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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

동방박사님 2022. 2. 1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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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과거와 비교해 창조과학이 위력이 현저하게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지역교회 현장에서 세계 신학계의 동향이나 과학계의 성취에 대해 눈과 귀를 꽉 막은 채 편협한 근본주의적 방식으로 ‘노아 홍수’ 사건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설득해 더 나은 창세기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픈 사람들에게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는 분명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목차

서론
약어

1부 방법: 해석에 관한 관점
명제 1 창세기는 고대 문헌이다
명제 2 창세기 1-11장은 과거에 있었던 실제 사건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다
명제 3 창세기 1-11장은 수사적 장치를 사용한다
명제 4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한다
명제 5 창세기는 과장된 홍수 이야기를 적절히 제시한다
명제 6 창세기는 홍수를 전 세계적인 사건으로 묘사한다

2부 배경: 고대 근동 문헌
명제 7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전 세계적인 홍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명제 8 성경의 홍수 기사는 고대 근동의 홍수 이야기들과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3부 본문: 성경 본문에 대한 문학적·신학적 이해
명제 9 한 번의 국지적인 엄청난 대홍수가 수사적인 목적과 신학적인 이유로 의도적으로 전 지구적 홍수로 묘사되었다
명제 10 홍수 기사는 언약의 배경 역할을 하는 연속적인 죄와 심판 이야기의 일부다
명제 11 신학적 역사는 신적인 임재, 질서의 확립, 질서가 약화하는 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명제 12 ‘하나님의 아들들’ 에피소드는 홍수의 서곡일 뿐만 아니라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후속편이다
명제 13 바벨탑(창 11:1-9)은 태고 시대 이야기에 대한 적절한 결론이다

4부 세상: 홍수의 증거에 대해 생각해보기
명제 14 홍수 이야기의 배후에는 실제 사건이 있다
명제 15 지질학은 전 세계적인 홍수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명제 16 세계 곳곳의 홍수 이야기들은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를 입증하지 않는다
명제 17 과학은 종교를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잘못된 절대적 원리로부터 정화할 수 있다

결론
 

저자 소개 

저 : 트렘퍼 롱맨 3세 (Tremper Longman III)
 
Ohio Weslyan University(B.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A.), Yale University(Ph.D.)를 졸업하고 Westmont College에서 성경학 교수로 섬기고 있으며 여러 저서가 있다. 『잠언 주석』(CLC, 2019), 『욥기 주석』(CLC, 2017), 『구약성경의 정수』(Old Testament Essentials, CLC, 2016...

저 : 존 H. 월튼 (John H. Walton)

 
미국 Muhlenberg College (A.B.), 미국 Wheaton Graduate School (M.A.), 이스라엘 Hebrew Union College-Jewish Institute of Religion (Ph.D.)를 거쳐 미국 Moody Bible Institute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히브루유니언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무디 성경대학에서 20여 년간 가르쳤으며, 현재는 휘튼 칼리지에...

역 : 이용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KBS 취재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이후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기독교 서적 전문 번역가이자 개혁파 목사로 일하고 있다. 모순된 현실을 복음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인 신학에 관심이 많다. 『새 하늘과 새 땅』, 『인간의 타락과 진화』, 『초기 기독교와 축귀 사역』, 『왕이신 예수 따르기 프로젝트』(이상 새물결플러스), 『E...
책 속으로
과거에 대해 쓴 성경 저자들을 포함하여 역사가들은 단순히 사건(단지 사실들)을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 게다가 성경 저자들은 사건을 순수하게 사실대로 재구성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이용하여 그들의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관심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권위를 지닌 것은 바로 그들의 신학적 메시지다. 사건은 영감받은 것이 아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영감받은 것이다.
--- 「명제 3 - 창세기 1-11장은 수사적 장치를 사용한다」 중에서

물이 땅속 깊은 곳과 하늘에서 흘러나왔을 때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다(창 7:11). 심지어 “높은 산”도 잠겼고(창 7:19) 단지 잠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이 산 위로 15규빗(7m) 이상 솟아올랐다. 이런 묘사는 정말로 국지적인 홍수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홍수에 대한 묘사다. 현대의 일부 독자들은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최초의 청중은 이와 같은 묘사가 과장법이라는 점을 이해했을 것이다.
--- 「명제 5 - 창세기는 과장된 홍수 이야기를 적절히 제시한다」 중에서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를 비교해보면 각각의 이야기는 의도한 수사적 효과를 반영하기 위해 전통적인 묘사를 차용했기 때문에 (홍수의 길이, 방주의 크기와 같은) 묘사 수준에서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들은 부수적이며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고대 근동의 이야기들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으며 성경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과 상당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 「명제 8 - 성경의 홍수 기사는 고대 근동의 홍수 이야기들과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중에서

노아 홍수의 지질학과 수문학적 규모에 대한 일체의 주장은 자연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홍수 하면 강둑 위로 범람했다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주 뒤에 원위치로 되돌아가는, 빠르게 움직이는 거친 물살을 연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홍수는 흙과 무른 퇴적물인 지표면의 물질을 침식시켜 다른 곳에 퇴적시키기도 한다. 만일 창세기의 홍수가 온 땅을 덮어서 모든 지형이 물에 잠겼다면 침식과 퇴적의 중요한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홍수 지질학을 옹호하는 이들은 복음주의 기독교인 대중을 겨냥한 여러 출판물, 비디오, 웹사이트, 관광지에서 홍보하듯이 그와 같은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 세계 과학계는 홍수 지질학자들의 지질학적 해석을 압도적으로 거부한다.
--- 「명제 15 - 지질학은 전 세계적인 홍수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중에서

과학에 영향을 끼치는 종교는 과학의 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고 싶다. 과학은 우주에 일관성이 있다고 이해하는 성경적 토대를 바탕으로 작동된다. 하나님은 관찰을 통해 연구할 수 있는 질서 잡힌 우주를 창조하셨고 인간 피조물에게 그들의 관찰을 바탕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능을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사가 테드 데이비스(Ted Davis)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혁명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 현상이 아니었지만 거의 전적으로 기독교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말할 때 놀라지 않아도 된다.
--- 「명제 17 - 과학은 종교를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잘못된 절대적 원리로부터 정화할 수 있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20세기 들어 세계 지성계를 주도한 대표적 원리 하나는 ‘진화론’이었다. 비단 자연 과학계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사회학 분야도 진화론이란 원리에 빗대어 각종 현상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방식에 깊이 침잠하였다.

이런 현실에 큰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의 보수 기독교계는 진화론에 맞서 자신들의 ‘성경적’ 신앙을 파수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소위 ‘젊은지구창조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진화론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우주와 생명체가 형성되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젊은지구창조론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대로 단시간에 걸쳐 하나님이 직접 모든 사물과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신앙을 기반으로 한다. 본래 우주의 역사가 6천-1만 년 내외라는 젊은지구창조론은 미국에서 안식교도들에 의해 처음 이론화되었으며 그 후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같은 교파에서 신봉되었으나 점차 정통 교단 안에서도 그 추종자들을 다수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미국 보수 개신교인 상당수가 ‘창조과학’이란 미명하에 젊은지구창조론에 경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젊은지구창조론자들은 우주와 지구의 역사가 매우 짧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창세기 6-9장에 나오는 ‘노아 홍수’가 실제로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며, 이를 증명하기 위한 대표적 사례로 ‘그랜드캐니언’을 들면서, 이곳의 지질학적 구조야말로 노아 홍수의 역사성을 잘 증명한다고 강변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노아 홍수야말로 젊은지구창조론을 가장 잘 실증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노아 홍수의 잔해를 찾아냈다고 주장하거나, 노아의 방주와 똑같은 구조의 배를 제작하여 바다를 항해하겠다는 결기를 표명하는 식으로 이런 일련의 흐름에 가세하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구약성경 창세기가 창조과학 측의 주장대로 독해되는 것이 맞는가? 또한 현대 과학이 무수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확증한 증거들은 젊은지구창조론의 주장을 긍정하는가? 저명한 복음주의 구약학자인 트렘퍼 롱맨과 존 월튼이 의기투합하여 쓴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는 이 점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해명하기 위한 책이다.

먼저, 저자들은 현대의 그리스도인 독자들이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손쉽게 범하는 오류, 즉 21세기의 눈으로 고대 문서인 성경을 해석하려는 나이브한 관성에 제동을 건다. 바꿔 말하면, 고대 근동 지역의 특수한 세계관이 짙게 배어 있는 구약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문화적 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결될 때 비로소 구약성경의 세계에 안전하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사건들의 경우 고대 근동의 유사 병행 문서인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시 서사시 등을 적절히 참조할 때 오늘날의 문화적 강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창세기를 기록한 성경 저자의 본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른바 ‘원역사’라 불리는 창세기 초반의 사건들을 올바로 해독하려면 창세기가 쓰인 문학 양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특별히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과장법’을 즐겨 사용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점에서 ‘노아 홍수’ 이야기는 비유적 언어를 사용하여 실제 사건을 신학적으로 진술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노아 홍수 이야기는 인류의 타락 이후에 창조 세계를 새롭게 갱신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도하신, 신학적으로는 전 지구적이나 역사적으로는 국지적인 ‘어느’ 홍수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물론 노아 홍수가 어떤 홍수인지를 구체적으로 한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은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아 홍수를 구체적인 홍수와 결부시켜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전으로 창조한 세계를 새롭게 갱신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와 그 안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책임과 같은 신학적 메시지다.

끝으로, 본서에는 저명한 미국 복음주의 지질학자 스티븐 모쉬어가 특별 기고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과 현대 과학이 조화 내지 양립할 수 있는지를 정밀하게 따져 묻는다. 과학자로서 스티븐 모쉬어는 현대 과학의 모든 성과들이 우주와 지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지시하며, 지구의 기록을 살펴볼 때 전 지구적 홍수는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밝힘으로써 창조과학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노아 홍수 사건이 전 지구적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노아 홍수가 과거 어느 때에 발생한 국지적 홍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이를 전 지구적 홍수 사건으로 발전시켜 창조세계 전체를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신학적으로 해명한 사건이라는 두 구약 신학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자들은 건전한 신학이 과학을 ‘구속’할 수 있는 것처럼 건전한 과학이 기독교 신앙을 ‘정화’해줄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결국 과학과 신앙이 적이 아니라 동반자적 관계임을 분명히 한다.

과거와 비교해 창조과학이 위력이 현저하게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지역교회 현장에서 세계 신학계의 동향이나 과학계의 성취에 대해 눈과 귀를 꽉 막은 채 편협한 근본주의적 방식으로 ‘노아 홍수’ 사건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설득해 더 나은 창세기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픈 사람들에게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는 분명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추천평

이 책의 저자들은 홍수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성경 ‘기록’이 영감된 것임을 주장하고, 그 영감된 기록이 입은 문학적 옷이 어떤 모양과 색깔인지 설명하고, 영감된 말씀을 통해 전달되는 신학적 메시지를 탐구한다. 홍수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에 제시된 접근과 통찰들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김구원 (서양고대문화사학회 연구 이사)

이 책은 창세기 6-9장을 고대 근동의 유사, 병행문서들이 그려내는 고대 근동인들의 세계 이해라는 큰 맥락에서 읽고 해석하려는 시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창세기 노아 홍수 이야기가 얼마나 잘 교직된, 현대 독자들에게 여전히 적실성 있는 교훈을 제시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구약학 교수)

이 책은 숨겨진 고대 왕국을 찾아 나선 노련한 탐험가의 보고서다. 신뢰할 만한 전문 학자의 주장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전통적 사고를 뒤흔든다. 성경 해석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이비 과학에 찌든 영혼에 충격파가 클 것이다. 목회자와 신학도에게 정독해 볼 것을 권한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이 책은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에 속한, 또 하나의 걸작이다. 특히 근본주의적이고 문자적인 성서 읽기에 의해서 왜곡되고 상실되어버린 노아 홍수의 참된 모습과 의도에 근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차준희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이 책은 진지한 성경 독자들 앞에 본문 자체에 대한 일관된 고찰, 홍수 내러티브에 담긴 과장법에 대한 솔직한 태도, 홍수 이야기를 고대 근동의 배경 속에 멋지게 배치시켜 설명하는 모습, 본문의 신학적 가치에 대한 심오한 이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방법의 귀한 본보기를 제시한다. 멋지고 견실한 성과다.
- 스캇 맥나이트 (노던 신학교)

이 책에서 롱맨과 월튼은 빈약한 성경 해석과 그에 못지않게 빈약한 과학에 바탕을 둔 창세기 6-9장의 해석으로부터 성경의 권위를 되찾아오는 데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저자들은 확고하지만 부드러운 손길로 독자들을 고대 이스라엘의 세계로 인도하며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 지질학적인 문제에 대한 과학의 일치된 견해를 존중하는 성경의 홍수 이야기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다.
- 카일 그린우드 (콜로라도 기독교 대학)

월튼과 롱맨은 노아 내러티브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접근과 유익한 논의로 인해 많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 랠프 스털리 (칼빈 대학)

이 책은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모든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빌 T. 아놀드 (애즈베리 신학교)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는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모든 팬, 특히 창세기 1-11장을 현대 과학의 배경에서 이해하려 하는 모든 이에게 필독서다. 이 책은 창의적이고 생각을 자극하는 제안과 통찰의 보고이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데이비스 A. 영 (칼빈 대학)

롱맨과 월튼은 과학과 역사에 관한 현대적인 질문에 주목하면서 홍수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문학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이 이야기의 신학적 주장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 J. 리처드 미들턴 (로버츠 웨슬리안 대학 노스이스턴 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