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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동해안을 따라 떠나는 강원도
한 편의 판타지처럼 신비한 고고학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은 경주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떠나는 여정 속에 소장 역사학자 황윤의 고고학적인 문제 제기와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서 색다른 강원도 여행을 선사한다. 각각의 유적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추리하고 증명하는 짜릿한 쾌감! 교과서를 뚫고 나온 듯 생생한 역사 이야기! 역사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켜 누구라도 역사 덕후로 내딛게 만드는 판타스틱한 고고학 여행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동해를 끼고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로 이동하는 아름다운 여행 루트는 함경남도에 세워진 진흥왕순수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찍이 진흥왕이 경주를 출발해 함경남도 행차 시 바라봤던 풍경들이며, 조선시대 [관동별곡]을 쓴 정철이 가사로 읊은 경로를 거꾸로 밟는 길이자, 동해안의 절경을 담아낸 [금강사군첩]을 그린 김홍도의 여정이었고, 울릉도를 함락시킨 이사부의 흔적과 신라 화랑사선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절경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고문헌과 옛 문학 작품, 설화 등과 어우러지면서 지극히 아름답고 신비한 강원도를 경험하도록 인도한다.
한 편의 판타지처럼 신비한 고고학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은 경주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떠나는 여정 속에 소장 역사학자 황윤의 고고학적인 문제 제기와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서 색다른 강원도 여행을 선사한다. 각각의 유적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추리하고 증명하는 짜릿한 쾌감! 교과서를 뚫고 나온 듯 생생한 역사 이야기! 역사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켜 누구라도 역사 덕후로 내딛게 만드는 판타스틱한 고고학 여행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동해를 끼고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로 이동하는 아름다운 여행 루트는 함경남도에 세워진 진흥왕순수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찍이 진흥왕이 경주를 출발해 함경남도 행차 시 바라봤던 풍경들이며, 조선시대 [관동별곡]을 쓴 정철이 가사로 읊은 경로를 거꾸로 밟는 길이자, 동해안의 절경을 담아낸 [금강사군첩]을 그린 김홍도의 여정이었고, 울릉도를 함락시킨 이사부의 흔적과 신라 화랑사선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절경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고문헌과 옛 문학 작품, 설화 등과 어우러지면서 지극히 아름답고 신비한 강원도를 경험하도록 인도한다.
목차
프롤로그
1. 경주에서 만난 강릉 김씨 시조
원성왕릉
원성왕과 그의 라이벌
강릉의 과거 명칭, 명주
2. 포항을 거쳐
새로운 스케줄
금오신화
명주가
경주에서 포항으로
3. 삼척으로 가는 길
포항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들
다시 버스를 타고
울진 봉평리 신라비
신라 관등제의 성립
진골의 등장
신라의 성장과 신분 정립
4. 죽서루에서 만난 용
터미널에서 내려
죽서루
진골 시대
신라 사선을 기억하다
또 한 명의 죽서루 여행객
5. 실직군왕릉
실직곡국 시절
고구려와의 다툼
삼척 김씨 시조
6. 바닷가에서 만난 전설
동해 해암정
수로 부인
기이한 경험을 한 여인들
수로 부인 손자
7. 동해 삼화사
무릉계곡
삼화사
철불에 있는 명문
9세기중반신라
8. 강릉 가는 길
동해안 철기 중심지
열차를 타고
강릉역
강릉선교장
9. 강릉과 군사 기지
경포대
북방을 지키는 군사 기지
강릉 씨마크 호텔
과거 군사 기지의 모습
10. 명주군왕의 전설
월화정
명주군왕릉을 향해
족보 이야기
군왕이라는 작위
왕릉을 보며
11. 범일국사
대관령
국사성황사 가는 길
김유신과 범일국사
범일국사 가계
당나라 유학 열풍
강릉대도호부
12. 마지막 진골
마의태자
관세음보살
홍련암에서 만난 용
마의태자의 길
마지막 발자취
에필로그
참고문헌
1. 경주에서 만난 강릉 김씨 시조
원성왕릉
원성왕과 그의 라이벌
강릉의 과거 명칭, 명주
2. 포항을 거쳐
새로운 스케줄
금오신화
명주가
경주에서 포항으로
3. 삼척으로 가는 길
포항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들
다시 버스를 타고
울진 봉평리 신라비
신라 관등제의 성립
진골의 등장
신라의 성장과 신분 정립
4. 죽서루에서 만난 용
터미널에서 내려
죽서루
진골 시대
신라 사선을 기억하다
또 한 명의 죽서루 여행객
5. 실직군왕릉
실직곡국 시절
고구려와의 다툼
삼척 김씨 시조
6. 바닷가에서 만난 전설
동해 해암정
수로 부인
기이한 경험을 한 여인들
수로 부인 손자
7. 동해 삼화사
무릉계곡
삼화사
철불에 있는 명문
9세기중반신라
8. 강릉 가는 길
동해안 철기 중심지
열차를 타고
강릉역
강릉선교장
9. 강릉과 군사 기지
경포대
북방을 지키는 군사 기지
강릉 씨마크 호텔
과거 군사 기지의 모습
10. 명주군왕의 전설
월화정
명주군왕릉을 향해
족보 이야기
군왕이라는 작위
왕릉을 보며
11. 범일국사
대관령
국사성황사 가는 길
김유신과 범일국사
범일국사 가계
당나라 유학 열풍
강릉대도호부
12. 마지막 진골
마의태자
관세음보살
홍련암에서 만난 용
마의태자의 길
마지막 발자취
에필로그
참고문헌
출판사 리뷰
황윤의 강원도 여행
왜 경주 원성왕릉에서 시작되었을까
저자 황윤은 경주 원성왕릉을 둘러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원성왕 부분을 떠올린다.
선덕왕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자, 여러 신하들이 회의를 한 후에 왕의 집안 조카인 주원(周元)을 옹립하고자 하였다. 주원의 집은 왕궁으로부터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마침 큰비가 와서 알천(閼川)의 물이 넘쳐 주원이 알천을 건너 왕궁으로 오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왕은 큰 자리라 진실로 사람이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갑자기 비가 쏟아진 것은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상대등 경신은 전왕의 동생으로 평소 덕망이 높고 왕의 자질이 있다.”라 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경신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위 내용 중 왕위에 오른 경신이 바로 원성왕릉의 주인인 원성왕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왕으로 세우려 했던 주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는 조선 시대인 16세기 중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통해 김주원의 소식을 전한다.
김주원. 태종왕(태종무열왕)의 자손이다. 당초에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으므로 여러 신하가 정의태후의 교지를 받들어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족자(族子)인 상대장등(上大長等) 김경신이 여러 사람을 위협해 스스로 왕이 되고는 먼저 왕궁에 들어가서 정사를 행했다. 주원은 화를 당할까 두려워 명주(溟州)로 물러가 머무르며 끝내 경주에 가지 않았다. 2년 후 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의 속현인 삼척·근을어·울진 등의 고을을 떼어서 식읍으로 주었다. 이에 자손은 부(府; 명주를 이름)를 관향(貫鄕; 시조의 고향)으로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김경신 즉 원성왕은 본래 왕이 될 김주원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왕이 되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삼국사기』 기록은 무엇인가. 고작 하천 물이 넘쳤다고 왕위 계승 1위 인물을 제치고 2위 인물이 왕이 된다는 것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다만 『삼국유사』에도 김주원이 왕위 계승전에 밀린 후 명주로 물러가 살았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신라 왕이 되지 못한 후 명주로 간 것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듯하다. 문제는 조선 시대에 씌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리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신라 비석 등에는 명주군왕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이 지점에서 황윤은 명주군왕이라는 칭호가 정말로 존재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의 저자 황윤은 강릉 김씨의 시조 김주원 즉, ‘명주군왕’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명주군왕릉이 있다는 강릉으로 향하는데….
「명주가」에서 「별연사고적기」까지
설화가 역사로 만들어지는 순간
통일신라 시대 명주(溟州)는 현재의 강릉을 말한다. 『고려사』에 전하는 고구려 명주가((溟州歌)를 보면, 명주 즉 강릉에 한 여자가 있었는데, 수도에서 온 서생이 반하자 “과거에 합격”해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서생은 수도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했는데, 마침 강릉의 여자 집에서 사위를 들이려 하자 이에 여자가 슬퍼하며 물고기를 통해 서생에게 편지를 보내고, 진짜로 편지를 받은 서생이 강릉으로 달려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오늘날 강릉 월화정에 가면 편지를 물고 있는 노란 물고기 조형물이 있다.
『고려사』에서는 「명주가」를 고구려의 음악으로 정리해두었지만, 학계에서는 「명주가」를 고구려 음악이 아닌 통일신라 음악이라고 보는 의견이 강하다. 명주는 신라 시대 지명이지 고구려 지명이 아니다. 고구려에서는 강릉을 하슬라(何瑟羅)라 불렀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때에는 과거 시험 제도도 없었다. 한편 조선 중기 문신인 허균(許筠, 1569~1618년)이 집필한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는 고려 말~조선 초 인물인 이거인 (李居仁, ?~1402년)이 쓴 글이라며 「별연사고적기」라는 글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주가」와 매우 유사한 구성이다.
「명주가」와 비교해보면 큰 틀은 유사한데 이야기에 크게 살이 붙어 “서생→신라 왕의 아우 무월랑”, “명주의 여인→동원경의 사족 여인”, “물고기→황금 잉어”, “서생이 보려던 과거 시험→왕의 아우로서 본래 고귀한 신분”. 더 나아가 「명주가」에는 존재하지 않은 결혼 후 이야기로 무월랑과 여인 사이에서 다름 아닌 김주원과 원성왕이 태어났다는 내용까지 덧붙여져 있다. 이 과정에서 서생과 여인의 일화가 마치 역사처럼 해석할 여지를 두었지만, 물론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주원은 태종무열왕 후손, 원성왕은 내물왕 후손을 주장했기에 가문부터 다른 인물이었으며, 당연히 친형제는 더욱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별연사고적기」에는 김주원의 어머니 연화 부인의 집을 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어 이로써 단순한 전설이 아닌 실제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처럼 인식되게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 황윤은 김주원의 지역 연고성을 강화하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가정한다. 즉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주원이 본래 강릉과 연고가 있었음을 그의 어머니 연화 부인이 강릉 출신임을 통해 연결시킨 것이다. 이로써 외가는 강릉 핏줄이 되는 것이니까.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신라 왕의 동생이자 본인은 신라 왕이 될 수 있음에도 이를 양보한 것처럼 묘사된 것 역시 시조 김주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라 하겠다. 이렇듯 「별연사고적기」는 본래 신라 시대부터 이어오던 「명주가」 스토리에 새로운 살을 붙여 지역의 명사인 김주원 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변모시킨 결과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별연사고적기」로 연결되는 이거인과 허균, 이 두 사람 간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이거인은 고려 말인 원나라 지정연간(至正年 間: 1341~1367년)에 강릉 김씨 족보의 일종인 왕족도(王族圖)를 작성한 인물인데, 그의 어머니가 강릉 김씨라는 점. 한편 「별연사고적기」를 작성한 허균 역시 강릉 출신인 데다 어머니가 강릉 김씨다. 이거인과 허균, 실존했던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외가가 강릉 김씨 핏줄이었던 것. 이것이 둘이 강릉 김씨 시조인 김주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
역사 속 고전 문학의 재미에 빠지다
강원도 고고학 여행에서 생각해보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책과 함께 강원도 여행을 하다보면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역사나 고전문학의 진면목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 향가인 「헌화가」 「해가」, 최초의 한글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등등 그리고 「단양신라적성비」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등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옛 비석에 새겨진 문헌에 이르기까지…. 그 배경이 되는 실제의 역사 이야기로 확대하여 바라보면 그동안 암기하느라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고고학 여행하듯 옛 것들을 공부한다면 얼마나 재밌고 또 오래오래 남는 자산이 될까.
이 책은 강릉 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출발하여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속초의 향성사지 삼층석탑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여행으로, 이 속에는 신라 진골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한반도 최초로 통일을 이루고 번성했던 고대국가 신라,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진골!
국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앞장서 외세에 맞서 싸우며 솔선수범을 보였던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넘실대는 동해와 곳곳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번 강원도 여행이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왜 경주 원성왕릉에서 시작되었을까
저자 황윤은 경주 원성왕릉을 둘러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원성왕 부분을 떠올린다.
선덕왕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자, 여러 신하들이 회의를 한 후에 왕의 집안 조카인 주원(周元)을 옹립하고자 하였다. 주원의 집은 왕궁으로부터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마침 큰비가 와서 알천(閼川)의 물이 넘쳐 주원이 알천을 건너 왕궁으로 오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왕은 큰 자리라 진실로 사람이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갑자기 비가 쏟아진 것은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상대등 경신은 전왕의 동생으로 평소 덕망이 높고 왕의 자질이 있다.”라 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경신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위 내용 중 왕위에 오른 경신이 바로 원성왕릉의 주인인 원성왕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왕으로 세우려 했던 주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는 조선 시대인 16세기 중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통해 김주원의 소식을 전한다.
김주원. 태종왕(태종무열왕)의 자손이다. 당초에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으므로 여러 신하가 정의태후의 교지를 받들어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족자(族子)인 상대장등(上大長等) 김경신이 여러 사람을 위협해 스스로 왕이 되고는 먼저 왕궁에 들어가서 정사를 행했다. 주원은 화를 당할까 두려워 명주(溟州)로 물러가 머무르며 끝내 경주에 가지 않았다. 2년 후 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의 속현인 삼척·근을어·울진 등의 고을을 떼어서 식읍으로 주었다. 이에 자손은 부(府; 명주를 이름)를 관향(貫鄕; 시조의 고향)으로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김경신 즉 원성왕은 본래 왕이 될 김주원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왕이 되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삼국사기』 기록은 무엇인가. 고작 하천 물이 넘쳤다고 왕위 계승 1위 인물을 제치고 2위 인물이 왕이 된다는 것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다만 『삼국유사』에도 김주원이 왕위 계승전에 밀린 후 명주로 물러가 살았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신라 왕이 되지 못한 후 명주로 간 것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듯하다. 문제는 조선 시대에 씌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리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신라 비석 등에는 명주군왕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이 지점에서 황윤은 명주군왕이라는 칭호가 정말로 존재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의 저자 황윤은 강릉 김씨의 시조 김주원 즉, ‘명주군왕’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명주군왕릉이 있다는 강릉으로 향하는데….
「명주가」에서 「별연사고적기」까지
설화가 역사로 만들어지는 순간
통일신라 시대 명주(溟州)는 현재의 강릉을 말한다. 『고려사』에 전하는 고구려 명주가((溟州歌)를 보면, 명주 즉 강릉에 한 여자가 있었는데, 수도에서 온 서생이 반하자 “과거에 합격”해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서생은 수도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했는데, 마침 강릉의 여자 집에서 사위를 들이려 하자 이에 여자가 슬퍼하며 물고기를 통해 서생에게 편지를 보내고, 진짜로 편지를 받은 서생이 강릉으로 달려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오늘날 강릉 월화정에 가면 편지를 물고 있는 노란 물고기 조형물이 있다.
『고려사』에서는 「명주가」를 고구려의 음악으로 정리해두었지만, 학계에서는 「명주가」를 고구려 음악이 아닌 통일신라 음악이라고 보는 의견이 강하다. 명주는 신라 시대 지명이지 고구려 지명이 아니다. 고구려에서는 강릉을 하슬라(何瑟羅)라 불렀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때에는 과거 시험 제도도 없었다. 한편 조선 중기 문신인 허균(許筠, 1569~1618년)이 집필한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는 고려 말~조선 초 인물인 이거인 (李居仁, ?~1402년)이 쓴 글이라며 「별연사고적기」라는 글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주가」와 매우 유사한 구성이다.
「명주가」와 비교해보면 큰 틀은 유사한데 이야기에 크게 살이 붙어 “서생→신라 왕의 아우 무월랑”, “명주의 여인→동원경의 사족 여인”, “물고기→황금 잉어”, “서생이 보려던 과거 시험→왕의 아우로서 본래 고귀한 신분”. 더 나아가 「명주가」에는 존재하지 않은 결혼 후 이야기로 무월랑과 여인 사이에서 다름 아닌 김주원과 원성왕이 태어났다는 내용까지 덧붙여져 있다. 이 과정에서 서생과 여인의 일화가 마치 역사처럼 해석할 여지를 두었지만, 물론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주원은 태종무열왕 후손, 원성왕은 내물왕 후손을 주장했기에 가문부터 다른 인물이었으며, 당연히 친형제는 더욱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별연사고적기」에는 김주원의 어머니 연화 부인의 집을 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어 이로써 단순한 전설이 아닌 실제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처럼 인식되게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 황윤은 김주원의 지역 연고성을 강화하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가정한다. 즉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주원이 본래 강릉과 연고가 있었음을 그의 어머니 연화 부인이 강릉 출신임을 통해 연결시킨 것이다. 이로써 외가는 강릉 핏줄이 되는 것이니까.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신라 왕의 동생이자 본인은 신라 왕이 될 수 있음에도 이를 양보한 것처럼 묘사된 것 역시 시조 김주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라 하겠다. 이렇듯 「별연사고적기」는 본래 신라 시대부터 이어오던 「명주가」 스토리에 새로운 살을 붙여 지역의 명사인 김주원 가계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변모시킨 결과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별연사고적기」로 연결되는 이거인과 허균, 이 두 사람 간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이거인은 고려 말인 원나라 지정연간(至正年 間: 1341~1367년)에 강릉 김씨 족보의 일종인 왕족도(王族圖)를 작성한 인물인데, 그의 어머니가 강릉 김씨라는 점. 한편 「별연사고적기」를 작성한 허균 역시 강릉 출신인 데다 어머니가 강릉 김씨다. 이거인과 허균, 실존했던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외가가 강릉 김씨 핏줄이었던 것. 이것이 둘이 강릉 김씨 시조인 김주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
역사 속 고전 문학의 재미에 빠지다
강원도 고고학 여행에서 생각해보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책과 함께 강원도 여행을 하다보면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역사나 고전문학의 진면목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 향가인 「헌화가」 「해가」, 최초의 한글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등등 그리고 「단양신라적성비」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등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옛 비석에 새겨진 문헌에 이르기까지…. 그 배경이 되는 실제의 역사 이야기로 확대하여 바라보면 그동안 암기하느라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고고학 여행하듯 옛 것들을 공부한다면 얼마나 재밌고 또 오래오래 남는 자산이 될까.
이 책은 강릉 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출발하여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속초의 향성사지 삼층석탑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여행으로, 이 속에는 신라 진골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한반도 최초로 통일을 이루고 번성했던 고대국가 신라,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진골!
국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앞장서 외세에 맞서 싸우며 솔선수범을 보였던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넘실대는 동해와 곳곳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번 강원도 여행이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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