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성서신학 (연구>책소개)/3.예수그리스도

예수의 마지막 말들 (2023) -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동방박사님 2023. 3. 19. 08:47
728x90

책소개

예수가 죽음을 맞이하며 남긴 말들의 의미
영미권을 대표하는 설교자-신학자의 진지하고도 날카로운 가상칠언에 대한 신학적 성찰


그리스도교 신앙의 바탕에는 한 사람의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승리가 놓여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죽음에 대한 주님의 승리를 선포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죽음을 진지하게 되새겨야 한다고, 둘의 의미를 함께 곱씹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사순절은 이를 진지하게 되새기는 과정이며 십자가 사건을 기리는 성금요일은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그 절정의 시간, 그리스도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며 복음서에서 증언하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남기신 마지막 말들을 묵상하곤 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예수는 아버지께 타인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돌이킨 자에게 낙원을 약속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빚어내고, 아버지의 부재에 울부짖고, 목말라하고, 자신의 일을 성취하고, 자신의 영을 아버지에게 맡긴다. 아버지를 향한 간구에서 시작해 울부짖다 다시 아버지를 향한 간구로 마무리되는 이 일련의 과정은 지상의 모든 폭력에 노출되어 침묵에 들어가기 전 ‘말씀’이 이 세계에 온 이유, 이 세계의 정체, 그리고 이 세계가 새롭게 맞이할 미래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영미권에서 가장 탁월한 설교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플레밍 러틀리지는 저 말들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열어젖힌다. 우리의 폭력성, 우리의 뒤틀린 마음, 우리의 오만이 어떻게 십자가에서 폭로되는지, 동시에 우리의 평화, 우리의 돌이킨 마음, 우리의 겸손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사려 깊은 주석과 간결하면서 날카로운 신학적 통찰, 현실과의 연결을 통해 보여준다. 인류가 서로에게 갖는 모든 적대감과 비난을 스스로 짊어진 사람, 우리들 사이에서 쫓겨났음에도 우리에게 손길을 내민 사람,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용서와 화해의 차원을 열어젖힌 사람, 우리를 분열시키는 모든 경계와 적대감을 끌어안고 새로운 가족을 빚어낸 사람이 다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묵상집은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첫 번째 말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두 번째 말씀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말씀
여자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이다. ... 이 사람이 너의 어머니시다.

네 번째 말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다섯 번째 말씀
목마르다.

여섯 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
일곱 번째 말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부록 1. 십자가에 달린 이의 부활
부록 2. 희망이 사라진 때 희망하기
플레밍 러틀리지 저서 목록
 

저자 소개

저 : 플레밍 러틀리지 (Fleming Rutledge)
 
Virginia Theological Seminary의 명예 신학박사인 Fleming Rutledge목사는 1959년 버지니아에 있는 Sweet Briar College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1975년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뉴욕시와 근교에서 22년 동안 목회를 한 바 있으며, 현재는 전미 지역에서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을 활발히 감당하고 있다. Rutledge목사는 설교자와 강...

역 : 손승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성서와 만나다』(존 폴킹혼), 『복음서와 만나다』(리처드 버릿지),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로완 윌리엄스, 공역), 『예수, 역사와 만나다』(야로슬라프 펠리칸, 공역, 이상 비아), 『성경을 만나다』(존 골딩게이, 성서유니온선교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 속으로

본래 십자가형에는 어떤 종교적인 의미도, 어떠한 희망도, 어떠한 영감을 주는 요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형은 사람들이 ‘음란함’obscene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 즉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역겹고, 혐오스럽고, 더럽고, 악취가 나며, 구역질 나는” 감정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로마 제국 전역에서 십자가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타락한 범죄자, 저주받은, 짐승만도 못한 자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구세주라 선언했습니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떠한 기준으로도, 종교라는 기준에서 볼 때는 더더욱,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나자렛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라는 선언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주장입니다. 이는 인간의 종교적 상상력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주장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받아들이는 영적 관념들로는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라는 낯선 관념에 이를 수 없습니다.
--- pp.18~9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쓰레기 취급 당하는 이들이 받는 형벌, 우리가 흔히 범죄자라 부르는 이들이 받는 형벌이었습니다. 좀 특별한 범죄자들, 영향력 있는 특권층 출신의 범죄자들은 결코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지요. 이를 묵상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일과 정반대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쓰레기 취급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스스로 쓰레기가 되셨습니다.
--- p.32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다고, 여러분이 그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도적처럼 예수께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죽음은 도적들, 문명화된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나쁜 부류”만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순진함이라는 가면을 쓴 채 스스로 의롭다는 망상에 빠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위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pp.41~42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도 교회’를 질타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도 타락해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 하느님을 향해 참회해야 한다면서 말이지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비판하는 이들이 고려하지 않은 중요한 속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고 있다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현실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다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서로 대놓고 싫어하는 이들이 모인다는 점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다름’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호불호는 그리스도의 몸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와 여자”도 없고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 p.54

복음이란 무엇이니까? 그리고 복음이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신자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말은 한편은 맞으면서도 한편은 틀립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그가 어떤 차원에 속해 있는지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그 이야기는 복음일 수도, 복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정된 미국 성공회 기도서와 성서정과가 특정 문화, 신학적 경향을 반영해 우리를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만든)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듣지 못합니다. 대신, 우리는 예수 케리그마를 듣습니다. 개정된 성공회 전례에서는 복음서를 낭독한 직후 설교를 전합니다. 이때 복음서 본문은 대부분 공관복음 중 하나이며 요한 복음서는 거의 채택되지 않습니다. 구약성서나 서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스럽게 설교는 예수가 무엇을 했는지, 뭐라고 말했는지를 전하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그래서 청중은 예수에 대해 들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듣지는 못합니다.
--- p.134
 

출판사 리뷰

예수가 죽음을 맞이하며 남긴 말들의 의미
영미권을 대표하는 설교자-신학자 플레밍 러틀리지의 가상칠언에 대한 진지하고도 날카로운 신학적 성찰


그리스도교에서 성금요일은 결정적인 날입니다. 1년 중 결정적인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사 전체를 놓고 보아도 결정적인 날입니다. ‘결정적’crucial이라는 말 자체를 생각해 볼 때도 그렇습니다. 이 표현은 ‘십자가’cross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crux에서 나왔습니다. 웹스터 사전은 ‘결정적’이라는 말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최종 선택, 혹은 최종 심판의 성격을 갖는 것, 가장 치명적이고 중대한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 성금요일은 이런 특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 본문 中

그리스도교 신앙의 바탕에는 한 사람의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승리가 놓여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죽음에 대한 주님의 승리를 선포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죽음을 진지하게 되새겨야 한다고, 둘의 의미를 함께 곱씹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사순절은 이를 진지하게 되새기는 과정이며 십자가 사건을 기리는 성금요일은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그 절정의 시간, 그리스도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며 복음서에서 증언하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남기신 마지막 말들을 묵상하곤 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예수는 아버지께 타인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돌이킨 자에게 낙원을 약속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빚어내고, 아버지의 부재에 울부짖고, 목말라하고, 자신의 일을 성취하고, 자신의 영을 아버지에게 맡긴다. 아버지를 향한 간구에서 시작해 울부짖다 다시 아버지를 향한 간구로 마무리되는 이 일련의 과정은 지상의 모든 폭력에 노출되어 침묵에 들어가기 전 ‘말씀’이 이 세계에 온 이유, 이 세계의 정체, 그리고 이 세계가 새롭게 맞이할 미래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영미권에서 가장 탁월한 설교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플레밍 러틀리지는 저 말들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열어젖힌다. 우리의 폭력성, 우리의 뒤틀린 마음, 우리의 오만이 어떻게 십자가에서 폭로되는지, 동시에 우리의 평화, 우리의 돌이킨 마음, 우리의 겸손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사려 깊은 주석과 간결하면서 날카로운 신학적 통찰, 현실과의 연결을 통해 보여준다. 인류가 서로에게 갖는 모든 적대감과 비난을 스스로 짊어진 사람, 우리들 사이에서 쫓겨났음에도 우리에게 손길을 내민 사람,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용서와 화해의 차원을 열어젖힌 사람, 우리를 분열시키는 모든 경계와 적대감을 끌어안고 새로운 가족을 빚어낸 사람이 다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묵상집은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추천평
“플레밍 러틀리지는 위대한 설교자다. 교양있고 열정적이며 도발적이다.”
- 미로슬라브 볼프 (신학자, 『기억의 종말』, 『배제와 포용』의 저자)
“러틀리지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무한한 은총에 집중한다. 그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설교자 중 한 사람이다. 예리한 정신, 신학적 상상력으로 러틀리지는 우리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준다.”
- 앨런 제이콥스 (신학자, 영문학자, 『고전을 만나는 시간』, 『당신이 생각만큼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의 저자)
“이 책을 읽으라. 교회력의 가장 어두운 순간, 구원이 오는 어둠의 시기, 오늘날 가장 탁월한 설교자의 인도를 받으라.”
- 프랜시스 스푸포드 (소설가, 『Golden Hill』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