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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과 초월 (2020)

동방박사님 2024. 5. 1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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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1967년부터 1989년까지 여러 곳에서 발표한 9편의 논문과 3차례의 대담을 엮은 모음집 『타자성과 초월』이 레비나스 선집 4권으로 출간되었다. 일관되게 견지해 왔던 타자와 윤리에 대한 강조에 덧붙여, 평화와 권리에 이르는 사유의 전개 과정은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이란 명제가 갖는 본래적 의미를 정치의 문제와 더불어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초월, 전체성, 무한 등을 철학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그것들이 어떻게 이해되었고 또 어떻게 다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목차

서문_전체성과 초월 사이의 철학 - 피에르 아야 5

다른 초월 25

철학과 초월 26
I. 무한의 관념 26
II. 일자의 초월 29
III. 앎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철학 33
IV. 다른 인간과의 관계 39
V. 윤리적 초월과 철학 50
VI. 초월의 시간 53

전체성과 전체화 62
I. 직관에서의 전체 66
II. 실재(realite) 없는 전체성 68
III. 진리는 전체성이다 70
IV. 해석학적 전체성 72
V. 전체성 너머 73

무한 75
I. 무한의 문제들 79
II. 역사적인 주어진 것들 81
III. 무한과 윤리 97

대화의 철학과 제일 철학 99

대화 저편 100
나라는 말, 너라는 말, 신이라는 말 112
타자의 근접성 118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133

평화와 권리 141
재현 금지와 ‘인권’ 142
평화와 근접성 153
다른 인간의 권리 168

대담 173
철학자와 죽음 174
얼굴의 폭력 192

옮긴이 후기 209 | 원문의 출전 213 | 지은이·옮긴이 소개 215

저자 소개

저 :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리투아니아에서 유태인 부모 아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3년 프랑스로 유학해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수학했고, 1928~192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현상학을 배운 뒤, 193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9년 프랑스 군인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종전과 함께 풀려났다. 1945년부터 파리의 유대인 학교...

역 : 김도형

부산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대, 부경대, 인제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레비나스의 정의론 연구: 정의의 아포리, 코나투스를 넘어 타인의 선으로」, 「레비나스의 인권론 연구: 타인의 권리 그리고 타인의 인간주의에 관하여」, 「레비나스와 페미니즘 간의 대화(1): 레비나스에서 여성의 문제」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타자 윤리의 정...

역 : 문성원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산업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000년부터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추: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철학』(1999), 『배제의 배제와 환대: 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철학』(2000), 『해체와 윤리: 변화와 책임의 사회철학』(2012),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2013)...

책 속으로

어떤 익명적인 법, 어떤 법률적 실체의 추상에 따라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존재 권리를 책임져야 함. 나의 세계-내-존재 또는 나의 ‘태양 아래의 자리’, 나의 집chez-moi, 이런 것들은 타자들에게 속하는 자리를, 즉 이미 나로 인해 제3세계에서 억압받거나 굶주리고 추방당한 이들에게 속하는 자리에 대한 찬탈이 아니었을까. 즉 그것은 배척이고 배제이고 추방이며 약탈이고 살해가 아니었을까.
--- p.46

우리는 역사를, 모든 문제들이 해소되고 모든 갈등이 완화되며 보편적인 면에서 모든 모순이 화해되는 조화로운 과정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이미 이뤄진 역사에 접근한다. 내 학생 중 하나가 이 문맥에서 환기해 주었던 것처럼, 생텍쥐페리의 보아 뱀은 이미 코끼리를 씹지 않고 삼켰다. 그리고 보아 뱀은 코끼리를 이미 소화하고 있다.
--- p.107

타인의 임종 시에 그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말라는 명령에 응답하는 무상의 책임. 이것은 마치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 이전에 나를 응시하는 것과 같다. 마치 이 죽음―거기에 노출되어 있는 타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 노출의 얼굴을 통해 내게 드러나는―에 관해,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내가 공모자가 되어 버린 것과 같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평온함은, 또 존재에 집착하는 선한 의식은 여기선 다른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과 같지 않을까?
--- p.148

나는 사람들이 자비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의와 다시 만나려고 시도했지요. 그것은 내게는 타인에 대한 무제한적 의무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인격으로서의 타인의 유일성으로의 접근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에요. 탈이해관심의, 육욕 없는 사랑이지요. 나는 이 최초의 의무가 인간의 다수성 앞에서 정의가 되는 방식에 대해 이미 당신에게 얘기했어요. 그러나 정의가 타인의 우위에서 유래하고 또 기인한다는 점이 내가 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정의가 요구하는 제도들이 정의가 기인하는 자비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필요하죠. 제도들과 분리될 수 없는, 그래서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정의는 다른 인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어요.
--- p.199~200

출판사 리뷰

타자의 철학자 레비나스,
인격으로서 ‘타인’과의 평화와 권리를 부르짖다!


『타자성과 초월』은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1967년부터 1989년까지 여러 곳에서 발표한 9편의 논문과 3차례의 대담을 엮은 모음집이다. 이 책이 가진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레비나스 철학의, 철학자 레비나스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간 일관되게 견지해 왔던 타자와 윤리에 대한 강조에 덧붙여, 평화와 권리에 이르는 사유의 전개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이란 명제가 갖는 본래적 의미를 정치의 문제와 더불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레비나스가 제시하는 ‘새로운 초월’

레비나스는 ‘초월’, ‘전체성’, ‘무한’ 등을 철학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그것들이 어떻게 이해되었고 또 어떻게 다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하나의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철학자들의 사유와 그 차이를 접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연스레 철학자들의 사상과 철학사에 대한 그의 이해와 나름의 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초반부에는 「다른 초월」이라는 부제하에 「철학과 초월」, 「전체성과 전체화」, 「무한」이란 이름의 논문 3편이 실려 있는데, 이 논문들에는 레비나스가 즐겨 사용하는 주요 개념의 내용과 그 역사가 비교적 분명히 기술되어 있다.

「대화의 철학과 제일 철학」이라는 부제하엔, 「대화 저편」, 「나라는 말, 너라는 말, 신이라는 말」, 「타자의 근접성」,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이렇게 4편의 글이 묶여 있다. 먼저 「대화 저편」은 프랑스 유대-기독교 협회(AJCF) 창립 2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글로서, 레비나스는 여기서 반유대주의에 맞선, 유대애호주의(judeophilie)가 아닌 유대-기독교의 우정에 대해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나라는 말, 너라는 말, 신이라는 말」에선 과학이 내세우는 확실성과 명료함에 위축된 철학과 철학적 사유가 왜 우리 삶에 여전히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타자의 근접성」은 여행가이자 작가인 안 카트린 벤셸라(Anne-Catherine Benchelah)와 나눈 대담으로,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이 갖는 의미, 상호성 너머의 인간 관계, 얼굴, 타인을 위한 존재 등에 대해 묻고 답한다. 끝으로 「유토피아와 사회주의」는 마르틴 부버의 책 『유토피아와 사회주의』의 서문으로 쓴 글로, 부버가 내세우는 “유토피아주의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세기 이래 종말론의 의미가 소멸된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사회적인 것을 희망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면서 그가 분석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가 권력 없는 공동체를 상상하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한다.

진정 타자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레비나스는 종래의 인권 담론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그 인권 담론이 주요한 토대로 삼고 있는 근대적 인간관이 인간의 인간성을 구현하는 데, 또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에 대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정당화 방식이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관점을 그 출발점으로 채택한 반면, 레비나스는 종래의 인권 담론을 그 개인주의적 토대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구해 내고자 하는 건 바로 ‘타자의 권리’다. 형식상의 평등주의에 매몰된 근대 인권 담론에서 나와 나의 권리의 대칭물로 환원되곤 했던 타자 그리고 타자의 권리를, 독특성과 유일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평화와 권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3편의 논문, 「재현 금지와 ‘인권’」, 「평화와 근접성」, 「다른 인간의 권리」는 정치(정치적인 것)에 대한 레비나스의 사유가 무엇인지를, 그의 사유가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 할 법하다. 예를 들어, 인권에 대한 레비나스의 관심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레비나스가 1934년의 「히틀러주의 철학에 대한 몇 가지 반성」에서 프랑스 인권 선언이 전제하는 인간의 자유나 이성의 허약성을 비판하는 대목이나, 1961년의 『전체성과 무한』에서 “타인의 비참함을, 그의 고향상실을, 낯선 이로서의 그의 권리”를 강조하는 대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사유가 적극적으로 표명된 것은 이 책에 실린 논문을 통해서다.

마지막으로, 「대담」이라는 이름으론 「철학자와 죽음」, 「얼굴의 폭력」 2편의 대담이 묶여 있다. 「철학자와 죽음」은 소설가이자 연구자인 크리스티앙 카바니스(Christian Chabanis)와 나눈 대담으로, 가브리엘 마르셀, 플라톤, 모리스 블랑쇼, 알레상드로 코제브, 마르틴 하이데거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경유하는 와중에, 죽음이 철학에, 철학자에, 종국적으로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와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얼굴의 폭력」은 1985년 파리에서 안젤로 비앙키(Angelo Bianchi)와 나눈 대담으로,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인 얼굴을 사유함에 있어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왜 신이 종교가 아닌 철학적 담론에 속해야 하는지를, 존재할 권리와 관련된 유죄성의 의미가 어떻게 사유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답한다.

‘타자의 사유’로 타자를 사유하다

이렇듯 『타자성과 초월』은 우리로 하여금 레비나스 사유에 한 걸음 더, 그리고 더 깊숙이 다가서 그와 마주하게 한다. 시대와 주제의 상이함이, 그 사유의 예민함과 변화무쌍함이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각자가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볼 수 있다는 점, 또 기존의 레비나스 저서가 담아내지 못했던 그 사유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독자에게 적잖은 즐거움과 모험이 될 것이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레비나스 선집과 비교해가며 그의 사상을 따라간다면, 그 길은 한결 수월하고 풍부해질 것이다. 그러한 대화를 통해 윤리학자 레비나스 이외에도 철학사가(哲學史家) 레비나스를 발견하는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타자’ 레비나스와 대화(discours)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