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기독교 신학연구 (책소개)/8.목회신학연구

밀턴 평전 (2008) - 불굴의 이상주의자

동방박사님 2023. 4. 26. 17:05
728x90

책소개

혁명적 이상주의자 밀턴의 삶으로 가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낙원추방을 섬세하고 장중한 필치로 묘사한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 그는 영문학사상 최고의 서사시인이자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글귀나 짓는 시인이 아닌 영웅적 전사, 정치가, 사상가, 입법자, 철학자로서의 자질을 지닌 그리고 그러한 자질을 몸소 실천한 밀턴, 즉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밀턴을 보여준다. 밀턴의 아름답고 올곧은 삶의 발자취를 더듬은 작품이다.

이 책은 언론 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등 그의 대표작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의 인생을 살펴 보았다. 낯선 혁명가 밀턴의 시련과 고난에 주목하여 그가 어떻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극복했는지 서술하였다. 또한 늘 당당하고 꼿꼿한 지조를 보여준 존 밀턴에게 배울 점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깊은 성찰을 담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밀턴의 올곧은 생애와 사상을 ‘거인의 어깨’ 삼아 난쟁이와도 같은 우리 모두가 함께 딛고 올라섰으면 한다고 자신의 바람을 피력했다. 특히 올해( 2008년)은 밀턴이 태어난 지 4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 더욱 의미가 있다.
  •  

목차

머리말

나의 마지막 회상
육체적 시련|나의 조국 잉글랜드|이혼 문제와 검열제|장로파의 배신|홀로 왕정에 저항하다|서사시 3부작

1부 잉글랜드의 아들

17세기의 아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가톨릭의 반발|청교도의 개혁 열망|제임스 1세와 화약음모사건|17세기의 아들|종교와의 만남|세인트 폴 스쿨 시절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숙녀
대주교 윌리엄 로드의 청교도 박해|반항적인 케임브리지 시절|미래의 청교도 혁명가|크라이스트 칼리지의 숙녀

학구적 은둔
밀턴의 정체성 위기|해머스미스 시절|호턴 시절

잉글랜드 밖에서
로마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근대 유럽의 그랜드 투어|“원리”는 조국에서 익힌다|로마에 대한 두 가지 느낌|가톨릭교도들에 에워싸인 밀턴

갈릴레이와의 만남
《실낙원》에 등장하는 갈릴레이|현재진행형의 갈릴레이 사건

모국어를 아름답게 장식하리라
모국어는 위대한 문학을 담는 그릇|주네브 방문과 귀국

2부 실천하는 공화주의자

종교 논쟁의 독설가
주교전쟁과 장기의회|팸플릿 저자로 활동한 밀턴|주교제애 대한 공격|동상이몽의 장로파와 함께

이혼 문제로 악명을 얻다
남편을 버리고 친정에 간 어린 아내|《이혼론》과 정치적 급진주의

언론의 자유를 위하여
17세기의 지적 풍토: 천년왕국사상|《종교개혁론》|1637년의 성실청 포고령|장로파 주도로 제정된 출판허가법|종교개혁자 마틴 부처의 저서를 번역하다

무서운 아이
장로파 목사 허버트 파머의 공격|탁월한 문장력을 지닌 “무서운 아이”

장로파의 획일적 교조주의
혁명을 배신한 장로파|“새로운 장로는 옛 사제보다 한술 더 뜨는 자”|장로파 획일주의의 기원|진리의 진보를 위해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라
관용 논쟁에 뛰어들다|관용의 한계|조각난 진리를 회복해야

제2, 제3의 끝없는 종교개혁
잉글랜드의 종교개혁 전통|일인 일교회를 추구하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당파와 의회파, 국교도와 청교도|제1차 내전|국왕군의 패배|의회파의 분열: 장로파와 독립파|제2차 내전과 찰스 처형|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독립파와의 결별|밀턴과 메리의 재결합

신생 공화국의 대변인
찰스 1세의 처형과 장로파의 혁명 배신|국왕 살해의 정치철학|외국어장관 취임|혁명 논객 밀턴

제3부 시력상실

밀턴의 자가진단
내가 겪는 어둠은 무덤속의 어둠보다는 관대합니다|당당한 반론|실명은 신의 징벌이 아니다|밀턴의 가정

시력 상실
실명의 원인|첫 번째 가설: 선천성 매독|밀턴 가문의 재앙?|두 번째 가설: 낭종에 의한 시신경교차 압박| 분노 표출과 거친 표현은 의도적인 글쓰기 전략|세 번째 가설: 녹내장|밀턴의 성격과 기질|장로파의 배신이 준 충격|야만적인 치료 과정

4부 내부적 망명자

1660년, 홀로 남은 투사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군주정|국왕시해 옹호자

복고왕정의 죄인
왕정복고|“20인 명단”과 체포명령|구금과 석방

아버지 밀턴, 남편 밀턴
나는 젖을 짜내고 싶단 말이야|딸들의 교육|리어왕 신세가 된 밀턴|세 번째 결혼|밀턴의 신앙

장님의 벗, 필생과 함께
토머스 엘우드의 경우|새뮤얼 파커의 경우|필생들의 도움

저는 두 눈을 잃었을 뿐입니다
요크 공 제임스의 방문|국왕의 회유를 거절하다

마지막 런던 풍경
런던을 덮친 재앙들|런던 탈출과 피난살이|엘우드와 《복낙원》|런던 귀환|핏빛으로 물든 태양

《실낙원》과 밀턴의 만년
《실낙원》의 검열 통과|《실낙원》 출간|남은 나날들

자주 인용된 자료
인물 주석
일반 주석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박상익
 
우석대학교 명예교수. 청주에서 태어났다. 우석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강의하면서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을 지냈다. 역사, 문학, 종교의 학제 연구에 관심을 갖고 저술 및 번역을 하고 있다. 《번역은 반역인가》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혁명가인 존 밀턴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밀턴 평전: 불굴의 이상주의자》를, 밀턴의 대표 산문인 〈아레오파기티카〉를 완역하고 주석을 단 연구서 《아레오파기티...
 

출판사 리뷰

밀턴, 익숙하지만 낯선

존 밀턴John Milton(1608~1674). 익숙하지만 낯선 이름. 우리에게 밀턴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잠깐 언급된,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낙원추방을 섬세하고 장중한 필치로 묘사한 《실낙원》의 저자로서만 존재한다. 변변한 평전 한 권조차 없이 상아탑에 유폐된 채 몇몇 전공 학자들만의 전유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밀턴을 《실낙원》의 저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밀턴의 혁명가적 삶을 봤을 때 너무나 소략하고, 또한 그만큼 허전하고 아쉽다. 밀턴에게는 영문학사상 최고의 서사시인이자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이라는 세간의 일반적 평가 외에도 숱한 고난을 극복한 불굴의 노력이 있었다. 시력 상실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가 있었다. 국왕파의 온갖 위협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공화정에 대한 꿈을 견지한 이상주의가 있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이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언론 자유를 향한 열망이 있었다.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위대한 문학을 창조할 것을 다짐하던 모국어 사랑이 있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런던, 1802년〉은 이러한 밀턴의 삶에 대한 경의이자 찬사다. 워즈워스의 시대에 밀턴이 필요했다면 우리 시대에는 밀턴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밀턴 탄생 400주년을 맞아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시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진정한 위인은 어떤 종류의 위인도 될 수 있다고 나는 상상해 봅니다. 그저 의자에 앉아 글귀나 짓는 시인은 대단한 시는 결코 짓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영웅적 전사가 아니라면 영웅적 전사를 노래할 수 없습니다. 생각건대 진정한 시인의 내면에는 정치가, 사상가, 입법자, 철학자의 자질이 잠재해 있습니다. 많든 적든 간에 이런 모든 것이 어느 정도는 다 들어 있습니다.

《밀턴 평전?불굴의 이상주의자》는 이처럼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글귀나 짓는 시인이 아닌 영웅적 전사, 정치가, 사상가, 입법자, 철학자로서의 자질을 지닌 그리고 그러한 자질을 몸소 실천한 밀턴, 즉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밀턴을 보여준다. 평생 일관된 원칙과 도덕성을 견지한 밀턴의 선비다운 삶과 불굴의 이상주의에 매료되어 밀턴 연구를 지속해온 저자 박상익은 이 책을 통해 상아탑 안에 갇힌 밀턴의 아름답고 올곧은 삶에 세상의 빛을 불어넣는다. 특히 2008년은 밀턴이 태어난 지 4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밀턴을 위해 마련한 조촐한 400주년 생일 잔칫상이요 한국 사회에 바치는 자그마한 선물이다.

시련을 넘어, 고난을 넘어

내 눈은 아무런 혼탁도 없이 맑고 명료합니다
그렇다면 익숙한 시인, 그러나 낯선 혁명가 밀턴의 삶은 과연 어떠했는가. 저자는 밀턴의 생애에 세 번의 커다란 고난과 위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올곧은 자신의 길을 걸었다고 강조한다.
밀턴의 첫 번째 시련은 시력 상실이다. 밀턴은 36세 무렵부터 8년에 걸쳐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으며 44세가 되던 1652년 완전히 실명한다. 글 읽기와 글 쓰기를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는 문필가로서는 견디기 힘든 가혹한 시련이었다. 여기에 밀턴의 시력 상실을 신의 징벌로 규정한 정적들의 공격, 치료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덧붙여진다.
그럼에도 밀턴은 그러한 시련을 묵묵히 이겨낸다. 시력을 잃기 전과 다름없는 불퇴전의 용기를 견지하면서 맑고 명료한 마음의 눈을 유지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시력 상실 이전과 동일한 용기,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와 같은 시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내 눈은 손상을 입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가장 좋은 시력을 가진 사람의 눈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혼탁도 없이 맑고 명료하다. 오직 이점에서만 나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남을 속이고 있는 셈이다.

정신과 기질의 불일치는 이혼의 정당한 사유입니다
둘째, 이혼 문제. 밀턴은 영국에 왕당파와 의회파 간 내전의 기운이 감돌던 1642년 메리 파월과 결혼한다. 그러나 메리는 밀턴과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친정으로 돌아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일을 계기로 밀턴은 부부가 정신적으로 불일치할 경우 이혼을 해도 무방하다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 간통이나 불감증이 아닌 경우 이혼을 허용하지 않던 당시 잉글랜드 법률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과감히 제기한 셈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이혼자를 ‘난봉꾼’과 마찬가지로 취급하던 시대였기에 밀턴은 평생 수모를 당하며 ‘이혼자divorcer’라는 오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도덕성을 긍지로 삼고 있던 밀턴으로서는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밀턴은 이러한 수치와 모멸을 사상과 표현의 자유 구현으로 승화시킨다. 언론 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는 그 대표적 결과물이다.

국가에 대해서 건전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고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칭송을 받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사람이 침묵을 지킬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한 나라에 이보다 더 큰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군주정의 속박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입니다
셋째, 1660년의 왕정복고. 공화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신념이 아닌 이상 그 자체로 여기고 있던 밀턴에게 왕정복고는 쓰디쓴 환멸을 안겨준다. 밀턴에 의하면, 군주정은 인민을 왕의 종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간성을 모독하는 무가치한 속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과 모든 안전과 복리를 그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얼마나 나약한 일인가. 우리가 게으름뱅이나 어린아이가 아닌 바에야, 하나님 이외에는, 우리 자신의 분별력과 적극적인 미덕과 근면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을 ‘어른이 아닌 아이로서’ 행동하도록 만드는 수치스러운 군주정이 왕정복고와 더불어 다시 등장하자 밀턴은 정치적 실천이라는 현세적 이상을 뛰어넘어 개인의 영혼을 개혁하는 데 절대적 가치를 둔 새로운 입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 열매가 바로 3대 서사시 《실낙원》, 《복낙원》, 《투사 삼손》이다.

‘거인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라

나의 모든 근면과 기예를 나의 모국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딛고 일어선 의지 이외에도 밀턴의 삶에는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다양한 교훈들이 녹아 있다. 먼저 조국 사랑. 밀턴은 조국 잉글랜드가 자신을 혁명의 주범으로 몰아 체포했음에도 자신의 글쓰기의 목표가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데 있다고 천명하면서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피력한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 후세를 위해 글로 쓰게 된다면 …… 내 조국을 명예롭게 만들고 지식을 충만케 하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고려할 것이 없다 …… 나는 모든 근면과 기예를 다 발휘하여 나의 모국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 이 섬나라에 사는 나의 동포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가장 훌륭하고 슬기로운 일들을 모국어로 전달하고 해석하는 자가 되련다 …… 혹시 라틴어로 글을 쓰면 해외에서 더 큰 명예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런 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 영국 땅을 나의 세계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당시 영어는 변방 언어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영어로 작품을 써봐야 전 유럽에서 명예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라틴어로 글을 써야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틴어의 대가인 밀턴은 그런 사사로운 명예 획득에 개의치 않고 모국어인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조국을 명예롭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밀턴의 조국 사랑은 17세기 인문 정신의 구현이자 종교 문학의 정수로 칭송받는 장편 서사시 《실낙원》으로 구체화된다.

저는 두 눈을 잃었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다. 밀턴의 당당함과 꼿꼿한 지조 또한 권력에 줄 서기하는 게 당연시되는 현 세태와 대비되어 묵직한 울림을 준다.
1663년 2월, 밀턴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1649년 사형당한 찰스 1세의 둘째 아들이자 당시 잉글랜드 국왕이던 찰스 2세의 동생으로서, 장차 제임스 2세가 될 인물인 요크 공 제임스. 얼마간 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제임스는 밀턴의 실명이 그의 저술 활동에 대한 신의 심판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에 밀턴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만일 전하께서 여기 우리에게 닥친 재앙을 하늘이 진노하신 징후라고 생각하신다면 전하의 부친이신 선왕의 운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전제에서라면 하늘은 저보다는 부친께 더 훨씬 더 불쾌하셨던 게지요. 저는 두 눈을 잃었을 뿐이지만 선왕은 머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두 눈을 잃은 것이 하늘이 내린 벌이라면 ‘당신 아버지 찰스 1세는 하늘로부터 얼마나 큰 벌을 받았기에 처형장에서 목이 잘렸는가’라고 반문한 것이다. 국왕의 동생이자 왕위계승권자 앞에서 전혀 굴하지 않는 당당함, 공화정을 위해 바친 자신의 삶을 헛되이 하지 않는 선비다운 지조와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밀턴의 올곧은 삶을 좇아
밀턴은 국왕 찰스 1세가 사형 선고를 받고 도끼에 목이 잘려나가는 영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지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을 위해 그리고 신앙과 대의를 위해 온몸을 불사른 ‘거인’이었다.
저자는 이 같은 밀턴의 올곧은 생애와 사상을 ‘거인의 어깨’ 삼아 난쟁이와도 같은 우리 모두가 함께 딛고 올라섰으면 한다고 바람을 피력한다. 특히 권력과 이익을 따라 변신을 거듭해왔으면서도 자신들의 기회주의를 ‘변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모리배들이 젊은 영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현실에서, 조국과 사회를 위해 아름다운 원칙을 평생토록 견지한 밀턴의 올곧은 삶이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한다. 돈과 권력을 좇아 변신을 거듭하는 세태가 당연시되는 현실에서 조국을 향한 밀턴의 ‘붉은 마음[丹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