세로,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들이었다.
특별하고도 색다른 만남,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
조선 초기에는 왕권 강화와 왕실 보전이라는 미명하에 왕비의 친정이 희생양이 되는가 하면, 외척의 세력 분산을 위해 후궁들을 들이기도 했다.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태종(이방원)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로 친정 4형제를 모두 잃었다. 또한 세종(이도)이 즉위하자마자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아버지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고변으로 자결을 명받아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 모두 태종의 왕권 확립을 위한 조치였다.
존재감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 왕비들이 있는가 하면, 왕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면서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던 왕비도 있다. 조선에서는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대비 자리에 올라 수렴청정을 처음 시행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전前 왕은 과거가 되고, 새로 즉위한 왕이 현재이자 미래가 되어 단절된 느낌이 들지만, 이처럼 왕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좀 더 연속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왕비는 왕실의 웃어른으로 군림하면서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 27명 가운데 적장자가 왕위를 이은 경우는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 등 7명에 지나지 않지만, 명종 대까지는 모두 정비에게서 태어나 왕실의 적통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명종(이환)의 비 인순왕후가 낳은 순회세자는 13세에 요절했고, 이후 후사를 잇지 못해 적장자 우선의 원칙이 깨지면서 왕위가 방계로 이어지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또한 현대 사극의 단골로 등장하는 숙종(이순)의 계비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를 둘러싼 네 차례의 환국으로 숙종은, 후궁은 절대 정비가 될 수 없게 명문화했다.
44명의 왕비들을 살펴보면 왕의 존재감이 높을수록 왕비의 존재감도 높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사후의 왕릉 조성에서도 나타난다. 이 책에는 세상을 떠난 왕비의 능 조성 과정과 능의 위치를 알 수 있게 그림으로 능을 표현해 놓았고, 능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였다.
능에 얽힌 이야기에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는 태종의 앙갚음으로 능이 사대문 밖으로 천장되고, 종묘에 신주도 없이 260여 년을 떠돌기도 했다. 또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 안산에 묻힌 문종의 비 현덕왕후는 친정이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자 사후에 폐출되어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능이 파헤쳐져 허름한 바닷가로 이장된다. 이후 55년 만에 복위되어 남편 문종 맞은편에 안장되고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 왕비 이야기는 읽는 재미와 함께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이끌어준다. 왕비 단락 말미에 능을 안내하는 그림을 보면, 한 번쯤 그곳에 들러 고인과 대화를 나누고픈 충동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첫 장을 펼치면 17세기의 「한양도」와 함께, 각 표제지 뒷장에 왕과 왕비의 관계도를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책의 말미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역대 왕비들의 간략한 정보를 표로 정리했다. 이 책, 역사의 한 축을 이룬 주체로서 구중궁궐 담장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온 44명 왕비들과의 만남은 특별하고도 색다른 기회이자,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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