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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동방박사님 2022. 10. 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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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는 국내 가톨릭 출판계에서는 처음 펴내는 민중신학 책이다. 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부는 ‘민중을 말하다’라는 주제 아래 오늘날 특별하게 부각되는 민중 현상에 대해 다루었고, ‘시대를 말하다’라는 제목을 단 2부는 오늘의 사회적 쟁점에 대한 민중신학적 문화비평이다. 3부에서는 민중신학의 중요 개념들을 현대적으로 풀이했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한恨과 고통을 발견하면서 탄생한 한국의 신학이다. 그래서 이 신학은 언제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과 탄식의 증언자로, 감시자로, 그리고 고발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으며 바로 거기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목차

프롤로그 21세기 민중신학의 동시대성을 향한 말걸기

1부 민중을 말하다
1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얼굴들: 민중신학과 여성의 타자화
2 경계 밖에 선 그이들: 민중신학과 성소수자
3 늦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청년, 민중신학과 만나다
4 타자로서의 난민과 환대의 선교

2부 시대를 말하다
1 유혹하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영성
2 쫓겨나는 민중: 젠트리피케이션과 오늘의 민중신학
3 방법으로서의 통일: 탈분단 상황에 대한 민중신학적 성찰
4 잔여?주체, 포스트휴먼과 마주하다

아포리즘 민중신학, ‘어디로?’: 그 원천을 질문하면서

3부 개념을 말하다
1 왜 고통이 중요하며, 왜 고통이 문제인가?
2 공公과 인권, 촛불의 열망과 더불어 생각하는 ‘공’公의 의미
3 논란의 중심, 민중 메시아
4 민중신학의 성서텍스트론
5 민중신학의 교회론

에필로그 ‘운동의 신학’에서 ‘고통의 신학’으로: 포스트-‘1987년 체제’의 민중신학

편집 후기
필자 약력
 
 
책 속으로
마치 안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하느님의 얼굴처럼 우리의 언어와 생각의 한계로 인해 볼 수 없는 얼굴들이 존재한다. ··· 우리의 언어와 생각이 가리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찾고 질문해야 하며 그것이 언어와 담론을 형성하는 지식인의 책무와도 같은 것이다. (15쪽)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고, 보려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아픔과 고난의 이야기가 있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던 예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교회에서도 소외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44쪽)

인간은 비록 비루한 오늘을 겪을지라도 내일 달라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면 삶의 발걸음을 이어 가는 존재다. 이렇게 미래를 통해, 미래를 경유함으로만 존재하는 인간 종임에도 유독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미래가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70쪽)

평화 세계를 향한 종교의 꿈은 자기 본위적 세계의 충실한 보조자가 되는 데 있지 않다. ··· 참을 향해 실패를 반복하다 마침내 실패하는 종교만이 참되다.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만이 마침내 실패하는 종교의 평화를 향한 길이다. (100-101쪽)

사회적 영성의 수행에서 사회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둘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악령에 맞서는 저항은 사회적 실천이면서 영적 수행이다. 신자유주의의 유혹을 깨어 알아차리고, 고통받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자기를 비우는 사회적 영성은 영적 저항이 아니라 저항적 영성인 것이다. (126쪽)

쫓겨남은 단순히 내몰리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도시를 포함한 우리의 삶의 공간 가운데 균열을 일으키고 그 균열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공간을 만들도록 이끌고 있다. ··· 예수의 제자들이 ‘성문 밖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났듯이, 우리는 쫓겨남의 사건 가운데서 민중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146쪽)

예수가 메시아라는 말은 인간인 예수가 메시아 사건에 놓이는 순간 단지 인간이기만 한 것이 아닌 어떤 것과의 긴장 상태 속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신적인 것이 인간 예수 내부로부터 부상해서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초월하는 힘을 충동하는 것이다. (186쪽)

민중과 예수가 줄탁동시?啄同時로 창출되면서, 이제 서로서로의 무늬로 각기 상감되어 새로운 존재로 변신하기. 민중은 예수의 무늬로 상감되며, 예수는 민중의 무늬를 상감한다. (212쪽)

민중은 사회적 고통에 특히 취약한 삶, 또는 그런 삶을 사는 존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사회의 구조와 제도와 관행들 내부의 균열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민중은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가 사회 자체에 대해 갖는 내적인 차이, 사회가 사회 자체의 규범이나 규칙, 이데올로기, 정당성과 갖는 자기모순을 지시하는 기표이다. (238쪽)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만이 오늘 한국 사회의 과제 전부는 아니다. ··· 분단체제가 위력을 잃고 평화체제가 가시권 안에 들어온 이즈음 그 차별과 배제의 논리는 다른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소수자들, 특히 성소수자와 난민 그리고 이주민을 향한 혐오가 날로 격화되어 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와 같은 배제와 혐오의 논리가 기독교 신앙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256쪽)

민중 메시아는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우리를 지탱케 했던 상징계의 법칙과 교리의 강제와 도그마의 환상을 버리게 한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복수적 타자들이 일으키는 변혁의 사건들을 지지하는 사랑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 그 자리란 생명에 대한 존엄이 무너진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 그 파국의 한가운데서 민중신학은 구원을 이야기하였고, 그것의 이름이 바로 민중 메시아였다. (278쪽)

성서가 텍스트이듯이 현재적 사건(경험)도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 역시 현재의 콘텍스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사건을 경험하는 주체가 한국인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콘텍스트의 전거를 마련해 주는 많은 텍스트들 중에 성서텍스트가 포함되는 것이다. (298쪽)

한국 교회는 예수운동의 꿈을 잃고 황금 우상의 허무에 지배당하며 진리를 스스로 저버리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이제 교회가 어둠에 깊이 잠겼다는 느낌, 복음이 길을 잃었다는 직감, 종교적 진실과 진심이 실체를 잃고 언어적 잔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한국 교회에 퍼져 있다. (318쪽)

글을 쓸 공간도 읽을 대중도 사라진 상황, 이것은 민중신학자들에게 뿌리 뽑힘의 체험이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던 만큼 기독교 전통 내에서 그들이 있을 곳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 범주의 바깥에서 그들은 여전히 기독교 신학자들이었다. (336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민중신학 - 우리 시대의 고통에 말을 건네다

가톨릭이건 개신교건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전체적으로 보수화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계 출판사가 민중신학에 대한 책을, 그것도 필자 전원이 개신교 학자들로만 이루어진 책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저자들이 국내 가톨릭 신학자들로만 이루어진 신학책을 개신교계 출판사에서 내줄 것인가, 질문해 본다면 이 어려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한 종교 간 대화 이전에 그리스도교 내의 신학적 대화조차도 요원한 것이 초라한 우리의 현실이다.

민중신학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그리고 신학자 자신에게도 불편한 언어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출세한 민중신학자’라는 말은 ‘부유한 수도자’만큼이나 어색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은 제자리를 잃고 배회하는 민중처럼 여전히 신학 세계에서 유랑하고 있다. 개신교 학자들의 글로만 이루어진 책이라 가톨릭 교리에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고 보수층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성소수자를 다룬 글과 민중 메시아론이 그러할 것인데 성소수자들의 은폐된 고통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주류 사회와 종교들의 배려에서조차 방치된 이들의 아픔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신학계에 충격을 던졌던 민중 메시아론에 대한 글도 전통적인 존재론적 메시아관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관계-사건론적 메시아관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여전히 새롭고 뜻깊은 의미의 공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하며 해석하는가의 문제이다.

개신교에서 출발했지만 주류 개신교에서 외면당하는 민중신학이 가톨릭으로 온다고 해서 환영받을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토론으로 이어진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교리적 확신으로 재단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사상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건 지켜져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학적 설득 작업인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는 독자와 필자에 따라 독해가 쉽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우리 시대의 민중과 고통을 언어로 해명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언어는 가능한 한 간결하고 명확할수록 좋겠으나 이 말이 반드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고통과 억압이 갈수록 다면적이고 교묘히 은폐되며 또 평범한 시야가 가려진 뒷공간에서는 공공연한 폭력도 행사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는 언어도 다층적이고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일상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생긴다.

일상에서 지워진,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의 신학은 여러 신학 중 하나의 신학이 아니라, 모든 신학이 마땅히 구현해야 하는 이상과 목표와 방법을 통칭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일반 신학과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비민중신학이나 비해방신학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제아무리 보수를 자처하는 신학이라도 나름대로는 민중의 염원과 고통을, 해방을, 하느님에 대한 탐구를 겉치레로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고통에 대해 민중신학적 성찰을 담은 본서는 신학도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민중을 외면하면서 참된 종교를 주장할 수 없으며, 시대의 고통에 눈감고 대세에 편입하면서 양심적 지성을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중과 고통이 그저 전문가들의 영역에 한정되거나 한 시대의 언어로 남을 수 없다는 데서 본서의 보편성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중신학’이라는 수저에 담아 건네는 ‘시대의 고통’이라는 보편적인 밥을 인연이 닿는 모든 분들께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